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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시다(시 6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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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시다 (시편 63:1-11)

다윗 왕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용모가 준수하고 호감이 가는 인물이었습니다. 부모가 압살롬을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던지 그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아무런 흠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랑했던 아들이 아버지인 다윗 왕을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군사를 일으켜서 왕궁을 향해서 쳐들어 오고 있었습니다. 4년 동안 치밀한 계획하에 준비된 반란이었기 때문에 다윗이 믿었던 신하들과 많은 백성들이 압살롬에게 속아서 따라갔습니다.

이 사실을 안 다윗 왕은 아들과 싸워 많은 피를 흘리는 것보다는 내가 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피난 길에 올랐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예루살렘 남동쪽에 위치한 기드론 시내를 건널 때에 그 모습을 바라 본 백성들은 통곡하였습니다. 감람산을 넘을 때는 다윗도, 백성들도 손으로 머리를 가리우고 맨발로 울면서 갔습니다.

다윗의 일행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 사울 왕가의 한 사람인 시므이가 나타나서 다윗에게 티끌을 날리고 돌을 던지면서 “이 비루한 놈아! 물러 가라!”고 저주를 했습니다. 겨우 도망쳐 나온 곳은 황량한 사막이었습니다. 1절에 있는 대로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고 한 것처럼 다윗은 지금 메마른 광야에 있습니다. 황량한 사막에 있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역풍으로 모든 것이 메마르고 곤핍한 땅에 처해져 있었습니다.

1. 생명보다 귀하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인자

다윗은 주변의 환경이 이렇게 마르고 곤핍한 모습을 보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주변의 메마른 땅에 단비가 필요하듯이 내 삶이 하나님의 인자(仁慈)가 필요함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이 있으면 되겠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생명보다 더 귀한 인자를 가진 하나님을 향하여 <내 영혼과 내 육체가 갈망하며 앙모합니다. 바라봅니다. 손들고 기도합니다. 침상에서 기도하며 밤중에도 묵상합니다.> 이렇게 애타게 주의 인자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장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 삶의 환경을 늘 영적인 부분과 연결시켰습니다. 그것이 다윗 시편의 특성이고 그의 장점이었습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 물이 얼마나 필요하겠습니까? 시편 143편 6절에 <내 영혼이 마른 땅과 같이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사모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마른 땅이 얼마나 물을 필요로 하며 얼마나 물을 갈급하게 기다리겠습니까?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으면 논이 짝짝 갈라져서 하늘을 향해서 입을 벌리고 거기 심겨졌던 농작물은 다 메말라서 죽어갑니다. 마른 땅은 내리는 단비를 그렇게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디윗은 주변에 있는 땅만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의 삶이 그렇고 자기의 영혼이 그렇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기의 삶과 영혼에 하나님의 인자가 있으면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인자가 없으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자를 이렇게 애타게 사모하고 있습니다.

