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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만일 부활이 없다면(고전 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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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만일 부활이 없다면 ...
< 본 문 > 고전15:12~22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 그리스도! 당시 사람들은 그것으로 모든 게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를 추종하던 제자들은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한때는 호기심을 갖고 환호를 보냈던 군중들은 십자가에 죽어가는 것을 보고 조롱했습니다. 골고다 언덕의 사형장까지 따라갔던 모친 마리아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눈물만 흘렸습니다. 마침내 숨이 끊어진 그는 무덤 속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를 고소하던 유대인 당국자들은 빌라도 총독에게 요청해서 무장한 파수꾼으로 하여금 무덤을 꼭꼭 지키게 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무슨 희망이 있었겠습니까? 정말 모든 게 끝인 줄 알았습니다. 만일 그렇게 모든 게 끝이 났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로마 시대의 수많은 사형수 중 하나로 이슬처럼 사라진 존재가 되고 말았을 겁니다. 그러나 사흘째 되던 날 새벽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할렐루야!

이 일은 사상 초유의 기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아니, 도저히 믿을 수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맨 처음에는 제자들조차 의심했습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고, 아예 말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나라로 승천하기 전 무려 40일 동안 지상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그 목격자 리스트가 바로 고전15:5~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그들 중 태반이 아직 살아있으니까 가서 물어보라고 담대히 외칩니다. 목격자 몇 명만 있어도 그 증언이 유효한 법인데, 수많은 목격자들이 있었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반대자들조차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도 묵시적이든 명시적이든 인정하고 말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빌라도의 보고서’를 들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의 ‘교회사'를 보면 본디오 빌라도가 예수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일과 관련된 자세한 상황을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보고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라도는 이 보고서에는 그가 직접 조사한 예수님의 기적들과 예수님의 부활, 그리고 그 후에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경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부활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도 확실했기에 심지어 그를 배반하던 사람들조차 180도 변화되어 이제는 오히려 목숨 바쳐 순교하기까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래서 AD 1세기에는 ‘증인’이란 말이 ‘순교자’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헬라어 증인(μαρτυς)라는 단어가 영어의 순교자(martyr)라는 단어가 된 것입니다. 이런 적극적인 복음 전도로 말미암아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시작되었고 그 후 2천년 동안 세계 각처에 기독교 교회들이 계속 세워지고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나면 오히려 부활을 안 믿고 부정하는 게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부활 이후 과거 2천년 역사 속에 부활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부활의 사실을 뒤집어보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무덤오인설(무덤을 잘못 알고 부활했다고 전파했다는 주장), 기절설(예수가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했다가 탈출했다는 주장), 도난설(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다 숨겨 놓고 부활을 전파했다는 주장), 환각설(예수를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허깨비를 보았다는 주장), 신화설(예수는 실재 인물이 아니라 신화라는 주장) 등이 그겁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억측일 뿐입니다. 만일 이런 주장들이 옳았다면 기독교는 벌써 문을 닫고 말았을 겁니다. 이런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얼마나 불쌍한지 모릅니다. 쉽게 믿을 것을 왜 어렵게 안 믿으려고 몸부림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부활을 설명합니다. 그 기록이 흔히 부활 장(復活章)이라 불리는 고린도전서 15장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는 역설적 논법으로 부활의 진실성을 설명합니다. 그는 우선 12절~13절에서 부활은 하나의 법칙이라고 말합니다. 그 법칙에 따라 예수님이 부활하셨고, 예수 믿는 성도들도 부활하게 될 것임을 밝힙니다. 그리고 14절 이하에서는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또 성도들의 부활이 없다면 얼마나 많은 모순이 생기는지 조목조목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그 내용을 정리하면서 부활의 확실성과 그에 따란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 보면서 은혜를 나눠보겠습니다.

[1] 만일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가짜일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사실이고 기독교는
유일한 진리입니다.

