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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음을 이긴 사람들의 삶 (고전 15:5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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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이긴 사람들의 삶
고전15:50-58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입성하셨다는 종려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입성하실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종려나무의 가지를 꺾어 흔들고 길에다 깔았고 예수님은 나귀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고 해서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이 주간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신 주간이라고 해서 고난 주간이라고 말합니다. 고난 주간에는 오락을 삼가고 절제와 근신의 삶을 전통적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전통입니다.

예수님은 목요일 오전에 제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시고 오후 늦게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시기 위하여 올라가셔서 고뇌에 찬 기도를 하시다가 체포당하시고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주일 새벽에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목회 일정 상 오늘 부활의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에서의 승리입니다. 우리 기독교에서의 죽음은 종지부가 아니요 단지 쉼표일 뿐이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셨다는 것은 죽음을 이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인 줄 믿는다면 저와 여러분도 죽음을 이긴 자들인 줄 믿습니다. 이렇게 죽음을 이긴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교훈 받도록 하겠습니다.

1.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부활 신앙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5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자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 앎이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 고린도 교회에도 부활에 대하여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두 가지로 의문을 제기합니다.

(1) 죽은 자가 어떻게 부활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입니다.
12절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은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으면 다시 살 수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도 그렇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2) 썩은 몸이 어떻게 재생 될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오늘날 왜 부활을 믿지 못합니까? 현대인의 머리로 생각해 보고 그것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 따져 보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어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어나지 않은 일은 과거에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자기 부모들이 무덤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어떻게 대답하고 있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이 헛것이고(14)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14,17) 우리는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며(15) 여전히 죄 가운데 있고(17)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19)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했던 수고가 헛된 것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나의 신앙, 교회에 다닌 것, 예배, 찬양, 헌금, 믿음, 기도, 사랑, 수고 모두가 헛것이라는 말입니다. 만약 부활과 천국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인생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부활의 몸의 상태에 대해서도 말씀하고 있습니다.(35-49) 식물이 새로운 꽃이나 식물의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는 씨앗들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만 가능하듯이 인간의 부활도 육체의 죽음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쳐야 전혀 새로운 부활의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형체는 신비스럽습니다.(42-44) (1)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아납니다.(42) 현재 우리 몸은 죽고 썩어질 몸이지만 장차 부활된 우리의 몸은 영원히 썩지 아니할 몸입니다. (2)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삽니다(43) 현재 우리의 몸은 원하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욕된 몸이나(롬7:19) 그러나 장차 부활할 몸은 다시는 죄를 짖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3)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삽니다(43) 현재 우리의 몸은 약하고 병들고 고생하고 상처받는 몸이지만 부활할 우리의 몸은 질병이나 상처 때문에 다시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 강한 몸입니다. (4)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것으로 삽니다(44) 현재 우리의 몸은 마시지 안으면 목마르고, 과로하면 피곤하고 먹지 않으면 배고프고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는 육의 몸이지만 부활할 우리의 몸은 먹을 것을 위해 고생하고 목마름에 기갈 하는 몸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혹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흠쳐 갔던지, 아니면 환상이라고 하든지, 아니면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다는 것이 사기이고, 환상이고, 착각이고, 꾸며낸 이야기일까요? 제자들이 거짓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을까요? 한때 배신하고 도망갔던 그들은 다 순교하였습니다. 그것도 억지로 잡혀 죽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를 위하여 죽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겠습니까? 예수님의 가족들도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에는 믿지 않았고(요7:5) 심지어는 미쳤다(막3:21)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주님 앞에서 기도합니다(행1:14). 예수님을 처형한 장본인인 빌라도는 "빌라도의 보고서"에서 마지막에 "십자가 옆에서 말커스가 말한 것처럼 나는 진실로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을 믿지 못하는 도마에게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이 와도 부활의 신앙에서 움직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의 재림 시 우리도 부활할 것을 확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럼 언제 부활합니까? 예수님의 재림 시 부활할 것입니다.(50-56)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합니다.(51, 마24:31; 계8:2 10:7) 순식간에 라는 말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최단 시간 안에 눈 깜짝할 사이에 홀연히 변한다는 것입니다. 다변합니다. 이미 죽었던 자이든 주의 재림 때까지 살아 있는 자든 그리스도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모든 자들(살전4:16,17)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는 순간 죽은 자들도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살아서 재림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신령한 몸으로 변합니다.(52) 썩지 않는 것으로 입고 죽지 않는 것으로 입습니다.(53) 부활하는 성도는 헌옷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듯이 옛 몸을 벗어버리고 새 몸으로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효력 상실합니다. 54, 55절을 읽겠습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에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리스도의 공로로 자기 백성을 썩을 것에서 썩지 않은 것으로 죽을 것에서 죽지 않는 것으로 만드시겠다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부활이 인류의 적인 죽음을 이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이긴 자들인 줄 믿습니다.

