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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간증하는 삶 (요한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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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간증하는 삶
본문: 요한 1:15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어 십자가에서 우리 죄 대신에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 십자가를 보고 믿는 사람은 천국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고 천국 갈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지금이라도 죽으면 천국에서 눈을 뜨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 성도는 예수 믿고 난 다음 적어도 몇 년은 살아야 합니다.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윤리적,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옳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 사회에 봉사하며 살아야 합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도와주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 뿐입니까? 아닙니다.  성도에게는 더 많은 것이 요구됩니다. 성도의 삶은 한 차원이 높아야 합니다.  그러면 차원 높은 삶은 무엇입니까?  영적인 삶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어떤 삶입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영적인 삶입니까? 
몇 가지를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찬양과 기도하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찬양과 기도라고 했습니다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찬양과 기도는 그 뿌리가 같습니다.  기도문에 곡을 붙이면 찬양이 됩니다. 그러니 같은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우리의 영적인 삶은 찬양하는 삶이라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150편에 “호흡이 있는 자 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바꾸면, 우리의 호흡이 있을 동안에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찬양에서 은퇴한다는 말은 안됩니다.  호흡이 끊어질 때에 찬양에서 은퇴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옆에서 숨을 그만 쉬라고 숨을 그만 쉽니까?  천만에!  마찬가지로 옆에서 찬양을 그만 두라고 한다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호흡이 있는 동안 그 호흡을 갖고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하는 사람은 성도의 기본적인 삶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날마다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찬양이 깨어 있을 때에 우리의 영혼은 깨어 있습니다.  찬양이 쉬고 있으면, 우리의 영혼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하기를, “수금아 비파야 깨어라, 내가 새벽을 깨우리라!” 고 외쳤습니다.  다윗에게 찬양이 잠을 자고 있을 때, 그 영혼은 흑암에서 헤메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찬양을 깨우니까 그의 영혼도 깨어 일어나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며, 힘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찬양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영적인 삶의 두 번째는 간증하는 삶입니다. 간증이라는 것은 자기의 종교적인 체험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건, 은혜 받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것이 곧 간증입니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그냥 Confession 이란 말을 쓰는데, 이 말은 자신의 고백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런 고백은 대상에 따라 달라집니다.  하나님에게 고백할 때에는 신앙고백입니다.  사람에게 할 때에는 간증입니다. 

이 간증은 두 가지로 나타나는데, “내가 만난 하나님은 어떤 분이다” 하는 것과 “나는 하나님을 만나 이렇게 변하였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 세례 요한이 말하기를, “이 사람은 내가 전에 말하던 그 메시야이다” 라고 증거합니다.  1:34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고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즉 메시야라고 증거합니다.  이 증거하는 것이 곧 간증입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그저 한 인간으로 보이는 예수님이지만,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으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간증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을 만난 그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에게 간증하라고 하십니다.  자신이 받은 것을 나누라고 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간증 하라고 하십니까? 여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이 이유를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간증으로 간증자의 신앙이 성숙되기 때문입니다

간증은 하나님 체험과 은혜를 나누는 일입니다.  이렇게 나누다 보면, 그 체험을 다시 하게 되고, 그 은혜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간증하면 하나님 은혜가 항상 함께 하게 되고, 따라서 그 사람의 신앙은 성숙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간증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주저합니까?  간증하려면, 우선 자기의 마음을 열어야 하고, 자신의 과거 잘못을 공개적으로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죄악이 공포되는 것은 겁나는 일입니다.  공개되는 것이 겁나기 때문에 간증을 주저합니다. 

