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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잠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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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잠언 2:1-12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복된 예배의 자리에 함께 나아오신 이웃 여러분, 지난 주일부터 우리는 “보다 더 나은 삶을 향하여”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첫 시간 우리는 “보람된 삶을 향하여”란 제목으로 말씀을 살폈으며 오늘 우리는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란 제목으로 말씀을 살피려고 합니다.

요즈음 텔레비전에는 홈쇼핑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온갖 상품들을 다 판매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상품 목록처럼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부터 시작해서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까지 없는 것이 없어 보입니다.

오늘 저는 홈쇼핑에서는 팔지 않는 않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것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최선의 삶을 살도록 여러분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더 건강한 인간관계를 갖게 되며, 보다 더 친절하고, 보다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무슨 제품입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 앞에 펼쳐놓은 성경입니다.

소비자 만족도가 가장 뛰어난 제품이며 엄청난 사람들의 삶을 바꾸어 놓은 제품입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하여 우리는 어디서 하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 잠언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잠2:6) 하나님의 지혜의 원천인 성경에 대한 오늘 설교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이 자리에 나와 앉기 까지 신앙의 여정은 다르고 그 여정에 따라 또 필요한 것이 틀릴 수 있지만 오늘 말씀은 누구나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오늘 처음 교회당에 발을 디딘 사람이든지 아니면 30년 40년, 아니 50년, 60년이 넘은 사람이든지 누구에게나 필요한 말씀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심지어 여러분이 아직 신앙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성경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혹 요즈음 처음 신앙을 갖게 된 새내기 신자라고 할지라도 성경을 통해서 속삭이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 지혜의 원천인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할까요?

1. 성경말씀은 여러분의 신앙을 강화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면 여러분의 신앙은 강건해집니다. 더욱 더 가까이 주님을 따르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작별하면서 그들을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의탁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행20:32)

여러분의 신앙을 강화시키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앙서적을 읽든지 아니면 신앙이 좋은 분들과 사귀든지, 주일마다 빠지지 않고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듣든지 모두가 여러분의 신앙을 강화시키는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밥을 떠먹여 주는 것과 같습니다.

주일마다 설교에 은혜를 받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은 설교자로서 행복한 일입니다만 그보다 더 기쁜 것은 하나님의 지혜의 보고인 성경을 매일 읽고 있다는 고백을 듣는 일입니다. 여러분들이 스스로 영적인 양식을 찾아 먹을 수 있다면 매일 매일 영적으로 자라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듣는 주일설교를 통해서는 영적인 성장보다는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수준밖에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일이 오기를 바라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다리기보다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공급받을 때 강건해 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는 자신이 영적으로 자라지 않는 것으로 고민하는 분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영적인 양식을 섭취하는 일을 게을리 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말씀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영적인 성장은 멈추고 맙니다. 성경은 읽는 것을 멈추면 영적인 성장이 멈춥니다.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왜 지혜의 원천인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할까요?


2. 성경말씀은 여러분에게 지혜로운 결정을 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로운 결정하도록 도우십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우리가 그 지혜를 따라 살기를 원하십니다. 말씀을 아는 자들은 말씀에서 얻는 지혜로 살아갑니다. 기독교문화를 가진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지혜로 국가 중대사를 결정했습니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하나님과 성경 없이는 세상을 바르게 통치할 수는 없다.” 고 말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성경이야말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이다. 성경이 없이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알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노대통령도 링컨을 아주 존경한다고 하는데 이런 링컨의 말을 좀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학교육을 받는 것보다 성경을 잘 배우는 것이 더 낫다.”고 루즈벨트는 말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캄캄한 인생길에 등불이요 어두운 갈 길에 빛을 비추는 하나님 말씀을 여러분이 알아야 인생길을 걸을 때 헤매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은 여러분이 지혜로운 결정을 내리도록 합니다. 말씀을 꾸준히 읽게 되면 영적 분별력이 훨씬 탁월해집니다.

