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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합 2:1-4, 히 10:3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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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25일부터 4월 10일까지는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은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결정돼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 교회의 중요한 절기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며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경건한 삶을 다짐하고 실제로 경건하게 살어야 하는 기간입니다. 초대교회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이 절기에 절식이나 금식을 하면서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의 의미를 되새겨 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는 사순절기간에 자녀들에게 사순절의 의미를 가르치고 직접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서 소비를 절제하며 예수님의 수난의 의미를 되새길때 사순절은 자녀들에게 귀한 영적 훈련의 기간이 될것입니다. 요엘서 2장 13절 에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했는데 외면적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심정으로 철저하게 우리의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순절 기간을 검소하게 보내기 위해 빵이나 기름을 먹지 아니하였고 심지어 과일도 먹지 아니하였고 특히 고난주간에는 모든 성도가 금식했고 성금요일에는 교회에 모여 금식하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최근 미국에서는 예수님의 방식대로 식사할 경우 비만이나 성인병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의 식사법, 예수님은 무엇을 드셨을까 등의 책이 출간되고 예수님의 식사방법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의사이자 영양학자인 돈콜버터 박사는 현대인이 예수님의 삭사법을 배우면 성인병에서 행방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콜버트 박사는 예수님이 지금 사신다면 햄버거나 비싼음식을 드시지 않으실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기본적으로 예수님은 간단한 음식을 드셨다고 밝혔습니다. 예수님은 곡물, 생선, 과일, 야채 적은량의 올리브 기름, 고기와 음료수인 포도주 등을 드셨다고 했습니다. 콜버트 박사 이외에도 많은 건강학자들이 예수님은 채식에 바탕을 둔 식사를 하셨으며 동물들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는 제한 하셨다고 했습니다.

카우프만 박사는 예수님이 고기를 드셨다는 콜버트 박사의 주장에 반대하면서 예수님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였다고 강조했습디다. 예수님은 과연 무엇을 드셨을까를 항상 생각하면서 식사를 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계속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순간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하나님 안에 있는 나 자신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바로 깨닫는 순간에 나 자신을 알게 되고 현재 내가 처한 형편에 대해 바른 해석도 할 수 있게 됩니다.

히브리서 10장 32절에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라는 말은 처음으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된 때를 말합니다. 빛을 받는다는 말은 히브리서 6장 4절에 보면 예수님의 계시의 빛으로 광명을 경험한 일 즉 신앙고백을 하고 예수님을 생명의 빛으로 모시는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32절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는 말은 처음 믿을때 고난을 잘 참아낸 그때를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처음 믿은때 예수 믿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전의 생활 옛날 살던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다는 것 이전에 가졌던 인간관계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쉬운편입니다. 지금도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 그리고 무슬렘 세계 힌두교 사회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가족관계에서 완전히 제명되고 직장에서도 퇴출되고 사회생활 전부가 완전히 차단되고 가정에서도 쫓겨납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전에 어떤 분이 3대 독자였는데 3대 독자는 대단한 존재입니다. 장사하러 다니다가 소래 송천에 가서 선교사들을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상투를 잘라버리고 집에 왔습니다. 그 아버지가 노하셔서 몽둥이로 두둘겨 패서 쫓아 내 버렸습니다. 쫓겨나서 이곳 저곳 다니면서 얻어먹고 지내다가 한달 만에야 겨우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게 이렇게 힘든 일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님을 너무 쉽게 믿고 있지만 전에는 그러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도 나름대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할 때 어려움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 믿을때는 즐거웠고 믿음이 불같이 뜨거웠기 때문에 어려움을 이기는 것이 아주 즐거웠습니다. 32절 말씀대로 고난의 큰싸움에 이겼고 또 고난을 기뻐했습니다. 그것이 첫사랑이고, 처음 믿음, 뜨거운 믿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 세월과 함께 점점 약해집니다. 참 놀라운 것은 핍박이 있을때는 강하다가 핍박이 없으면 해이해집니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서 안이해집니다. 그러면서 처음 믿음이 어디 갔는지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확실히 핍박이 있을때는 잘 믿는데 핍박이 없으면 점점 해이해지고 약해지고 세상을 따라가게 됩니다. 거기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신학대학에 다니는 전도사가 친구 전도사에게 말하기를 내 아내를 위해서 기도 좀 해주세요. 내가 왜 전도사님 아내를 위해서 기도합니까? 그러니까 그 전도사가 하는 말이 내가 젊었을때 예수를 안 믿고 세상적으로 살었는데 내 아내가 먼저 예수님을 믿었어. 내가 예수 믿지 말라고 핍박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열심을 내는지 밤, 새벽 할 것 없이 열심을 내고 기도하고해서 결국은 내가 감동이 되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집사가 되고 전도사가 되고 지금 신학교에 와서 목사 되겠다고 공부하고 있는데 이제는 집사람이 교회를 안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 교회 나가자고 앞으로 목사부인 될 사람이 그러면 되느냐고 하면 마지못해 주일예배는 나가는데 주일저녁과 수요기도회에는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도 밤에는 안 나오는 성도가 많습니다. 꼭 낮에만 나오고 밤에는 눈 씻고 봐도 안보입니다. 밤에 나오면 무슨 큰 실수라도 하는 줄로 압니다. 핍박을 이기고 욕을 먹으면서 열심히 예수님을 믿더니 이제는 남편이 같이 가자고 하는데도 안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일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목회하는데 큰 지장이 되겠으니 기도해달라고 했습니다. 핍박이 있고 환난이 있으면 열심을 냅니다. 아주 잘 이겨 냅니다. 그러나 일이 잘 되고 명예가 있게 되고 돈이 있게 되면 약해집니다. 믿음이 형편없어집니다.