다윗만 그렇습니까?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의 현실이 마치 황량한 광야와 같은 모습을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서 땅이 갈라지듯이 우리나라가 이념적으로 갈라져서 사람들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습니다. 정당(政黨)을 따라 갈라지고, 지역을 따라 갈라지고, 연령을 따라 갈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메마른 땅처럼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내일에 대한 불안 때문에 사람들이 목말라서 점쟁이를 찾아가는 통에 점치는 집들이 성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는데 은과 금이 있기 시작하면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우리에게서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은도 금도 없어지고 예수의 이름도 잃어버려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지 않습니까? 내 영혼은 극심한 가뭄 속에 메말라 있지 않습니까? 이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한가지 뿐입니다. 비만 오면 되는 것입니다. 비만 오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인자만 있으면 됩니다. 생명보다 귀한 인자가 가장 귀한데 이 인자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만 만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은총만 입으면 우리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메마른 광야에서 하나님의 인자를 이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1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습니다. 메마른 땅이 물을 사모하듯이 하나님을 갈망했습니다. 2절에 보면 성소(聖所)에서 주를 보았습니다. 왜 이렇게 간절히 찾고 찾으며 앙망하고 있습니까?
우리말 성경에는 3절로 넘어가서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 원어에는 ‘왜 그런고하면...’이란 뜻을 가진 ‘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유접속사인 이 ‘키’가 3절 앞에 나와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을 사모하는가하면 하나님의 인자가 생명보다 낫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다윗은 그 인자를 가지신 하나님을 그렇게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인자’라는 히브리 말은 ‘헤세드’라는 말인데 구약에서는 이 말이 2백 4십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인자’의 우리 말 뜻은 ‘은혜, 자비, 친절, 긍휼, 불변의 사랑’ 등의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많이 번역된 말은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에는 ‘한결같은 사랑’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 외 모든 우리 말로 번역되는 성경에는 ‘사랑’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은혜와 사랑’인 ‘인자’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마른 땅에 단비만 있으면 다 해결되듯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인 인자만 있으면 되는 줄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인자를 그렇게 사모하고 그렇게 애타게 갈망하고 있습니다.
인자는 ‘생명보다 귀하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귀한 것이 참 많지 않습니까? 물질이 귀합니다. 보석이 귀합니다. 명예가 귀합니다. 학식이 귀합니다. 참으로 귀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사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생명을 거두어가고 나면 우리가 사모하던 모든 것들은 다 무(無)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런데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인 인자가 생명보다 더 귀합니다. 물만 있으면 사막도 오아시스로 변하지 않습니까? 미국의 LA는 사막 위에 세워진 도시입니다. 본래 사막이었는데 거기에 물을 끌어들여 나무를 심고, 농사를 짓고, 집을 지어서 이루어진 도시이기 때문에 굉장히 건조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관절염이라든지 호흡기 질환을 앓던 사람이 LA에 가게되면 거뜬히 낫게 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황량한 사막도 물만 있으면 그 사막이 아름다운 땅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나라 아닙니까? 이스라엘에는 본래 황량한 사막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사막이었지만 요단강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고, 집을 짓고, 나무를 심으니까 얼마나 아름다운 땅이 되었는지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애굽에서 출발해서 이스라엘 가까이 가면 애굽과 이스라엘이 확연하게 표가 난다는 것입니다. 애굽지역은 황량한 사막이지마는 이스라엘 지역은 요단강의 물을 끌어와 나무를 심어서 얼마나 푸르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황량한 사막이라 할지라도 물만 있으면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인자만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만 있으면 죽음도 생명으로 바뀌어지고, 사막도 오아시스로 바뀌어지고, 하나님의 사랑만 있으면, 인자만 있으면 우리의 환경이 바뀌어지고, 삶이 바뀌어지고, 우리의 신분까지 바뀌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아무리 생명력이 넘치고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도 하나님의 인자가 떠나면, 하나님이 인자를 거두어 가시면 다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9장에 보면 롯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할 때 구원되었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황불에 다 태움을 받을 때에 왜 그와 그의 가족은 구원되었는 줄 아십니까? 창세기 19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자를 더하시면 죽음 가운데서도 생명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39장 21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사 옥중에서도 옥의 간수장에게 자유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시니까 감옥 속에서도, 갇혀있는 중에서도 자유를 누리고,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고, 쓰임받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16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이 인자를 제하시니까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2백 4십 번이나 <인자>를 말하고 있는데 인자를 더하시면 삽니다. 인자를 더하시면 형통합니다. 인자를 더하시면 행복합니다. 인자를 더하시면 넉넉합니다. 그러나 인자를 거두어 가시면 끝장나는 것입니다.
부부 간에 상당히 차이가 나서 ‘저렇게 차이가 나는 부부가 어떻게 같이 사나’하는 생각이 드는 부부가 있는데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가정에 인자를 더하시면 참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만난 부부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인자가 없으면 그 가정은 항상 불평하고 불만하고 싸우고 결국에는 깨어지는 가정들이 참 많지 않습니까? 깨어지던 가정도 하나님의 인자만 있으면 회복되어져서 정말 당신 없으면 못살겠다고 변화되는 가정이 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도 하나님의 인자만 있으면 어려운 가운데서도 감사합니다. 그 환경도 이겨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가져도 하나님의 인자가 없으면 불평합니다. 원망합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자입니다. 사막도 물만 있으면 아름다운 땅으로 변화되는 것처럼 우리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인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만 있으면 놀랍게 변화되고 환경적인 면에 있어서도 우리는 천국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 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 받은 것을 생각만 하면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인자, 크신 ‘헤세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난다는 것입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이 세상의 권세자들 날 부러워 해
성령충만 받은 것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 하여도 나도 역시 부귀영화 부럽지 않네
예수님의 신부된 것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 하여도 하늘나라 천군천사 날 부러워 해
영원토록 누릴 영화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우리의 환경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인자만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우리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자가 생명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인자가 없이 사는 것은 죽음보다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가 없이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인자를 누리며 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고백인 것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입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인자만 입으면 됩니다. 지구 상에 있는 모든 식물들이 햇빛을 받으면 잘 자랍니다. 식물들은 해가 있는 쪽을 향해서 기울어집니다. 그것을 해굽성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서 식물들은 해가 있는 쪽을 향해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만 하면 그 안에서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이 누구에게 천국을 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준 사람에게, 이자를 더 한 사람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처럼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 -키와 같은 믿음을 누구에게 주시겠습니까? 누구에게 은사를 주시겠습니까? 누구에게 영생을 주시겠습니까? 가장 귀한 축복을 누구에게 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짧은 목회지만 해 보니까 목회가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이는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실력으로 되는 것도 아닌 오직 하나님의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첫 번째로는 하나님! 하나님 한분의 사랑만 있으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제가 목회를 잘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한 번의 사랑이 아니고, 일회용의 사랑이 아니고, 종이컵같은 일회용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부산영락교회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사랑받는 우리 성도들 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세 번째로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우리 가족들 되게하여 주시고
네 번째로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랑만 있으면 다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떻게 많은 성도들의 마음을 다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저는 결심했습니다. 하나님 한분의 비위만 맞추면 된다고, 하나님 한분의 사랑만 있으면 된다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부부의 사랑도 좋아지고,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부모자식 간의 사이도 회복되고,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다른 사람과의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다른 사람과의 사랑도 다 멀어지고, 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 사이가 가까워지려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친구 사이 가까워지려고 하나님과의 사이가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과 어떤 물질과 어떤 권세를 얻으려고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처음에는 어떤 사람과 가까워지는 것 같아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지고 따라서 사람과의 사이도 멀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 물질도 멀어지고, 건강도 멀어지고, 다 멀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가까워지려고, 하나님의 사랑받으려고 사람에게서는 좀 멀어진다고 할지라도, 처음에는 사람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하나님의 사랑받게 되고 사람의 사랑까지 받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에 목말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목말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자는 물질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권세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행복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이라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인 인자만 있으면 그 안에서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모든 것이 그 인자 안에 다 있는 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자를 더 크게 입어서 더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갈 수 있는, 영육 간에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자를 이렇게 애타게 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만 있으면 왕궁에서 쫒겨났다 할지라도 다시 왕궁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만 입으면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다시 왕의 자리가 회복될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인자만 입으면 광야와 같은 어려움 속에 살고 있을지라도 앞으로 백향목 궁에 가서 왕의 영광을 누릴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것 구하지 아니하고 인자를 구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인자를 구하여서 이런 은총을 누릴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삶을 회복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인자를 구합시다

