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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하심으로 인해 / 롬 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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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부활하심으로 인해
본문 : 로마서 6:1-14
2004.4.11. 주일예배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사심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계에 있는 모든 생명체는 죽습니다. 살다가 죽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틀림없이 죽을 것입니다. 아직 죽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죽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틀림없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압니까? 그것은 죽는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점점 쇠하여 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드니 몸이 점점 약해지고 있습니다. 머리털이 빠집니다. 눈이 침침해집니다. 귀가 점점 어두워집니다. 근력이 달립니다. 이런 것들이 죽어가고 있는 징조입니다. 언젠가는 기력이 다하여 심장이 멈출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죽음 너머에 부활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죽음을 믿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부활이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부활은 이 인류 역사 가운데 딱 한번 뿐이었습니다. 그 부활의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래서 이 부활은 우리에게도 부활의 소망을 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말하는 메시지는 ‘내가 살았으니 너희도 살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많은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이야기는 하나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신지 아니 계신지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단 한번 뿐이라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을 증명하기에 충분합니다.

여기 전등이 있습니다. 전기가 통하니까 불이 들어옵니다. 만약 수많은 전등 가운데 단 한 개의 전등에 불이 들어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기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수많은 사람들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셨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죽지만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부활은 새로운 생명입니다. 부활하면 새 생명으로 살게 됩니다. 부활을 믿으면 이 새 생명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소망하는 자는 변화된 삶을 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부활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요약할 수 있는 세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 명령들입니다. 알아라, 여겨라, 드리라 입니다.

첫째는 알라는 것입니다. 3 절 끝에 “알지 못하느뇨?” 했습니다. 그리고 6 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했고, 9 절 끝에 “앎이로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둘째 단서가 되는 단어는 여기라는 것입니다. 11 절 끝에 “여길지어다” 했습니다. 셋째 단서가 되는 단어는 드리라는 것입니다. 13 절 끝에 “하나님께 드리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알라, 여기라, 드리라 이것이 부활을 체험하며 생명으로 충만하게 살아가는 원리입니다.

먼저 알라는 단어는 세 군데 나옵니다. 세 가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3 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우리가 첫째로 알 것은 부활을 위해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도 없습니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과정입니다. 부활하려면 반드시 먼저 죽어야 합니다.

세례는 죄지은 나를 죽이는 예식입니다. 죄 짓고 살던 나는 죽어 없어지고, 용서받은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두 번째 알 것은 6 절입니다. 6 절을 함께 읽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죽을 때 십자가에서 자기를 죽입니다. 십자가에 몸을 못 박습니다. 그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은 죄로 물든 옛사람입니다. 죄의 몸을 못 박아 멸하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어떤 분이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상담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다음과 같은 글입니다.

“잘 알고, 보고 느끼고 어떤 것이 잘못인지를 아는데,
그것을 이길 힘이 없다는 것이,
마음속에 고통도 애통함도 잃어버려 아무런 감각이 없는 상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못하는...
사는 것이 지옥이요 숨 쉬는 것이 죄이니...
무릎을 꿇고 싶어도 모든 힘을 상실한 모습 뿐...
목사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분은 죄 짓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죄에 저항할 힘도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양심에 가책이 되어 고통이 따릅니다. 그런데 이 분은 무감각 상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는 것이 지옥이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죄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십자가입니다. 죄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으려면 죄의 몸을 예수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과 연합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나도 달리고, 주님이 부활하실 때 나도 부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전히 같은 죄를 반복하고 있습니까? 그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죄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완전히 발가벗기셨습니다. 그림을 보면 헝겊을 둘러 하체를 가린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나체를 그리기가 차마 민망해서입니다. 십자가는 이렇게 부끄러움을 당하는 곳입니다.

죄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다 드러내는 것입니다. 죄를 숨기면 못 박을 수가 없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망신을 당해야 합니다. 죄를 감추기 때문에 죄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9 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는 것으로 끝이 결코 아닙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을 죽였지만, 예수님은 그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사망이 주님을 어찌하지 못했습니다. 8 절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우리가 죄의 몸 때문에 죽지만 사망이 우리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도 부활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세 가지를 분명히 알라고 말씀합니다. 첫째는 부활을 위해 먼저 죽어야 한다는 사실, 두 번째는 죄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아 멸해야 한다는 사실, 셋째는 죽음은 결코 장차 부활할 우리를 주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부활의 원리를 깨달은 우리는 그 다음에 여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11 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여긴다는 말은 자기 아이덴티티, 자기 정체를 정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정하라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 나는 죽은 자, 예수 안에서 하나님 앞에서 나는 산 자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죄에는 죽은 자, 하나님 앞에서는 산 자’

예수를 믿고 새 삶을 살기로 한 중국 청년이야기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난봉꾼이어서 못된 짓은 다하고 살았습니다. 하루는 여행을 하면서 기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3 명이 일행인 남자들과 함께 앉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긴 여행에 무료하니까 카드를 꺼내서 함께 놀자고 했습니다. 4 명이 해야 하는 게임이라 꼭 끼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중히 사양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카드놀이 할 줄 모르십니까?” 묻더랍니다. 그가 대답하기를 “할 줄은 알지요.”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럼 손 가지고 있다 뭐하시게요?” 반문하더랍니다. 이 때 예수 믿은 청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손이 제 손이 아니라서요. 이 손은 달리 할 일이 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는 최근에 예수 믿게 된 신앙 간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몸이 이제는 주의 몸이 되고 그의 손이 주의 손이 되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아무래도 주의 손으로 카드놀이 하는 것이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 같아 사양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 여기고 사느냐가 아주 중요합니다. 죄의 유혹이 앞에 나타나면 그 죄 앞에 나는 죽은 자라고 여기십시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산자로 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부활의 원리를 깨달은 자가 세 번째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3 절 말씀입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를 짓지 않는 삶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지 않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금하는 삶에서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행하는 삶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드리는 삶입니다.

무엇을 드리라고 했습니까? 주님의 은혜로 부활을 누릴 산 자의 몸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했습니다. 죄에게 드리면 불의의 병기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병기가 됩니다.

주의 일을 하십시오. 복음을 전하는 병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예배하는 병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을 사모하고 읽고 공부하는 병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을 돕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의의 병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나를 산 제물로 주님께 드리는 것이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이 헌신을 원하십니다. 부활의 몸을 입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드려질 의의 병기입니다.

죽음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리하신 주님처럼, 저와 여러분도 부활 승리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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