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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부활의 기쁨 (마 28: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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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기쁨을 여자들이 먼저 차지하였습니다.  왜 예수께서는 여인들에게 부활하신 이후에 먼저 보여주셨나요? 여자들에게 보여주셔야 소문이 속히 날 것 같아서였다는 재담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면 몇 가지 달라지는 게 있답니다.

1)외모에 신경 쓰지 않던 이가 꾸미기 시작한답니다.
  요즈음 말로 얼짱 몸짱이 되려고 애쓴답니다.  몸짱 열풍을 몰고 온 사람은 일산에 사는 한 가정 주부 정다연씨(39)였답니다.  그녀는 의사로부터  마른 비만이라는 진단을 받고 근처의 휘트니스센터에서 몇 년간 몸을 단련했습니다.  이후 늘씬한 몸을 만든 정씨는 자신의 사진과 함께 트레이닝법을 모 인터넷사이트에 연재하고 이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전국 최고의 인기인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여자가 갑자기 몸치장하면 뭐라고 표현합니다.

2)열등감이나 우울증에 사로잡혀 있던 이가 쾌활하고 말이 많아진답니다.  기쁨이 생긴답니다.

3)삶에 의욕이 없던 이가 갑자기 생기가 넘치게 된다고 합니다.

4) 관심이 없던 이가 깊은 관심을 갖게 되고 그리움을 알게 된답니다.  여인들이 예수의 시체를 위하여 무덤을 찾아갔다가 살아나신 예수를 만나고 기뻐하였습니다.  요한복음 20:20절에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들이 ‘기뻐하더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그렇게 사랑하던 여인들이 죽은 예수가 아닌 살아나신 예수의 모습을 보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예수의 부활은 우리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문제는 기쁨을 기쁨으로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인류에게 큰 기쁨입니다.