건강이 좋아지는 겁니다. 저절로 매사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말씀을 꾸준히 읽으면서 시간 사용하는데 더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 것 같아요. 근래에 저보고 어떤 선교 단체에서 설교와 강의를 부탁해 왔습니다. 안성 수양관에서 토요일 아침 7시부터 40분간 하는 설교인데 2천명 모이니깐 꼭 와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작년 이맘때 같으면 갔을 것 같아요.

그런데 연초부터 성경을 읽게 되었는데 생각을 해 봤어요. 아침 7시부터 하는 집회인데 금요일 오후에는 올라가야 합니다. 하고나서 밥 먹고 내려오면 토요일 하루는 다 가고 맙니다. 제가 금, 토요일 이틀 동안 설교준비를 합니다. 주초부터 설교준비를 해야지 하고 매일 마음먹지만 살다보면 그게 잘 되지가 않아요.

그래서 집회 갔다 오면 제가 설교준비 때문에 밤을 새워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그냥 거절을 했습니다. 또 다른 부서에서 부탁을 해왔습니다. 월요일 오후에(‘목사님이 개인적으로 쉬시는 월요일에’ 그 말입니다) 대전에 와서 2시-5시까지, 그리고 그날 저녁에 광주 가서 7시부터 10시까지 목사님들에게 말씀을 부탁한다는 겁니다.

생각을 해보니깐 거의 전국을 돌아야 되겠기에 정중히 모두 거절을 했습니다. 꼭 내 말을 들을 필요가 있다면 2박3일 같은 집중적인 시간을 할애해 준다면 하겠지만 짧은 시간동안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겠다는 판단이 섰습니다.

이전 같으면 고민 끝에 갔을 겁니다. 그래서 시간을 또 많이 허비를 했을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지혜로운 결정을 하도록, 우리의 영적 상태를 새롭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인생사는 것에 혼란스럽다면,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찾을 수 없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지혜가 꼭 필요합니다. 그 지혜는 이 성경말씀에서 얻습니다.

거듭 묻습니다. 왜 지혜의 원천인 성경을 아는 것이 중요할까요?

3. 성경말씀은 여러분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웰빙(Well-being)입니다. 아직도 먹고사는 것이 힘든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먹고사는 일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질적으로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러면 웰빙(Well-being)은 어떻게 얻습니까? 특정 지역에 특정 아파트가 웰빙(Well-being)을 보장해 줍니까? 어떤 매장에 갔더니 웰빙 코너가 따로 있었습니다. 그 코너에 있는 물건을 사다 놓으면 웰빙이 배달됩니까? 높은 소득이 결코 좋은 삶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고소득을 올리는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정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돈은 부족한 것이 없어 보여요. 그런데 아침에 자고 일어나는 방문이 각각 달라요. 아내와 남편이 다른 방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아이들도 엄마하고 같이 하는 시간들이 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웰빙(Well-being)은 보장됩니까?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형통한다는 그 말이 바로 웰빙입니다. 평탄한 삶, 형통한 삶은 말씀사랑에서 부터 출발합니다. 저는 지금 성경만 읽으면 무조건 다 잘 된다, 부자가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돈 잘 버는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번영을 우리와 같이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바른 삶, 평화로운 관계, 하나님과 사람들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는 삶을 형통으로 봅니다. 웰빙(Well-being)은 우리가 가진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결정됩니다. 웰빙(Well-being)은 가진 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가졌든지 못 가졌든지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을 사는 자의 몫입니다. 마음에 기쁨이 자리하고 입술에 기도가 있으며 언제나 감사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누이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사람다운 삶, 좋은 삶, 복된 삶으로 인도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 . .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 . .” 그 결과로 “지혜가 네 마음에 들어가며 지식이 네 영혼에 즐겁게 될 것이요”(잠2:6-10)라고 약속합니다.

그러므로 지혜자는 권면합니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나의 말을 받으며 나의 계명을 네게 간직하며 네 귀를 지혜에 기울이며 네 마음을 명철에 두며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잠2:1-5) 그것을 찾으라고 권면합니다.

