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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것 (눅 24:3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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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것> 눅24:36-53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과 일을 전하는 복음서의 기록들 중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시기 전까지 무엇을 하셨습니까? 복음서들의 증언 속에서 우리는 그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일을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평강을 비신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하시기 위하여 가르치시고 설득하신 것입니다. 셋째는 복음전도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먼저 하신 일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36절도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첫 안식일이 다 지나려고 하는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보려고 제일 먼저 찾아갔던 여자들을 만나셔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도 “평안하냐” 하신 것입니다(마28:1, 8-9). 도마가 없을 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주님께서 도마도 함께 있을 때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도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제자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절망과 회의와 불안과 슬픔과 후한과 죄의식과 자괴감을 일시에 씻어주는 해방과 구원의 선언과도 같은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것은 절망과 회의와 불안과 슬픔과 후한과 죄의식과 자괴감으로 인해 제자들 스스로는 가질 수 없었던 평강을 주님께서 선물로 주시고 확실히 보장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평강은 언제나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회복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신 말씀은 예수님께서는 그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셨음을 알리시는 복된 소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이미 여러 차례 예고하셨던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주님께서 부활하시자 제자들은 그 사실을 금방 믿지 못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먼저 만나 뵈었다는 다른 사람의 말도 믿지 못했고, 자기 눈앞에 와계신 주님을 보면서도 제자들은 유령이 나타난 것 아닌가 의심하였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믿게 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는 “나를 만져 봐라. 내 손과 발을 봐라” 하셨고, 그래도 제자들이 믿지 못하자 “어디 먹을 것 없느냐” 하시며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받아 잡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진짜 몸으로 다시 사신 주님이심을 믿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성경을 풀어서 당신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 당신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할 것을 깨닫게 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자리에 없었던 도마가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가 주님을 보았다”고 말했으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여드레 후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이 집 안에 있을 때에 다시 그들 가운데 오셔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말씀하실 만큼 제자들이 부활하신 당신을 믿게 하시려 애쓰셨습니다(요20:24-27). 왜 이렇게 열심히 부활을 믿게 하려 하셨습니까?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부활은 곧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그가 살아계실 때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모든 것이 헛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그가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임을 증명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그가 바로 참 메시야이시고 그의 십자가가 참 구원의 능력임을 확증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그가 패한 것이 아니라 승리한 것이며 십자가가 구원의 실패가 아니라 바로 구원의 성취임을 증명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활은 십자가가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다 메어야 할 것임을 확신시키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2-19) 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또 훗날 우리 자신의 부활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과 믿음을 헛되지 않게 해주는 힘이고 따라서 크나큰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전하시고 당신의 부활을 확신케 하신 후 한 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은 부활의 주님과 그를 통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온 세상에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48절) 하시고 그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이 오셔서 제자들을 능력으로 입히실 때까지 예루살렘 성을 떠나지 말고 머물러 있으라고 지시하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49절을 봅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본문의 저자 누가는 누가복음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사도행전의 앞머리에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하신 승천하시기 직전의 예수님의 말씀을 덧붙여 놓았습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사명을 보다 분명히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28:19).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에는 그것을 전하는 사명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강을 비시고 당신의 부활을 믿게 하시며 전도의 사명을 주시는 것 외에는 다른 일체의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고난을 당하시고 어떤 죽음을 죽으셨습니까? 대제사장들을 비롯한 유대인의 지도층의 음모와 허위고발과 거짓증언, 매수되었거나 선동에 넘어간 군중들의 배신, 거기에 제자들의 배신까지 더해져 이루어진 고난과 죽음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치가 떨리고 복수심에 불타오를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자신을 십자가의 처형에 넘겨준 모든 자들 앞에 나타나 그들의 불의와 비겁함을 비웃고 조롱과 저주를 퍼부으며 의의 심판을 선언하실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도 홀연히 나타나셨다가 홀연히 사라지시듯 그들에게도 그렇게 나타나셔서 그들을 공포에 떨게 하실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매일 밤 그들의 잠자리에까지 나타나셨다가 사라지시곤 함으로써 잠을 이룰 수 없는 극도의 불안과 번민으로 그들을 괴롭힐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에게서 그들에 대한 그 어떤 원한이나 증오심이나 복수의 의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너희가 어찌 날 그렇게 다 버릴 수 있었느냐?” 물으신 일이 없습니다. 베드로에게도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 한 대로 됐지? 그래 내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는데 기분이 어떠냐?” 빈정대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그와의 첫 만남의 장소로 그를 다시 찾아가셔서 그에게 그의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씩이나 물으시고는 그 때마다 “내 양을 쳐라. 내 양을 먹여라” 말씀하시며 그에 대한 당신의 신뢰를 재확인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50-51절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 아버지께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손을 들어 축복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52-53절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돌아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부활과 함께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믿음을 주시며 사명을 주실 뿐 아니라 축복을 주시고 경배와 기쁨과 찬송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모두에게 평강과 믿음과 사명과 복과 경배와 기쁨과 찬송의 근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일을 맞았습니다. 이 부활절이 그저 부활에 관한 찬송 몇 장 부르고 지나가는 연례행사로 그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정말 주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가슴 깊이 되새기는 부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죄에 대하여, 이 세상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십자가를 통하여 얻으신 승리가 우리 가슴 속에서 확신되는 부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구원과 부활과 영생의 확신과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부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악과 거짓과 불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최종적 승리에 대한 믿음이 확실해지는 부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났던 온갖 일들로 인하여 우리의 가슴에 가득 차있었던 절망과 회의와 불안과 슬픔과 후한과 자괴감을 깨끗이 떨어버릴 수 있는 부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들 스스로는 가질 수 없는 평강이 주님으로부터 임하는 부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온 국민의 마음에서 모든 미움과 원한과 복수심이 사라지고 오직 평강과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부활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나흘 후에는 총선이 있습니다. 총선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나, 여야의 세력구도가 뒤바뀌는 일도 일어날 수 있고 기존 정치판이 뒤집히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더러운 돈과 모략과 음해공작과 허위폭로로 정치생명을 유지해오던 자들이나 그런 당들이 몰락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이고, 정치생명이 다 끊어진 줄 알았던 인사나 당이 부활하는 일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 결과여하에 따라서는 일련의 정치보복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과거의 정치인들은 투표 전에는 집권하게 되더라도 절대 정치보복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골적으로든 교묘한 방법으로든, 언제나 가차 없는 보복이 행해지곤 했습니다. 이번 총선 후에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총선은 진실로 한국정치가 깨끗하게 태어나는 역사적 기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당도 신뢰 받는 여당으로 부활해야 하고, 야당도 사랑 받는 야당으로 부활해야 하겠습니다. 국민의 건강한 정치의식이 살아나는 새 출발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준 것처럼 온 국민에게 오직 평강과 행복과 기쁨을 주는 대한민국의 부활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떼~한민국이 사라지고 대한민국이 튼튼히 서야 하겠습니다. 거리의 정치가 물러가고 의회정치가 살아나야 하겠습니다. 힘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법에 의한 정치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 일을 위하여 이번 총선에서 각자의 참정권을 바르게 행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번 부활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참된 정치의 부활, 대한민국의 부활을 선물로 받는 감격의 계절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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