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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흥을 사모하는 사람 / 렘 31:10~14 (요삼 2~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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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흥을 사모하는 사람" 
  예레미야 31:10~14 (요한 3서 2~4 참조)
  2004년 3월 28일 설교 
 
 
  봄은 만물들이 부흥하는 계절입니다. 죽은 것이 다시 살아나고, 쓰러진 것들이 다시 일어서는 계절입니다. 새싹들이 파릇파릇 올라오는 모습은 여간 신기하지 않습니다. 이제 화사하게 봉우리를 터뜨리는 목련꽃, 연노란 개나리들의 살포시 웃는 듯한 모습, 진달래꽃의 연분흥 미소는 역시 봄이란 생명과 부흥의 계절임을 금방 알게 됩니다. 생명이 소생하는 봄은 힘의 계절이요, 소망의 계절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생명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꿈과 이상과 생명에 깊은 열정을 가져야 할 때라고 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능력있는 삶, 꿈이 있는 삶을 살아가는 길은 먼저 영적인 부흥에서 시작됩니다. 영적인 생명력이 다시금 살아나야만 부흥의 불길을 피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강물에 떠다니는 작은 송사리와 커다란 송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송사리는 아주 작은 물고기에 불과합니다. 커다란 송판은 송사리보다 크기에 있어 수천 배는 더 될 것입니다. 그러나 커다란 송판은 맥없이 물길을 따라 떠내려가기만 합니다. 도무지 물길을 거슬러 위로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송사리는 아주 작은 몸집을 가졌지만, 거대한 물살을 거슬러서 위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살아 있느냐, 죽거나 잠들어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생명의 부흥을 위해 몸바쳐 헌신하고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물고기는 물에 있어야 생명이 살수 있고, 식물은 물이 있어야 생명이 가능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생명이 시작됩니다. 생명체는 병들 수도 있고, 약할 수도 있고, 강건하고 활력이 충만할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영적 생명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신중하게, 아주 깊이 있게 자신의 내면 세계를 뒤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구약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물댄 동산처럼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물댄 동산에는 각종 식물들이 싱싱하고 푸르고 활기차게 자라납니다. 생명의 활기가 가득찹니다. 새들과 나비와 각종 동물들이 뛰어 노는 낙원과 같은 곳이 물댄 동산입니다. 바로 이런 곳, 생명이 줄기차게 움직이는 영적인 활동력이 있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목표입니다. 영적인 삶의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과 연결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기도 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다른 비상한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질로 돌아갈 때 힘이 나옵니다. 기본으로 돌아갈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람이 배가 고픈데 밥먹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목이 마른 데 물을 마시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사람이 살기 위해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영적인 부흥을 이루기 위해 순전한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만나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받기 위해 간절한 기도를 해야만 영적인 부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참으로 능력이 있습니다.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주에 사는 사로테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홀로 고독하게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의 정원에 둥지를 틀고 사는 새가 너무 귀엽고 아름다워 가까이 가서 보게 되었습니다. 나뭇잎들과 작은 가지들, 그리고 풀로 엮어져 있는 그 둥지에는 어디에서 물어왔는지 모르지만 많이 퇴색한 1불 짜리 지폐와 다른 종이가 있었고 그 위에 집을 짓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새의 솜씨에 감탄하여 자세히 들여다보니 새집으로 만든 그 종이에는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 12:15)는 말씀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5~36)라는 말씀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누가 써놓은 말씀인지 모르지만, 이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올바른 삶을 살아야겠구나, 삶을 헛되어 살아서는 안되겠구나."하고 말씀으로 인하여 깊은 깨달음 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죽어 가는 심령을 일깨우고, 잠자는 영혼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 말씀은 어디에서나 능력이 나타납니다. 말씀의 능력은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며, 쓸모 없는 사람을 귀하게 만들어 쓰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따라서 복음만이 사람을 새롭게 하고 한 사람의 심령을 부흥케 만들 수 있습니다. 이 봄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인하여 여러분들의 심령이 부흥케 되는 축복이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심령의 부흥과 함께 우리에게는 삶의 부흥도 일어나야 합니다. 아무리 심령이 강력한 힘을 얻었다 해도 생활 속에 그 능력과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아직 미흡한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나의 삶 속에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삶에 생기가 일어나야 합니다. 