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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 앞에서 / 계 1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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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앞에서

본문 : 계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980년 3월 불란서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한 세기를 떠들썩하게 하던 최고의 한 지성인이 폐수종 때문에 입원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이 병원에서 문자 그대로 발악을 했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함치며, 절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가를 곁에 서 있는 자기 아내에게조차 묻지를 못했다. 아내조차도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자기 남편에게 그의 병명을 말하지 않았다. 소리치고 발악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남편의 곁에서 위로를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던 이 불쌍한 여인과 그 사람! 이 사람은 자유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수필을 쓰고 또한 주옥같은 글을 남기며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실존주의 철학자 싸르트르 입니다.
이것이 그의 말로로서 1980년 4월 16일 입원한지 한 달만에 그는 병원에서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에 불란서의 신문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싸르트르가 왜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그렇게도 외쳤던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각 언론이 떠들썩하였습니다.
그때 한 독자가 신문사에 투고를 해서 이런 기사가 실렸다고 합니다. "싸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싸르트르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진정 돌아갈 고향이 없었을 것입니다.(히9:27, 고후5:1)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패티슨 교수와, 마린 호스피스의 책임의사 윌리암 래머의 공동 관찰에서 임종환자의 아홉 가지 두려움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1) 죽음이 미지라는 두려움.
2) 고독에 대한 두려움.
3) 가족 친지 등 사랑하는 이들과 떨어진다는 두려움.
4) 신체를 잃는다는 두려움.
5) 자기 지배 상실의 두려움.
6) 정신적, 육체적 고통에 대한 두려움.
7) 자신의 주체성 상실에 대한 두려움.
8) 퇴행에 대한 두려움.
9) 진실을(진리) 말해주지 않는 데서 오는 두려움(최근의 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85%의 말기 환자들이 진실을 알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유명한 피터 마샬 목사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마샬 목사님의 임종시간이 가까워 오자 부인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빙그래 웃으시며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씀하시며 돌아가셨다 합니다. 부인은 여기서 믿음의 용기를 얻어 "나의 남편은 목사였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그녀는 계속 글을 써서 여러 권의 책을 내어 미국의 베스트 셀러 작가로 유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는 바로 그 순간에 하늘 나라를 확실히 알게 되었고 거기서 받은 영감과 감격이 그녀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피터 마샬 같은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도 보통 때처럼 그저 "갑니다. 또 만납시다."하며 잠깐의 이별임을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장례식이라고 말하며,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히 끝났다고 생각하여 영결식이라고 말합니다. 믿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은 옷가지를 묻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유해를 안장하는 예식일 뿐 영결식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잠시 이별하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요, 주께서 하신 약속입니다.( 요3:16, 히2:15)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정말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감리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오늘 밤 12시에 죽는다고 하면 오늘 하루 동안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는 다른 날과 똑같이 강의 준비를 하겠소. 그리고 다른 날보다 30분 일찍 잠자리에 들겠소" 웨슬리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죽음을 30분 앞당겨 맞이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곽선희 목사님의 설교에서 본 글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코미디언 가운데 SBS프로에 나오시던 김경태 장로님이 계십니다. 코미디언계에서는 대부격입니다. 그 분이 몇 년 전에 돌아가셔서 추도예배를 드렸습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참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사모님을 통해서 장로님이 마지막에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를 들었습니다. 그것을 다 얘기할 수는 없지만, 그 분은 생전에 참으로 믿음이 좋았습니다. 자기가 세상을 떠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분은 고생을 참 많이 한 분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그 사연 많은 생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는 항상 나를 최선의 길로 인도하셨으니 오늘 내가 죽는 것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최선의 사건이다" 하고 감사히 받아 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본인이 장례식 순서를 다 짜고, 누가 설교하고, 누가 무엇을 하고, 절대 상복은 입지말고,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다 말해놓았습니다. 또 그는 연예인이었기에 옷이 많았습니다.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옷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옷들을 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주라고, 그 중 제일 낡은 옷을 자기한테 입혀달라고, 그것을 입고 가겠다고 했습니다. 사모님이 그건 안 된다고,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하니까 장로님은 웃으면서 그러면 자기더러 벌거벗고 가라는 말이냐고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자녀들을 위해서 하나하나 기도하고 마지막으로 목사인 사위를 위해서 이 말씀 저 말씀으로 기도하다가 숨이 차서는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께 영광!" 하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망이 있는 사람, 소망에 사는 사람의 가는 모습입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설교자 스펄전은 부인과 함께 여러 가지 질병으로 고생한 사람이었습니다. 늘 병석에 누워 있는 아내를 돌보면서 살아가는 스펄젼을 두고 사람들은 모두 부인을 먼저 천국에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스펄젼이 아직 오십대 초반의 나이에 먼저 세상을 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손을 잡고 이 세상을 하직하며 위대한 설교자가 남긴 마지막 말은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그리고 그의 유언은 바로 하나님의 선을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보여 줍니다. 평생을 복음과 함께 살다 간 하나님의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좋으신 하나님과 함께 그토록 행복한 세월을 보냈다오"
믿음이 독실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임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신하들을 다 방에서 나가게 한 후 남편과 손을 마주잡고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라는 톱 레이디의 찬송을 열심히 부르더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늘의 소망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그의 찬송소리는 기쁨이 가득했고 떨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땅에서의 최후의 순간을 주님을 찬양하며 그의 구속의 은총을 감사하는 신앙이라면 그가 편히 쉴 곳은 우리의 피난처이시오, 영원한 안식처이신 그리스도의 품이 아니겠는가!
