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 (마 28:18-20)

  • 잡초 잡초
  • 296
  • 0

첨부 1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
마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
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
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서론)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알고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 그 부활하신 주님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그 능력과 우리의 삶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부활절 이전에 존재하던 우리의 문제는 부활절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가정 문제, 사업 문제, 건강 문제, 자녀 문제, 인간관계 문제 등 모든 문제들은 부활절 이전이나 부활절 이후에나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는 부활하신 주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에 역사하는 원리가 무엇이며, 부활하신 주님의 권능은 어떤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0절에서 자기 인생의 목표를 세 가지로 세웠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좀더 알고 싶다는 것이고, 둘째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신 부활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는 것이고, 셋째는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아침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권능이 무엇이며, 우리가 그 권능을 체험하며 살고자 할 때 그 방식과 원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부활하신 주님의 권능

부활 이전의 예수님과 부활 이후의 예수님을 비교해 보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일입니다. 부활 이전의 예수님은 고난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이후에는 영광의 주가 되셨습니다. 부활 이전에는 예수님이 인성의 제한을 받으셔서 공간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에 예수님은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방안에 있을 때에 예수님은 어느 문으로 들어오셨는지 알 수 없게 들어오셨습니다. 어느 문으로 나가셨는지 알 수 없게 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을 거하실 때 도대체 어디서 주무셨는지 어디서 묵으셨는지 어디서 어떤 식사를 하셨는지 우리가 알 길이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에는 부활 이전과는 다른 영광이 있고, 부활 이전과는 다른 능력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에 바리새
인들에게도 나타나셨고 서기관들에게도 나타나셨고 죄인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에는 오로지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이전에는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발적으로 낮아지셨습니다. 그러나 부활 이후에는 하나님의 모든 권세 즉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높아지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까지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자신의 권세
와 명령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어떤 권능을 가지셨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은 모든 권세를 다 가지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권세는 모든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능력을 소유하시게 되었습니다. 창조하시는 능력, 만물을 보전하시는 능력, 역사를 섭리하시는 능력, 건설하고 파괴하는 능력, 열고 닫는 능력, 죽이고 살리는 능력, 높이고 낮추는 능력, 흥하고 망하게 하는 능력, 용서하는 능력과 정죄하는 능력, 주는 능력과 빼앗는 능력, 웃게 하는 능력과 울게 하는 능력, 낫게 하는 능력과 병들게 하는 능력 등 모든 능력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집중되어 있습니다. 가정의 문제를 가지고 해결받기를 원하시는 분계십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예수님께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높아지기를 원하시는 분은 높여주시는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지금은 사업에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서기를 원하시는 분은 일으키시는 능력을 지니신 예수님을 간절히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질병을 치유받고 싶은 분은 질병을 치유하는 권능을 지니신 예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죄로 인해 마음에 갈등이 있으신 분은 죄를 용서하시는 권능을 지니신 예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모든 능력을 다 갖고 계신 분입니다. 

본문 말씀에 보니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능력도 다 소유하셨다고 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땅에 속한 능력도 다 소유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영적인 존재도 예수님께 굴복합니다. 땅에 있는 인간들이나 만물들 모두 예수님의 통치와 권세에 굴복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권세를 가진 어떤 영적인 존재도 예수님같이 모든 권세를 지닌 존재는 없습니다. 모든 권세는 오로지 예수님 한 분이 쥐고 계십니다. 땅에 있는 인간들도 각각 권세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땅에 있는 인간의 권세는 모든 권세가 아닙니다. 어떤 인간도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꿈을 예수님은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아무리 막강하고 아무리 큰 권세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지으신 미물을 이기지 못합니다. 개구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를 이길 수 없습니다. 파리를 이기지 못합니다. 전염병이 돌 때에 그것을 이길 능력이 없습니다. 중국이 아무리 큰 대륙이라도 사스를 이기지 못합니다. 미국이 아무리 어마어마한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에이즈를 이기지 못합니다. 인간의 능력과 권세가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이 지으신 미물도 당할 수 없습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이 유다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는 막강한 권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높아지고 뜻이 강퍅해지고 교만해 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습니다. 인생 중에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처럼 되었다고 다니엘서 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 권세의 허무함과 연약함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인간이든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모든 권세를 한 손에 쥐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한 손에 다 쥐고 계신 전능자이십니다. 예수님은 명령하실 권세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통치하실 능력도 가지고 계십니다. 치료하실 능력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문제가 어떤 것이든지 능히 해결해 주실 권능을 가지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인간은 누구든지 능력자와 가까이 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능력자는 도울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최고의 권세자 전능하신 능력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세는 양적으로 무한합니다. 시간적으로도 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어떤 문제이든 해결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2. 권능의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약속

