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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신앙의 증인이 되라 (막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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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의 증인이 되라 (막 16:6-7)

부활주일이 되면 부활을 상징하는 삶은 계란을 전도용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이번 부활절에 6,000개의 계란을 삶았습니다.
계란을 기증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게란 포장 작업을 위해 수고해 주신 여러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동사무소, 소방서, 우체국, 노인정, 식당, 점포, 현대 엘리베이터, 서울대학교 병원 등에 부활절 성구와 함께 나눠 드렸습니다.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어릴 때에 닭을 먹여보지 않은 가정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닭 모이 주는 것이 할 일이었습니다.
어미닭이 알을 품으면 병아리가 나오는 신기한 일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이런 알을 수정란이라고 합니다.
요즘, 양계장에서 나오는 계란은 모두 무정란입니다. 이것은 수컷이 없이 낳은 알이기에 정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알은 아무리 오래 품고 있어도 병아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볼 때 분간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이 똑 같이 보이지만 부활의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인 중에도 무정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입으로는 부활을 이야기하고, 머리로는 부활을 아는 듯한데, 생활 속에서 드러나는 모습들은 도저히 부활을 알고 믿는 삶의 모습이 아닌 경우를 보게 됩니다.
여러분, 부활을 알고 말하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 가슴속에 부활의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자 청년들 사이에 유행되는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자가 과거가 있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남자가 미래가 없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과 결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적용한다면 ‘신앙인이 과거가 있는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신앙인이 부활신앙도 없어 소망이 없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의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 이것을 아는 비결이 있습니다.

1) 내 삶 속에서 주님을 자랑하고 있는가? 의 문제입니다.
만약에 부활의 주님을 자랑하지 않는다면 무정란 신앙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전도가 있는 것입니다. 힘 있고 열정 있는 전도를 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확고한 부활신앙이 나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살려야 합니다. 무정란 신앙을 유정란 신앙으로 바꿔야 합니다.
오늘부터 부흥회가 시작됩니다. 은혜 충만히 받고 무정란 신앙이 유정란으로 변화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내 삶 속에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역사를 체험하는가?의 문제입니다.
부활이 없으면 무력한 믿음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들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습니까?
찬송을 하면 주님의 평안과 기쁨이 마음속에 밀려들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부활의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염려와 근심 걱정을 몰아내시고 평강을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모여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 찌어다, 평안이 있을 찌어다.”(요한복음 20:19,21)를 선포하셨습니다. 세상에 평화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의 불안을 몰아낼 자는 없습니다. 대통령도, 국회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증거가 없다면 문제입니다.

부활의 신앙이 없는 믿음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예배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그 믿음이 자라나는 것은 아닙니다. '믿습니다'를 수백번 외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고 죽음을 이기신 부활을 나의 것으로 확신할 때, 기쁨 평안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은헤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확신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십니까?

1. 기독교는 빈 무덤의 종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사건입니다. 다른 종교에는 부활절이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에만 부활절이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보면 오히려 성탄절보다 부활절이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스위스의 유명한 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부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선언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종교는 다 똑 같다는 말을 잘 하지만 세상의 어떤 종교도 ‘부활’을 말한 종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부활의 주인’이심을 당당하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셔서 6시간 동안 고난을 당하시다가 운명하시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덤을 돌로 막고 인봉하여 로마 병정들로 파수꾼을 시켜 지키게 하였습니다. 혹시 누가 시체를 훔쳐가지 않을까 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3일째 되던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면서 하늘의 천사가 내려와 무덤의 돌을 굴려내었습니다. 그럴 때에 파수꾼들은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 같이 되어버렸습니다.(마28:4)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파수꾼들은 성에 들어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합니다. 대 제사장들은 장로들과 의논하고 파수꾼들에게 돈을 주고 시체를 훔쳐갔다고 소문을 내게 했습니다.
파수꾼들이 지켰지만 그 무덤은 빈 무덤이 되었습니다.
그 때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 무덤으로 갔다가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천사를 만났습니다.

흰옷 입은 천사를 보았습니다. 그 천사는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무덤에 계시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천사는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셨다고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너무나 놀랍고 두려워서 무덤에서 도망하였고, 아무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빈 무덤을 확인했고, 부활의 소식을 처음 들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수많은 성인들은 모두 무덤에서 시체가 다 부패하여 사라졌지만, 예수님께서는 3일 만에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은 빈 무덤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자랑은 ‘빈 무덤’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하고 소식을 전했지만,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모습을 보이셨지만 제자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 나타나셔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책망하고 꾸짖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주의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부활의 소식,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지상명령을 내리시고, 그 부활에 대해 믿는 사람에게는 능력과 표적이 나타날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2. 부활의 주님을 믿을 때 부활의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신이 ‘부활’이시기 때문에 하시는 일들마다 부활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다시 부활되게 하옵소서 . . .’ 기도를 잃었습니까? 부활되게 기도하십시오.
열심을 잃었습니까? 열심을 회복 시켜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마음이 냉냉하십니까?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엠마오로 슬픔 속에서 걸어가고 있어던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꾸짖으셨습니다. “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의 글로 시작하여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5-27)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을 때 냉냉한 가슴에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누가복음 24:32).

