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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심이 일어나느냐? (눅 24:3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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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이 일어나느냐? 
 
<누가복음 24장 36~43절>

36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니
37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38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4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41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42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43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요한복음 20장 24~29절>

24  열 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목회기도>
 
만물을 새롭게 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선거를 앞두고 소란하며 이라크의 미묘한 사태로 두려운 이 때에
부활의 기쁨으로 천국을 소망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싹트고 잎 자라고 꽃 피는 식물처럼
이제 우리도, 믿음으로/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낭패와 실망에서 자유와 기쁨으로 일어나게 하옵소서.
한숨과 탄식에서 걷고 뛰는 감격으로 간증하며 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귀한 시간 종의 목소리를 쓰시옵소서.
그래서 성도들이 말씀 듣는 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소식을 듣고 기쁨과 감격을 가지고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좋은 날, 이 복된 날, 이 기쁜 날… 군대, 객지, 외국에 있는 성도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저들에게서 오는 소식이 은혜와 기쁨의 소식이 되게 하시고
복된 소식이 가게 하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실 줄로 믿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주일은 기독교 절기 중 가장 기쁜 날입니다.
이 복된 날, 기쁘고 감사한 날…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죽음은 인간을 가장 한심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에베레스트를 오르던 등산가도, 심해를 드나들던 잠수부도
천하장사도, 예쁘다고 뽐내는 미인들도, 부자도, 높은 사람도… 죽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오래 살까'를 연구하고 노력합니다.
그 증세가 제일 심했던 사람이 만리장성을 쌓으며
늙지 않기 위해 불노초를 찾으려 했던 중국의 진시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증세는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제게도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나이 들어 보인다'거나, '성숙해 보인다'고 하면 좋아합니다.
그런데 조금 나이 먹으면 목에 주름이 가고, 눈가가 찌그러지며,
피부가 거칠어지면서 생기는 특별한 증상이 있습니다.
'어려 보인다'고 하면 좋아하고 '늙어 보인다'고 하면 싫어하는 증세입니다. 
 
[지난달에 전문실업인선교팀(PBMT) 멤버 15명과 베트남에 다녀왔습니다.
저하고 김기동장로님 하고, 베트남 아가씨 앞에 앉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강단에서 장로님의 이름이 불려질 때마다 복된 자리에서 이름 불려진 것에
감사해서 10,000원씩 장로회비를 냅니다. 잘 계산하세요.)
그 아가씨가 영어를 좀 할 줄 알기에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나이가 얼마나 돼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한참을 쳐다보더니 "35세쯤 되어 보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가씨 눈 참 좋더군요.
그랬더니 제 옆에 김장로님이 그 아가씨에게 "나는 얼마나 돼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역시 한참을 쳐다보더니 "55세 되었느냐"라고 묻더군요.
우리는 동갑인데… 20살 차이로 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김장로님은 "다시는 안온대서, 어휴 어휴"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반응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미 늙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이 늙는 것을 왜 싫어합니까?
기운이 빠지고, 피부 거칠어지고, 주름이 생겨서이기도 하지만…
'죽음이 가까웠다'는 경고를 받는 것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
"나이 들어 보인다", "늙어 보인다"는 말은
그 속에 "이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고, 모든 가치를 떨어뜨리고,
존재의 의미조차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런 죽음은 누구에게든지, 예외 없이, 때를 기다리며 붙어 다닙니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죽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들이 죽은 교주의 무덤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무덤이 없습니다. 무덤이 열렸습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소개하는 곳이 있지만
그것은 정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무덤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무덤은 시신이나 유골이 묻혀 있어야 하지만
예수님은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무관하신 분이십니다.
믿습니까? 믿어지십니까?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8복(福)이 있습니다.
  3절  심령이 가난 자의 복(福)…
  4절  애통하는 자의 복(福)…
  5절  온유한 자의 복(福)…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福)…
  7절  긍휼히 여기는 자의 복(福)…
  8절  마음이 청결한 자의 복(福)…
  9절  화평케 하는 자의 복(福)…
  10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의 복(福)…
 
그리고 요한복음 20장 29절에 보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또 하나의 복이 나옵니다.
  "…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20:29)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받는 복]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제자 [도마]로 인해 선언된 복입니다.
 
