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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 밭을 기경(起耕)하라 / 호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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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밭을 기경(起耕)하라

본문: 호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 에게 내리시리라"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막 감옥에 들어온 무기수였습니다. 언제 나가게 될지 어떻게 이 좁고 쾌쾌한 공간에서 지내야 할지 막막했던 그는 교도소장을 향해 간절한 청원을 한 가지 했습니다.
"절대, 문제를 안 일으킬테니 교도소 마당 한 귀퉁이에 정원을 가꾸게 해주십시오."
새로 부임한 교도소장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리곤 그는 처음엔 손길이 많이 가지 않아도 잘 자라는 고추나 양파를 심었습니다. 씨를 심고 그것이 자라감에 따라 그는 작은 만족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해에는 여러 종의 장미도 심어보고 작은 묘목의 씨앗도 뿌렸습니다. 그렇게 한 해 그는 정성스레 정원을 가꿨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래 비록 내가 지금은 자유의 몸이 아니지만 이 정원을 돌보듯 나 자신을 돌봐야겠구나. 또 이렇게 씨를 뿌린 다음 지켜보고 경작하고 결과를 추수하는 정원사의 일이 소박한 것이지만 얼마나 큰 보람과 기쁨을 주는가."
교도소 마당의 작은 땅뙈기에 무언가를 심고 가꾸던 그는 이십칠 년 후,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바로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였습니다.
당신의 마음 밭에는 어떤 새싹들이 자라고 있는지요? 악한 열매를 거둘 악한 새싹들이 자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만, 거짓, 음란, 탐욕, 미움, 다툼, 시기, 우상숭배, 이기심, 험담, 판단 등이 당신의 마음 밭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지는 않은 지요? 그렇다면 당신의 마음 밭을 기경(起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밭에 선한 씨를 파종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집 정원에 흙만 있는 화분 두 개가 있었습니다. 꽃씨를 사다 심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미처 틈을 내지 못했는데 여름이 지날 무렵 두 개의 화분에서 모두 푸른 잎이 자라나고 있는 게 아닙니까? 한 화분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 다른 화분에는 어떻게 심겼는지 참외 줄기가 자라나 납작 납작한 잎이 나서 화분의 흙을 덮어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얼마 후 줄기에 동그란 열매가 달리더니 아기 주먹만한 참외 세 개가 노랗게 익어갔습니다. 향긋한 내를 풍기기 시작하여 보는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지요. 똑같은 화분에 무엇이 심겨졌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대접받는 것을 보면서 인간의 마음 밭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마음에는 무엇을 심어야 할까요?
"악인의 삯은 허무하되 의를 뿌린 자의 상은 확실하니라"(잠11:18)
영국의 성직자 칼렙 c. 콜턴은 말했습니다. "악을 뿌리뽑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는 그 자리에 덕을 심도록 하라. 그렇지 않으면 또 다시 수고를 해야 할 것이다. 잡초가 자랐던 억센 토양에 아무 것도 나지 않게 하는 데 드는
수고보다 훨씬 적은 수고로 밀이 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욥4:8, 9)
마태복음 13:18-23에 보면 씨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
농부가 밭에 씨앗을 뿌리기 전에 알아야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토양의 질을 알아내는 작업입니다. 또한 땅이 씨앗을 뿌리기에 적합한가를 알아내고 개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로 씨앗인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기 위해서 이를 심는 밭인 마음이 적합한가를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알아야 신앙생활을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밭인가를 바로 알아 개간하여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1. 길가 밭
길가와 같은 굳은 땅입니다. 아마 두 가지 경우에 이런 땅에 씨가 뿌려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 땅에 가보면 밭이랑이 좁고, 길고, 밭과 밭 사이에는 작은 길이 있습니다. 길에 서서 씨를 뿌리기도 하는데 씨가 길에 떨어져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씨뿌리는 법이 있는데 나귀 뒤에다 씨 자루를 싣고, 자루 모퉁이를 잘라 구멍을 내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뿌립니다. 그러니까 자연 길가에도 뿌려지게 됩니다. 그런데 길가에 뿌려지면 이어 새들이 와서 씨를 주워 먹어버리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의 마음은 기독교의 진리가 들어갈 수 있는 입구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진리가 어떤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오히려 적대시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진리에 아주 무관심합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기독교의 진리는 우리 인간 생활에 적응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기독교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귀찮은 존재로 생각 합니다. 