다윗이 이 인자를 얼마나 사모했는지 한번 보세요. 1절에 보면 <간절히 찾되...>, 이것을 쉬운말성경에는 <아침에 찾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찾는다는 말은 눈을 뜨는 첫 순간에 찾는 그것이 가장 사모하는 대상이고 찾는 대상인데 오늘 이 본문을 보면 아침에 눈을 떠서 찾을 뿐이 아니라 밤새도록 찾아서 아침까지 찾는다는 말입니다.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이 말을 쉬운말성경에는 <내 영혼이 주를 목마르게 찾나이다.>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이 말을 <온 몸으로 애타게 주를 찾아 헤맵니다>
4절에 <내 손을 들리이다>라고 했는데 <손 들고 기도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요? 주의 인자를 달라고.
6절에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 중에 주를 묵상하나이다>는 <긴 밤이 지나도록 주를 생각합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밤새도록 주께 매달려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무엇을요? 주의 인자를 달라고 간절히 찾았습니다. 목마르게 찾았습니다. 온 몸으로 애타게 찾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주의 인자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도 주의 인자를 다윗처럼 찾아 보십시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인자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를 은혜로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하나님의 인자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제 인자가 얼마나 귀하고, 우리의 생명보다 더 귀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인자의 가치를 알았기 때문에 이제 인자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명걸고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맛을 모르는 사람은 찾지 않습니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더 잘 먹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인자도 맛을 본 사람이, 은혜를 입은 사람이 인자를 찾지 맛보지 못한 사람은 그것도 몰라요. 돈 맛을 본 사람이 돈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돈 없는 사람이 돈을 더 좋아 할 것 같은데 사실은 돈 많이 가져 본 사람이 돈을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돈 맛을 알게 때문에 그렇습니다. 권력의 맛을 본 사람은 아편보다 더 중독성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맛을 보아야 찾을 수 있는데 은혜의 맛을 안 사람만이, 인자의 맛을 안 사람만이 인자를 찾아서 헤메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34편 8절에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맛을 보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맛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더 큰 인자를 구해서 더 큰 인자를 입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의 인자를 간절히 사모하십시다. 목마르게 사모하십시다. 온 몸으로 애타게 사모해 보십시다. 온 밤을 새워가면서 아침까지 사모해 보십시다.

