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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품에 안은 사람 (눅 2:2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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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품에 안은 사람

(눅 2: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눅 2: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눅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눅 2: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눅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눅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눅 2: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눅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눅 2:33)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눅 2: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눅 2: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할아버지와 어린 손녀가 앉아 있는데 손녀가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하나님이 할아버지를 만들었쩌?"
"그렇단다. 얘야. 하나님께서 만드셨지~"
"... 할아버지 그럼 하나님이 나도 만들었쩌?"
"물론이지. 우리 공주님도 하나님께서 만드셨지~"
몇분동안 할아버지를 이리저리 살피던 손녀는 거울앞에가서 몸을 움직이며 자기를 요리조리 살핀 후, 무엇을 하고 있나 궁금하게 쳐다보고 있던 할아버지에게 와서 말했다.
"할아버지, 하나님은 최근에 와서야 좋은 작품을 만드시나봐요?"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지면 힘도 없어지고 외모도 볼품 없어지고 건강도 나빠지며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늙어가는 것을 꺼려합니다. 나이가 많은 것을 감추려합니다. 늙을수록 자신없어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늙는 것이 두렵거나 불안하지는 않습니까? 오히려 20년 또는 30년, 50년 후 백발의 노인이 되어 있는 여러분 자신을 상상할 때 기대가 되고 기쁨이 넘칩니까?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아름다운 노인들의 모습들을 발견합니다. 특히 본문의 시므온같은 이를 보면 늙어도 저처럼 멋잇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러움마저 느낍니다. 그의 마음은 고요한 평안으로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아주 평안하게 이 세상을 떠나 천국으로 옮겨갈 수 있게 되었음을 확신하고 자신의 죽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눈은 주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미소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의 입은 마리아와 요셉과 같은 이들을 향한 축복의 말로 가득하여 은혜가 넘칩니다. 더 나아가 그는 품에 하나님이신 아기 예수를 안고 너무나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시므온을 보면서 그의 영혼이 아주 행복한 미소로 가득차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늙었든지 젊었든지 시므온처럼 영혼에 미소가 가득한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에 미소가 가득하여 자연스럽게 그 행복함이 겉으로 배어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경험하며 참만족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시므온의 영혼이 미소가 가득하며 큰 은총을 받아 누리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성령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습니다. 성경은 시므온을 소개하며 계속 성령님과의 관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므온은 성령에 의해서 이끌려 산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시므온처럼 성령에 이끌려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면 아름답습니다. 행복합니다. 은혜를 풍성히 경험합니다.

1. 성령의 임재를 누렸습니다.(25)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여기서 성령이 그 위에 계셨다는 것은 성령님이 임재하셨다, 또는 심령에 성령이 충만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이 떠나지 않으시고 시므온의 위에 머무셨을 때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며 소망으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더가 세계를 제패한 후 서른 셋에 요절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대제국을 부하들에게 나눠주었는데 부하들이 "대왕께서는 무엇을 가지시려나이까?"라고 물으니까 알렉산더가 답하기를 "짐은 소망을 갖겠노라"고 했다고 합니다. 무언가 참 의미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무얼 소유한 것보다도 소유하려고 힘쓰고 애 쓸 때가 더 행복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사람의 참된 삶의 양식은 바라보는 데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대 신학의 거장인 몰트만은 "나는 소망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절망하는 순간에 인간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몹시 늙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세상을 위해 보내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소망중에 하루하루를 살았습니다. 오랜시간이 흘러도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소망중에 인내하며 끈기를 가지고 기다렸습니다. 거룩하고 큰 소망이 있었기에 의미있는 하루하루를 살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거룩한 소망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며 고난중에도 인내하며 기도하며 기다립니다. 기쁨으로 자신을 경건하게 지키며 기다립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망을 붙잡고 바라보며 기쁨가운데 기다리는 삶을 사십니까?

한편 역으로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기에 성령님이 늘 그 위에 임하여 있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 안에는 성령님이 거하고 계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말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죄가 우리의 삶안에 들어오면 성령님이 근심하십니다. 더 이상 우리안에서 충만하실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의 조건은 거룩함 즉 영적인 깨끗함입니다. 시므온은 깨끗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했다고 증거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그에게 충만하게 임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거룩한 영이십니다. 그는 거룩한 사람, 심령이 깨끗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그 안에서 충만하게 임재하십니다.

주일학교 행사를 위한 예비연습에서 다섯 살 난 한 여자 어린이가 짧은 시 하나를 외우기 위하여 강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 어린이는 아주 용기있게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린이는 교회 안을 온통 둘러보더니 실망하는 표정을 띠었습니다. 그러자 곧 입술은 떨리기 시작했고 흐느끼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때 그 어린이의 아버지가 한 기둥 뒤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갔습니다. 아버지는 그 기둥 뒤에서 어린 딸을 바라보고 있다가 딸을 팔에 안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그래, 무슨 일이지? 나는 네가 그 귀절을 아주 잘 아는 줄로 생각했는데." "그랬어요. 아빠, 그러나 나는 아빠를 볼 수가 없었어요. 아빠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나를 세워주세요. 그러면 무섭지 않아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이와같은 일은 없는지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곳에 서는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죄와 교만이 기둥처럼 서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립니다. 이 죄와 교만이 우리의 뒤로 물러나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 빛 가운데 서기 전에는 실망과 눈물은 우리의 것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시므온처럼 죄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고 경건한 생활을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여러분안에 충만하게 임재하시고 거룩한 소망으로 밝게 빛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성령의 지시를 따랐습니다.(26)