물론 사람의 사는 것이 항상 쉽고 어떤 긴장이나 눈물이 없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동안에 내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떻게 못할 경우, 다른 힘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에게 가장 큰 비극은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에게는 악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생명의 숨,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브는 뱀을 친구로 사귀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죄의 정도는 점점 더 사악해 지게 되고 시대가 지날수록 악한 정도가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사악한 범죄들은 과거에 저질러져 왔던 것보다도 심한 것을 부인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묵은 땅이기 때문에 부패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팍하여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에 익숙합니다. 이 일이 6천년 동안을 거듭해 온 까닭에 딱딱해져서 아무리 씨앗을 뿌리려 해도 심기워 지지 않습니다. 개간되지 않은 땅에는 아무리 좋은 씨를 부려도 결실을 맺을 수 없습니다. 묵은 땅을 개간해야만 합니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삼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끝없이 마음을 개간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말씀 듣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예배드리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믿음을 통해서 행함이 나타나고, 행함 속에서 온유와 겸손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교만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묵은 교만을 좀 더 적극적이고 행함 있는 믿음을 통하여 개간해 가야 합니다.

2. 돌 밭
흙이 얇은 돌밭 같은 땅입니다. 물론 이 땅은 모두가 돌은 아닙니다. 흙이 얇은 밭에 돌 이 깔려 있는 땅입니다. 갈릴리 지방의 땅이 대개 그렇습니다. 여기 저기 바위가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땅이 씨를 발아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땅이 얇기 때문에 뿌리가 내리지 못해서 양분을 땅에서 흡수하지 못하므로 결국 해가 날 때 말라 버리고 죽고 맙니다. 무슨 일이고 시작하기가 끝내는 것보다는 쉽습니다. 어떤 유명한 전도자가 '1백 명 가운데 5명은 그리스도에게로 완전히 이끌고, 나머지 95명은 교회 안에서 성숙할 때까지 돌보아주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의 생활을 시작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대개가 도중에 넘어집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도중에 실패할 때 그것이 뜻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 값이 무엇인지를 생각하지 못했을 때 당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하여 많은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배후의 환경, 즉 기독교인의 생활 내용이 무엇인지를 몰라서 너무 쉽게만 생각하다가 당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일들에 관하여는 묻지 않습니다. 지금 하나님 안에 속하여 얼마나 충성을 하고 있는 가에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어떤 이들은 과거에 자신이 행한 일들에 대하여 자랑을 하면서도 현재는 행치 않는 것을 봅니다. 돌밭은 주로 이러한 자들이 많습니다. 말씀을 기쁨으로 받습니다. 앞으로 주의 일에 충성하고, 행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개조되지 않았고,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말씀을 받되 영적인 믿음으로 와 닿지 않습니다. 이는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영과 육이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결실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육신의 돌을 우리의 몸 안에서 빼내야 합니다. 주 안에서는 '내가'라는 말은 결실을 맺을 수 없는 가장 큰 장애물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옛날 우리 동양 사람의 글귀에 선한 사람과 같이 있게 되는 것은 마치 지란지실(芝蘭之室)에 들어간 것과 같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지란은 난초를 의미합니다. 좋은 향기가 나는 난초가 있는 방안에 들어가면 온 방안이 향기로 가득해서 자연히 향기에 도취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받을 때에는 우리의 심령이 향기를 피우게 되고, 우리의 생활이 향기를 풍기게 되며 무언의 감화를 줄 수 있는 높은 자리에까지 우리의 신앙이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다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길바닥 같거나 바윗돌처럼 굳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비유에 돌밭에 떨어진 씨는 열매는 못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내립니다. 죄를 회개해야 은혜가 우리 마음속에 미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돌처럼 굳은 그대로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리지를 못합니다. 강퍅한 마음이나 나만 옳다고 하는 독선적인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내릴 수 없습니다. 내 잘못을 깨닫고 돌이켜서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그 심령 위에만 하나님의 은혜가 내립니다. 여러분, 이슬이 어떤 곳에 많이 내리는지 아십니까? 산골짜기에 많이 내립니다. 깊은 골짜기에 가보면 거기는 산꼭대기보다 이슬이 더 많이 내립니다. 아마 신령한 은혜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3. 가시 밭