초대교회때 어떤 그리스도인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잡혀갔는데 로마 군인이 막 때리니까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뻐하면서 맞습니다. 때리는 사람이 지쳐가지고 이걸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옆에 있는 군인에게 물으니까 말하기를 예수 믿는 사람은 때리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매를 맞는다고 더 좋아 합니다. 그렇다면 이놈을 유배 보내야겠습니다. 유배를 보내면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기 때문에 더 좋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식을 아주 죽여 버려야겠습니다. 죽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순교하여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간다고 더 좋아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자식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돈을 많이 주어서 타락을 시키면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돈에 약합니다. 매 맞으면 강해질 수 있고 핍박 받으면 용기가 생기는데 돈이 있으면 확 넘어가 버립니다. 어려운때는 그리도 열심히 교회 나오더니 사업 좀 된다 싶으면 잘 안보입니다. 그런 분에게 요새 교회에서 잘 안보입니다 하면 아이고 목사님 사업이 워낙 잘되어 가지고 사업에 바빠서요. 그렇게 되면 좋은 것 아닙니다.

32절에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생각하라는 말은 사색의 뜻보다 기억의 뜻이 더 강합니다. 처음 믿을때 너희가 고난의 큰 싸움을 참았던 것을 생각하라 그때는 열심이고 그때는 잘 믿더니 지금은 어째서 이 모양이 되었느냐? 그러므로 그때를 생각하라 그 말씀입니다.

33절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자 되었으니 34절 너희가 갇힌자를 동정하고 너희 사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믿을때 고난당한 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했습니다. 첫째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고 둘째 멸시당한 사람을 사귀는 사람이 되었고 셋째 옥에 갇힌 사람을 동정하였고 넷째 산업을 빼앗겼습니다.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은 믿음 때문에 지독한 수욕을 당했고 인격적인 모독을 당했고 비방과 환난으로 망신을 당했다는 말입니다. 다음에 그러한 인격적인 모독과 멸시를 달게 받을 뿐만 아니라 믿음 때문에 멸시를 받고 있는 사람들과 교제 하였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친구가 되는 것은 누구나 바라지만 멸시받고 천대받는 사람에게는 가까운 친구도 떠납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때문에 멸시 받는 사람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옥에 갇힌 사람의 어려움을 동정해 주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6절에 보면 옥에 갇힌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예수님은 높이 평가했습니다.

순교자 익나시우스는 자기를 동정하는 친구들이 요로에 교섭하여 옥중에 있는 자기를 석방시킬까 걱정하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초대 교회 당시에 옥에 갇힌 사람을 도와주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그 다음에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이것은 인격적인 모독과 수치와 굴욕을 당하는 것 이상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경주에 최씨 가문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는 최현순 장로의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 때문에 그 문중회의의 결정대로 집과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했습니다. 히브리서를 기록한 당시에도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것을 불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기쁘게 여겼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믿음입니다.

36절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22절에 나중까지 견디는 사람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고 마태복음 24장 13절에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19절에 예수님께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했고 히브리서 12장 2절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고 히브리서 12장 3절에는 예수님을 가리켜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라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인내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내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상을 받게 됩니다.