시므온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았을 뿐 아니라 성령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주께서 보내시는 그리스도를 보기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의 약속을 성령의 지시를 통해서 받을 만큼 시므온은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노인이 되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자기의 경험을 앞세워 고집과 노욕이 생겨지기 쉬우나 시므온은 자기의 고집대로 살지 아니하고 항상 성령의 지시를 받아가면서 그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경건한 신앙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시므온의 인생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주께서 보내시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즉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를 보기 위하여 오래 살도록 건강을 관리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보기 위하여 경건한 생활에 힘썼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감정적 충동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이기적인 계산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또 많은 사람들은 욕심에 이끌려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령님의 지시를 받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의 지시에 이끌려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성령님의 지시를 기다리기를 원하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지시를 받지 못하는 큰 이유중의 하나는 성령님의 지시하심을 구하는 기도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지시를 받지 못하는 더 큰 이유는 성령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뛰쳐나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좋은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큰 일을 이루기 위해 좋은 계획을 갖고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품고 계신 계획에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자기 계획대로 살려고 합니다. 또는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고든 맥도날드라는 사람이 쓴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좋은 책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두 종류로 분류했습니다. '쫓겨다니는 사람'과 '부름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믿는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 세계의 질서를 회복하고 예수님이 자신에게 주신 선물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쫓겨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고 주님의 부르심을 알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에게 성령님은 어떤 지시를 하셨습니까? 어떤 은사와 어떤 사명을 주셨습니까? 무엇을 위해 살도록 성령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까?

저는 목회를 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자삼는 목회를 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여러분을 제자삼아 말씀으로 먹이고 기도로 섬기고 영적 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무장시키어 다시 세상에 내보내도록 부름을 받고 지시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성령님께 어떤 지시와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자신의 사명을 위해 전 생애를 걸고 달려가고 있습니까? 때를 기다리며 준비하고 있습니까? 지시에 따라 쓰임받기 위해 무장하고 있습니까? 이미 사명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지시를 받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고 세상의 물결에 밀려 목적없이 사명없이 방황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쫓겨다니는 사람이라면 속히 성령님의 지시하시는 음성을 듣게되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지시를 받았으면 흔들리지 말고 그 지시를 굳게 붙들고 기다리며 준비하며 헌신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3. 성령의 감동에 순종했습니다.(27)

시므온은 그날 성령님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그 시간에 마리아와 요셉이 율법이 정한 아기의 정결예식을 행하고자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바로 그때 시므온의 심령이 성령으로 뜨겁게 감동되었습니다. '이 아기가 바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리스도시로구나! 내가 오늘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이 아기 예수를 보기 위함이었구나!' 시므온은 달려가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주님, 이제 주께서는 주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이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이것은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눅 2:29-32)"

시므온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전에 들어갔을 때 마침 아기 예수님도 들어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절묘하고 기막힌 타이밍입니까? 그순간이야말로 시므온의 인생에 있어 축복의 클라이막스입니다. 만약 그 순간을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시므온의 인생은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부유했어도, 출세했어도 허무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므온은 하나님이신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한없이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보람과 의미를 그순간에 다 만끽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누가 하나님을 자신의 품에 안아 볼 수 있었습니까? 세상에 자신의 인생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 성취되는 것을 보며 눈을 감은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시므온은 지금 성령님의 감동에 순종하고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된 경험을 맛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감동하실 때 즉각 순종하십니까? 설교를 듣다가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면 즉각 순종하십니까? 기도를 하다가 성령님이 여러분의 마음을 감동하시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르십니까? 머뭇거리고 갈등하다가 감동을 소멸하지는 않습니까? 성경은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 5:19)"라고 강조합니다.

1955년 가을 미국 오레곤주 유게네라는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어느날 마을회관에서 종교영화를 상영한다는 광고가 났습니다.그 영화는 한국전쟁에서 생긴 고아들의 참상을 소개하며 이들을 돌보는 손길을 찾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영화를 보았던 한 농부 부부의 가슴 속에 잔잔한 파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이들은 그 고아들이 불쌍하기는 하나 가난한 농부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그런데 날이 갈수록 그 마음 아픈 영화의 장면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이들 부부는 이 일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농장의 일부를 팔아 직접 한국에 가서 8명의 고아들을 양자로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이 사실이 마을 신문에 기사로 나가자 여기저기서 이들을 돕겠다는 편지가 왔고 어떤 가정에서는 고아를 양자로 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그래서 이 농부는 전적으로 이 일에 매달리게 됐는데 그들이 바로 유명한 홀트 양자회의 주인공인 해리 홀트 부부입니다.

우리도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소멸치 않고(데살로니가전서 5:19) 순종할 때 이처럼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감동하시는 순간이야말로 우리 인생에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인 것입니다. 사단이 순종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겠지만 결단하고 감동하심에 즉시 순종하십시오.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십시오. 시므온처럼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예수님을 안으십시오.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찬양하십시오.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축복하십시오. 성령님의 감동에 따라 기뻐하십시오. 성령님의 감동에 이끌려 말씀을 전하십시오.

여러분의 영혼은 지금 미소짓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기쁨으로 충만하여 참만족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 시므온처럼 성령의 임재를 느끼며 살고 있습니까?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통해 성령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며 살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아 인생의 분명한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기를 축원합니다. 날마다 성령의 감동하심과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며 약속의 성취를 보며 행복해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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