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축복된 삶 / 롬 14:8

  • 잡초 잡초
  • 353
  • 0

첨부 1


          축복된 삶

본문: 롬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끝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날이 숨겨져 있으므로 삶에 대해 만용도 하게 하고 여유 있게도 하는 게 아닐는지요. 인생의 끝에 우리가 서 있다면 삶의 여정을 뒤돌아볼 때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요?
어느 사람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 세상을 꼭 한 번 지나간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베풀어야 할 친절이 있다면, 내가 줄 수 있는 좋은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하겠다. 그것을 게을리 하거나 연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세상을 두 번 다시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의 길목에 잠시 머물러서 음미해볼 만한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꼭 한 번 지나가는 인생길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축복된 삶을 사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고전10:31)
사고로 장애인이 된 한 청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창가의 침대에 누워 친구들이 애인을 태우고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해가 바뀌면서 그 친구들은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지나갔고, 나중에는 손자들과 함께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후손도 없고 재산도 없고, 명성도 없었습니다.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상황은 시편 112편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꼭 같았습니다. 낙심될 때에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생각할 때면, 천국에 대한 기대로 기뻤습니다. 그는 이 세상과 천국 양쪽에 많은 가족을 가졌습니다. 그는 영원한 부를 소유했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함께 하시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믿음이라는 유산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현세에서, 아니면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진실로 복이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당신은 요즘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살고 계시는지요? "열심"이라는 말은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을 위해 열심을 내고 있는지 망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요즘 땀흘리고 있는 일은 진정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그 일에서 당신은 보람을 느끼고 계십니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당신의 삶을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당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으며, 인생을 어떠한 방향으로 살아갈 지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쁜 생활 중에서 크리스천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12:13)고 했습니다.

둘째,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잠3:27-28, 잠19:17, 사58:7, 10, 렘22:16 겔18:16, 갈2:10)
이스라엘에 가면 큰 호수가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갈릴리호수이고 다른 하나는 사해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푸르고 청청합니다. 그 호수 안에는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해는 염분이 높은 매우 짠물로 되어 있습니다.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도 거기 들어가면 몸이 둥둥 뜨게 되어 익사할 염려가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너무 물이 짜서 물고기가 없습니다. 다른 생물도 없습니다. 조개 같은 패류도 없습니다. 진흙 갯벌뿐입니다. 두 호수는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두 호수의 근원은 같습니다. 북쪽 헬몬산에서 눈이 녹아 물이 내려오면 그 물은 갈릴리 호수로 들어갑니다. 그러면 갈릴리 호수는 계속하여 그 물을 요단강을 통하여 하류로 내려보냅니다. 그런데 사해는 그 물을 받기만 하고 다른 곳으로 흘려 보낼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염분이 높아져 아무 생물도 살지 못하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해(死海)라고 합니다. 줄줄 아는 자는 복 받은 자입니다. 베풀 줄 모르면 사해와 같은 죽은 바다처럼 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베풀기를 즐기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그가 집 앞에 앉았는데 사람 셋이 그 의 집 앞에 당도하였습니다. 그는 달려나가서 그들을 맞이하고 귀하게 준비한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 세 사람은 하나님께서 천사 2명과 함께 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아브라함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나서 그에게 두 가지의 복을 베풀었습니다. 첫 번째는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그의 아내 사라가 그 말을 듣고 웃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나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능치 못하심이 있겠는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테레사 수녀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 여인이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저의 삶은 너무 권태롭습니다. 인생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겠어요.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어요." 테레사는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래요, 제가 살고 있는 인도에 오시면 진정한 삶을 드리겠습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 와보세요." 그래서 그 여인은 인도로 갔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죽어가는 사람들, 질병으로 거동도 못하고 앓고 있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거기에서 그 여인은 테레사 수녀와 같이 그들을 돕고 보살폈습니다. 온종일 다른 사람을 치료하는 일에 자기 삶을 쏟다보니 삶의 의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그 여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인도에 오시면 진정한 삶을 드리겠습니다'라고 하신 말씀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하여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때, 우리의 삶은 새로운 기쁨과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주는 것이 받는 것 보다 복이 있다”(행20:35)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셋째, 복음전하는 삶입니다.(막16:15, 행5:42, 고전9:16-17, 딤후4:2)
우리가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이 지시한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 20) 이 말씀은 반드시 지키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여기에서 “복음을 전파하라”라는 말씀은 지상에서 가장 늦게 말씀하신 주님의 유언입니다.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길이 전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또 구원해 주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해 주셨다면 우리도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사랑하는 길은 바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길이 전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가장 크게 영광 돌리는 길은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가장 크게 기뻐하십니다. 네 번째는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장 큰 상급을 쌓는 것이 전도입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상급을 쌓고 하늘에 예금하는 길, 그게 바로 전도입니다. 가장 큰 영광의 상급입니다. 다섯 번째는 불신자의 영혼이 애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아시아에 가려고 할 때 성령께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어디로 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까?” 그랬더니 마케도니아 사람이 와서 환상 중에 오라고 손짓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마케도니아에 가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것이 유럽에 복음을 전파한 최초의 일입니다. 그때부터 유럽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섯 번째 이유는 지옥에 간 영혼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와 나사로가 함께 죽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 떨어졌습니다. 너무 뜨거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낙원에 보니까 나사로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애원합니다. “한 방울의 물이라도 내 혓바닥에 갖다 달라” 그때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여기에는 구렁이 있어서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내 고향에 내 형제 다섯이 있는데 저 죽은 나사로를 보내서 복음을 전파하게 해달라고 애원합니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죽은 자가 살아나도 듣지 아니할 것이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음부에서 울부짖는 부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화니 크로스비는 가장 위대한 찬송가 작사가로 생전에 2천여 곡의 찬송가 가사를 지었습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오 놀라운' '나의 갈 길' 등이 그의 대표작입니다. 1820년에 태어나 95세까지 산 그녀는 안타깝게도 생후 6개월 만에 두 눈을 실명, 평생 앞을 못 보고 살았으나 남들이 못 보는 섭리의 세계를 보며 행복한 생애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늘 만나는 사람에게 전도하며, "당신의 영혼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길..." 이라고 인사를 했는데 노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이 인사로 은총을 받은 건 저였습니다."
일생을 복음전도와 선교활동에 바친 삶은 축복된 삶입니다.

