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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을 위한 삶 / 골 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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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위한 삶 / 골4:4-6

오늘 말씀은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해 지혜롭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예로부터 ‘근묵자흑’이라는 말을 씁니다. 즉,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죄로 오염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검어지지 않게 사는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오염된 세상 속에서도 거룩함과 순결을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1. 복음을 위한 삶은 지혜롭게 사는데 있습니다.

예수님도 지혜로와야 한다고 했다.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슬기로와야 한다고 . . .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마10:16-17)
뱀처럼 지혜로와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양과같이 약하고 미련한 제자들을 이리와도 같이 사나운 당시 세상에 내 보내면 서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창3:1에 보면 뱀은 들 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뱀을 사단은 인류 타락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뱀처럼 지혜로와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 까요?
뱀은 고대부터 지혜가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실제 뱀은 둔하다고 합니다만, 200년경 로마인이 쓴 '박물지'에 따르면, 뱀은 자신이 독을 써야 할 때와 쓰지 않아야 할 때를 구분하는 지혜가 있다고 했습니다.
즉, 물을 마시러 갈 때는, 독을 놔두고 간다는 것입니다. 즉, 냉철한 분석력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오늘 이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지혜로와야 합니다.
무조건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것은 열심은 있을지 몰라도, 미련한 방법입니다.
크리스챤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교회안에서만 경건(?)하게 사는 것만이 하나님이 정 기뻐하시는 모습일까요?
세상가운데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진정한 계획은 어떤것일까요?
세상속에서 크리스천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요?
예수를 믿는 다는 것 때문에 모든 직장인들이 만나는 회식의 자리에 꼭 빠지는 것이 예수를 잘 믿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회식 자리’하면 술 문제가 떠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럴 때에 그리스도인들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즘, 세상은 술 문화가 지배적입니다. 그래서 대학 입학생들이 술 때문에 죽는 사건이 해마나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나 타락한 문화입니까?
그러나 이 때 필요한 것이 지혜일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평소 자기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범이 필요하다.
“나를 본 받으라”(고린도전서4:16) 라고 증거한 사도 바울을 보면 부러움이 일어납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까? 우리으 마음속에 끊임없는 소망은 이런 간구입니다.
나는 언제쯤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마 난 안될 걸 하며 일찌감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성숙한 신앙 수준에 이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자기와 같이 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눈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기준이 있어야 믿을 것 아닙니까? 그 기준은 나 자신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보이는 작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예수를 증거 할 것입니까? 바로 자기 자신, 본인의 행동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를 관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다는 게 도대체 무엇이오? 제발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보여주시오. 이에 우리는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면 되요 라고 담대하게 말해 줄줄 있어야 합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걸요. 이런 식이면 안될 것입니다.
모범을 보이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리 악한 세상에서도 인정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상황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압니다마는 하나님은 순간순간마다 피할길과 해야 할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청년부를 인도하는 김한기라는 리더가 있었습니다. 교회생활은 참 열심이 있습니다.
청년부 인도도 잘 합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별로 모범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한 직원이 자기도 교회에 가도 되느냐고 묻습니다. 김한기 씨는 갈등에 빠집니다.
자신의 행동이 제약을 받을 것 같아서 . . .
마음에 갈등과 찔림을 받습니다. 그리고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전도지를 직원들의 책상위에 갖다 놓습니다. 모든 직원들은 김한기씨의 전도 하는 모습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마디씩 던집니다. 김한기씨는 또 다시 괴로움에 휩싸입니다.
(영상보기) 도시속의 요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2. 그리스도인은 건강한 인간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이시대는 정보화시대입니다. 우리는 핸드폰, 이메일, 매신저 등을 통해서 과거보다 많은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의 문제점은 관계의 양은 많아졌는데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과 통화하지만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 할만한 사람은 적습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분주하고 시간이 없이 쫓기지만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인인의 우울증은 과거보다 현저하게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전도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 전도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까요?

1) 이름(호칭)을 잘 기억하는것.
사귐은 이름을 기억하는 순간 시작된다. 상대방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두고, 다정하게 이름이나 호칭을 듣기 좋게 부름으로써 관심과 친근함을 표현하면 관계형성에 큰 도움이 됩니다.