본문 20절 후반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언제까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잠깐 방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예수님이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어떤 세력도 우리를 해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보호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초등학교 1학년 때에 동네 3학년한테 맞았다고 합니다. 3학년이 1학년인 자기를 괴롭혔는데, 사촌형에게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사촌형은 6학년인데 태권도 노란띠를 따서 노란띠를 늘 매고 다녔답니다. “형님! 내가 1학년인데 3학년한테 맞았습니다. 나를 좀 보호해 주세요” 그러니까 사촌형이 동생을 때린 3학년들을 집합시키고 1학년 자기 사촌동생을 옆에 세워놓고 호통을 쳤답니다. “너희들 얘가 누군 줄 아느냐? 내 사촌 동생이다 이놈들아! 앞으로 한번만 더 내 사촌동생을 괴롭히면 너희는 태권도 맛을 볼 줄 알아라” 그 후론 아무도 자기를 안 건드렸다고 합니다. ‘태권도’, ‘노란띠’, ‘사촌형’, ‘6학년’ 이런 존재만 함께 있어도 역사가 나타나는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지니신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무슨 역사가 안 일어나겠습니까?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우리의 보호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떤 문제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결됩니다. 어린 아이들은 문제가 있으면 자기가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응애 응애”하고 울면 그만입니다. 그러면 엄마가 달려옵니다. “얘가 왜 우는가? 아하 배고프구나” 그럼 우유를 줍니다. “아하, 얘가 소변 쌌구나” 그러면 기저귀를 갈아줍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면 스스로 해결하면 됩니다. 어린아이도 자기 힘으로 해결되는 것은 자기가 합니다. 자기 입에 젖이 물려지면 먹는 것은 스스로 합니다.

그러나 안되는 것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 힘으로 안되는 문제는 어떻게 합니까? 전능하신 예수님, 우리와 함께 계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부족함이 있어도 채우고 공급해 주시는 공급자이십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오천명에게 말씀을 증거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명령하십니다. “너희들이 가서 오천명을 먹이라” 광야에 무슨 레스토랑이 있습니까? 광야에 슈퍼마켓이 있습니까? 제자들이 돈이 있습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너희가 먹이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므로 그 5천명은 어린아이의 도시락 하나를 근거로 5천명이 실컷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서 공급해 주시는 능력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어떤 질병의 문제도  해결받는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치유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어떤 병자라도 안 고쳐주신 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 고쳐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까이 계시는 사람이 되면 우리에게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결받기 때문입니다.