성경은 여러분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줍니다. 아직도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낍니까? 아직도 무엇인가를 찾고 계십니까? 웰빙(Well-being)을 위해서 무엇인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왜 지혜의 원천인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중요할까요?

4. 성경말씀은 여러분의 마음을 바꾸어 놓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바뀌면 여러분의 삶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봅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그렇습니다. 성경은 단순한 책이 아닙니다.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하고 있는 바를 분명히 구별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감추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말씀을 읽고 있습니까? 감격스런 어조로 성경을 읽는 것을 말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변하고 삶이 바뀐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 영적으로 자라기 시작합니다.

마음에 기쁨이 찾아오고 삶에 활력이 깃듭니다. 봄기운 앞에서 만물이 변하듯이, 새잎을 내고 가지가 자라듯이, 말씀을 읽을 때 우리의 삶은 바뀝니다. 왜 여러분의 삶이 바뀌지 않습니까? 그것은 주일 말씀만을 듣고 일주일 연명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으면 날마다 자랍니다. 수십 년 주님을 믿는다면서 표정하나 바뀌지 않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틀림 없다니깐요. 그렇게 오래 예수를 믿었는데도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은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주일날 와서 말씀만 듣고 가니깐 그렇잖아요. 그대로 안 사니깐 예수 믿는 사람에게서 나타나야 하는 예수님의 향기가 나타나지를 않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믿는 사람인 것처럼 행동해야 하니깐 그 껍질만 점점 두꺼워 지는 겁니다.

성경은 심령을 바꾸어 놓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서 고민하십니까? 여러분의 속사람이 하나님의 모습을 닮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속상해 하신다면 여기 처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마음과 삶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많은 사람들은 주저하고 있을까요? 그 말씀을 읽지 않고 망설이고 있을까요? 그것은 어렵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아, 그거 다 아는 건데 새삼스럽게 읽습니까?”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말씀 읽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렵다는 것은 맞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어떤 부분은 목사인 제게도 어렵습니다.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남들 7년 다니는 과정을 8년이나 다녔습니다. 게다가 유학을 가서 8년 동안 성경말씀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그래도 공부를 할 때 가끔 제 아내가 성경 읽다 말고 저에게 묻습니다.

처녀 때 안 믿는 집에서 “주일날 교회만 가도록 해 주십시오.” 하고 열심히 기도하다가 상황이 바뀐거죠. 성경 읽다가 모르는 것 있으면 물으면 되니깐. 그런데 문제는 꼭 내가 모르는 것 가지고 와서 묻는다는 겁니다. 제가 그렇게 무식하지는 않는데 말이죠. 저도 아는 게 있는데 내가 아는 것은 자기도 알겠나 봐요. 그래서 그건 안 묻고 꼭 모르는 것 가지고 와서 묻는데 참 난감하데요.

그래서 제가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을 보든지, 아니면 칼빈 선생 주석을 읽고는 답을 해주든지 하긴 했지만 해주고 나서 제 속이 그다지 시원한 것도 아닙니다. 지금도 성경은 저에게도 어렵다니깐요. 히브리어도 배웠고, 헬라어도 배웠고 책장의 한 줄이나 번역 성경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렵기는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대학을 하려다가 성경이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서 준비한 과정이 바로 성경통독반입니다. 혼자 읽다가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성경통독반을 준비해 놨는데 거기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담임 목사의 권한으로 중간에라도 수강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들어갈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는 과정이 바로 성경통독반입니다.

가끔은 성경이 어렵다는것 뿐만 아니라 친숙하다는 것 때문에 성경을 가까이 하기를 힘들게 합니다. “수 없이 그 이야기를 들었어요.”라고 말하면서 새로이 살펴보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친해지면 무례해진다고 말하지만 성경은 친해지면 만족을 선사합니다. 흥미를 갖고 조금만 더 부지런히 시도해 보십시오.

“아이구, 목사님, 목사님은 매일 성경만 읽으면 되지만 우리는 먹고살기에 바쁩니다. 아이들 챙기라 남편 시중들랴 여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싶지요? 저도 작년 이맘때만 해도 바빠서 큐티는 물론이고 통독도 규칙적으로 하지 못했습니다.