로마의 키케로는 로마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으로 그들의 목이 잘리우면서도 찬양하고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차라리 그리스도를 위해서 목숨을 내던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면서, 그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나의 철학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분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과 그들의 죽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저들의 삶과 죽음으로 증거하고 있는 저들의 하나님을 무엇으로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지금까지 죽음을 어떻게 보고 살아왔습니까? 믿는 우리에게 죽음이 온다해도 본래 예수님께서 주신 생명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오직 환경만 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음은 하나의 변화이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진정한 의미의 죽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고전15:51-52, 살전4:13)
강원도 산골 목장에 살고 있던 소년은 백혈병이 재발하여 다시 서울의 큰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건강한 또래의 소년이라면 중학교에 입학해 한 껏 부풀어있을 때였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 백혈병을 앓기 시작하여 이제 껏 병원을 들락거리느라 소년은 학교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했습니다. 며칠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눈을 뜬 아침, 소년은 엄마에게 담당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의사선생님 방에 들어서자 소년은 의사선생님과 단둘이 할 얘기가 있다며 한사코 엄마를 밖으로 밀어 냈습니다. 독한 약 때문에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얼굴도 노랗게 부어 올랐지만 소년의 눈만은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습니다. 소년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안 의사선생님은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하고 보드라운 소년의 머리털을 쓰다듬어 줄뿐이었습니다. 밖에서 얘기를 엿듣고 있던 엄마는 숨죽여 울고 있었습니다. 같은 병동의 어린이 환자들이 하나 둘 숨을 거두어 빈자리가 늘어갈 때에도 소년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쾌활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소년도 끝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의식 불명상태가 된 지 하루 이틀 .. 시간은 점점 흐르고 소년의 부모의 애절한 바램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열흘째 되던 날 소년이 가느다랗게 눈을 떳습니다. 곁에 있던 엄마와 아빠가 소년의 이름을 부르며 바싹 다가서자 소년은 입술을 힘겹게 움직이며 말했습니다. "엄마, 아빠 고생 많이 하셨어요"
소년은 그렇게 7년 동안 백혈병과 힘겹게 싸워 온 삶을 마감했습니다. 아침 햇살이 소년의 싸늘하게 식어 가는 몸을 따뜻이 감싸안고 있었습니다. 지난 2월 16일, 김 민우 군은 자신의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언제 부르심을 받을 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항상 준비하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이 이와 같이 됨이라"(전7:2)하였고,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2)하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항상 종말을 염두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먹이를 찾던 물고기 두 마리가 먹음직해 보이는 지렁이를 발견했습니다. 한 물고기가 다른 물고기에게 말했습니다. "저 지렁이가 보이지? 저건 낚시바늘에 끼워져 있는 거야. 낚싯바늘은 낚싯줄 끝에 달려있지. 낚싯줄은 낚싯대에 연결되어 있고, 그 낚싯대를 사람이 쥐고 있어. 우리가 저 지렁이를 삼키면 우리 입이 바늘에 걸려 결국 프라이팬에 얹혀지는 신세가 되고 말거야."
그러자 다른 물고기가 말했습니다.