영국 런던 선교 협회에서 선교사 지망자가 있어 이 사람의 자격을 심사하는 것을 선교사로 오랫동안 일하다가 은퇴한 윌크스 선교사에게 의뢰했습니다. 윌크스 선교사는 지망자에게 편지를 보내서 어느날 아침 5시에 자기 사무실로 오라고 했더니 먼 길을 밤새 걸어서 아침 5시에 사무실에 왔습니다. 그러나 윌크스 선교사는 사무실에 10시가 되어서야 왔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전혀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윌크스 선교사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안하고, 만나자 마자 첫마디가 선교사로 가고 싶은가? 예 가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가? 예 사랑합니다. 고양이라고 하는 말을 어떻게 쓰나? cat이라고 씁니다. 개라고 하는말을 어떻게 쓰나? dog이라고 씁니다. 음 그건 아는구먼 둘에다 둘을 더하면 얼마인가? 넷입니다. 둘에다 둘을 곱하면 얼마인가? 넷입니다. 선교사는 더 이상 묻지 아니하고 됐어 가 그랬습니다. 그리고나서 선교 본부에 편지를 보내기를 당신들이 보낸 이 젊은이는 내가 살펴본 결과 아주 좋은 청년입니다. 정중하게 선교사로 추천합니다. 나는 그가 시간 엄수하는 것을 보고 성실성을 알았고 또 5시간이나 불평 없이 기다린 것을 보고 인내성을 보았습니다. 지성을 모독하는 질문을 해 봤는데도 얼굴 한번 구기지 않고 온유하게 대답하는 걸 보고 성품이 좋은 사람인걸 알았습니다. 그런고로 합격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에게는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기억합시다. 모든 일에 끝까지 인내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상을 받게 됩니다.

37절 잠시 잠깐 후면 오실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잠시 잠깐 후에 오실이는 재림하실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에는 멀지 않아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입니다. 현대어 성경에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날이 그다지 많이 지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생각하고 그 예수님을 바라보고 기다리면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면서 사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잠시 후에 이루어 질것이기 때문에 환난과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말고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신앙을 버리거나 충성심을 변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땅에서의 모든 일은 다 끝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든지 이 땅에서 영구히 살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예수님이 오시면 예수님이 준비해 놓은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될 것을 믿고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0절에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보물을 하늘에 얼마나 쌓아두셨습니까?

어느 수도사가 길을 가다가 몹시 시장하여 밭에 있는 농부에게 저에게 먹을 것 좀 주십시요. 농부는 빈둥빈둥 놀면서 수도생활이나 하는 사람이 남 땀 흘려 농사한 걸 어이 달라고 합니까 하고 한 바탕 욕을 하더니 좋은 것이 많이 있었지만 마늘 말라비틀어진 것 하나를 던져 줍니다. 수도사는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가지고 씹어 먹고 갔습니다. 다음에 이 농부가 죽었습니다. 죽은 후에 천사가 와서 말하기를 너의 창고에 무엇이 들어있나 가서 보자고 해서 창고를 열어보니까 넓은 창고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한쪽 구석에 마늘 말라진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농부는 크게 후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두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늘에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땅에 쌓아 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어야 합니다.

38절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읽은 하박국 2장 4절 말씀의 인용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살리라는 말은 단순한 육체의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복으로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생명은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는 사람 끝까지 충성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그러기 때문에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뒤로 물러간다는 말은 배교를 의미합니다. 끝까지 변함없이 믿는 믿음이 바른 믿음입니다. 39절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했습니다. 39절은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사람이 아니고 믿음으로 영혼을 구원할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침륜이란 말은 멸망을 의미하고 물러가는 사람은 결국 멸망을 향하여 갑니다. 믿음에서 후퇴하는 사람은 멸망에 이르고 끝없이 전진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2절에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앞을 향해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믿음은 뒤로 물러가지 않고 믿음의 목적은 영혼을 구원함에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9절에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교회는 4월 27일 저녁에 이웃 초청 전도 대회를 갖습니다. 전도대회를 위해 오늘부터 전체 교우가 기도합시다. 초청자를 정합시다. 그리고 적어 냅시다. 전도는 하면 됩니다. 전도하는 성도가 따로 있는게 아닙니다. 누구나 하면 할 수 있습니다. 전도 합시다. 받드시 전도합시다.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고 자기 이름이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기록되는 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 교인들이 통 전도를 하지 않다가 초청 주일을 앞두고 전도하기 위해 나갔습니다. 두 분의 여 집사가 교회 입구에 있는 약국에 들어가서 약사에게 예수님을 믿으세요 하고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앉아 있던 약사가 일어나더니 전도지를 받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화가 난 얼굴로 두 사람을 노려봅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거운 침묵이 흘렸고, 전도하기 위해 갔던 두 집사는 공포감마저 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약사님 예수님 믿읍시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약사는 화가 난 얼굴로 “여보세요 내가 이곳에서 약국을 한지가 10년입니다. 그러나 당신들이 예배시간 마다 저의 약국 앞을 지나서 예배당에 가면서도 한 사람도 예수 믿자거나 교회 나오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 교회 교인들은 너무나 너무나 무관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언성을 높혀서 책망하는 약사의 말에 그 두 집사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너무나 잘못했다고 정중하게 사과를 드리고 오해를 푸시고 예수님을 믿자고 권했습니다. 그리하여 약사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하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이 없는지 깊이 생각해 봅시다. 실제로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면 예수님이 정해 놓으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믿고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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