주일날 한차례만 저는 보는 분들은 일주일 동안 제가 하는 일이 한 시간 설교하는 일밖에 없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느낍니다. 먹고살기 얼마나 바쁜데 매일 성경을 읽으라고 채근하니 원망스럽습니까?

제게 가까이 계신 분들께 물어보십시오. 부교역자들이나 사무실에 봉사하는 분들에게 알아보십시오. 대체로 누가 제일 먼저 출근하며 퇴근 시간이 지나도 늦도록 앉아있는 사람인지 말입니다. 제가 주당 몇 시간 일하는지 물어보십시오. 그러면 또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겠죠. “목사님은 이렇게 큰 교회의 담임 목사님이니깐 받는 월급이 얼만데 그 정도는 해야죠.”...

부부선교회에서 제게 인터뷰를 하겠다며 몇 가지를 적어 왔는데 그 질문 중에 하나가 연봉을 묻는 질문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무실에 물어봤어요. 저는 연봉이 얼마인지 별 관심 없이 삽니다. 저는 먹고 입을 것 있으면 주님 일 하기로 결정한 사람이니깐 물어봤어요. 얼마라고 얘기해 주는데 계산을 해봤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현대 중공업이나 자동차에 들어가서 15년 근속하고 받는 연봉수준을 제가 받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생이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석사, 박사코스를 다 마친 사람입니다. 저는 제가 받고 있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습니다. 제가 받는 것 중에서 반은 남을 위해서 쓸 수 있다는 것에 행복할 따름입니다.

제가 시간 여유가 많아서 여러분에게 성경을 매일 읽으라고  한다고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작년 이맘때 까지만 해도 비전반 숙제는 살피지도 못하고 평신원 숙제를 박수진 강도사님께 맡기고도 시간이 없어서 통독도 묵상도 못했습니다. 나는 바쁘다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매일 꼬박꼬박 묵상을 하고 하루 평균 12장정도 성경을 통독하고 있습니다.

올부터 일이 줄어 들었냐구요? 아닙니다. 좀 더 부지런하게 보다 더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평신원 26명의 숙제에다가 비전반 18명의 숙제를 직접 다 살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보다 훨씬 더 규칙적으로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주로 탁구를 치지만 제 탁구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것 여러분이 아십니까?

그 뿐만 아닙니다. 그 결과 마음에 기쁨이 자리하고 입술에 기도가 떠나지 않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작년에 비해서 일의 우선순위를 바로 잡고 살기 때문입니다. 안성 수양관 가서 40분 설교하기 위해서 갔다 오면 적어도 8시간을 길에서 버려야 합니다. 우리 복음 열차 전도팀에서 수고를 해서 고속열차 시승 티켓이 나와서 지난 목요일 하루를 빼서 갔다 왔더니 금요일, 토요일이 얼마나 바빴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설교원고를 다 작성해서는 통역하는 사람에게는 메일을 보내놓고 방송실에도 올려줘야 자막이 뜬다는 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안 주는  바람에 오늘 1부 예배 때는 자막이 못 떴다는 것 아닙니까? 이렇게 일주일 중에 하루를 빼고 나면 시간쓰기가 얼마나 바쁜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하나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싶어집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를 두지 않는다고요?” 예,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믿고 삽니다마는 성경을 읽지 않는 삶은 그것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 있습니까?

1. 먼저 열정을 가지고 말씀에 접근하십시오. 감동을 가지고 말씀에 다가가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의 편지를 받았는데 나중에 봐야지 하는 사람 있습니까? 사흘 뒤에나 읽어야지 하고 밀쳐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책을 덮어 놨다가 오늘 그냥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요. 아직도 사랑하는 사람이 보낸 편지라면 뜯지도 않고 사흘씩 밀쳐 두진 않을 것입니다.

열정을 가지고 한 구절을 읽더라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성경은 접근해야 합니다.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2) 사모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열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꼭 먹고 싶은 음식이 무엇입니까? 

