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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의 현장에 서있는 그대를 위하여 (고후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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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린도후서 1:1-11
제목 : 고난의 현장에 서있는 그대를 위하여

요한칼빈(John Calvin)은 불후의 명저「기독교강요(基督敎綱要)」(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를 27세에 쓸 정도로 그 천재성을 인정받았지만 그의 삶은 걸어 다니는
병원(moving hospital)이라는 별명처럼 평탄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두통, 심장질환, 폐질환, 위장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 55세에 세상을 떠날 때 그
의 육체는 90대 노인처럼 피폐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칼빈이 불행한 삶
을 살았다고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삶의 명제였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Soli
Deo Gloria)" 산 사람으로 칭송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죄의 결과 때문에 고난당한 것이 아닙
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조차도 고난에 있어 면제 되지
않았습니다(1절). 고난은 보편적인 것이기에 우리 역시도 고난에서 면제 받지 않는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닮도록 하시기 위해 특별한 연단(鍊鍛)의 기
회로서 고난을 종종 사용하십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 때문에 오해받고 매 맞고 감옥에 갇혔
던 바울은 "너희에게도 같은 싸움" 즉, 고난이 복음을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 앞에도
놓여져 있음을 직시하라고 권면합니다(빌립보서 7:30).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교회답고 성도
다워지기 위해 고난의 현장에 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다"고 증거 합니다(베드로전서
4:1). 물론 주님은 당신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서 고난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도 고난은 예외 없는 삶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볼 때 이 땅에서 풀 수 없는 '고난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해의 범
위를 벗어난 고난도 존재합니다. 우리는 자신과 가족의 고난에 대해서도 정답을 가지고 있
지 못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당대에 뛰어난 인물들로서 자신들의 지식을 총 동원하여 욥
의 고난을 해석하였지만 '정당'하지 못하다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욥기
42:7).

고난의 당사자였던 욥자신도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였습니다.(욥기 52:3) 그만큼 고난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고난의 표면입니다. 고난 밑에 깔려
있는 하나님의 의도를 우리는 온전히 알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고난 뿐 아니라 자녀, 이
웃, 민족이 당하는 어려움과 고난에 대해서 함부로 속단해선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무릎으로 겸손하게 주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로 고난은 졸업장을 발행한 일이
전혀 없습니다.

한편 우리는 고난이 인생의 최고 스승인 것을 압니다. 고난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인
생의 가치체계를 새롭게 정립합니다. 고난의 풀무불에 들어가서 영혼이 깨끗하게 되면 그때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비로소 분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을 하나하나 이루어 가십니다. 성도들이 고난
을 잘 견디면,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는 기회가 됩니다(히브리서 12:11). 성경에 나타난 사
도바울의 간증과 고린도교회에 주신 메시지를 통해서 고난의 세 가지 원리를 다함께 살펴봅
시다.

첫째, 우리가 고난당할 때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3~4절).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
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3-4절). 사도바울은
고난 중에서 위로의 하나님을 만났다고 간증합니다.

최근 우주의 크기는 약 130억 광년(光年)이란 이론이 나왔습니다. 과학자들의 이야기입니
다.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인류가운데서 가장 작은 우리
자신이 승리할 때 뿐 아니라, 가장 어려울 때에도 "떠나지 않으리라!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
들어 주리라! 함께 하리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이사야41:10, 신명기 31:8, 마태복음 28:20).
인생의 무거운 짐이 가정의 짐이든, 사업의 짐이든 위로의 주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고난의 현장에서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고난의 현장이 우리 인생의 전부가 아
닙니다. 고난은 주님의 사랑의 손을 잡고 주님과 더불어 동행할 수 있는 축복된 기회가 됩
니다. 고난이 은혜를 체험하는 기회가 된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은 고난의 유익을 주목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고난이 클수록 위로하시는 주님의 위로도 큽니다(5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당하는 고난이 많은 것처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많습니다"(5절/공동번역개정). 사도바울은 고난이 크면 클수록 위로도 더 크게 주신다는 것
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고난을 잘 견딘 사람이 간증도 아름답게 할 수 있습니다. 저녁하늘에 구름이 있을 때 노
을이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처럼 고난을 통한 인생의 성취는 더 빛나게 됩니다. 자신의 연
약함과 부족함 때문이 아닌 복음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남몰래 짐을 지는 자들에게 주님의
위로도 크게 임할 것입니다. 고난의 강도와 간증의 은혜는 서로 비례합니다.

