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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살아나셨느니라 (마 2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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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셨느니라
마태28:1-10


78세난 어느 노인이 신약성경을 다 읽고 나서 그 성경에서 가장 감명적인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 노인은 두말하지 않고 '부활'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존. S 웨일'은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부록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기독교 신앙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하나의 환상이나 꿈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이고 분명한 사실로 네 복음서와 그 밖의 성경의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명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을 증명하는 분명한 것은 빈 무덤입니다. 고고학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고자 노력해 보았어도, 그 빈 무덤의 확실한 증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빈 무덤과 함께 성서증언자들의 증언이 예수님의 부활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써 보낸 서신 가운데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께 전해드린 말대로, 여러분은 복음을 굳게 잡고 있으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지 않았으면 그 복음으로 여러분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내가 전해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고전15:2-6)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증언을 받아드림으로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보다도 분명한 것은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체험적인 역사입니다. 그것은 부활의 생명이며 능력입니다.
그럼 무엇이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증하게 하는 체험입니까?

생명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

성경은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장례과정을 전해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아리마데 요셉과 니고데모가 많은 향료와 깨끗한 세마포로 예수님의 시체를 싸서 무덤에 장례 할 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몇 명의 여인들이 는 그곳을 지켜보았습니다.(요19:39-42, 마27:61)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이번에는 자기들의 손으로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해 서둘러서 향품을 사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이 안식일인고로 기다렸다가 다음날, 날도 새기 전에 서둘러서 무덤을 찾아갔습니다.(막16:1)
그들은 무덤으로 가면서 무덤의 문에 막아놓은 돌을 어떻게 치울 지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무덤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무덤문의 돌은 굴려져 있었습니다. 천사가 돌문을 굴려놓은 것입니다. 천사는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무덤에 계시지 않다는 것은 죽은 자로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절망과 슬픔의 대상으로 계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가 살아나셨다는 것은 죽음과 사망을 정복하신 분으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망의 그리스도로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살리심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무덤과 같이 죽은 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생명의 사람으로 살리시는 것입니다. 절망에서 희망의 사람으로 살리십니다. 어둠의 삶에서 빛의 삶으로 살리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보았던 부활의 역사를 오늘 우리에게 주십니다. 사망과 죽음인 무덤의 역사를 생명의 역사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지금 믿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이 생명의 역사는, 부활의 주님을 확신하게 하는 새 생명을 체험하는 역사입니다.
눈먼 소년이 친구들과 함께 연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연은 하늘 높이 날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지금 네 연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니?" 그러자 그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는 제 연이 지금 하늘 높이 날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 사람이 물었습니다. "넌 볼 수도 없는데 그걸 어떻게 알지? 소년이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저는 지금 연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제가 잡고 있는 이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고 있는 것을 보아서 제 연이 하늘 높이 날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목격하고 확인하지 못할지라도 부활의 주님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 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주시는 살아 계신 주님을 깨닫고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사람으로 살도록 팽팽한 능력으로 당겨주시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체험하기에 부활의 주님을 확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평강과 뜨거운 마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천사가 전해주는 말씀을 제자들에게 전해주기 위하여 달려갈 때에 부활의 주님은 여인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평안하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에 여자들은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했습니다.