초콜렛? 커피? 아이스크림? 좋아하는 그 무엇을 사모하듯이 말씀을 사모하라고 권면합니다. 여러분이 즐기는 세상 것들은 사실 오래 가지도 않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신령한 젖은 영적인 삶에 필수적인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대체로 먹성이 좋습니다.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은 필수적입니다. 공기 없이 살지 못하듯이 하나님의 말씀 없이 우리 영혼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합니다. “사람이 밥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는 “떡으로만”으로 되어 있죠. “빵으로”하든지 “떡으로” 할 때는 사람들이 감동을 안 해요. 왜? 떡이나 빵은 안 먹어도 살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 제가 “사람이 밥으로만”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뜻을 살려서 번역을 한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다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2. 지속적으로 말씀을 체험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루에 한 시간씩 읽을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30분분 밖에 읽을 수 없다고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는 더더욱 마십시오. 저는 하루에 8시간씩 기도해야 한다고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하는 거고 보통 사람들은 기도의 끈을 잡고 살면 되는 겁니다. 하루에 1분을 읽든지, 10분을 읽든지, 100분을 읽든지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얼마만한 시간을 들이느냐 보다도 얼마나 지속적으로 말씀을 읽는지가 중요합니다. 감동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다가가십시오. 그것이 베뢰아 사람들과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차이입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17:11) 무슨 말입니까?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는 훨씬 마음이 열려 있어서 기쁜 마음으로 설교를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가 가르치는 말이 진실인지 알고자 날마다 지속적으로 성경을 연구하였다는 뜻입니다. 강조점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시간의 지속성’에 있습니다.

시편의 찬사를 보십시오. “복 있는 사람은 . . .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여기서도 지속성을 강조합니다. 그 결과를 보십시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이질 않습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질이 향상됩니다. 진정한 웰빙(Well-being)은 말씀 사랑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말씀을 읽는 훈련을 하십시오. 처음에는 의무적으로 시작해도 나중에는 좋은 습관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습관은 정말 무섭습니다. 나쁜 습관은 여러분을 혹독하게 다루는 주인 같습니다. 우리를 괴롭힙니다. 그러나 좋은 습관은 충직한 하인처럼 우리를 도와줍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의무감으로 시작하지만 뒤에는 거룩한 욕망으로 자리할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싶은 욕망이 마음에 자리하면 평창아파트에서 교회에 오는 10분도 말씀 듣는 일에 사용하고 싶어집니다.

말씀을 가까이하는데 여러분에게 있는 장애물이 무엇입니까? 친숙함입니까? 어려움입니까? 아니면 우선순위 문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일에 일관성 있게 시도하십시오. 하루에 한 장도 좋습니다. 정말 너무 바쁜 사람은 하루에 한 절부터 시작하십시오.

구약 성경 잠언은 모두 31장입니다. 하루에 한 장씩 읽으면 딱 떨어지도록. 오늘부터 읽고 싶은 사람은 오늘이 28일이니깐 28장부터 읽으십시오. 내일은 29일이니 29장을 읽어보십시오. 그렇게 시작하다보면 한달이면 한번 다 읽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매일 읽어 가다보면 성경 읽는 습성을 배양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절씩 시작해도 좋습니다. 하루에 한 장도 좋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영적 입맛을 살아나게 할 것입니다. 다만 매일 지속적으로 하십시오. 하루에 한 절도 읽지 않던 분이 한 절씩 읽기를 시작하면 달라집니다. 하루에 한 장도 꾸준히 읽지 못하는 분이 한 장씩 읽기 시작하면 삶은 바뀝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또 다른 방법은 무엇입니까?

