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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고전 15:1~8, 출 15:13~1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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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고린도전서 15:1~8 (출애굽기 15:13~18 참조)
2004년04월11일 설교 
 
  성경에는 우리 인간의 상식이나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워낙 오래 전 이야기이니까 접어두더라도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야기부터 황당한 것들이 어디 한 두 가지입니까? 지팡이가 뱀이 되고 그 뱀이 또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느닷없이 나일 강물이 온통 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홍해가 쩍 갈라지고 그 사이로 마른 땅이 나타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다 꼽으려고 하면 밤이 새도록 해도 다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황당한 이야기들이 성경에 그토록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까? 그 이유는 성경의 기록이 마치 인간의 역사 같지만, 사실 인간의 이야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일찍이 어떤 신학자는 역사, 즉 history를 His story, 즉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하여간 예수님의 부활 사건도 성경의 그 황당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때문에 이런 기록을 볼 때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믿음의 안경을 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입체 영화라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입체 영화라는 것이 그냥 눈으로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림이 이중 삼중으로 겹쳐지기 때문에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특수하게 제작된 안경을 끼고 보면 참으로 신기하게 보통 영화를 통해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입체감을 경험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성경, 즉 하나님의 이야기에는 보통의 눈을 갖고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사건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안경을 끼고 보면 보통의 눈으로 경험할 수 없었던 신비하고 놀라운 사건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그 믿음의 안경을 끼고 우리가 뭘 봐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봐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의 내용은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부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다른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크게 보면 그런 것들도 다 복음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복음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때문에 바울 사도는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복음에 대한 정의를 아주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지만,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또한 부활하심이 바로 복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성경대로”라는 바울 사도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이미 오래 전에 성경에 계시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이미 오랜 전에 계시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계시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얄팍한 머리로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단에 따라 오래 전에 진단서와 그에 따른 처방전이 이미 작성되었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그 계시된 말씀대로 이루어진 사건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어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그 부활 사건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의 명단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맨 먼저 게바, 즉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있습니다. 이어서 열두 제자가 체험했습니다. 그 후에 오백여 형제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봤습니다. 또 그 후에 야고보와 모든 사도들이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바울 사도 자신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사건이든지 내가 직접 체험할 때 비로소 확실하게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봤다고 할지라도 바울 사도 자신이 그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으면 예수님의 그 부활 사건이 그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실제로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까지 그는 예수님과 무관한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아니 오히려 그 예수님과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지내지 않았습니까? 체험이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직접 체험한 바울 사도는 그 때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와 같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체험한 사람은 바울 사도뿐 아니라 그 누구라도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은혜란 받을 만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를 의미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는 사람은 아주 자연스럽게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현실의 삶이 아무리 고달프고 또 짜증스럽더라도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찬송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괜히 복음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모든 사람의 삶을 가장 복된 삶으로 변화시켜 주기 때문에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셨다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이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아주 확실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체험을 통해서 비로소 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 사건의 주인공인 주님과 반드시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이름을 소리 높여 찬송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과의 만남과 사귐을 통해서 그 주님이 주시는 크고 놀라운 은혜와 평강을 지금 여기서부터 마음껏 받아 누리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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