"하하하! 어릴 때 할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바로 그 이야기구나. 나는 그런 동화 같은 이야기는 믿지 않아. 프라이팬에 얹혀졌다가 다시 물 속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밝혀준 이가 어디 있어? 자네가 저 지렁이를 먹지 않겠다면 내가 먹어치우겠네." 그러더니 그 물고기는 지렁이를 삼키고 프라이팬에 얹혀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러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죽으면 모든 게 끝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천만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그 심판에 따라 믿는 이는 천국으로, 안 믿는 자들은 지옥 불구덩이로 떨어진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페르시아의 왕이 어느 날 세계적인 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인류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죄악이 무엇이겠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에 그리이스의 현자는 “늙어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도의 현자는 “사람이 도저히 견디기 힘든 고통을 당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악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페르시아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암흑의 세상에 광명을 줄 만한 선을 한가지도 못하고 임종을 맞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어느 교회 여집사님이 수 년전 몸이 이상해서 진찰을 받아 본 결과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 달밖에 살지 못한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 분은 그 남은 두 달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내 인생의 남아있는 두 달 동안 어떻게 살면 좋을까요?"라고 기도하는데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제일 커다란 후회는 '사랑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그동안 벽을 쌓고 살아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자꾸만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벽을 쌓고 살았던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그들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습니다. 뚜렷하게 등진 사람은 아니지만 마땅히 사랑해야 할 만큼 사랑하지 못하고, 격려해 주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찾아가서 일일이 격려해 주고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재산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빚이 없나 생각하면서 지은 빚을 깨끗이 갚고, 자손들에게 남길 최소한의 것을 제외하고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이제까지 돈을 제대로 가치 있는 일에 거의 쓰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선교사들을 위해서 선교헌금을 하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구제사업에 썼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 사랑하는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남길 메시지를 쓰기 위해 성경을 읽으면서 마지막 유언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어느 덧 두 달이 다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몸이 더 악화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다른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 보았더니 그 결과는 간암이 아니었고, 오진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집사님 돈을 많이 쓰신 것이 후회되지 않습니까?" "아니오, 목사님. 지금까지 저의 생애를 통해서 이 두 달처럼 그렇게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산 때가 없었습니다. 저는 앞으로 남은 시간도 이 마음으로 계속 살 것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테러 붕괴참사 현장이나, 피랍 비행기에 타고 있던 희생자들은 사망 또는 실종되기 직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휴대폰을 통해 안타깝고 처절한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어떤 희생자들은 죽음을 이미 각오한 듯 사랑한다는 말을 되뇌이며 저 세상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겨 이 소식을 전해들은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습니다. 다음은 미국 언론에 보도된 희생자들의 마지막 전화통화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1) '여보 사랑해.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 같아. 근데 나는 아마 살 수 없을 것 같아. 여보 사랑해. 애기들 잘 부탁해...'
2) '사랑해. 월드트레이드센터에 지금 있는데 이 빌딩이 뭔가에 맞은 것 같아. 내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는지 모르겠어. 여보 정말 당신을 사랑해. 살아서 당신을 다시 봤으면 좋겠어. 안녕...'
3)'엄마! 나 마크야. 우리 납치 당했어. 세 명이 있는데 폭탄을 가졌대, 엄마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4) '여보! 나 브라이언이야. 내가 탄 비행기가 피랍 됐어. 그런데 상황이 아주 안 좋은 것 같아. 여보 나 당신 사랑하는 거 알지? 당신 다시 볼 수 있게되면 좋겠어...'
5) '여보! 우리 비행기가 피랍 됐어. 아무래도 여기 탄 사람 모두 죽을 것 같아. 나하고 다른 두명하고 상황을 수습해 보려고 해. 사랑해 여보!...'
6) '여보! 당신을 정말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우리 딸 에미도 정말 사랑해. 그 애 좀 잘 돌봐 줘...'
여기 마지막 남긴 말들 중에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한결같이 '사랑해'였습니다. 이 메시지가 나온 비슷한 시간대에 머리가 헝클어지고 마치 넋이 나간 것 같은 한 여인이 무너진 건물더미를 배회하며 애절하게 사람을 찾는 것을 보았습니다. T.V 기자가 누구를 찾느냐 묻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남편이요! 내가 그에게 '사랑해'라는 말만 전해주었으면 좋겠어요'하고는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이 땅을 떠난 사람이나, 남아있는 사람이나 마지막 전해주고 싶은 말은 '사랑해'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목이 메어지고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마지막 남기고, 혹은 떠나보낼 때에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사랑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의미심장한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마술사로부터 지우개 하나를 받았는데 '이 지우개는 딱 한 가지만 빼고는 어떤 것도 다 지울 수 있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우개로 세계의 높은 사람들의 얼굴과 글이 가득 실린 신문을 지워보았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정말 말끔히 지워졌습니다. 그는 신이 났습니다. 그림도 지우고, 사진과 시도, 소설도 지웠습니다. 그는 아예 신문 전체를 지워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문질러도 한 단어만이 지워지질 않았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문지르고 문지르다 마침내 지우개가 다 닳아지고 말았습니다. 지우개가 끝내 지우지 못한 단어는 바로 '사랑'이라는 단어였습니다. 여기 지우개는 시간을 의미하며 '사랑'은 시간을 뛰어 넘어 영원으로 이어진다는 얘기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한가지 '사랑'만이 영원하다는 교훈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니'(고전13:8). 이 세상 모든 가치가 다 사라지는 순간,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말할 그 때에도 사랑만은 우뚝 솟아서 영원한 보석으로 찬란하게 비춰줄 것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사랑했던 추억들을 가지고 갑니다. 그리고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과 무수한 사랑의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랑의 경험과 추억들이 영원을 두고 솟아나는 샘이 되어 아름다운 감격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욱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시고, 그 사랑을 이어 줄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다른 것 다 놓쳐도 주님과 이웃을 사랑할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과 삶의 터전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영원하신 하나님, 이 시간 생명과 죽음에 대한 말씀을 상고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사 신령한 눈이 밝아져 영원한 소망을 가지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남은 생애를 주를 위해 사는 지혜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c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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