3. 주님의 권능이 역사하시는 원리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이 약속을 체험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전능하신 예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우리는 문제를 가지고 삽니다. 우리 교회에도 갖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교회도 문제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문제 중심으로 보게 되면 문제에 끌려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문제 중심의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해결자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바꿔야 합니다. 옛날 유다의 여호사밧이 통치할 때였습니다. 역대하 20장을 보면 롯의 후손인 모압과 암몬 족속이 여호사밧을 침공해 왔습니다. 여호사밧이 다스리는 유다는 당시에 군대도 미약하여 이에 대적할 힘이 없었습니다. 왕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모압과 암몬 족속이 쳐들어왔는데 제가 어떻게 할 줄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주만 바라보나이다(역대하 20장 12절)” 하나님께서는 “전쟁은 여호와께서 속한 것이니 너는 걱정하지 말라. 네가 나를 의지하고 나를 네 문제에 끌어들였으니 이제 내가 책임지겠다. 너는 찬양대를 조직하고 성가대는 앞서 나가서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찬양대를 조직해서 찬양을 부르며 나아갑니다. 그런데 찬양을 부를 때 어떤 역사가 나타났습니까? 모압과 암몬 사람들은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별도 못하고 서로 죽여 결국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찬양을 부르는 여호사밧 군대에 위대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골짜기를 찬송의 골짜기, 브라가 골짜기라 부릅니다. 우리 남성 중창단 베레카는 브라가를 히브리 발음으로 바꿔서 이
름을 붙인 것입니다. 역대하 20장에 있는 내용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에 걸려 쓰러집니다. 내가 병들어 죽게 되면 슬픔에 빠집니다. 자식이 감옥에 있으면 그 괴로움은 말로 표현 못합니다. 사업이 파산하면 가족의 생계가 걱정됩니다. 빌려준 돈을 못받게 되면 하소연도 제대로 못합니다. 그러나 문제를 보지 마십시오. 시각을 돌려 하늘의 우리 주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주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만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28장 18-19절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의 원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명령 중 가장 큰 명령은 지상 명령입니다. 19-20절 말씀은 교회가 교회로서 존재하려면 반드시 순종해야하는 명령입니다. 지상명령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고 가시관을 씌운 로마 군병에게 복수하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서 제자를 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러면 내가 너희와 함께 하고 전능한 능력으로 너희에게 역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상 명령을 주신 대상은 누구입니까? 19절에“그러므로 너희는 가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제자들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은 이 명령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요나처럼 명령을 피해 도망갈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명령을 받았습니다. 누구로부터 받았습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권세자로부터 이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동사는 세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라(Go)’, ‘가르치라 (Teach)’, ‘침례를 주라(Baptize)’ 이 세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가서, 주님께서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서 지키게 하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 만드는 일을 계속 해야 합니다. 내 제자를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교회에서도 내가 누구를 전도했으니까 너는 내 제자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내가 전도했어도 그 사람을 구원한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이끌어도 그 사람이 내 제자는 아닙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제자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은 그리스도의 제자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 대상은 누구입니까? 모든 족속입니다. 교회는 이 지상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시고,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미국 침례교는 남북 전쟁 시기인 1845년에 둘로 나누어 졌습니다. 서던 뱁티스트(Southern Baptist)와 아메리칸 뱁티스트(American Baptist)입니다. 아메리칸 뱁티스트(American Baptist)는 북 침례교회라 하고 서던 뱁티스트(Southern Baptist)는 남 침례교회라 합니다. 다른 개신교를 다 합쳐도 남 침례교보다 작습니다. 남 침례교보다 큰 것은 로마 가톨릭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침례교는 대단히 작게 시작했습니다. 미국에 처음 건너간 청교도들이 국교회를 만들어놓고 국교회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침례교는 국교를 인정치 않습니다. 그래서 국교를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청교도들은 침례교인들을 추방했습니다. 이 침례교인들 중 로저 윌리암스라는 사람이 1639년에 인디언들과 함께 생활하다가 인디언에게서 약간의 땅을 사고, 그 땅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이 프라비던스(Providence)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여기까지 왔다는 뜻입니다. 프라비던스(Providence)는 미국에서 가장 작은 주인 로드 아일랜드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미국 침례교회의 시초입니다. 그러면 이 침례교회가 어떻게 지금은 미국의 전 개신교보다 더 큰 교단을 이루었는가? 침례교 정신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은 세계 선교입니다.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자는 것입니다. 1845년에 남침례교회가 조직된 목적도 세계 선교를 위해서입니다. 모든 족속들에게 주의 말씀을 증거 하자는 이 한 가지 목적으로 남 침례교가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순종하는데 모든 힘을 기울인 결과 침례교가 가장 큰 교단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우리 교회 안에도, 우리 개개인에게도 모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안되는 것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목회하신 목사님께 제가 여쭈어봤습니다. 목회하다가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십니다. “교회에는 언제나 목사를 따르는 사람 30%, 따르지도 안 따르지도 않는 사람 40%, 또 늘 비난하는 사람 30%,  이렇게 3:4:3의 비율로 있습니다” 제가 다시 여쭈었습니다. “늘 비난하는 사람이 계속 비난하고 문제를 일으키면 어떻게 합니까?, “가만있지 어떻합니까? 주만 바라보지요”목사님 대답이 그렇습니다. 주만 바라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 중심으로 가면 안됩니다. 주님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면 문제는 우리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해도 어느 틈엔가 해결됩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지니신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부흥하는 교회가 되려면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선교 지향적인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선교 교육도 많이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선교 교육 담당 협동 목사님도 모셨습니다. 우리가 젊은이 가운데 선교사로 소명있는 사람들을 자꾸 발굴해야 합니다. 직장을 은퇴하신 분 가운데도 외국에서 복음을 전하며 노년기를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신 분들은 훈련시켜 보내 드려야 합니다. 교회는 가서(Go), 가르치고(Teach), 침례를 주어야 합니다(Baptize). 지난주에도 36분이 침례를 받으셨는데  침례를 더 베풀어야 합니다.

(결론)

우리가 이 명령에 순종해서 나가면 예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이 명령에 순종했던 12제자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능력은 보잘 것 없었습니다. 어부들이고 세리 출신인데 무슨 능력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무능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이 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무능이 주님의 전능을 방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 중심의 시각에서 바꾸어야 합니다. 문제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시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복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침례주는 것입니다. 제자 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오도록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찾아내는 것입니다. 지상명령에 순종하면 전능하신 능력이 우리의 삶과 교회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나는 주님의 지상 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어떤 영역에서 순종하고 기여하고 있는가? “나는 지상 명령에 아무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고 오직 내 문제 해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지상명령을 먼저 우선순위로 두고 수행할 때, 주께서는 우리 가정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사업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건강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교회의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신 주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주여! 부활하신 예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우리 자신의 문제와 우리 교회의 문제에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모든 힘을 합쳐서 지상 명령에 순종해서 영광 돌리는 교회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