삶에 감동이 살아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인답게 날마다 생활 속에 기쁨과 감동을 안고 살아가십니까? 삶의 감동과 기쁨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믿음이 생생하게 살아 있을 때 일어나는 법입니다. 하나님도 믿고 세상도 의지하고 살아가는 양다리 수법으로는 참된 삶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양다리 인생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하나님도 좋고 우상도 좋고, 천국도 좋고 은행 통장도 좋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그런 생활 태도로는 삶의 부흥과 감격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고 받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뇌물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뇌물죄에 다 걸리고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열매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각한 양심의 타락이요, 빛과 소금의 기능을 완전히 망각하고 상실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삶에서 실패하는 사람들이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삶의 부흥도 복음의 감동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복음의 능력이 내 마음을 강타하고, 내 안에 깊은 통찰과 깨우침을 통하여 삶의 열매는 시작됩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렸던 이야기입니다. 17 년 동안이나 마약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여의사의 이야기입니다. 마약을 다루는 의사는 일반인보다 마약에 손대기 쉽습니다. 중독에 빠져도 쉽게 빠져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자신이 직접 관리하고 있으니까 더욱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마약에서 헤어나오고 싶은데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오는 어느 날, 이 여의사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 주옵소서. 마약에서 손을 떼야 되는데 도저히 제 힘으로는 끊을 수가 없습니다. 이 빗물 같은 은혜를 제게도 부어 주옵소서." 비를 맞으면서 간절히 기도하던 이 여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거운 껍질들이 벗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몸이 하늘로 붕 뜨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에 마약을 끊게 되었답니다. 절망의 삶에 새로운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중독에 걸려 있습니까?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돈에 중독되고, 게으름에 중독되고, 삶의 무의미에 중독되고, 이 세상 재미에 중독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나의 삶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복음의 위대한 능력으로 나의 삶에 새로운 부흥이 일어나기를 축원드립니다.

  이제 교회의 부흥도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부흥이 안 된다, 성장이 안 된다고 말합니다. 특별히 전도가 안 된다는 말을 합니다. 물론 전도하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전도가 안 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전도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전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전도를 통해서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온 세상에 전도를 통하지 않고 구원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도를 통해서만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는 법입니다. 지금 온 세계가 복음을 원하고 있습니다. 온 교우들이 이제 복음을 들고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요한계시록 3:1에서 부흥이 없는 사데교회에 대하여 "네가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이 있는 교회라면 이런 책망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부흥은 주님의 명령이요, 우리의 사명이기에 교우들이 한 마음이 되어 충성해야만 합니다. 우리 광야교회는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훗날에 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비록 작은 능력을 가졌지만 최선을 다했다고 칭찬 듣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부흥이란 죽은 자를 살리며, 병든 자를 치료하며, 약한 자를 강건케 하며, 잠자는 자를 깨우는 것이 부흥입니다. 부흥이란 꺼진 불을 다시 일으키며 식어진 가슴에 다시금 불을 지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새 가운데 칠면조와 펠리칸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칠면조는 한 마리가 머리에 상처가 나면 나머지 칠면조가 와서 그 상처를 쫀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 약한 자를 괴롭히는 왕따나 이지메현상과 같은 것이지요. 반면에 펠리칸은 큰 입에 무엇을 잔뜩 집어넣고 다니는 새입니다. 펠리칸은 자기 몸을 죽여서 새끼를 살린다고 합니다. 나를 죽여서 너를 살리는 새입니다. 교회에는 칠면조같이 상처만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려면 펠리칸처럼 자기를 죽이고 남을 살리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광야의 모든 믿음의 식구들은 칠면조 같은 사람이 아니라, 펠리칸 같은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자신의 영적인 부흥을 이루어 연약한 사람들을 돕고, 연약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세워 주는 영적인 펠리칸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개인의 심령의 부흥과 삶의 부흥과 더불어 교회의 부흥을 이룸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칭찬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살아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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