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가서 이와 같이 하라(Go And Do Likewise) / 눅 10:25-37

  • 잡초 잡초
  • 337
  • 0

첨부 1


제목 : 가서 이와 같이 하라(Go And Do Likewise)"
본문 : 누가복음 10:25-37

  피히테는 "사랑이 인간의 주성분“이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하고 보람된 삶은 풍성한 사랑을 주고받는 삶입니다. 본문은 한 바리새인 율법사와 예수님 사이에 일어난 영생에 대한 대화의 내용입니다. 이 율법사는 스스로 율법에 통달한 자나, 탁상공론만 일삼는 자로, 자신의 알량한 지식으로 남을 곤경에 빠트리기 좋아하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베풀어야할 참 이웃이 누구인가? 를 질문한 그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해 주신 후 ”가서 이와같이 하라“고 명령 하셨습니다.


가서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1.불행당한 자의 참 이웃이 되라는 것입니다.

  1) 예루살렘은 해발 762m의 고지요, 여리고는 해수면보다 250m나 낮은 곳으로 그 길은 90리(35Km)의 급경사의 길이요, 굴곡이 심하고, 협착하고 위험하여 강도의 출몰이 많았던 곳입니다. 제롬은 “이 길은 붉은 길, 혹은 피의 길”로 불리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홀로 이 길을 가다 떼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값진 물건을 다 빼앗고, 옷까지 다 벗겨가고, 집단구타를 한후 실신상태에 빠진 자를 내 버리고 갔습니다. 우리는 모두 붉은 길, 피의 길을 걷고 있는 인생 입니다.

  2) 그런데 본문에는 불행당한 사람을 지나가는 두 종류의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를 보고 피하여 간 사람과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긴급구조에 나선 사람입니다. 그를 보고 피하여간 사람들은 제사장과 레위인 이라고 했습니다. 저들은 성직자들로 백성들을 돌봐야할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제사장은 아마도 의식을 더욱 소중히 여긴 나머지 피해갔습니다(민19:11). 레위인은 가까이 가 위급한 상태임을 확인하고도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며 도망치듯 피해갔습니다.

  3) 그런데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긴 후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동원해 긴급구조에 힘썼습니다. 그 동기는 인류를 향한 동정심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사랑은 첫째, 모든 편견을 극복한 사랑입니다. 둘째, 자기 동족도 버린 원수를 사랑한 사랑입니다. 셋째, 자신의 결단과 선한 사랑의 손길로 보살핀 실제적 사랑 입니다. 그는 인종과 국경과 모든 편견을 뛰어 넘는 사랑으로 불행당한 자의 참 이웃이 된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불행당한 자의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2. 자신을 희생하는 이웃이 되라는 것입니다

  1) 사마리아 사람은 떼강도를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불쌍히 여긴다”는 헬라어는 ‘에스플랑크니스테’ 로서,  동정심으로 가득차 (was filled with pity)란 뜻 입니다. 바로 이것이 그의 모든 행동의 동인이었고 첫 출발점 이었습니다. 그는 여행 중에 있는 바쁜 사람이었습니다. 제한된 여비를 가졌고, 오직 혼자만 탈수 있는 나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신도 불행당할 가능성과 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모든 것을 희생함으로 한 생명을 구하는 일에 전력투구했습니다.

  2) 과연 그 희생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첫째,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는 모든 위험을 감수하며 다가갔습니다. 둘째, 기름과 포도주로 그 상처를 싸매어 주었습니다. 포도주는 소독약이요, 기름은 치료제입니다. 셋째, 자기의 짐승에 태워 안전한 여관까지 운반했습니다. 넷째, 모든 부비를 책임져 주었습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강도만난 자를 보았을 때,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희생할 용기와 결단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순간 사명을 외면하고 피해 갔습니다.

  3) 오늘 우리 주변에는 실로 떼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영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현대 메스컴은 불행 당한 자들을 만나면 속껍질까지 벗기려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불행당한 자들의 선한 이웃으로 이런 자를 만날때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보살펴야 합니다. 영원한 포도주와 기름인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그리고 안전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 영혼을 그리스도에게 맡겨 참된 소망과 복음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게 해야 합니다.


3. 끝까지 책임지는 이웃이 되라는 것입니다.

  1)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정성은 떼강도를 만난 사람과 함께 있을 때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주막을 떠나며 주인에게 부탁합니다. “이 사람을 돌보아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했습니다. 그는 의리의 사람입니다. 비록 개같이 취급받는 이방인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긍휼이 가득했고,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이 감당해야할 사랑의 의무 이상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그는 불행당한 자를 위해 전무 책임을 완수한 사람입니다.

  2) 예수님은 바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요8:48). 그는 불행당한 인생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보고 불쌍히 여기사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하늘 영광 보좌까지 비우시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는 자기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셨습니다. 물과 피를 다 쏟아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고 영육의 모든 질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를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요13:1, 14:16-18, 마28:20) 그리고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책임져 주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3)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 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참된 사랑은 잎만 무성한 열매없는 나무가 아닙니다. 참사랑은 행동과 실천으로 표현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불행 당한자를 보고 결단코 외면하거나 도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영육의 구원을 위해 총력을 쏟는 사랑입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행당한 이웃을 위해 이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