1.  부활이 우리의 기쁨이 되는 이유는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까? 죄 때문입니다.  바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라는 말씀대로입니다.  누구도 이 죄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선하게 살아라.  도덕과 윤리를 지키라고 말은 할 수 있으나 내가 너의 죄를 사하였느니라 이 말은 아무도 못합니다.  할 수도 없습니다.  죄는 벌이 따릅니다.  이것을 누가 피할 수 있습니까? 죄는 불행의 근원입니다.  범죄하고 행복하다는 이를 보았습니까? 마음에 항상 불안합니다.  양심에 자책감을 받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없습니다.  죄를 범하면 일이 잘되지 않습니다.  죄는 축복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행 난행을 하였습니다.  그런다고 죄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구약에서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수시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가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죄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죄 값을 담당하려고 돌아가셨는데 부활하지 아니하였다면 죄 값으로 돌아가신 것으로 끝납니다.  부활하심으로 완전한 속죄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사형선고 받은 자의 소망이 무엇이겠습니까? 사형을 면하는 길입니다.  죄수번호 몇 번 당신은 감형 받아 사형선고에서 3년형이다 라고 하였다면 3년이라는 세월이 길지도 않고 옥중에서의 삶이 그렇게 고마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 죄를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죄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우리에게 엄청난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이렇게 외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할 수 없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승리를 보장받았기 때문에 기쁨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승리를 선언하신 날입니다.  내가 이겼다.  이긴다는 것처럼 좋은 게 없습니다.  이겨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시합에 나가서 매 게임마다 집니다.  지는 선수는 선수대접을 못 받습니다.  군대가 전투를 합니다.  졌습니다.  이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겨야 삽니다.  이겨야 환영받습니다.  삶의 현장에서 이깁시다.  영적인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부활신앙으로 승리합시다.  승리는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영광입니다.  실패는 비극입니다.  서러움입니다.  억울합니다.  안쓰럽습니다.  이깁시다.  절망에서 이겨야 합니다.
왜 낙심하십니까? 예수께서는 부활로 승리하셨습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산을 옮긴다고 하였습니다.  낙담이라는 산들을 옮길 수 있습니다.  믿음은 기적입니다.  인간의 생각과 이성을 초월하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인간이 상상 할 수 없는 놀라운 힘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집시다.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왜요? 예수님이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망을 이겼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여기 기뻐하였다는 말은 전율할 만큼의 기쁨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항의를 못합니다.  사망의 지배를 받고 사는 인간들입니다.  아무리 큰소리를 치던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초라하게 보입니다.  죽음을 이기거나 극복한 이는 없습니다.  죽음을 대신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다 두려워합니다.  죽음 앞에는 두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연구하는 게 무엇입니까? 더 오래 사는 것을 연구개발하고 있습니다.  더 오래 사는 연구는 할 수 있어도 죽지 않는 방법을 연구하지는 못합니다.  연구한다는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심을 믿는 사람은 죽음을 겁내지 아니 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을 믿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삽니다.  부활 신앙을 가진 바울은 사망아 네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예수를 완전히 사형해도 좋다는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여 자기들의 법으로는 합법에 의하여 사형선고를 내려 드디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예수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다리를 꺾지 아니하여도 되었습니다.  확실하게 죽었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은 생명을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들도 죽음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합니다.  사람이 이사 갑니다.  그러면 그 사람 죽었다고 말합니까? 이사하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동안 살다가 육신이 죽습니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100세가 넘으면 세상을 떠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을 밝히 말하기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의 집에서 생명의 집으로 이사하였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5:24)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말대로 사망입니다.  믿는 사람은 이사하는 것입니다.(할렐루야)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것같이 우리도 예수의 부활신앙을 가지고 살기에 죽음은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얼마 전에 미국 뉴스위크지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미국 사람들 중에 94%는 신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77%는 천국이 있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불과 24%랍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도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신앙으로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는 진리를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정의가 승리하였다는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정의를 부르짖다가 비참하게 패하는 것 같았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이 사형을 받을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재판 자체가 불의 한 거 였습니다.  최고의 법정에서 예수는 죄를 찾지 못했다 라고 하였습니다.(요 18:38)  빌라도의 아내가 남편에게 권면하기를 저 옳은 사람에 대하여 상관하지 말라고 까지 하였습니다.(마 27:19)  죄 없는 사람도 죽이는 것은 불의입니다.  불법입니다.  세상은 불의가 이기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이 없었다면 세상은 불의가 이기는구나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가 부활하심으로 아니다 불의는 이기는 게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으시는 이가 있습니까? 불의가 이기지 못합니다.  의가 승리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끝까지 의의 편에 서야 합니다.  의롭게 살면서 힘든 분들이 계십니까? 기다리세요.  의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잘살려고 하기보다는 의롭게 살려고 해야 합니다.  불의한 중에 무엇을 기대할게 아니라 의롭게 살려고 하여야 합니다.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불의가 무엇입니까? 옳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 이익을 위하여 명분을 찾으려 하지 맙시다.  자기가 옳다고 외친다고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의가 의입니다.  예수를 죽인 자들은 분명히 불의에 의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재판 자체가 불의한 재판이었습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죄를 찾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죽였습니다.  불의는 일시적으로 이기는 것 같이 보이지만 의가 이기는 것입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일시적인 승리를 추구하지 맙시다.  바르게 옳게 살려고 하여야 합니다.  예수의 부활은 의를 지키는 이들에게 확실한 승리를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힘들어도 의롭게 사는 이들에게는 기쁨입니다.

3.  부활은 소망입니다.