3. 그 말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십시오. 우선 내용을 나누는 것보다 함께 성경을 읽는 것을 같이 해보면 좋습니다. 같이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들끼리 시작해 봐도 좋고 같은 구역의 식구도 좋습니다. 정말 매일 성경읽기는 하는데 오경(모세오경)에서 헤매는데 오경 돌파하기를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저는 대학 시절 때 친구하고 내기를 했습니다. 충청도 친구였는데 나보다 빨리 읽더라고요. 신구약을 다 통독하면 조그만 성경책 한권을 먼저 읽은 사람에게 선물해야 했습니다.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라도 해서 읽기를 시작해 보라는 겁니다. 읽다보면 읽는 일에 즐거움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충청도 양반이 빨리 읽으시더군요. 난 느릴 줄 알았는데. 나보다 빨리 요한 계시록에 진입했더라고요. 그런데 경상도 사람이 재주가 없잖아요. 그때 부산에서 제 고향 하동, 노량까지 배타고 다녔는데 하루 8시간 걸립니다. 그래서 배를 딱 타고 읽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을 다 읽고는 읽기를 마친 시간을 적어 뒀다가 나중에 친구와 비교해 봤더니 제가 먼저 읽었더라고요. 그래서 성경책 한권 선물로 받았었습니다.

어쨌든 해보라는 겁니다. 아이들 같은 경우는 읽고나면 초코렛을 주더라도. 제 아내는 사범대 출신이라서 그런 것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저는 다행히 사범대를 안 다녀서 그런지 아이들이 성경을 읽으면 선물을 준다고 늘 그렇게 약속을 합니다. 시켜보면 그렇게라도 시작을 하면 끝이 있습니다. 주위 친구들하고 성경을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하고 나누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주일학교에만 데려다 주는 것으로만 신앙교육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꿈마을 교사들은 부모의 신앙교육을 보충해 줄 수는 있지만 대체해 줄 수는 없습니다. 여새 동안 여러분이 가정에서 교육한 아이들을 꿈마을에서 연장을 해서 교육해 주는 겁니다. 여러분, 학교 다니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비법을 가르쳐 준다고 해야 귀가 솔깃해 지는 것 같더라고요.

주일날 교회 나오는 것, 참 잘하셨는데 시간이 지나면 졸음이 오는 것은 정말 안타깝습니다. 먼저 졸음이 안 오는 법부터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쉽습니다. 일주일에 매일 성경 1장씩 읽고 교회 나와 보세요. 절대 안 좁니다. 제가 보장하죠. 매일 매일 말씀 사모하는 훈련해 보세요. 그러면 왜 여기 와서 좁니까?

아이들보고 공부해라고 말하는 부모가 제일 잘못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가지는 제일 큰 스트레스는 아빠, 엄마로부터 “공부하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스트레스 주범의 1위입니다. 그런 아이들보고 또 공부하라고 말하면 어떻게 공부가 되겠습니까? 그러지 말고 여러분이 아이들 학교 갔다 올 때쯤 되면 성경책을 읽고 있어 보세요.

그러면 아이가 텔레비전 먼저 켜고 싶을까요? 숙제부터 하고 싶을까요? 생각해 보세요. 제가 이런 말하면 목사님이 세상을 안 살아봐서 그런 말한다고 말씀하실 것 같은데 18년 전에 제가 서울 오니깐 그러더라고요. “목사님 고3부모 되어 보셨습니까?”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 4, 5학년 때인데 그런 질문을 합니다. 그 말은 교육에 대해서 목사님이 뭘 안다고 말하려고 하느냐는 분위기더라고요.

지금은 고 3부모 노릇도 해봤고, 아들 녀석을 대학교에 입학도 시켜봤어요. 저는 아이들보고 공부하라는 말을 한번도 안 해봤어요. 안하기로 결심을 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우상이 바로 교육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 교육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내가 믿는 것이 기독교이지 대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저는 아이들을 그렇게 들볶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저는 업이 목사인 만큼 집에서. 그때는 수위실이 따로 있는 큰 교회도 아니고 개척교회니깐 방하나는 침실이자 수위실이었습니다. 거기서 책 펴놓고 공부하는 겁니다. 그러니깐 아이들이 따라서 공부하게 되어 있죠. 지난 한달 전에는 만 두 살밖에 안된 손녀가 와 있었는데 얘가 어느 날 책을 가지고 와서 앉는 거예요. 왜? 할머니가 그러고 있는 것을 봤거든. 두 살짜리도 분위기가 책을 읽고 있으면 따라 하게 되어 있어요. 글자 몰라도 흉내를 낸다니깐요.

