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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의 꿈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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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말씀 : 마태복음 28장 16-20절
제  목 : “교회의 꿈”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은 그 삶의 희망이고 존재의 의미이며 목적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개교회마다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 꿈은 주님과 일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교회가 「큰 교회」만 되는 것이 꿈이라면 정상은 아닙니다.

1) 교회의 꿈!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주님의 명령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주님은 이 땅위에 계실 때는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세계 복음화라는 주님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제는 승천하시면서 까지 배웅하는 제자들에게 「가서 제자 삼으로」고 하셨습니다.
여전히 「세계 복음화」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 꿈을 이루는 교회가
① 선교지향적인 교회입니다.
토마스 왕이라는 목사님이 한국을 방문 하여 이런 설교를 하셨습니다.
「교회마다 스테인 글라스 대신에 10/40 창문으로 바꾸어야 한다.」

이유인즉, 스테인 글라스를 한 교회들은 그 교회자체의 아름다움 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그 결과 이웃과 세계를 보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만 스스로 도취되어 있는 것이다.

새로운 선교용어인 10/40창문이란,
전 세계 미전도 종족이 살고 있는 서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에 이르는 북위 10도에서 40도의 직사각형 지역을 일컫습니다.
이 지역의 면적은 전 세계의 3/1에 불과하지만 인구는 3/2가 살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 속한 67개국의 대부분이 미전도 지역이고,
수년 안에 모슬렘 인구가 11억,
      힌두교가 10억,       
      불교가 6억으로 증가될 도짐이 있는 나라들 입니다.
현재는 이곳을 중심으로 22억의 인구가 한번의 복음을 들어 보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나라 교회들은 예수님의 명령과 왕 목사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네의 의식들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입니다.
◦ 보십시오. 문을 열어도 안으로 댕겨서 열고,
◦ 돈을 세어도 옆이나 밖이 아닌 안으로 세고 있는 만큼,
밖으로 나가는 선교에는 소극적인 면이 있습니다.
자연 안으로만 성장하다보니 정형적인 전통교회가 된 듯 합니다.

이 전통적인 교회의 유형이 유럽교회입니다.
바로 옆의 가난한 자가 굶고 있고 고난 받는 형제가 신음하는데도 자신들만 대리석으로 교회당 짓고 스테인 글라스와 파이프 오르간으로 예배드리면서 결국은 화석처럼 굳어진 것입니다.

선교지향적인 꿈을 가진 교회의 특징은,
㉠ 교파 중심이기 보다는 선교중심입니다.
교회는 교파와 교단에 속해 있습니다.
자연 그 교리를 신봉하고 타 교파 타 교단의 유익이나 교통보다는 소속교파나 교단과 밀적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정치적」일수는 있으나 「선교중심」일 수는 없습니다.
때로 우리는 어느 파냐? 중요합니다만,
주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보시기 때문입니다.
교단, 교파의 우월성보다는 선교중심의 꿈을 달성하고 있다는 우월감을 갖아야 됩니다.

㉡ 교리 중심보다는 삶 중심입니다.
신앙의 교리는 중요합니다.
배워야 믿고 믿어야 실천됩니다.
그러나 가리키거나 배우기는 했는데 삶으로 연결되지 않았다면 열매 없는 나무와도 같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제자의 도」보담은 「가서 전하는」「사도의 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와서 배워라 했다면
가서 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 목회자 중심보다는 평신도 중심입니다.
목회자가 필요 없는 교회가 아니라 목회자가 동기를 부여하며, 격려하면 꿈을 실천하는 평신도가 있는 교회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기복에 맞추어져서 돈 따라 화려한 바벨탑으로 몰려가는 일을 복으로 여기지 않고 복음을 들고 복음의 불모지, 영적 지옥으로 가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입니다.

학교에서 두 평신도를 만났습니다.
한분은 치과의사였고,
한분은 사업가였습니다.
이들의 공통된 점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제목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 나를 보내주소서.. 였습니다.

