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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와 무장 (엡 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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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와 무장
본 문 : 에베소서 6:11-17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는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스승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제자에게 보석을 하나 주면서 값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 제자는 먼저 야채 가게에 들러서“이 보석을 드리면 내게 무엇을 주겠소?”하고 물었더니“배추 두 포기를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대장간으로 갔습니다. 대장장이는 평소 보석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꾀 많은 돈을 주겠다고 제의 했지만 제자는 거절하고 보석상으로 들어갔습니다. 보석을 유심히 살펴본 보석상 주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이 보석은 돈으로 계산할 수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고 했습니다. 제자는 이 말을 듣고 스승에게 돌아와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제자의 설명을 들은 스승은 말하기를“사람은 자신을 하찮은 배추 두 포기에 팔아넘길 수도 있고, 얼마만큼의 돈을 받고 팔아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고귀한 존재로 만들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와 예배드리는 우리들은 누구입니까? 우리는 모두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영원한 지옥의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헤아릴 길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가 회복되었습니다. 무엇으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의 대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대가로 우리들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자 외아들의 생명으로 우리들의 죄 값을 치루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은 이처럼 존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가치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하셨습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고귀한 것에는 악한 세력의 위협이 있습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도둑의 위협이 있고, 건강한 몸에는 질병의 위협이 있듯, 하나님을 섬기는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는 영혼을 해하려는 사탄의 유혹과 위협이 있습니다. 이러한 악한 영들의 활약상에 대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하셨습니다.

때로는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하여 미혹하기도 합니다. 고린도후서 11:14-15 말씀에“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갖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갖게 하면서 대신 하나님의 뜻을 어기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질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물질로 미소 지으며 나타납니다. 이러한 미혹에 넘어간 사람이 아담과 하와며, 예수님을 팔아넘긴 배신자의 대명사인 가롯 유다입니다. 명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명예로 접근합니다. 예수님 당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좋은 예가 됩니다. 세상의 열락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적인 열락으로 접근하여 그를 넘어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삼손과 솔로몬이 그 사람입니다.

이토록 사탄의 위협이 때로는 우는 사자같이, 때로는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의 영혼을 위협합니다. 옛날 한 교부는 말하기를“우리의 원수 마귀는 우리를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게 하며, 하늘나라의 복을 받지 못하도록 하며, 하늘나라와 교통하는 것을 방해하려고 한다. 그들은 우리의 영혼에 속한 것들을 중점적으로 공격하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하늘나라의 모습을 부숴버리려고 하므로 우리는 마귀를 경계해야만 한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탄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성도의 생활자세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본문입니다. 사악한 영들과 싸워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Ⅰ. 강건해야 합니다.