14절 보면 부활이 없다고 가정할 때 기독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두 기둥입니다. 십자가만 믿고 부활을 믿는다면 그것은 구원받을 만한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롬1:4 보면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 아들로 인정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그래도 만일 부활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십자가 죽음이 대속의 의미가 있는지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탄생하지 못했을 겁니다. 더욱이 기독교 2천년 역사가 어떻게 지속될 수 있었겠습니까? 지난 2천년 간, 그리고 지금도 기독교회는(혹 지역에 따라서 쇠퇴하는 곳도 없지 않지만) 계속 왕성하게 확장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부활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진리입니다. 유일한 진리입니다!

[2] 만일 부활이 없다면 복음전도자들은 거짓말장이와 사기꾼이 될 겁니다. 그러나 부활 은 사실이고 복음전도자들은 진리를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15절 보면, 부활이 없다면 바울은 자신도 복음전도자들도 거짓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거짓말장이와 사기꾼의 왕초인 셈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어찌 가당한 일인지 말입니다. 불신자들도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로 믿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성인(聖人)이라고 말합니다. 베드로, 바울 등도 위대한 인물로 인정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모순입니까? 부활이 없다면 그들 모두 사기꾼이 되는데 ...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음전도자들은 많은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내는 귀한 일꾼들입니다. 그들은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겁니다.

[3] 만일 부활이 없다면 인간은 죄 사함을 받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셨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의로운 백성으로 삼아 주셨습니 다.

17절 보면, 부활이 없다고 가정할 때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의 십자가 죽음이 대속의 의미를 가졌는지 증명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있었기에 믿는 자들이 죄를 사함 받고 외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롬4:25 “예수는 우리의 범죄함을 위해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인간 구원의 길은 없게 되는 겁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구원의 길로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었다가 부활하신 것입니다.

[4] 만일 부활이 없다면 육체의 죽음으로 모든 게 끝이 될 겁니다. 그리고 먼저 별세한 성도들과 영영 이별하게될 겁니다. 그러나 부활은 사실이고 모든 성도들은 천국에서 재회할 수 있습니다.

18절 보면 부활이 없다고 가정할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 ” 그랬습니다. 여기서 잠자는 자들은 예수 믿다가 육체적으로 죽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성도가 죽으면 그 영혼은 천국으로 들어가고 육체는 무덤 속에서 부활을 기다립니다.(전12:7 참조)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셔서 성도들을 위해 천국에 처소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겠죠. 그리고 성도들이 천국에서 재회할 기회가 사라지고 마는 겁니다. 그럴 수는 없죠.

불현듯 먼저 별세한 분들이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 가족들, 앞서간 간 성도들, 친구들, ... 그들을 다시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것은 엄청난 비극입니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천국에서 우리를 영접하십니다. 이미 별세한 성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우리도 불원간에 천국에 가서 그분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부활의 새 몸으로 만나 영생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이사 가는 것입니다. 주소지를 변경하는 겁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고령이신데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답니다. “여러분, 빌리 그래함이 죽었다는 소식이 신문에 나거든 그 기사를 믿지 마시오. 죽은 것이 아니라 주소를 옮기는 것뿐이오.”

만일 천국에서 다시 만난 기약이 없다면 정말 죽음은 최악의 비극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게 그것으로 영원한 이별이라며 정말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별해도 언젠가 다시 만날 기약이 있다면 얼마든지 위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에서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매일 성경 말씀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 말씀을 전해준 뒤 천국이 어떤 곳인지 생각하는 대로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일곱 살 짜리 막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 생각에 하늘나라는 이럴 것 같아요.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면 천사들은 우리들의 이름이 적힌 커다란 책을 보며 이름을 부를 거예요. 천사가 먼저 아빠를 부르겠죠. 그러면 아빠가 ‘여기요!'하고 대답하실 거예요. 그러면 또 천사는 엄마를 부를 겁니다. 그러면 엄마도 ‘여기요!’하고 대답하겠죠. 그리고 누나와 형을 부를 겁니다. 그러면 그들도 ‘여기요!'하고 대답할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사가 나를 부를 거예요. 그런데 걱정이 있어요. 키가 작아서 천사가 못 볼까 봐요. 그래서 나는 점프를 할 겁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대답할 거예요. ’여기요!'하고 말이죠.” 그런데 며칠 후 그 가정에 큰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막내가 스쿨버스를 타러 가다가 자동차에 치인 것입니다. 급히 병원에 후송됐고, 가족들은 연락을 받고 뛰어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혼수 상태였습니다. 가족들이 밤새 기도했지만 몸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새벽녘에 막내의 몸이 미동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가족들은 희망을 걸고 주목했습니다. 그때 막내의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숨이 끊어지기 전 마지막 순간 가족들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가족들이 들은 마지막 한 마디가 있었습니다. “여기요!" 비록 그 아이는 죽었지만 가족들은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성도들은 죽음 이후 천국에 들어가 재회할 겁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모두 다 부활한 몸으로 다 같이 만나 영원히 함께 살 겁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이런 사실을 보증합니다. 20절.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구약 이스라엘은 농사를 짓고 추수할 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칩니다. 그것은 하나의 증표(sign)입니다. 앞으로 큰 추수가 있을 것이라는 보증입니다. 그리고 첫 열매는 큰 추수의 샘플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열매로 장차 성도들이 부활할 것에 대한 샘플이요 보증입니다. 21절~22절 말씀대로 아담은 모든 인간에게 죽음을 가져왔지만 예수님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생과 부활을 갖다 주신 겁니다.

