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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자가의 도 (고전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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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십자가의 도
성 경 : 고린도전서 1장 18~25절


“십자가의 도”란? “십자가에 관한 말씀, 십자가를 통하여 받은 구원진리” - “복음”이란 뜻입니다. 본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왜?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복음이 미련하게 보이는가? 그들은 철학적이고 아름다운 변론을 가장 고상하고 고귀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상사신을 섬기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 받는다”는 복음의 말씀은 어리석은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멸망 받는 자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그 진리가 구원을 얻는 성도들에게는 실제로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롬1:16).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신실하시기 때문에, 그의 약속대로 자기의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는 기독교의 상징 일뿐만 아니라, 부활과 더불어 기독교 복음의 Α. Ω.입니다.

십자가가 없는 기독교! 십자가가 빠진 복음! 십자가가 없는 교회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독교를 생각할 때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십자가를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 그의 정신, 그의 인격의 초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를 이해함이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으며, 이 십자가를 알지 못하고 기독교를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 십자가 구원! 십자가 복음을 깊이 묵상하며 은혜 나누길 원합니다.


Ⅰ. 십자가의 도는 구원의 도입니다.

본문 18절에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며”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에 “그의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사 십자가를 지심은 무엇보다도 죄와 비참에 빠진 인생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엡2:1) 여기에 전제되는 것은 인간이,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담이 인류의 대표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불순종의 죄를 범하므로, 모든 인류는 범죄하게 되었고, 죄로 인하여 죽음이 왔습니다(롬6:23). 그러나 죄와 허물로 죽어서 비참에 빠진 인생을 구원할 자는 세상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롬3:10).

왜 ? 모두다 죄악에 휩쓸렸고, 모두다 죽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내 스스로 내 자신을 구원할 수 없는 무능한 실존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기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롬3“23~24).

성경은 우리에게 행위의 심판을 말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했습니다(계20:12).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심판! 여기에 그리스도의 대속, 여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이 죄 문제를 해결하고,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베들레헴 말구유로 오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유한한 인간의 시간 속으로 오시고, 인간의 역사 속으로 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씀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했습니다(사53:5).

성경은 여러 곳에서 예수께서는 속죄 구령의 대업을 완수하고자 십자가를 지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고로 기독교 복음! 십자가의 도는, 구속의 진리가 핵심이며 으뜸입니다.


Ⅱ. 십자가의 도는 화목의 도입니다.

골로새서 1장 20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6절에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를 화목케 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드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함이라”고 했습니다(요일2:2).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요일4:10~11).

죄악이 세상에 들어옴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는 원수의 사이가 되었습니다. 죄악으로 인하여 생명 줄이 끊기고, 죄악으로 인하여 은혜의 통로가 막히고, 죄악으로 인하여 축복의 통로가 막혔습니다. 죄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내어, 저주와 진노와 심판과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죄와 허물을 다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심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를 화목케 하셨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했습니다(롬5:6).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했습니다(롬5:8).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다”고 했습니다(롬5:10).

십자가의 도는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화목의 다리입니다.


Ⅲ. 십자가의 도는 일치의 도입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에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 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하나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일치와 연합을 이루게 하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로 귀일하는 것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수평적 관계와 수직적 관계의 일치를 봅니다. 십자가는 종적선과 횡적선의 만남의 일치와 조화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는 대신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대인관계가 있습니다. 내세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세도 있습니다. 교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윤리도 있습니다. 신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활도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일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사랑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공의도 만족케 하셨습니다.

만약 이 양자의 문제가 수렴되지 않는 다면 그것은 두개의 막대기 일뿐 십자가는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구속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화목의 도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일치의 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오늘도 여전히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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