시편 42편 1절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라고 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 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고 했습니다. 사슴이 목이 마르면 시냇가에 맹수도 있고 포수도 있는 줄 알면서도 생명을 걸고 시냇물 가로 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그렇게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23편 1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를 향하나이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인자를 그렇게 기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30편 6절에 보면 <파숫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 하도다>. 파숫꾼이 아침을 얼마나 기다립니까? 날이 새기를  얼마나 기다립니까? 주님의 인자를 그렇게 가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143편 6절에는 <주를 향해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마른 땅이 단비를 사모하듯이 그렇게 내가 손을 펴고 주의 인자를 사모하나이다>. 주의 인자하심을 그렇게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자가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생명보다 더 귀한 인자를 우리에게 더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간절히 사모하면, 간절히 기다리며 기도하면 반드시 주님께서 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자의 맛도 알고 또 인자의 가치도 아는데 그래도 인자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병들면 그렇습니다. 병들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입맛이 없어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은혜를 사모하지 않는 것은 하나의 병적현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사모하지 못하는 나의 질병을 치료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자비를, 하나님의 인자를 사모하여서 얻게하여 주시고 얻어서 풍성하게 살게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에도 오셔서 간증집회를 하셨던 원종수 권사님은 미국의 백인사회에서 암의사로 지금도 활동하고 계십니다. 미국 사람들이 인종차별을 대단하게 합니다. 동양인을 무시하기를 뭐처럼 합니다. 그런데 그 백인사회, 디트로이트에서 암의사로서 백인들을 치료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남의 대청마루를 빌려서 바람을 막고 살았습니다. 너무 추운 날은 얼어 죽지 않기 위해 교회당에 가서 밤을 지새운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느날 윤전도사라는 분이 그에게 와서 예배를 드리면서 성령을 받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으니 종수 너도 성령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교리적으로 맞는다는 말이 아니라 그의 말입니다. 그의 말인데 “성령을 받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으니 종수 너도 꼭 성령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성령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방언을 해야된다. 방언 못하면 안된다.”
그는 실망했습니다. 자기는 아무리해도 방언이 되지 않습니다. 방언 못받았다, 그러면 성령 못받았으므로 천국에 못간다, 이런 논리로 생각하니까 너무 낙심이 되었습니다. 어느날 집회가 있었습니다. 이번 기회에는 꼭 방언을 받아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하나님께 매달려 간절히 기도했는데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던지 기도가 끝나고 나니까 아무도 교회당에 없더랍니다. 자기 얼굴은 콧물, 눈물, 땀으로 범벅이 되어있고 자기 몸은 신장에 처박혀서 기도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했더니 하나님께서 그에게 방언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대전 고등학교 2학년 때 그의 성적이 어땠는가하면 480명 중에 410등이었습니다. 얼마나 공부를 못했습니까?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나에게 지혜를 더하여 주셔서 공부 잘하게 해 주시옵소서.”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을 뿐 아니라 책이 보이는 은사까지 주셔서 시험을 칠 때도 마치 책을 보면서 시험을 치는 것 같았습니다.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는 1등으로 졸업을 하였습니다.               

서울 의과대학에서 1등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전국 의사고시에서 1등으로 합격했습니다. 미국에 건너갔습니다. 어느 백인교회에 갔더니 그를 알아보고 어떤 사람이 간증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못한다고 했더니 그래도 해달라고 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가서 간증을 하는데 영어가 잘 안되니까 방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백인들이 그 방언을 영어로 알아듣고 은혜를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온 세계로 다니면서 간증하는 간증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면 받습니다. 하나님의 인자를 다윗처럼 간절하게 사모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주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아들에게도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늘 아버지가 천국백성에게 더 좋은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루터가 어느날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어쩐지 느낌이 이상해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까 개 한 마리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데 고기를 잘라서 포크에 찍어서 입으로 가져가면 침을 흘리면서 입을 쳐다보고 포크가 내려오면 또 포크를 따라서 아래를 쳐다보고 계속해서 시선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그것을 보고 마음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개가 고기 한 조각 떨어지면 주워 먹으려고 저렇게 기다리는 것처럼 나도 하나님의 은혜를 저렇게 사모하면 못받을 은혜가 없겠구나 하고 하나님께 매달려서 기도해서 큰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주의 인자는 생명보다 귀합니다. 인자만 있으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생명보다 귀한 인자를 받아야 살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생명걸고 주의 인자를 사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큰 인자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습니다.

평소에도 예배 때마다,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되겠지마는 내일부터 시작되는 부흥성회에 생명보다 더 귀한 인자를 사모해야 되겠습니다. 인자의 가치를 알았습니까? 인자를 맛보았습니까? 인자를 알지 못하고 아직까지 맛보지 못한 사람은 영적인 병인 줄 알고 주님 앞에 나와서 나에게도 인자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자를 간절하게 사모했던 다윗이 인자를 받게 되었을 때 그 황량한 광야에서 다시 왕궁으로 돌아가고, 시므이가 비루한 놈이라고 욕하며 티끌과 돌을 던지며 모욕했던 비참한 지경에서 다시 왕으로 재등극했던 것처럼 인자를 사모하고 받아서 잃었던 것 회복하고 더 큰 은혜에 나아갈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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