[5] 만일 부활이 없다면 성도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겁니다. 그러나 부 활은 사실이고 성도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19절을 보면, 만일 부활도 없고 내세 천국도 없고 이 세상이 전부라면, 믿는 성도들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는 것은 물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지만, 궁극적으로는 천국의 영생 복락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내세 천국에 없다면 무엇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겠습니까? 신앙생활 하는 게 쉽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신앙을 갖는 것은 혹 쉬울지 모르지만 험한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유혹을 물리쳐야 되고, 절제해야 되고, 고난과 역경도 이겨내야 되고, 때로는 희생과 봉사도 해야 됩니다. 만일 이 생으로 끝이라면 헛수고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이야말로 정말 멍청한 사람들이죠.

누구 예를 들기 전에 고린도전서 본문 말씀을 기록한 바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느라 결혼도 하지 않았고, 평생 핍박 받으면서 유랑 생활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로마 감옥에 갇혀 고생하다가 마지막 참수형으로 순교한 사람 아닙니까? 그가 무엇이 아쉬워서 그렇게 살았겠습니까? 이스라엘의 귀족에, 가말리엘 문하생 출신 박사에다, 로마 시민권자에다, 부자에다 ... 만일 부활이 없다면 바울은 불쌍한 사람, 아니 정신이 돈 사람일 겁니다. 그러나 부활이 있기에 바울은 위대한 신앙인으로 추앙받는 겁니다.

부족하지만 저 같은 사람도 신학교 간다고 하니까 사방에서 난리였습니다. 심지어 불쌍하다고 면전에서 혀를 차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불신 친구들 중에는 저를 이해 못하겠다고 합니다. 얼마 전 대학 동문회에 불참했더니 모인 동문들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보고 싶은데 안 왔다고 ... 한 사람 한 사람 안부를 물으며 전화했는데, 선배 한 사람이 전화를 바꾸더니 왜 안 나왔나며 호통을 칩니다. “너 목사 한다며? 아니 네가 왜 거기 가 있냐? 이리 와야지 ... ” 황당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다 이유가 있죠. 선배님도 신앙 생활좀 하시죠.”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까 그분은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었습니다. 이해가 안 되겠죠. 이 세상만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세 천국을 생각합니다. 부활을 소망합니다.

여러분도 오늘 부활절이라 새벽부터 나오시고 육신적으로 생각해 보면 얼마나 피곤합니까? 그리고 신앙생활 하느라고 오늘같이 날씨 좋은 봄날에 놀러가지도 못하고, 시간과 물질도 마치면서 애를 씁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면 정말 멍청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이 잇기에 우리가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정말 불쌍한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부활은 하나님 정해 놓으신 법칙입니다. 그 법칙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능력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합니다. 죽어도 다시 삽니다. 천국에 갈 겁니다. 부활할 겁니다. 예수님 말씀하셨습니다. 요11:25~2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여러분,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믿으십시오. 그리고 남은 생애 영생 부활 천국을 소망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증인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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