낙심과 좌절에 빠져 과거의 옛 직업으로 돌아가 고기 잡으러 가던 주님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십니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 . .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요21:5-6) 말씀을 들을 때 왠지 믿음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순종할 때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생선을 구워 조반을 드시면서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의 주님을 만나면 여러분에게도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마십시오.

영국의 작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의심은 우리의 적이다. 그것은 우리가 애써 간신히 얻은 것을 잃게 만든다.”라고 했습니다. 의심은 우리가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리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힘이 됩니다.
솔직히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안 믿는 편이 훨씬 쉽습니다.그래서 옛 부터 복음을 막론하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안 믿으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의 날조된 학설 내지는 종교적인 맹신이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 특별히 머리가 비상한 학자들 중에는 평생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말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아까운 인생을 다 날려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사실과 진리를 증명하기 위해 평생 학자의 생활을 했다면 보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거짓말로 증명하려고 평생 학자 생활을 하는 사람들처럼 불쌍한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학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으로 학위를 받고 그것을 위해 죽을 때 까지 연구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할 사람들입니다.
전하기도 바쁜 오늘에 그것을 방해하는 사람들이니 말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입니까?

우리의 삶에서 부활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믿음이 부활되어야 합니다
성도들 중에는 신앙생활의 햇수가 점점 늘어갈 수록 불평과 불신과 원망과 비판만 늘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점점 뜨거워져야 할 마당에. . . . . 이 사람들은 신앙이 부활되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이 시간에 이런 성도들이 있거든 부활의 주님께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모이기를 힘쓸수록 은혜를 받게 됩니다. 마음만 교회에 있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몸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마음 문을 여는 것이 필요합니다. 주님은 주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만나주십니다.
기도할 때, 예배드릴 때 찬양할 때 . . .

기독교 원리는 있는 자는 더 있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오늘날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의 원리처럼 모두 똑같이 나누는 원리가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자는 더 주십니다. 주인을 불신하고 일하지 않는 자는 있는 것 마저도 뺏기게 됩니다. 그리고 있는 자에게 없는 자의 가지고 있는 것 마저도 뺏아서 주는 원리입니다. 신앙은 애쓸 때 얻습니다. 여러분 애쓰십시오.
여러분의 잃은 믿음이 부활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우리의 첫 사랑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막16장7절 주님은 제자들에게 “갈릴리에서 보자!”고 말씀하십니다.
왜 ‘갈릴리에서 만나자!“고 하셨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처음 만났던 갈릴리는 새 출발의 장소입니다.
갈릴리는 주님이 제자들과 첫 사랑을 나누었던 장소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비전을 받았던 장소였습니다. 그곳에서 만나자는 것은 첫 사랑을 잃고 열정을 잃고 목숨바쳐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피하고 숨고 감추면서 겨우 신앙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의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번 그 사랑을 부활시키고 나가자는 주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처음 주님을 만나고 흥분되어 주님을 따르기 시작했던 그 ‘갈릴리’를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주님을 만났던 그 때를 생각하십시오.
처음에 예수님을 만났던 그 곳으로 가십시오.
불평의 자리에서 감사의 자리로 자리를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앉아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던 자리에서 찾아가서 사랑을 실천하는 자리로 자리를 움직이시기 바랍니다.
불평의 자리, 소극적인 곳에 앉아서는 결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셋째, 전도의 사명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5~16)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지상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전도 대상은 온 천하입니다. 북한, 아시아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계 방방 곳곳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지금은 우리의 태신자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지역에, 우리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얼마나 많이 살았느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얼마나 했는가? 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은 바로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 되며 사는 것입니다.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삶의 행복이 있습니다. 보람이 있습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자로서 부활의 증인이 되어 힘차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활을 증거하는 성도에게 주시는 격려의 말씀이 있습니다.

1) 주의 일에는 헛됨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전 15장 58절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증인이 되는 일에 흘리는 땀은 헛되지 않습니다.

2)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따릅니다. 표적이 나타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 16:17~18)
귀신이 물러갑니다. 가난과 저주도 물러갑니다. 악한 질병도 불러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유명한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융(Carl Gustav Jung)은 “오늘날 현대의 그리스도인은 기적을 믿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의 사실을 믿는 자에겐는 기적도 나타납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더 많은 기적이 일어났었습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 때문에 로마 제국이 결국 기독교국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 속에 기적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기적이 나타나면 믿지 않는 식구들도 모두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신앙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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