예수는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도 예수님처럼 다시 부활한다는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고전 15:~)  나무를 심었습니다.  사과나무입니다.  첫 열매가 홍옥이라는 사과입니다.  다음해에는 국광이라는 사과가 여는 게 아닙니다.  첫 열매대로 홍옥입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도 죽습니다.  언제인가는 죽습니다.  건강을 관리하고 과학적인 연구를 하여 더 오래 살 수는 있는지 모르나 죽지 아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죽어도 다시 삽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언제 부활하느냐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가 죽습니다.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죽었다면 주님이 공중에 강림하실 때 무덤이 열리고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 살아남은 자들은 공중에 휴거됩니다.  이때 부활은 1차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은 계속 무덤 속에 있다가 예수께서 공중 혼연 잔치와 천년왕국이후에 1차 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이들 모든 사람들이 부활합니다.  이는 영원한 형벌을 받기 위한 부활입니다.  그래서 사망의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은 복이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잘 믿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1차 부활에 참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주님이 믿는 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요 14:1-2) 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을 살아도 소망이 있는 이와 없는 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소망입니다.  그러기에 기쁨입니다.  사람들이 자살합니다.  왜 그러합니까?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살은 더욱 비극입니다.  틀림없이 지옥 갑니다.  자살하는 이유는 힘들다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가슴이 답답하다고 괴롭다고 호소합니다.  하기야 자살하는 이의 심정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런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예수의 부활입니다.  예수의 부활신앙으로 희망을 가지세요.  믿는 자는 죽어도 삽니다.  여러분들의 사업이 삽니다.  가정이 삽니다. 

우울증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육체적인 우울증보다 더 무서운 게 영적 우울증입니다.  영적 우울 증세는 이러합니다. 
1) 영적인 삶, 신앙생활에 무력합니다.  유혹이 왔을 때 이기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말 한 마디를 듣고도 시험에 듭니다.
2) 신앙생활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우왕좌왕 합니다.
3) 영적 생활에 불만이 많고 신앙생활에 흥미가 없습니다.  교회생활에 불만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 못됩니다.  입에서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있는 신앙은 가장 건강한 신앙상태입니다. 
4) 은혜생활을 깊이 있게 하지 못합니다.  육신적인 우울증 때문에 자살하게 된다고 하는데 영적인 우울증은 자기 자신이 큰 손해를 입습니다.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늘 나라가 우리의 소망입니다.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다. 
첫째,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의 부활을 믿으면 기쁨입니다.  부활을 믿고 기쁘고 기쁘도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활신앙은 죽어도 사는 것입니다. 
둘째,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기셨습니다.  승리합시다.  세상에서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기쁨입니다.  사단의 세력을 이깁시다.  지고 우는 자가 되지 맙시다.  이기고 기뻐합시다.  육신생활을 승리하여야 합니다.  가정생활도 승리하여야 합니다.  내가 처한 곳에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확실하게 이기고 이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3:11) 실패하였습니까?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약하여지면 지는 것입니다.  강하고 담대하세요.  용기를 내세요.  예수가 우리들에게 승리를 보장하셨습니다.  이기고 이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소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자식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건강하지 못해서 이 병원 저 병원에 전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낙심은 마귀가 주는 은사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불행을 치료하는 한 가지 약이 있는데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을 믿기에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아름다움 아무리 얼짱 몸짱 하여도 나이가 들면 별 볼일 없습니다.  진정으로 아름다움은 소망 있는 삶입니다.  소망은 감옥이라도 평안과 기쁨입니다.  절망에도 희망의 창문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실패하였어도 실패한 것으로 끝날 뿐이고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63년 3월 8일 그 유명한 워싱턴 대행진에서 한 연설 중에 나는 꿈이 있다 라는 내용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어려움이 첩첩이 쌓여 있어도 그러나 나는 꿈이 있다.  꿈만 버리지 않는다면 절망의 동산에서 희망의 반석을 캐낼 수 있을 것이다.  이 꿈만 버리지 않는다면 미국내의 꽉 찬 불협화음을 형제애의 아름다운 심포니로 변화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부활신앙으로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넷째, 예수의 부활을 전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새벽에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이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들은 즉시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였습니다.  왜 예수께서 여자들을 제일 먼저 만났을까? 자동차 중에서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입니까?  BMW라고 합니다.  여자들의 입이 바로 BMW라고 합니다.  즉, Big mouth woman의 약자입니다.  여자분들의 입이 빠릅니다.  우리는 BMW가 되어 예수 부활하셨다 라고 힘있게 신속하게 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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