넷째, 참되고 바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마5:16, 벧전2:12, 벧전4:9-11)
한 권사님이 비몽사몽간에 하늘나라에 갔다 오셨다고 합니다. 그 분은 세상적으로 이름이 있는 분이었고, 또 신유의 은사를 크게 받은 분으로 기도도 많이 하고 주님 앞에 외견상으로는 충성을 다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 가보니 그분에게 배당된 집은 너무 초라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 자기를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모른다고 하시더랍니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목사님 몇 명을 아시냐고 물었더니 역시 모른다고 하시더랍니다. 그 분이 그런 일을 경험한
후에는 자기 재산을 전부 정리해서 북한 선교원에 몇 십억을 기증했다고 합니다.
당신의 삶은 마지막날에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마25:21)이라고 칭찬받을만 합니까? 아니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겠노라'(마7:23)할 것 같습니까?
미국의 한 신문이 독자들에게 "당신의 수명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겠습니까?"라는 설문을 냈습니다. 응답자들 중 집이나 땅을 사겠다거나 개인비자금을 만들어놓겠다는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물질적 희망에 대한 내용보다는 더 많은 도움을 주겠다거나 더 많은 사랑을 베풀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지금 살고있는 1년이 인생의 마지막 한 해라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더 많이 갖기 위해 계속 몸부림칠 것인가? 아니면 더 고귀한 일을 찾을 것인가?