2) 정감이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 입어도 편한 옷 같이 정이 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같이 있으면 조금도 어색해 하거나 긴장하지 않게 소탈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존중하고, 잘난체(튀는?)하는 말과 행동을 버려야 합니다.

3) 너그러운 사람.
사사건건 상대방의 잘못을 따지고 그에 따라 쉽게 화를 내면서 언제나 깐족 깐족한 자세로 살아간다면 분명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실수와 잘못에 대해 너그럽게 이해하고 여유 있는 마음으로 받아주는 온유한 사람.

4) 상대방에게 항상 관심을 보이자.
자기의 이야기만 하느라 급급해 하지 말고, 언제나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십시요.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와 그 사람의 일에 관심을 가지십시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다음 기회에 그것들에 관해 되물어 주는 것은 아주 사려 깊은 행동입니다.

5) 상대방을 축복하고 칭찬하는 사람이 좋은 인간관계를 가집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 성공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좋은 점을 기억하고 칭찬하고, 격려하며, 성공에 대해서는 축하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3. 복음을 위한 사람은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 “전도의 문을 열어 주소서”하고 기도했습니다.
2,3절에 보면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을 향하여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전도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중보기도를 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바울은 전도를 위해서 돈을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친히 천막을 만들어 전도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사람들에게 전도에 필요한 다른 것을 구하지 않고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리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기도가 힘입니다. 우리들의 힘만으로는 안됩니다. 성령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능력을 주셔야 합니다. 기도하면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담대히 전도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우리들이 전도하려는 대상자인 ‘태신자’의 마음을 열어 주셔서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드리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 뉴 헤브라이드스에 가면 게디(Geddie)박사를 기념하는 묘비가 서 있는데 거기에는 “그가 1848년 이 섬에 왔을 때는 그리스도인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곳을 떠나던 1872년에는 그리스도인 아닌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놀라운 전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선교활동을 통해 24년 만에 그 섬 전체를 구원시킨 놀라운 역사입니다.
게디박사가 그 섬에 발을 디딘 날부터 늘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쉬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게디 박사가 처음에 전도할 때 난폭한 살인자인 카피오라는 사람이 게디 박사를 죽이려고 몽둥이를 들고 찾아왔었지만 실패하였습니다. 나중에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 고백한 말에 의하면 게디 박사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그의 곁에 힘이 센 두 사람이 서서 그를 보호하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에 감히 그를 해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섬사람들을 구원하고자 기도하면서 전도할 때 하나님께서 천군천사를 파견하셔서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께서 도우시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엡 6:18-19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기도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탄의 힘을 무력화시킵니다.
기도는 어두움을 물리칩니다.
기도는 악령의 권세를 묶어버립니다.
기도할 때 성령이 역사합니다.
초대교회전도의 역사가 폭발적으로 나타난 기록은 사도행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전도 행전’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별명이 있는데 그것은 ‘기도 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은 그 시작(1장)부터 기도로 출발합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합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면서 전도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이 기도로 3,000명이 회개하고 주 앞으로 돌아옵니다. 또 사도행전 4장에 보면 5,000명이 주 앞으로 돌아옵니다.
여러분, 내 이웃의 마음 문이 열려지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4. 행함으로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5절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오늘 기독교인들이 욕을 먹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의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답지 않은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 속에 우리들이 포함되어 있을 지도 모릅니다.
기독교는 믿음을 가장 중요하게 주장합니다. 또 성경에는 행함을 강조하는 부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행함은 믿음의 꽃으로서의 중요함입니다. 믿음의 열매로서의 중요함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은 현재는 이루어지지 않아 바라는 것이지만, 농부처럼 그것을 믿고 심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는자에게는 언젠가 실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농부처럼 그것을 믿고 씨를 심을 때 반드시 눈에 보이는 증거로 언젠가는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 당시에도 떠벌이 신자, 껍데기 신자들이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야고보 선생은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자기를 구원하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짝이라는 것입니다. 한 세트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연구소는 많으나 실험소가 적다는 말을 합니다. 무슨 무슨 연구소. . .
성경공부는 많이 하는데, 그 말씀대로 실행하며 살지는 못한다는 말입니다.
학자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농부처럼 씨를 뿌리며, 담 흘리며 믿는 것이 더 좋습니다.
잔잔한 호수 위에 십여 척의 작은 배들이 떠 있습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청소년들이 힘차게 찬송가를 부른다. 각 배마다 청소년이 한 명씩 타고 있다.
한배에서 선생님이 설교를 합니다. “믿음이 중요합니까, 행함이 중요합니까?”그리고는 두 보트를 준비했습니다.
각 보트에는 노가 두 개씩 있습니다. 한 노에는 ‘믿음’, 또 다른 노에는 ‘행함’이라 적혀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여러분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믿음의 노를 들어올리세요.” 라고 말하자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믿음’이라 적힌 노를 높이 들어 올립니다. 다음에는 행함이 중요하는 학생들이 노를 들어 올린다.선생님은 다시 말합니다. “여러분이 중요하다고 들어 올린 노만을 가지고 노를 저어서 저 앞에 보이는 물 위에 붉은 푯대를 돌아 오십시오.”
학생들은 두 개의 노 중 중요하다고 들어 올렸던 노 하나만을 가지고 열심히 배를 저어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보트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모두가 한쪽 방향으로 돌기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번에는 양쪽 노를 다 사용해서 저 푯대를 다시 돌아오십시오.” 믿음과 행함이라 각기 쓴 두개의 노를 다 사용하니 배가 앞을 향하여 빠르게 나아갑니다. 한쪽 노만을 사용할 때보다 힘도 들지 않고 배가 한쪽으로 돌지도 않고 잘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5. 복음전도자의 언어는 은혜로와야 합니다.