[도마] 라는 제자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보면
이름이 소개된 것 외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는 도마에 대해 알 수 있는 몇 가지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도마(Thomas)는 디두모(Didymus)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마(히브리어) / 디두모(헬라어)인데 그 뜻은 둘 다 [쌍둥이]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찾아봐도 "쌍둥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도마가
누구와 쌍둥이 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일부 학자들이 마 10:3, 막3:18, 눅6:15… 등에
  도마의 이름이 마태와 나란히 소개되고 있는 근거로
  마태와 쌍둥이라고 주장하지만 별로 신뢰할 만한 주장은 못된다. 
 
 
도마의 문제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라는 말씀을 들은 도마에게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 도마는 제자들의 모임에 참석치 않았습니다(요20:19,24).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배신자 유다 외에 모두 참석했는데, 도마만 빠졌습니다.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20:19) 하시며…
못 박혔던 손과 창에 찔렸던 옆구리를 보여 주셨던(요20:20)
그 자리에… 도마는 참석치 않았습니다.
 
도마는 공동체 의식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과, 믿음의 형제들과 함께 있지 않고 개인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신앙 안에 있어야 합니다.
시편 1편에 "복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이고,
있지 말아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주석가 매튜 헨리(Matthew Henry)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정규적인 엄숙한 자리에(집회에) 마음대로 빠지면
언제, 무엇을 잃을 지(놓쳐 버릴지) 모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정규적으로 모이는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
생각없이 빠져 버린 다면… 어느 때 중요한 것을 놓쳐 버린다는 것입니다.
정말 받아야 하는 은혜를 받지 못하고, 들어야 하는 말씀을 듣지 못하고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그 기쁜 자리를 놓친 것처럼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복을 놓치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다른 도마의 문제는
▶ 유다를 제외한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와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 중의 한 명만
'내가 예수님을 보았다'고 해도 감격하며 감사하며 믿어야 할텐데
제자들 모두가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고 했음에도 믿지 않았습니다.
제자들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데
못 믿겠다고 한 것은 다른 제자들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도마가 얼마나 단호히 부정했으면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20:25)
고 했습니다.
도마는 '누가 뭐래도 내가 확인해야만… 믿을 수 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봐야만… 믿겠다' .
'눈으로 확인하고, 감각으로 느껴 봐야만… 믿겠다'는 태도입니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불완전합니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며 주관적입니다.
보아서 판단한 것이 영구적이지 못하고 일시적이고 볼 때마다 다릅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볼 때마다 다릅니다.
그런데 천국도 가봐야 믿고 지옥도 가봐야 믿겠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들 주변에 보면 [확인]이라는 것, [체험]이라는 것,
[경험]이라는 것만 믿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가 느끼고 경험하고 판단한 것만 사실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를 들어  "폭발물은 위험하다"며 '경고'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만져 봐야 알지' 하고 건드리면 죽습니다.
"마약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약은 한번 입에 대고, 주사 맞기 시작하면
끊기가 어렵다, 나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텐데
'내가 경험해 봐야 나쁜지 아닌지 알지' 하고 마약을 경험해 본다면
"마약 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보아야 믿겠다", "내가 확인해야 믿겠다"는 사람은 참으로 한심한 사람입니다.
자기의 확인과 자기의 판단만 믿겠다고 했던 도마처럼…
오늘 도마와 같은 마음으로 오신 분이 계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말씀에 "아멘"하고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도마의 문제는
▶ 도마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4절에 보면 예수님은
"…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 한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죽었다가 살아나리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도마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요20:27)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 20:27) 고 하셨습니다.
 
물론 도마는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궁금한 것은 못 참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궁금한 것을 확인하고 싶은 분명함 그 탐구적인 자세와
믿지 못하는 의심과 불신은 다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고 했습니다(히11:6).
그래서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후 변화된 도마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도마가 실제로 예수님의 손을 만지거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요20:27~29)
그러나 도마가 예수님을 만나 뵙고 확신이 생겼던지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
 
도마가 비록 의심하고 믿음 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었고, 그 입의 말이 달라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의 주로,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신약 성경 260장 가운데 100여 번 부활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부인하면 이단이고, 부활을 믿지 못하면 참된 크리스챤이 아닙니다.
 