예수님의 '평안하뇨' 라는 말 '카이레테'( )는 '기뻐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움가운데 문을 꼭꼭 닫고 두려움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이 있을 지어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부활의 주님은 믿는 사람들에게 큰 평강 과 기쁨을 주시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평강과 기쁨으로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에게 평강과 기쁨이 있음을 볼 때에 부활의 주님을 확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친구에게 쓴 편지가운데 기도교인들에 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이해하기가 힘들다. 사람이 죽어도 슬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뻐하며 그들의 신에게 감사의 예식을 드린다. 그들은 장례를 위해 묘지로 갈 때도 즐거운 소풍이나 가듯 노래를 부르고 행진한다"
부활의 주님과 살아가는 사람은 절망에서도 그 환경에 지배되지 않는 평강과 기쁨의 사람들임을 말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가지고 삽니다. 이 평강은 우리 가운데 임하는 평강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이 평강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이 평강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교회들에게 이 평강이 함께 하기를 기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1:7)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에게는 이 평강이 넘쳐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이 평강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되도록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후에 제자가운데 어떤 두 제자는 큰 슬픔과 함께 자신들의 갈곳을 찾아 엠마오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마음은 절망과 불신앙으로 차가워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은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대화로 성경의 말씀을 풀어 주시면서 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눅24:32) 고 고백했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이신 요한 웨슬레 목사님도 한때는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같았습니다. 그는 미국 조지아 주에 가서 선교했지만 실패로 실망과 낙심하여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자신이 구원받았는지, 죄용서 받았는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회의와 낙심가운데 올더스 게이트 거리의 어느 작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곳에서 루터의 로마서 서문 강해를 듣다가 마음의 뜨거움을 체험한 것입니다. 이후 웨슬레는 "예수께서 나의 죄를 지셨고 죄와 사망의 법으로부터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평강과 기쁨과 함께, 확신의 뜨거운 마음과 주님나라의 일을 위한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과 차가운 마음은 살아 계신 주님을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신앙의 사람들이 평강과 기쁨의 사람이 되고 뜨거운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을 볼 때에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확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함으로 평강과 기쁨의 사람, 뜨거운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요한복음 20:22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셔서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 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부활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더럽고 악한 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행동은 어떤 영으로 살아가느냐에 있습니다. 더럽고 악한 영은 사단에게서 나오는 영입니다. 이 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더럽게 행동하고 악하게 살아갑니다. 비겁하고 흉악하며 파괴하고 멸망되게 합니다. 이 더러운 영은 사람의 본능을 도구로 삼아 인간을 철저히 욕망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더러운 영은 사람으로 하여금 무엇이 죄인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고, 무엇이 잘못이고 부끄러움인지를 깨닫지 못하도록 무감각하게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생명파괴와 음란과 사치와 방종과 타락과 정치적 경제적 혼란 속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더러운 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만든 더러운 인간역사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은 우리를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의 성품을 그리스도의 성품이 되게 하고, 하나님말씀의 가치와 하나님 뜻을 즐거워하며 그것을 이상으로 삼고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받으라고 하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성령)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16:7-8).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할 것이요."(요15:26)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16:13)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심판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책망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로 진리의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에 부활의 주님을 확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열린우리당 유시민 국회의원이 교회 폄하 발언이 교계에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유 의원은 한 인터뷰 중에서 "많은 교회의 설교들이 대중을 무지와 미몽 속에 묶어놓고 있으며 사람을 마취시키는 서비스업으로 생각한다"고 밝혔고, "밤에 교회네온사인이 켜져 있는 것을 보면 엄청 무섭다. 끔직하다"면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교회를 다 때려부술 것, 종교는 무섭지 않지만 한국교회는 무섭다"고 했습니다.
유 의원의 발언대로 한국교회의 강단이 사람들을 무지와 미몽 속에 묶어놓고 마취시키는 서비스업을 하고 있는지, 또는 교회가 예수님이 오시면 다 때려부술 대상이 되었는지는 쉽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선거를 앞두고 교계에 비난이 일자 유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사과의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발언 내용중 성서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지식에 비춰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교만, 도시의 밤을 밝히는 교회십자가 아래서 이웃과 나라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점, 인간과 인간의 삶을 깊고 넓게 이해하지 않은 채 논리의 실타래만 붙들고 살아온 점, 목회자의 설교를 비난한 것처럼 오해가 생겨 누를 끼친 점을 반성하며 회개한다"고 밝혔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와 강단이 일개 국회의원으로부터 교회를 뿌리째 흔들어 놓는 대상이 되었는가 고 염려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안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믿기에 그러한 염려를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은 오늘도 교회 안에서 교회의 강단의 말씀사역을 사용하고있다고 믿고 있으며, 성령께서는 교회 속에서 끊임없이 하나님나라의 역사를 태동시키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교회 속에서 사역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으므로 교회가 갱생과 변화의 역사를 끊임없이 이루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곳에서 부활의 주님을 확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한 인생을 살다가 가신 위대한 분만이 아닙니다. 그 분은 우리 인간을 구원하셔서 영생의 삶을 주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 곧, 구원자이십니다. 그 분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살리셔서 우리가운데 생명과 진리의 삶을 만드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살아 계신 부활의 주님으로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하시고 기쁘게 하셔서 능력과 평강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성령의 사람으로 거룩하게 진리의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 분은 2000년 전 무덤에 묻히셔서 그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그 분과 함께 부활의 생명과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명한 그리스도인이 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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