요한 사도는 말씀하기를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로 죽음에서 승리하시고 악독과 증오로부터 승리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믿음으로 승리를 보장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생명이요 부활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사망으로부터 영원한 승리를 보장해주신 우리 주님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세상에 감사할 일이 많이 있지만 이것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것이고 인간이 가장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신앙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단계는 받는 단계입니다. 구원을 받고, 은혜를 받고, 성령을 받고, 축복을 받는 단계입니다. 둘째 단계는 감사의 단계입니다. 받은 것을 깨닫고 감사를 하는 단계입니다. 구원받아 감사, 은혜 받아 감사, 축복 받아 감사, 기도 응답 받아 감사 그저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감사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늘 이김을 주시지 않습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좀더 나아가면 이제 드리는 단계에 이릅니다. 셋째 단계는 드리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감사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단계입니다. 물질 드려, 시간 드려, 건강 드려 부활의 증인으로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사는 단계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가 받는 단계에서 감사하는 단계로, 감사하는 단계에서 드리는 단계로 자라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같은 자세가 바로 부활 신앙의 열매인 것입니다.

3.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58절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중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의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 줄을 앎이라" 부활한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새 힘과 용기를 얻어 사는 삶이었습니다. 과거를 씻고 새 출발을 하는 삶이었습니다. 새로운 가치관과 세계관, 인생관을 갖는 삶이었습니다. 가치관의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참 생명을 발견한 삶을 살았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마지막 날 우리의 부활을 확신한다면 우리의 삶의 태도는 바뀌어야 합니다.

1)항상 힘써야 합니다.
한번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시작은 거창합니다. 그러나 항상 끝마무리를 짖지 못합니다. 어떤 일을 맡겨 놓으면 하루면 할 것을 4일이 가도 끝이 나지를 않습니다. 항상 마무리가 잘 안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누가 칭찬해주고 인정해 주면 잘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으면 슬그머니 그만 둡니다. 영광 받을 만한 자리에서는 잘합니다. 그러나 고난 받을 만한 자리에서는 손을 놓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항상 힘써야 합니다. 변함 없이 힘써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귀합니다. 누구에게나 신뢰를 줍니다. 

2)주의 일에 힘써야 합니다.
내 이익에 맞는 일에만 힘쓰는 것 아닙니다. 내 취향과 성격에 맞는 일에만 힘쓰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일입니다. 나에게 손해가 되고, 내가 창피를 당하고 나의 자존심이 깎이고 내가 굶주리고 내가 어려움 당한다고 할지라도 주의 일이라면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3)더욱 힘써야 합니다.
힘겨울 때 지칠 때, 피곤할 때,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비난받고 억울하게 당할 때가 있습니다. 잘 해주면 할아버지 수염잡고 늘어지는 손자처럼 참 한마디 해주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한 것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뭐라고 말씀합니까?

"형제들아! 형제"(50,5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을 권면 하는 내용이 고린도 전후서입니다. 사도 바울 말년에 거의 모든 사람이 배신하고 도망갑니다. 그럴 때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합니까? 딤후4:16,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6)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권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었느니라" 저는 이 말씀을 통하여 때때로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 어려울 때, 포기하고 싶을 때, 고통 당할 때! 그럴 때일 수록 더욱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심지어 배신을 당한다 할지라도 그 누구를 탓하거나 사람의 그 어떤 위로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곁에서 나를 강건케 하시는 사실을 큰 위로로 삼고 주저말고 앞으로 나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활의 증인들은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있어도 낙심하지 말고 주의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안에 한 일은 헛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그 분 앞에 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수고라는 것은 지칠 정도로 일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쳐 쓰러질 정도 일한 것 결코 헛수고가 아닙니다. 수고한 대로 상급을 받습니다.(고전3:8,고후9:10,갈6:7) 소자에게 찬물 한 그릇 대접한 것도 결코 상을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망을 이긴 사람들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유혹이 온다하더라도 부활 신앙에서 흔들리지 맙시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시 부활할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입니다. 우리 모두가 헛되지 않는 삶을 위하여 매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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