가시로 가득 찬 땅입니다. 팔레스틴의 농부들은 퍽 게을러서 가시덩쿨을 윗 부분만 잘라서 불살라 버리기 때문에 얼핏 볼 때는 퍽 깨끗하게 보이지만 땅 밑에는 아직도 가시덩쿨의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에 때가 되면 가시덩쿨이 다시 성해집니다. 그런데 가시덩쿨은 곡식의 씨보다 더 빨리 자라기 때문에 씨의 생명을 막아 버립니다. 세상의 염려와 근심, 걱정의 넝쿨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성장하지 못하고 열매맺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을 받으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육신에 의한 결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있는 듯 보이지만 믿음이 없음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앞서가는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내 경험, 내 지식으로 살아가서도 안됩니다. 유대인들은 완벽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싹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남을 판단하고, 마음대로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었습니다. 영적인 척 하면서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을 들은 요나는 한참을 생각한 후 니느웨로 가지 않고 욥바로 향해 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바다에 던져 물고기 배에 넣으시고 그가 회개하자 그를 꺼내어 니느웨로 가게 하셨습니다. 왜 불순종했을까요? 하나님 명령에 순종하려면 자기 생각을 버리고 가야 하는데 자기 의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이처럼 불순종을 낳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집에 방문했을 때 마리아는 말씀을 듣고 마르다는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칭찬했습니다. 목사가 심방할 때 무엇을 주실 것인가를 기대해야 합니다. 대접하는 것보다 말씀 듣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때로 물질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자들을 보게 됩니다. 교회는 물질이 없어 운영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는 자가 없어 운영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여 성령으로 마음을 개간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편견은 금물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주의 종이 바람을 피웠습니다. 이를 본 아론과 미리암이 책망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모세가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론과 미리암을 문둥병이 들게 하셨습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편견을 버리고 밭을 개간하십시요.

4. 좋은 땅
열매 맺을 수 있는 좋고, 깊고, 깨끗한 땅입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세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그 하나는 이 말씀을 들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에 말씀을 들을 준비가 없는 한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경험, 지식, 의견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마음의 준비가 없기 쉽습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 마음으로 진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우리의 몸은 현명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가령 우리 눈앞에 무엇이 스치고 지나갈 때 눈은 자동적으로 감깁니다. 그것을 반사작용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에 원치 않는 무엇인가가 들려질 때에는 자동적으로 우리의 마음 문은 닫혀지고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괴롭힌다면, 이것은 어떤 때 맛없는 약이나 괴롭히는 치료법이라도 우리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꽉 닫아버려 진리가 길가에 떨어지면 이것은 인간에게 비극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은 말씀을 행동에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 보면 결실 하여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갈릴리와 같이 아주 메마른 땅에 서 이런 결실을 얻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감동 받기를 원합니다. 감동 횟수가 잦을수록 삶의 질은 좋아집니다. 감동을 주는 것은 많습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음악, 좋은 글, 고전으로 자리잡은 모든 것 등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람처럼 감동을 주는 존재는 없습니다.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은 한 사람의 일생을 감동으로 붙잡기에 넉넉한 극상의 예술입니다. 만물 중에 가장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인간의 심성에서 흘러나오는 마음씨는 비길 데 없이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저는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는데 가시처럼 쿡쿡 찌르는 모진 마음도 만났지만‘사람의 마음이 저렇게 선하고 비단결처럼 고울 수 있을까’하고 목사인 저까지도 부끄럽게 만드는 온유하고 품위 있는 마음도 많이 만났습니다.