그래서 고난이 없는 것을 기뻐하기 전에 '나는 왜 고난이 없을까, 나는 왜 간증이 없을까'
라는 고민과 함께 고난에 대해서 전향적(轉向的)인 자세를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난의 현장에서 위로의 하나님을 뜨겁게 만났습니다. 오직 고난의 현장
에 설때만 위로의 하나님은 다가오십니다.

셋째,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의지하게 만듭니다(9절).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9절). 이 말은 인생의 불순물들을 제거한
다는 의미입니다. 고난 받기 전에는 가치체계(價値體系/Value System)가 복잡합니다. 그런
데 풀무불의 연단을 통해서 비로소 가치가 제자리를 잡습니다.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
같은 절대 절망을 경험하고 나서야 절대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뢰하게 되는 것입니
다.
자신에 대해서 절망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하
나님의 은혜는 자신을 포기하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는 사람에
게 옵니다.

고난은 우리를 빚어주는 과정이 됩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道)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데살로니가전서 1:6). 많은 환난가운데서
주님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모두 주님의 체질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알아가고
닮아가는 것은 고난 속에 숨겨놓으신 하나님의 보물입니다.
이 보물을 많이 캐내는 자는 영적인 성장과 기쁨을 맛볼 것이지만 고난을 단순한 고통으
로 받아들이는 자는 거기서 영적인 비밀을 채집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고난에 대한 해
석과 간증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재정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朽敗)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
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린도후서 4:16-17). 바울은 고난 중에도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고난이 인생의 정체(停滯)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기회
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난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바꾸어야 됩니다(야고보
서 5:13).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난을 볼 때 위로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
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4절).
우리가 고난의 현장에 있지 않다면 고난 중에 있는 자녀들, 동료들, 믿음의 가족들을 위로
하는 은총의 도구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고난에 초점을 두지 말고 하나님 뜻의 성취를 바
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죄하고 심판하기 전에 그의 무거운 짐을 같이 나누어 져야 합니
다. 그럴 때 우리는 온전한 믿음의 공동체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새로남 믿음의 가족 여러분,
계절적으로 봄이 되었지만 고난의 문제로 마음이 어려운 분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
다. 여전히 인생의 겨울로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어 고난은 예외 없는 삶
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건강문제, 가정문제, 경제문제 등으로 고난의 현장에 있다면 그 현장에서 위로의 주
님께서 지금도 우리와 동행하심을 기억합시다. 고난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주의 뜻을 분
별하고, 복음과 교회와 나라를 위해 고난의 짐을 자처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더 큰 위로를
경험하는 성도들이 다 됩시다.
고난의 길을 통과할 때 우리의 절대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뢰하면서 영적으로 더
욱 성장할 뿐 아니라, 현재 고난의 현장에 있는 믿음의 가족들을 향해서 위로와 사랑의 도
구로 쓰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됩시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는 고난의 쓴잔이 나중 감사의 축배로 바뀌기를 기도드립시다.





고난이 변장된 축복이라면

고난이 변장된 축복이라면
믿음의 눈을 열어
고난의 진면목을 보기 원하네
성도를 성도되게 하는 고난의 목적을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고난의 영광을

고난이 변장된 축복이라면
소망의 눈을 열어
고난의 열매를 보기원하네
거친 겨울을 지나 봄이 준비되어 있음을
고난의 가을을 예견하는 눈을 가지기를 원하네

고난이 변장된 축복이라면
사랑의 눈을 열어
고난뒤에 서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기 원하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말씀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보기원하네

고난이 변장된 축복이라면
고난 받는 선수가 되기 원하네
축복 받는 선수가 되기 원하듯
고난 받는 선수가 되기 원하네

인간의 짧은 머리로
어찌 고난속에 숨겨진 비밀을 헤아리며
어찌 성공속에 담겨진 위기를 가려낼 수 있을까
축복에 눈이 열리듯
고난에도 눈이 열리기 원하네
고난이 변장된 축복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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