그러나 그런 공포를 이기고, 자신의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간증할 때에, 여러분, 그 열려진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더 큰 은혜가 내려 오게 됩니다.  열려진 마음이라야 하나님 은혜를 받지, 닫혀진 마음으로 어떻게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마음을 열고 간증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바울 사도는 사도가 되기에 치명적인 결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과거에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감옥에 잡아 넣는 일에 앞장 섰다는 것입니다. 바울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이것을 들고 나와서 바울을 핍박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마음을 열고, 자신이 옛날에 그렇게 했노라고 당당하게 간증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 은혜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간증할 때에 하나님 은혜가 바울에게 임하고, 그는 위대한 사도가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간증은 믿음을 강하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 도둑질 하던 사람이 “나는 이제 은혜 받고 손을 씻고 새 사람 되었습니다” 라고 간증할 때에, 그는 그때부터 새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죄악을 고백하고 나면, 이제 거기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간증하지 않고 숨기면, 언젠가는 다시 쇠고랑 차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렇게 간증하는 사람을 사역자로 세워 주십니다.  일군으로 세웁니다.  간증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용기 있는 사람이고, 열정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세워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맡겨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간증하라고 하십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간증이 우리 성도 생활에 가장 중요한 일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증거하고, 그 은혜를 증거하는 일이 곧 간증이기 때문에 여기에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여기에 더 큰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

여러분, 이런 더 큰 은혜를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간증합시다. 누구에게 간증합니까?  가족에게 간증하세요.  이웃 사람에게 간증하세요.  그리고 자신이 모시고 온 새 가족에게 간증하세요.  간증할 때에 자신의 신앙이 자라납니다. 믿음이 더욱 단단해 집니다.  그리고 더 큰 은혜가 내려 오게 됩니다. 


[2] 간증은 신령한 젖이기 때문입니다.

간증은 자신의 경험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를 진술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생한 체험입니다.  여기에는 간증자의 인격이 녹아 있습니다. 인생이 녹아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과 만남의 감격이 그대로 녹아 있습니다.  은혜에 대한 감사가 녹아 있습니다.  말하자면, 신령한 젖입니다. 

어머니가 어린 아기를 낳아서 처음에는 젖으로 아기를 키웁니다.  이 젖 안에는 아기가 자라나는데 필요한 모든 영양분이 다 들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면역도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아기에게는 이 모유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영적인 면에서 이 모유가 바로 간증입니다.  생생한 체험에서 나오는 간증은 신령한 젖이고, 이 젖을 먹고 자라날 때에 비로소 어린 생명이 힘을 얻고, 은혜를 받고, 튼튼하게 자라 날 수 있습니다.  처음 교회를 찾은 사람에게는 이런 신령한 젖이 필요합니다. 이 젖을 잘 먹여야 영적 자녀가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어머니들이 모유 대신에 우유를 먹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린 생명이 연약합니다.  영적으로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태신자의 양육을 맡기지 마세요. 물론 맡길 수는 있지만, 원칙적으로 어머니가 양육을 맡아야 합니다.  새신자를 가슴에 안고 기도하고 모시고 왔으면, 그 뒷바라지 하면서 신령한 젖으로 먹여 보세요. 그러면 그 심령이 조금씩 자라 날 것입니다.  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큰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버리지 마세요. 


[3] 간증은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간증은 하나님 은혜를 나누는 행위입니다.  이 행위를 통해 은혜가 나누어집니다.  즉 나눔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 됩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간증을 할 때에 사람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이 일어납니다. 

설교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목사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설교도 받은 은혜를 나누는 작업입니다.  즉 간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은혜가 전달됩니다. 

성도의 간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만났던 하나님을 소개하고, 그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해 주셨는가를 말할 때에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리고, 그 열린 마음 통해 은혜가 전달됩니다.  그 은혜가 전달 될 때에 병든 마음이 치료를 받게 되고, 절망 중에 있던 심령이 소망을 얻게 되고, 외로워 고통스러운 마음이 위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간증하라고 합니다.
개인에게, 성도들 앞에서, 처음 믿는 자에게 간증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세요!  특히 태신자를 모시고 오신 분들은 믿음의 자녀로 삼고 신령한 젖으로 양육하세요!  물론 어려움도 있고,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극복해야 합니다.  사탄이 덤비기도 합니다.  사람을 시켜 간증한 사람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렇게 괴롭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당하게 간증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처럼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마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주의 점도 있습니다.  거짓말 하지말고, 정직하게 간증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하나님 은혜 중에 살게 되고, 그래야 믿음의 자녀도 튼튼하게 성장하게 되고, 그래야 온 교회가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간증하는 삶을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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