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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 내가 사는 것은 (갈 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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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사는 것은
갈2:20-21

오늘은 고난 주간 첫째 날로서 '예루살렘 입성의 날'이라고 합니다.
이날 주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으로 들어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는 ‘참회의 고난주간’이 오늘부터 한 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주간에 크리스천들은 예수의 행적을 따라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1. 고난 주간에는 주님의 고난의 행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발자취를 묵상하는 기회로 삼자는 것입니다.
우리도 고난과 헌신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번주간 각 속별로 금식 릴레이를 가지게 됩니다.
금식하고 성경 한 장씩 읽고 주님의 고난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모두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은 큰 학교입니다. 일년 365일 계속 청명한 날씨만 계속되면 안되듯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늘 밝고 기분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고 복 받을 일을 많이 하는 사람도 때때로 환난과 고난은 닥쳐오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성숙하게 합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야곱은 압복 강가에 앉아서 눈물을 흘리며 두려워하며 어찌할 줄 모르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요즘 힘들고 어려운 때입니다. 힘들다고 주님 앞에서 게으르지 마십시오. 지금 특별 새벽기도 중에 있습니다.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면 하나님이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은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주님을 위해 사는 자는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는 자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믿는 성도는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내가 죽은 것입니다.
바울은 그때 나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로마서6:6에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받을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로마서6:3-4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세례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죽으심과 그의 다시 살으심에 연합하는 표입니다.
나의 옛사람, 즉 나의 옛 본성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죄성이 있어서 그 죄성이 우리를 늘 죄 짓게 합니다.
이것을 죽이지 않고는 죄에서 자유 할 수 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은 우리의 옛 자아 죄성을 죽이신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을 믿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주님이 죽여주신 그 죄에 포함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보시고 . . .
그러나 어떤 교인은 아직도 나에게 살아있는 죄성의 모습을 보고 믿어지지 않는 다고 말 할지 모릅니다. 여러분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이미 그 십자가에서 죄의 권능(죄성)을 파괴시며 버리신 것입니다.
윌치만 니 라는 유명한 목사님의 이런 간증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만은 죄에서 떠나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어느날 본문을 읽다가 깨달음이 왔습니다.
“그래 내가 죽어야 죄에서 해방될 수 있구나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는 죽자”
말로만 죽는다고 말하지만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월치만 리는 아랬층에 주방 아주머니에게 “아주머니 윌치만 니라는 사람이 죽은 것을 아세요 그 사람은 죽었습니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알렸습니다.
“여러분 윌치만 니는 죽었습니다”
이렇게 광고를 하고 나자 그때부터 그에게 정말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음을 선포하고 광고하십시요.

사람들은 시제에 있어서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은 2000년 전인데 어찌 지금의 나를 위해서 죽어 주실 수 있느냐? 이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실 때 성부 하나님 혼자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이 함께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일찍이 우리를 복주시려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흙으로 인간을 지으신 것 만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다 준비하셨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약하기 때문에 세상에서 많은 유혹과 많은 고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은 미리 다 준비하신 것입니다.
장성한 남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때 준비를 하지 않습니까? 태교, 출산 후에 살집, 아기 옷. . . . .
그런 준비도 없이 아이만 달랑 낳는 부모를 어찌 좋은 부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창조하심 뿐만 아니라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려고 계획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을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모든 준비까지 일찍이 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믿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도 죄의 성향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살고 있기 때문에, 육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그 유혹을 받고 있지만 그 죄의 유혹이 우리를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소속이 이 땅이 아니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물질의 유혹과 정욕의 유혹을 받고 있을 지라도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미 다 이겨놓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제 다시 그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미 탈출한 것입니다. 우리의 소속은 그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대장은 사단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대장은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이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허물의 사함을 받게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5:17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워야 합니다. 죄와 유혹과 . . . .끊임없이 . . .
아직도 욕심이 많습니까? 죽은 사람이 어째서 그렇게 화를 잘 내십니까?
싸우십시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땅에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골로새서 3:5)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묵인하거나 용납하지 말고 철저하게 근절시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싸워야 할 것들입니다. 또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우리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탐욕과 음란과 도적질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러한 것들은 다 악한 것이라”(마가복음 7:21-22)
최선을 다해서 싸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 죄의 유혹과 대상은 흙덩이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이겨놓은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3.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는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 죽음에서 구원함을 받은 우리는 이제 주님의 것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어주신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것이기에. . .