말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어떤 왕이 지혜로운 두 신하를 불러서 그중 한 명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가지고 오라’고 명령하고, 다른 신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가지고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많은 시일이 지난 후 두 신하가 각각 상자 하나씩 안고 돌아왔습니다.
“폐하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을 구해 왔사오니 보시옵소서” 하고 상자를 열었는데 그 속에는 혀가 들어 있었습니다. 다른 신하가 “폐하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것을 보시옵소서”하고 상자를 열었는데 그 속에도 혀가 들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왕이 묻자 두 신하가 대답했습니다. “페하 비록 혀는 작은 것이오나 사용하기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 되기도 하고 또 가장 악한 것이 되기도 하옵니다."
그렇습니다.
혀는 작은 것이지만 그 위력은 대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여 영혼을 살리고 칭찬과 격려로 사람들을 세워주기도 하지만 불평, 원망, 비난, 중상모략으로 상대방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 언어가 성화되어 있어야 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언 18:21)
우리들은 말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과 교통하고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 이후 이렇게 귀한 말이 오염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파괴시키기도 합니다.
말에 가시가 있습니다. 말에 독이 있습니다. 남을 아프게 슬프게 합니다.
독설은 상대방을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질병을 앓게도 합니다.
또 독설은 사람을 죽이기 까지 합니다.

오늘 성경은 성도는 은혜로운 말, 아름다운 말로 복음을 전하며 언어에 소금을 치라는 말은 부패한 언어를 쏟아내기 위해서 내 자신의 언어에 소금을 치라하였습니다.
너희 말에 소금을 치라는 것은 말에서 독기를 제거하라는 뜻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소금을 독소 제거하는 해독제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물을 드릴 때 반드시 그 위에 소금을 쳤습니다.
제물에 소금을 쳐서 독을 제거하고 세균을 없앤 다음에 제물로 드린 것입니다.

롬3:13-14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사람의 입에는 독이 있습니다. 그 독이 언제 뿜어 나올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말에 항상 은혜의 소금을 쳐야 됩니다. 그래서 이 독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은혜롭고 성결할 말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에 독이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시기, 질투, 멸시, 비난하는 말 . . . . 미워하고 저주하는 말, 헐뜯고 깎아 내리는 말 . .
우리말에 소금을 칩시다. 그래서 은혜롭고 또 성결한 말 되게 합시다.

복음을 위한 삶은 무엇입니까?
1. 지혜롭게 사는데 있습니다.
2. 건강한 인간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3. 기도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행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5. 은혜로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두 복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습니다.
지혜롭게 살아 복음의 열매를 맞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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