㉣ 전통적인 방법보다 성경적인 방법을 택합니다.
성경적인 방법이란 언제나 새롭고 개혁적입니다.
더 나아가 성경에 근거한 성령님께 의존하기에 언제나 역동적이며 자유와 기쁨이 수반됩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령님의 뜻을 알고 파송하는데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행 13:2-3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현대교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은
◦ 어떻게 구원 받았느냐?는
                  출애굽기도 아니고
◦ 어떻게 예배 하느냐?는
                레위기도 아닌
◦ 몇 명이 모였느냐? 하는
                민수기입니다.
그러나 이 민수기가 달라져야 합니다.
「몇 명이 구원 받았느냐?」하는 의미적 민수기여야 합니다.
이는 오직 선교지향적인 교회만의 관심사입니다.

민수기에 얽힌 얘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인구조사를 여러 번 시키셨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6장을 보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또 인구조사를 명령하셨습니다.

모세는 거듭되는 인구조사 때문에 피곤하여 핑계를 댔습니다.
「하나님! 광야에서 인구조사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데 또 하라고 하십니까?」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모세야! 어떤 보석 장수가 있었다.
그가 어떤 보석은 팔면서 숫자를 세고 또 세더라
반면 어떤 보석은 세어 보지도 않고 팔더라
어떤 보석을 여러 번 세고,
어떤 보석을 세지 않겠니?」

모세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대답했습니다.
「그야 비싼 보석일수록 자꾸만 세겠지요!」
하나님이 다시 말씀했습니다.
「나는 내 백성이 귀하단다 어서 인구를 세어라!」
그래서 모세는 꼼짝없이 인구 조사를 또 했답니다.

2) 교회의 기능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오해하는 것 중 하나는 교회를 자기 식으로 정의를 내리고 판단을 합니다.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잘못된 정의는
잘못된 기능을 초래하기 십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갖는 오해 중
① 교회는 좋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병원은 깨끗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성도가 갖는 오해 중
② 교회는 평등한 곳이다 아니면 민주주의 원칙이 통하는 곳이다 합니다만,
진정한 교회는 기능면에서 본다면 주님의 몸이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 땅위에 계실 때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마 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매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딱 세 가지 기능입니다.
가르치시니, 교회는 가르치는 공동체여야 합니다.
사상과 의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리나 예수님과 섬김의 도를 가르쳐야 됩니다.
전파하시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인근 지역부터 시작해서 먼 땅까지 복음의 빛을 말해야 합니다.

고치시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행여 교회 와서 고침 받고 회복 받는 것이 아니라 시험 들고 이래저래 망함이 있다면 교회를 옮겨야 하듯이 신앙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요 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러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대로 젊은 자들이 장로들에게 순복하며 여인들은 잠잠 하는  곳입니다.

행여 이런 몸된 기능을 거부하며 세우신 질서를 무시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렇다면 교회 닮은 기관은 될지언정 교회는 아닙니다.
교회는 주님이 머리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3) 교회의 신분

이러한 교회
신분적으로는 「주님의 신부」입니다.
사랑받는 신부,
혼자 있으면 약하지만, 신랑께 연합되어 있으면 한 없이 강하고 담대한 신부,

◦ 성령 받으면 강하고 담대합니다.
◦ 기도하며 말씀에 순종하면 입에서 검이 나오기도 합니다.

신부의 가치는 정조이듯이
교회의 가치는 「거룩」입니다.

  벧전 3:15 “그리스도를 주를 삼아 거룩하게 하고”
  벧전 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왜 세속주의와 인본주의를 배격해야 되는지 아시겠습니까?
교회는 세상에 있어도 하늘에 속하고 주님께 바쳐진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결  론)

이런 일에 쉽게 타협하지 말고 싸울 때는 싸우도록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커지는 것만이 꿈이 될 수 없습니다.
건강하면 교회는 커집니다.
주님이 세우신 의도대로 거룩한 역사를 이룩한다면 작아도 그 교회는 참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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