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사람을 생각하자면 향수처럼 떠오르는 분이 있습니다 어릴 적 우리 동네에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서울 할머니라는 분이 홀로 사셨습니다. 그 옛날 서울서 공부하신 분이니 시골에서는 왕비처럼 귀해 보였습니다. 그 할머니의 동생 되시는 분이 그 당시 전북도지사 부인이면서 이화여대 교수였습니다. 여름과 겨울방학이면 도지사 부인께서는 아들과 함께 그 집에 내려와 열흘씩 쉬어 가셨습니다. 그러던 여름 어느 날, 우리 동네에서 잘 산다는 집에서 도지사 부인을 청하여 점심을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차린 밥상이겠습니까. 구경꾼이 마당 안에 가득 찼습니다. 마침내 도지사 부인께서 첫술을 뜨셨습니다. 그런데 이 무슨 짓궂은 변인지, 수저 위에 얹혀진 하얀 쌀밥 틈에 통통하게 삶아진 파리 한 마리가 툭 불거져 나왔습니다. 순간 그를 지켜본 사람들은 오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은 얼른 밥술을 입에 넣고 물을 마셔 꿀꺽 삼켜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웠습니다. 그 부인의 이야기는 마리아가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 발등에 부었던 나드향유 처럼 번져 갔습니다. 예수님이 수가성 우물가에서 부끄러운 여인과 대화합니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저는 남편이 없습니다”“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가 남편이 없다는 말이 옳도다” 여자는 남편이 있는데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당연히 여자를 꾸짖어야 했습니다. “네가 감히 나를 속이느냐? 다 속여도 나는 못 속인다.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우고도 누구 앞에서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하느냐?”고 으름장을 놓을 법도 한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부끄러운 여인의 입장이 되셔서 그녀의 수치스러운 마음을 미리 삼켜주신 것입니다 남의 허물에서부터 나를 상하게 하는 역겨운 일에 이르기까지, 나의 거슬림을 이날까지 삼켜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나도 삼켜야 합니다. 삼키는 일은 척박한 땅에 두엄을 묻어주는 일과 같습니다. 삼키는 일을 잘 해야 내 심령의 산성화를 막고 옥토가 되어, 남에게 감동을 주며 살아가는 마음 밭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내 마음의 밭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묵은 땅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쓸데없는 땅입니다. 해도, 비도, 이슬도 다 받으면서 아무런 보답이 없습니다. 묵은 땅은 옆 밭에 장애를 줍니다. 묵은 땅과 같은 마음의 밭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오랫동안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게을리 하는 동안 그 마음이 굳어집니다. 좋지 못한 습관이 하나뿐 아니고 점점 더 생깁니다. 그 습관의 뿌리가 점점 더 깊어집니다. 여러 가지 잡초가 그 마음 밭에 나기 시작합니다. 세상 생각,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교만한 마음, 비열한 마음 등의 모든 잡초가 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묵은 밭 같은 마음에는 하나님의 빛도, 비도, 이슬도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소용없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도덕적인 교훈을 들어도 그 마음이나 생활에 어떤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묵은 땅은 어떻게 하라고요? 묵은 땅을 갈라고 하였습니다. 무슨 씨를 심기 전에 먼저 예리한 보습을 넣어서 갈아서 굳은 흙을 파고 뒤집어 잡초를 뽑아 버려야 한다고 하십니다. 얕게 갈지 말고, 깊이 갈아 뿌리까지 뒤엎어야 합니다. 물론 묵은 밭을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 굳어서 처음에는 힘듭니다. 그러나 힘들어도 갈아야 합니다. 아픕니다. 그러나 아파도 갈아야 합니다. 묵은 땅을 갈기 전에 무슨 씨를 뿌릴 수 없습니다. 묵은 땅은 갈아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회개라고 합니다. 이 시간 우리 마음 밭을 보시고 우리 가운데 다만 몇 사람이라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 있으면 성령의 보습으로 갈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세례 요한이 복음 전파할 때 제일 먼저 외친 말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라! 왜 우리가 교회에는 출석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왜 전에는 좋은 열매를 맺었던 분이 요사이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묵은 땅이 되어 버려 그렇습니다. 묵은 밭에 씨뿌려야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애써 씨를 뿌려도 소용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먼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세요! 마음의 묵은 땅을 갈아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악한 생각이나 부정적인 생각, 교만, 음란, 거짓, 탐욕, 시기, 미움, 분노의 생각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시고 묵은 땅을 기경하여 좋은 열매 맺는 마음 밭으로 변화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울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w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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