부활절은 인간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깨닫게 했고,
인간의 죄 문제를 해결케 하였으며,
인간에게 있어 가장 심각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은 믿는 자들로 하여금 바르게 살게 해 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믿는 자가 소망 중에 죽을 수 있게’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5장 8절에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모든 신앙의 터전이나 사도들의 메시지,
성경말씀, 찬양대의 찬양, 설교…  이 모든 것이 다 필요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일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진리는 '부활'이라는 터전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여 신학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해도
절차와 과정을 거쳐 목사안수를 받고 설교를 그럴 듯 하게 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못한다면
그는 단지 예수 이름을 팔아 먹고 사는 직업인일 뿐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부활은 '생존한 크리스챤의 소망'이므로
부활이 없으면 우리는 한없이 불쌍한 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과 영생의 주인공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승리자입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의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하나님은 계시긴 하는 건지…
내가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데도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복된 모임에 빠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마음의 상처로…, 어떤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어떤 때는 괜한 투정으로… 복된 자리를 외면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만 그렇게 끝나도 문제인데 함께 믿는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 주변에 믿음이 떨어져 투덜거리고, 토라지고, 모임에서 멀어지는 사람들까지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함부로 정죄하지 마시고 책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의심 많은 도마를 책망하고 버리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도 사람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됩니다.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살다가 속상한 일이 생기고
마음 아픈 일이 생기고, 싫은 사람이 생기고 절망에 빠질 만한 일이 생겨도
거기에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의 뜻이 계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힘들고 어렵고 속상할 때,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이 생길 때…
묵상하며 힘을 얻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가 자주 소개해 드렸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대구>라는 생선을 좋아하십니까. 저는 <대구>를 참 좋아합니다.
 
['대구'(Codfish)를 잡아 내륙지방으로 수송하는데 냉동시켰더니 맛이 변했습니다.
그래서 그 대구를 물탱크에 담아 맛을 보니 물에 가만히 두고 옮겨서 그런지
푸석푸석하니 맛이 제대로 나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 맛있는 대구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까'고민 했습니다.
그런데 대구가 제일 미워하고 가장 무서워하는 천적이
'Catfish'라는 우리말로 '메기'같이 생긴 생선이라고 합니다.
대구는 그 메기만 있으면 안 보려고 도망치고 메기는 또 열심히 쫓아다닌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구를 옮기는 그 물탱크 안에 메기만 집어넣으면
대구는 메기가 싫어서 도망 다니다가 저절로 움직이게 되니 싱싱해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육지에 있는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막 낚아 먹는 대구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싱싱한 신앙생활, 싱싱한 영적 생활을 위해서
가끔 우리에게 메기와 같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메기를 싫어합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닥치는 의심과 실망과 좌절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움직이고 꿈틀거리도록 주시는
메기일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무덤을, 절망을, 좌절을 뛰어 넘어야 합니다.
의심의 문도 넘어야 합니다.
방송인 데이빗 브린클리(David Brinkley) 라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란 하나님이 던진 벽돌에 걸려 넘어가도
그 벽돌을 주워 기초돌로 삼고 집을 짓기 시작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게 벽돌을 던지셔서 벽돌에 걸려 넘어졌다고 해도
그 벽돌을 놓고 거기에 집을 지어가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절에 8복(福)에 머무르는 자가 아니라
보지 못하고도 믿는 복에 이르러야 합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의심이 일어나느냐" (눅24:38)
 
이제 제가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의심이 일어나십니까? 아직도 믿지 못하십니까?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 믿으면 영원히 사는 것,
비록 살다가 힘이 들고 어려워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 을
아직도 믿지 못하십니까? 아직도 의심하십니까?
여러분, 확실한 믿음으로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고백하며 범사를 그분께 맡기며 사시기 바랍니다.
가정과, 일터, 교회에서 부활의 믿음, 영생의 소망을 가진 자답게
힘들고 어려워도 범사에 감사하며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아직도 도마처럼 의심하십니까? 아직도 의심이 일어납니까?
여러분,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믿음을 고백하고
믿음을 전하며 사는 복된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영원히 살 것을 믿고,
예수 믿는 우리는 천국백성된 것을 믿습니다.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많으나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아직도 <의심이 일어나느냐?, 의심이 일어나느냐?>고 물으셨던 주님
이 시간 우리들 가슴 속에 의심하고 있는 생각속에
주님의 질문을 떠올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질문을 담게 하여 주시옵소서.
확신에 찬 믿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4년  4월  11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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