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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주일,종려주일)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슥9: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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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슥9:9-10

오늘은 종려 주일입니다. 종려 주일이란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했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자기의 왕으로 모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어떤 은혜를 주시는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9절에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왕이 누구십니까? 지금 이 시대는 왕정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우리는 왕정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이었으나 시84:3을 보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이처럼 예수님은 나의 왕이시기 때문에 지금 우리를 다스려 주십니다.

즉 마음을 다스려 주시고 환경을 다스려 주시고 사단을 다스려 주시고 육신을 다스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 내가 왕 노릇하지 말고 겸손히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겸손하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주님을 찬양하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를 성령으로 온전히 다스려 주십니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며 겉옷을 길에 펴며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였던 것처럼 우리 주님을 기쁨으로 그렇게 우리의 왕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2.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다시 9절에“그는 공의로우며” 했습니다.
여기 공의로우시다는 것은 악을 철저히 척결하시고 의인에게는 상을 주심을 의미합니다. 지금도 상선벌악의 섭리로서 그렇게 하시고 장차 재림하셔서 또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진정 공의로우tu서 벌의 면제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가 받을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공의로우시기에 우리의 죄악됨을 하나도 남김없이 성령으로 처리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나아가 우리 안에 의로움을 가득히 주십니다. 이것이 진짜 공의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왜 나는 예수 믿는데 아직도 악이 척결 되지 않고 의로움이 없습니까?” 하시는 분 안 계십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진정 왕으로 섬기는 자세가 부족하기에 그 공의로움을 경함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종려주일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만이 아니라 나의 왕으로 받드시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진정 공의로움을 경험시켜 주실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구원을 경험케 하여 주십니다.

다시 9절에 “구원을 베풀며”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침략을 받아 속국이 되었을 때 사사나 왕을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모든 압제에서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용서 받고 죄에서 해방 받아 내 영혼이 살고 내 영혼이 승리와 영광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길 때만이 가능합니다.

4.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진정한 평안을 주십니다.

10절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했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입니다. 예루살렘은 남 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이 남북 이스라엘은 우리 하나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님을 왕으로 섬길 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더 이상 싸울 필요가 없는 진정한 평화가 온다는 예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그 곳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이란 하나님의 정권에 순복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정권에 철저히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5.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세상을 변화시킬 능력을 주십니다.

10절에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했습니다.
여기 바다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땅 끝은 세계입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셔서 온 세계를 변화시키심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진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왕으로 삼은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만한 능력이 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9절에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시지만 우리가 받들어 드려야 왕의 일을 하시는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독특한 왕이십니다. 세상 왕은 강압적으로 사람을 굴복시키고 복종시키지만 예수님은 겸손하신 왕이시기에 우리가 그를 높여 드리고 순복하고 순종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왕으로서의 사역을 하시지 않으십니다. 교회의 권세도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교회를 존중하고 순복해 주셔야 교회가 권세가 있습니다. 목회의 권세도 그러합니다. 여러분이 높여주고 따라줄 때 권세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나를 정복하여 주시기를 기다리지 말고 주님께 철저히 순복하고 다스림을 받으시고 엎디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예배해야 합니다. 그래야 왕으로서의 능력을 베풀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처럼 주님을 나의 왕으로 크게 환영하십시다. 그래서 진정한 다스림과 변화와 구원과 편안과 능력을 경험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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