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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 사랑합니다 (골 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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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골로새서1:14-17
◎ 일시:2004년 3월 28일

예수님 사랑합니다 

☞본문: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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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난 홍해작전 후반부에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쭉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실감하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에게 조롱과 멸시를 받고, 욕을 먹고, 채찍과 가시에 찔리고 그 무거운 십자가 지고 쓰러지고, 또 쓰러지면서, 무릎이 깨지고, 어깨가 까지고, 결국은 흉악범을 다는 십자가에 못 박혀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도무지 예수님에게는 죄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흉악범으로 죽음 것은 누구의 죄로 인함입니까? 바로 나의 죄요, 너의 죄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 분의 십자가 앞에서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예수를 믿고 예수님의 고난을 아는 자들이 신앙생활하면서, 무슨 할말이 있어 불평을 하며, 불만을 말하고, 원망하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어려운 일을 만났다고, 제 뜻대로 안된다고 불만을 말하고,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주신 사명도 팽개치고, 나는 열심히 했는데 되는 것이 없다고 불만을 털어놓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몸 된 교회에 봉사하라고 한다고 불만을 털어놓는 이도 있습니다. 입이 있다고 다 말합니까? 죄 없는 예수님 십자가에 달아놓고, 죽여놓고 무슨 말을 합니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예수님 사랑합니다”“예수님 원하시는 일을 하겠습니다”“죽어도 예수님 떠나지 않겠습니다”“예수님 몸 된 교회를 위해 충성하겠습니다”라는 말 뿐이어야 합니다.“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저와 여러분은 분명히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나와서 예수님을 보내 주신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예수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영원한 멸망을 받아야 할 자로 감히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도 없고, 풍성한 생명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내가 믿는 예수님 어떤 분이십니까? 왜 그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까요? 본문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1.나의 죄를 속량 곧 죄사함을 위해 고난받고 죽어주신 분입니다.

14절“그 아들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을 얻었도다”라고 하였는데 “속량”(구속)이란 어떤 댓가를 지불하고 놓아주다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의 죄사함은 예수님의 피값을 지불하고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순전히 공짜로 주어진 것이지만 예수님에게는 목숨을 바쳐 이루어놓은 것입니다. 에베소서1:7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예수님께서 지불하신 고난과 죽음은 엄청난 고통이었고, 상상할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끝까지 기꺼이 감당해 주었습니다.

로마서6:23 “죄의 값은 사망”이라 하였는데, 그 사망의 댓가를 예수님께서 대신 지불하심으로 우리가 더 이상 죄의 값을 치루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인생을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끙끙거리며, 그 짐을 더 이상지지 않아도 될 영원한 낙원을 향해서 가고 있지만, 낙원은커녕 영원히 망할 성을 향해서 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음으로 그 무거운 짐이 벗어지면서, 이미 낙원을 허락받고 살아가는 인생으로 바뀐 것입니다. 

요한 번연이 쓴 천로역정에서도 기독도가 장망성(장차 망할 성=세상)을 떠나 천성을 향해 갑니다. 그 등에 무거운 죄의 짐을 지고 갑니다. 그러다가 어떤 곳에서 십자가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에서 자기 모든 죄를 대속하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바로 그 때입니다. 그의 등에 짊어지고 있던 죄의 무거운 짐이 땅에 떨어져 굴러 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얼마나 홀가분한지 그 기쁨은 무엇으로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찬송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죄사함 받고서 예수를 안 뒤 나의 모든 것 다 변했네. 지금 나의 가는 길 천국길이요. 주의 피로 내 죄 씻었네. 나의 모든 것 변하고 그 피로 구속 받았네. 하나님은 나의 구원되시오니 내게 정죄함 없도다”(210장)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은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 하늘에 계신 주 예수를 영원히 섬기리”(313장)

2.우리를 위해 죽어주신 그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15절“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16절“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이 우주공간에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뿐 만 아니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과 왕권, 주권들, 통치자, 권세들 즉 세상권세, 영적인 권세들 그 어느것 하나, 하나님의 창조물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둘째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17절“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모든 만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고, 모든 만물이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땅에 돋아나는 들풀로부터 공중에 나는 새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우주공간에 모든 일월성신(一月星辰), 세상의 모든 권력과 사람의 생사화복(生事禍福)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었습니다. 혹시 어떤 분들은 창조주이시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양반이 뭐하러 육신을 입고 와서 고생을 사서하고, 모두가 당신의 권한아래 있는데 명령으로 하던지, 권위로 하던지 하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신비로움이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외에는 완전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에서 밝혀집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사람에게 선포하신 것은 죄를 지으면 죽으리라고 선포하십니다. 이 선포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죄가 없는 완전한 분이심을 스스로 선포하시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나와 교제하는 사람은 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대가를 받게 됨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죽음은 곧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신대로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었고, 죽음이라는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지으신 피조물 가운데 사람은 당신의 형상을 따라 지었으며, 사람으로 인하여 찬송을 받으시려는 특별한 목적으로 지으셨는데, 죄로 인하여 그만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죄지은 사람을 폐시처분하고 새로운 사람을 지을 계획을 하시지 않고, 사람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고 다시 구원하실 프로젝트를 세우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의 프로젝트는 실로 엄청나고, 놀랍고, 획기적이며, 파격적이었습니다.

그 프로젝트의 내용이 요한복음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독생자 즉 당신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오셔서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게 한 죄를 청산하고 누구든지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예수를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게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이 놀랍고 엄청나고 파격적인 하나님의 프로젝트를 뒷받침하는 말씀을 하셨는데,“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라”(요한복음10:10)는 말씀입니다. 풍성한 생명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원한 생명, 최고의 질을 자랑하는 명품생명,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생명입니다. 이 풍성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말로만 아니라,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 사랑합니다”라고 해야 할 것인지 아셨죠? 구원받은 성도의 입에서 꼭 나와야 할 말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생각하시면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피 흘리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마음깊이 “사랑합니다”라고 외쳐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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