본문 10절 말씀에“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하셨습니다. 적과 싸워 이기려면 강인한 체력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은 항상 체력단련에 힘을 씁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건강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머리의 지혜는 남의 것을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건강이 제일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건강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합니까? 요즘 모두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러나 건강에 관한 것들은 불경기를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강건해야 합니다. 이는 육신의 건강이 아니라 심령의 강건을 의미합니다. 심령이 강건해야 사악한 악의 세력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나약한 심령, 병든 심령으로는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사탄과 싸워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심령을 강건케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주안에 있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라고 하셨습니다. 마귀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 누구도 제압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악령들을 이길 힘은 오직 주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안에 거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연약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품안에 있을 때 아버지만큼 강해질 수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 난지 몇 달밖에 되지 않는 어린아이가 늘 기어만 다닙니다. 아직 스스로 일어서서 걸으려면 여러 달이 지나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일어서고 걸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자기 힘이 아닌, 부모님이 붙들어 주었을 때입니다. 이처럼 나는 약하나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에는 세상을 이길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1 5:18)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안에 거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주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0에“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곧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는 주의 자녀들은 누구도 해하지 못합니다. 이 진리를 깨달은 다윗은 시편에 기록하기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112)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요새,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산성”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두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군사용어들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지키시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이십니다. 이 요새 안에 있었던 다윗은 언제나 안전했습니다. 다윗의 일생에 그를 해치려는 수많은 대적들이 있었습니다. 어떠한 대적도 그를 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까닭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지키시는 요새가 되셨으며, 방패가 되셨으며, 산성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다윗 자신을 지키시는 요새와 방패시며, 산상이 되신 그 까닭을 말하기를 “이는 내가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악하게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 하였으며 그 모든 규례가 내 앞에 있고 내게서 그 율례를 버리지 아니하였음이로다.”(시 18:21~22)고 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갔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자신이 언제나 변함없이 주안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맥아더 장군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으며, 세계 제 2차 대전 시 아이젠하워가 유럽에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 때 맥아더는 아시아에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전후 일본 점령군 최고 사령관이 되었는데 그의 임기 중인 1950년에 한국의 6.25동란이 일어났습니다. 유엔군최고 사령관으로 한국에 와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여 공산군으로부터 이 나라를 건졌습니다. 그 후 맥아더는 국민들의 염원 속에 대통령 후보로 지명을 받았으나 끝내 군인으로 남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맥아더 회고록에, 그는 평생 동안 성경을 읽지 않고 잠자리에 든 적이 한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귀가하면 언제나 정복을 입은 채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은 후에야 잠옷으로 갈아입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성경을 일고서야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지혜를 주셔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군인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맥아더는 전쟁의 승리자이기 이전 그의 심령이 항상 주안에 거하는 건강한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이러한 그는 사악한 무리들의 침략을 막고 수많은 생명을 건졌습니다. 이러한 그의 배후에는 그를 지키시며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주안에서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영혼은 항상 강건하게 됩니다. 나 혼자가 아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악한 무리가 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그 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본문 10절에“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같은 의미의 말씀으로 에베소서 3:16에는“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라고 하셨습니다. 그 힘의 능력이란 성령의 능력을 말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할 때 심령이 강건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의 경우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충성을 다하고자 다짐했습니다.“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5)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믿음직한 말입니까? 제자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마음의 자세이고, 당연히 해야 할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예언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34)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베드로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못했습니다. 가장 비겁하게 스승이신 주님을 저주까지 하면서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인간의 의지나 각오만으로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배후에 악한 세력의 방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악한 세력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는 강건한 심령이 되는 길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는 길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셨고, 부활하신 후 사십일 뒤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십일 동안 마가 다락방에서 간절히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그 중에 베드로도 함께 있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새로운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는 본래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잡이로 살아가던 어부였습니다. 그는 배운 것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러한 베드로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할 때 하루에 삼천 명이 회개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키다가 로마의 박해에 의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는 더 이상 비겁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더 이상 무능한 자도 아니었습니다. 후대의 사람들은 베드로를 기리기 위해 그가 순교당한 자리에 기념 예배당을 세웠습니다. 그것이 로마에 있는 베드로 대성당입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약한 사람을 강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무능한 사람을 유능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비겁한 사람을 의리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쓸모없는 사람을 가장 존귀한 사람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성령의 충만함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1-13)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성삼위 하나님 가운데 한분으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로 하여금 악한 영들과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사람, 모여 말씀 듣기에 열심 있는 사람, 자신을 돌아보며 진실하게 회개하는 사람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님이 함께 하게 될 때에 그 사람에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되 믿고자 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확실히, 너무도 분명히 믿어지기에 믿는 것입니다. 기뻐하고자 해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 속에서 이유 없는 기쁨이 샘솟기에 기뻐하게 됩니다. 가슴 속에서 감사함이 저절로 우러나기에 감사하게 됩니다. 사랑하고자 노력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봉사하되 십자가의 은혜가 너무도 고맙고 감사해서 빛없이 말없이 헌신하며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가득한 심령의 상태를 성경에 기록하시기를“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2-24)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성령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은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고린도 후서 1:19 말씀에“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하셨습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을 충만히 받게 되면 예수님처럼 무엇이든지 “예”하고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하는 곳에 삶의 승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승리의 지혜서이기 때문입니다.

신학자 칼 발트는, “성령 충만이란, 하나님께 예만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칼 발트 교수는 어느 날 손자가 말을 배우는 모습을 보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며느리가 손자에게 말을 가르치는데“예”부터 가르쳤다고 합니다. 한번은 아이가 싫어서 고개를 흔들면서도 입으로는“예”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 여러 번 되풀이한 말이라 싫어도“예”가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때 칼 발트 교수의 머리 속에 성령 충만한 자의 대답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생각이 성령으로 차 있는 사람이면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싫어도“예”하는 고백이 나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께 예만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순종이 그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앞에 두시고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되“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셨습니다.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난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아직 끝나지 않으셨습니다. 삼일 만에 죽어 장사지낸바 되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사탄의 계획을 깨트리시고 승리케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만왕의 왕이 되게 하셨으며, 인류의 무릎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꿇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순종의 삶이며, 순종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보람되게 하는 비결, 행복을 누리는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사모하며 간구하는 것입니다.“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편 107:9)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악한 영들이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도 삼킬 자를 찾는 사악한 때입니다. 이를 대적하여 이겨야만 합니다. 이겨도 되고 져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이겨야만 합니다. 전쟁에서의 2등은 곧 노예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들과 싸워 이기려면 강건해야 합니다. 그러나 악한 영들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강간한 힘이 인간에게는 없습니다. 그 능력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안에 거하는 방법은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 한분 성령님만이 악한 영들을 제압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님은 사모하는 영혼에게 찾아오셔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사모하여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 사모하여 말씀이 있는 주의 전을 열심히 찾아 말씀을 듣는 사람, 말씀을 따라 뉘우치며 회개하는 사람에게 성령님은 오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안에 거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복된 성도, 이로 인해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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