다섯째, 감사와 찬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욥36:24, 시146:2, 엡5:19-21)
두 마을이 있었습니다. 한 마을은 감사촌이고 다른 한 마을은 불평촌이었습니다. 불평촌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불만이고, 무엇이든지 근심하고, 무슨 일이 생기면 매사에 분노하고 또 좋은 일이 일어나도 혹시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면서 걱정했습니다. 불평촌 사람들은 주소가 그 동네이고 또 모두 불평 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 비극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감사촌에 사는 사람들은 어떠한 가운데서도 감사했습니다. 고생을 해도 감사하고 또 시련을 받을수록 감사의 농도는 더욱 짙어졌습니다. 봄에는 꽃이 피는 것에 감사했고 여름에는 잎이 무성한 것에 감사했으며 가을에는 추수하는 것에 감사하고 겨울에는 나뭇가지는 앙상하지만 그 뿌리가 있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하루는 불평촌에 사는 사람이 감사촌에 놀러 왔다가 감사하는 소리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감사를 배웠습니다. 그러나 하루종일 범사에 감사하다가 저녁이 되어 불평촌으로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이, 감사촌에 갔다가 얻어먹은 것도 없이 감사만 하고 왔네”
여러분, 감사는 감사촌에서만 가능합니다. 불평촌에서 감사촌으로 이사를 와야만 됩니다. 감사촌에 이사오기 위해서는 불평촌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그곳에 놓고 나와야 됩니다. 그리고 감사촌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됩니다. 감사는 삶의 양식입니다. 또한 불평이 전염성이 강하듯이 감사도 전염됩니다. 모든 일을 감사하십시오. 존 헨리는 “감사는 최고의 항암제요 해독제요 방부제다”고 말했습니다. 능력 중에 제일 큰 능력은 감사하는 능력입니다. 인도에 “호랑이를 왜 만들었냐고 하나님께 투정하지 말고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감사는 긍정적인 생각에서 나옵니다. 고난도 하나님이 주시는 연단으로 생각하며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헬런 켈러는 “나의 약점으로 인해 나는 하나님께 오히려 감사합니다. 이를 통해 나를 알고 내게 주어진 일과 또 내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십시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고난을 통해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지하게 하십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만 의지하고 경외하도록 하십니다. 여러분, 고난이 있을 때도 감사하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때, 잘될 때 감사하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낮추실 때도 감사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고난과 연단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십니다. 또 모든 것으로 감사하십시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도, 물질도 모두 하나님 것입니다. 건강하십니까?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몸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온몸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물질이 있습니까? 아니면 없습니까? 현재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물질에 감사하십시오. 현재 있는 위치에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는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감사하십시오. 감사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십시오. 마음을 새롭게 하고 생각을 새롭게 하며 감사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시 150:3)
찬송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십니다.(시28:7, 사51:3, 단2:20-23, 롬15:11-13) 찬송은 하나님의 뜻을 깨우쳐 주고, 삶의 힘을 줍니다. 그래서 찬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표정이 밝으며, 어려운 일에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은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자극을 주어 마침내 믿지 않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품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찬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밖에도 수없이 많은 축복들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찬양하십시오. 찬양은 여러분의 삶을 활기차게 해줄 것입니다. 오늘 주님을 찬미하십시오. 주님은 매 순간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삶의 의미를 잃은 사람은 몸은 살아 있어도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미래를 향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주께서 나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과거를 다 청산해버리고, 새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아갑시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146:2)

여섯째,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밴더빌트 대학에 경건한 그리스도인인 수학교수 메디슨 체럿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이 메디슨 박사는 학생들에게 시험지를 내줄 때마다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두 가지 시험을 내는 것입니다. 하나는 '수학'이고 또 하나는 '정직'이라는 시험입니다. 여러분이 수학시험에 통과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일시적 성공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이 정직의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여러분은 삶에서 진정한 성공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학시 험에 실패하고도 훌륭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정직의 시험에 실패하면 축복된 삶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직은 도덕의 기초이고 양심의 바탕입니다. 정직을 떠난 진리도, 신앙도 허구요 위선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영국사람들에게 아주 재미있는 속담이 있습니다.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소에 가서 이발을 하라.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하라 - 결혼이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가보다 - 한 달을 행복하려면 말을 사라. 일 년을 행복하려면 새 집을 사라. 그러나 한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한 사람이 되라."
성경에 "정직한 자는 영원하며(욥4:7),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욥8:6)

일곱째, 부지런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게으른 사람은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은혜도 부지런해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가만히 있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고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으려면 두드리고 찾고 구하는 애씀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잠깐 기도하고는 응답이 없다고 실망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통회 자복하고 몸부림치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도 우리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근면한 생활태도를 가져야 됩니다. 부지런하지 않고 잔재주를 부려서 성공하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부(富)란 자연에 노동을 가할 때 얻어집니다. 자연자원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으로 부가 이룩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해야 성공하는 것입니다.
혹시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으므로 우리는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에 날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찾아 부지런히 이곳 저곳을 살피는 새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부지런히 뛰면서 일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를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을 얻느니라"(잠13:4)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6:6)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열심히 순종하고 몸과 마음과 물질을 정성껏 드려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쌓을 곳이 없도록 풍족하고 넘치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기적의 주인공, 축복 받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에게 큰 은혜를 주신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복음전하는 삶, 베푸는 삶, 참되고 바른 삶, 감사와 찬양의 삶, 정직과 근면한 삶을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http://allcome.wo.to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