20절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 ‘비록 내가 지금 육체 가운데서 살고 있지만’이라는 뜻.

로마서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구원함을 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교회에 꼬박뽀박 잘 나오면 되는 것입니까? 십일조 잘 바치고 술담배 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까? 물론 이런 것들은 매우 기초적이고 당연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그 차원을 훨씬 뛰어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누구입니까?
살전5:16∼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거기에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4. 주님을 위해 죽는 삶의 비결.

우리가 죽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옛 습관을 버리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구습과 악습, 옛 사람의 혈기, 나쁜 습관, 또한 옛사람의 정욕과 욕심, 옛사람의 고집과 자존심, 옛사람의 죄를 버리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옛사람을 포기하면 비로서 그리스도께서 나의 주인이 되어서 나를 지배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면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 중에 가롯 유다는 그가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옛 사람이 죽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고, 육에 속한 사람으로 살았기 때문에 사단의 종노릇하다가 결국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2)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마16:24에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지워주시는 십자가는 가볍습니다.
마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사실은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화) 주님이 하루는 두 제자를 데리고 어떤 길로 떠나셨습니다. 주님은 두 제자에게 무게가 똑같은 십자가 하나씩을 주시며, 나는 이 길에 미리 가 있을 테니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첫번째 제자는 묵묵히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가볍게 지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제자는 너무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불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불평을 할수록 더 힘들었습니다. 더 무거웠습니다.
하루만에 첫번째 제자는 예수님께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넘겨 드렸습니다.
주님은 첫번째 제자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두 번째 제자는 이튿날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제자는 십자가를 주님의 발 밑에 내동댕이치며 불만을 하기 시작합니다.
“주님, 주님은 불공평하십니다. 저에게 훨씬 더 무거운 십자가를 주시다니요! ”
주님은 “얘야, 십자가는 둘 다 똑같은 무게였다. 네가 불평할 때마다 십자가의 무게는 늘어났던 거란다.”
저 십자가는 예수님이 지신, 나를 장사지낸 십자가입니다.
나의 욕심과 죄와 혈기와 이기심과 정욕과 더러운 죄의 이름들이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기쁘게 지면 질수록 가벼워지는 십자가입니다.
믿음으로 순종으로 지면 질수록, 쉬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평하고 십자가를 회피하면 할수록 그 십자가는 더 무거워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십자가를 질때 힘들고 무거웠던 분들 계십니까? 바로 그 원인이 여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찬송513) 즐거운 마음으로 십자가 지고 가라 네가 기쁘게 십자가 지고 가면
슬픈 마음이 위로 받네

5. 깨어서 나팔 부는 파숫군

구원받은 백성이 져야 할 십자가는 파숫꾼이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33:7-9에 보면 우리를 파수꾼이라고 했습니다.
파수꾼이란? 불침번을 서서 사람이나 재산을 지키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파수꾼의 역할은 실로 국가의 존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합니다.
파수꾼은 적군이 쳐 들어오는 것을 보면, 위험한 일을 발견하면 나팔을 불어 경고해야 합니다.
위험이 다가옴을 알면서도 경고하지 않는 자에게는 죽게 된 자의 피 값을 그 파수꾼의 손에서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전해야 합니다. 불어야 할 때 불어야 합니다. 기회가 있습니다.

(다짐을 위한 스킷드라마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오늘 우리는 모두 영적 파수꾼들로 세움을 받은 자들입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따르고 충성된 파수꾼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삶들에게 꼭 상을 주십니다. 주님의 일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1)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는 상급을 주십니다.
다니엘서12:3절에“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하였습니다.

2) 의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렸으니 나를 위하여 예비해 놓은 의의 면류관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 주를 따라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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