그렇게 가르치라고 신명기서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합니다. 부모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사는 동시에 자녀들에게도 이 말씀을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집에 함께 있을 때 뿐 아니라 함께 여행할 때도 잠자리에 누울 때도 잠에서 일어나 눈 비비고 앉았을 때도 맨 먼저 말씀을 가르치도록 지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마지막 방법은 무엇입니까?

4. 그 말씀을 즉각 실천하십시오. 말씀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그 말씀을 즉각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하는 것은 그 말씀대로 실천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을 배우기만 하지 말고 그 배운 것을 따라 사는 것이 핵심입니다. 야고보의 말을 들어봅시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2-25)

이러한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행동은 영성의 척도입니다. 영적인 성숙도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불쌍한 사람을 보고 참 안됐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가 영적이라고 잘못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고 ‘참 내가 착한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하더라고.

아니요,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행동이 중요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을 것을, 추운 사람에게는 옷 한 벌을... 이렇게 뭔가 행동으로 나타나야 착한 것이지 불쌍한 사람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는 것만 가지고 자신을 착하다고 설득을 시킵니까? 정말 말하면 여러분은 불쌍한 마음을 주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거역을 한 것입니다.

혼돈하지 마세요. 행동이야 말로 영성의 첫걸음입니다. 정말 삶을 변화 시킬 때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지식을 가지고 성경 퀴즈 골든벨을 울렸다손 치더라도 그 자체로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복음서를 읽었으면 소외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주님을 만나보고 또 주님처럼 오늘 내 주위의 소외된 사람이 누구인지 찾아가는 삶을 살아야 의미가 있는 거죠. 

오늘처럼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라는 설교를 들었으면 반드시 한걸음 행동을 옮겨야 하는 겁니다. 즉각적으로 작은 걸음이라도 떼야 하는 겁니다. 집에 돌아가면 무심결에 리모콘을 잡게 되겠지만 ‘너, 습관 더럽구나’ 하고 놓으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그 순간에 놀라운 기쁨을 주십니다.

제가 보장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들은 설교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무심코 잡은 리모콘을 놓은 순간에 하늘의 놀라운 기쁨이 여러분 마음에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 실천해 보세요. 그리고 성경을 펴서 읽어보세요. 그러면 이전에 읽던 그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설교를 들었다면 엄청난 행동을 하려고 생각지 말고 평범한 순종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하는 겁니다. ‘탄핵을 향해서 오기로 나아간 대통령을 사랑하리라’는 이런 결심  하지 말고, ‘탄핵을 찬성한 국회의원들을 사랑하리라’ 이렇게 처음부터 시작하면 너무 어려워집니다.   

그러지 말고 말 안 듣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 오후에는 커피 한잔을 끓여 준다든지, 아니면 오늘은 안식일인데 아이들에게 편히 쉴 수 있게 내버려 두겠다든지, 아니면 떡볶이를 해 준다든지 하면서 어깨라도 두들겨 주고 이렇게 해야지 하나님께서 예수 믿는 여러분에게 자녀를 맡겼는데 그렇게 자녀들을 채근하고 하면 어떻게 해요. 

하나님 마음이 아프다니깐요. 여러분 자녀만 문제가 아니고 여러분이 그렇게 살면 세상이 바뀌지 않는 겁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삶을 위해서 지혜의 보고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십시오. 4월 한 달만 시도하면 옛 습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습관이 자리할 것입니다. 계획을 세우시고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중요한 것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내느냐가 아니라 매일 매일 계속하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제 말씀을 듣고 시작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며칠 후에는 딴 일에 마음이 쏠릴 수도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받을 것입니다. 앉아서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를 읽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 세상에는 수 백 가지도 넘는 것을 저는 압니다. 왜? 저도 경험해 봤으니깐.

또 우리의 원수가 결코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예수 믿을 때 여러분 남편이 뭐라고 하던가요? 가긴 가되 너무 빠지지는 말라고 했죠. 우리 대적 마귀는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그래, 설교는 다 들어. 아멘 까지 다 해도 좋아. 하지만 살기는 너 살던 대로 살아’ 그렇게 말합니다.

‘설교는 듣되 듣는 것으로 지나가라’고 속삭입니다. 여기에는 영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한때는 여러분의 영혼을 두고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부르짖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너희의 죄 값을 다 청산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피로 값 주고 우리가 주의 백성 되었습니다. 주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제는 주의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입니다. 영원히 주의 것이라는 것을 마귀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그가 손댈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의 관심사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 살 때에 어쨌든 영적 침체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재미없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여러분을 보면서 예수 믿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것, 여러분의 그 굳어진 얼굴 표정을 보면서 저런 얼굴을 하느니 나는 믿지 않겠다고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의 전략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는 여러분이 자기의 손아귀를 벗어 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원히 여러분이 생각할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의 마지막 관심사는 여러분이 세상 살 때에 무기력하게 살도록 하는 겁니다. 여러분의 삶을 두고 다시 한번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얘기하실 때 순종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이처럼 많고 성도가 많은데 왜 세상이 바뀌지를 않습니까? 이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주일날만 와서 듣고 실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들은 대로 실천하여 보십시오. 주일날만 말씀을 듣지 말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실천해 보십시오. 새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는 기쁨과 감사와 기도가 연이어 나올 것입니다. 웰빙은 물질이 주는 게 아닙니다. 천하 모든 영광을 네게 주리라. 절하기만 하라. 사단은 지금도 속이고 있습니다. 예수를 시험하든 사단은 지금도 여러분을 속이고 있습니다. 속지 마십시오. 웰빙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영으로 깃들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말씀을 듣는 중에도 속삭입니다. “절대로 정 목사 말을 들으면 안돼 그러면 모든 즐거움은 끝이야” “해봐도 소용없어, 네가 한 번 두 번 시도했어. 제발 듣고만 지나가는 게 좋아” 원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을 사랑하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여러분은 지혜로운 삶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힘을 주고 강하게 하시는 분의 도움으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를 바울은 고린도 후서에서 밝힙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

혹시 마음속에 “내가 예수 믿은 지 한 두해 되었나? 성경 읽어봤지만 변한 것은 없잖아. 나는 대책 없는 교인이야”라고 중얼거리는 분은 없습니까?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을 굳세게 하고 여러분의 결정을 도와주고 여러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여러분의 마음을 변화시키리라고 약속합니다. 세상의 지혜 대신 하나님의 지혜의 원천인 성경을 사랑한다면 여러분의 삶은 변합니다. 그렇게 오래 믿고도 삶이 변하지 않는 원인은 말씀을 귀로 듣기만 하고 눈으로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새봄을 맞이해서 지혜로운 삶을 위하여 새로운 결심합시다.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 있습니까? 먼저 열정을 가지고 말씀에 접근하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의 문자인 것처럼 그 말씀을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지속적으로 말씀을 체험하십시오. 더 나아가 그 말씀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십시오. 마지막으로 그 말씀을 즉각 실천하십시오.

다시 말씀드립니다. 무심코 리모콘에 손이 가면 놓으십시오. 여러분의 손이 리모콘에 닿는 순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령이 기억나게 하실 것입니다. 순종해서 놓으십시오. 그러면 하늘의 기쁨이 여러분 마음에 찾아올 것입니다. 여러분의 어두워진 눈이 열릴 것입니다. 여러분의 귀가 살아계신 이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 대저 그는 공평의 길을 보호하시며 그 성도들의 길을 보전하려 하심이니라”(잠2: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봄기운이 도는 이 4월을 우리의 영혼의 주인이신 그 분을 위해서 그 분께 “우리의 삶을 드리는 당신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라고 고백하는 마음으로 한번 순종해 보십시오. 그때에 울산교회는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고 110만 시민들의 칭송의주인공들이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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