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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 자가 되라 (막 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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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교회에서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서 인정을 바아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요?  살아계신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까요?

성경은 분명하게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재능을 가진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자신은 약하고 무능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물질을 많이 가진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을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적은 것을 가지고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사용하시며 그 사람에게 더욱 많은 복으로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적인 지식은 부족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주심으로 어리석은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불신의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사역을 하시는 동안 사람들이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셨습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열심히 아닙니다.  믿음이 없이도 열심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이도 교회의 일에서 앞장을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한동안 오해를 했던 것이 있습니다.  교회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은 모두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열심히 봉사에 앞장서는 것을 보면 신앙이 좋은 것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 가운데 교회의 일에는 열심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소수의 제자들과 변화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에게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아버지가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아이를 붙들고 씨름을 하였습니다.  온 힘을 다하여 시도하였지만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주님께서 그들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안타까운 말로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막 9:19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변론도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용하신 방법을 모두 동원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들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지적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방법도 있었고 이론도 있었지만 핵심인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없음을 지적하셨으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다시 말하자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없음을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함께 가면서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함께 행동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서 애굽을 탈출하였으며 가나안을 향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믿음을 갖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따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저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주님께서는 동행하는 자의 불신앙을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교훈은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가운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제자들이 믿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핵심멤버가운데서 믿음이 없이 예수님을 따라다녔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 사람들이 서기관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야 믿음이 없는 것은 말할 것 조차 없었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  수 많은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무리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제자들이었습니다.  요즈음 말로 말하면 교회의 중직이라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을 안타깝게 만들고 책망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제자들가운데 불신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 열 두명 가운데 9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구약엣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12명의 정탐꾼의 보고는 전혀 다른 두가지로 나타났습니다.  믿음의 보고와 불신의 보고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0가지 재앙을 목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일반대중이 아니었습니다.  지파가운데 뽑힌 족장이며 두령이었습니다. (민 13:2-3)  지파의 대표들이었습니다.  지파에서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12명 가운데 10명이 불신의 보고를 하였습니다.

10명의 보고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불신의 보고 두려움의 보고였습니다.  무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보고였습니다.  백성들을 믿음을 무너뜨리는 보고였습니다. (민 14:1-3)
민 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그들은 육신의 눈으로만 하나님의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이스라엘의 족장들이나 다를바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도자처럼 보이지만 주변 사람들까지도 불안하게 만드는 영적인 장애물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함께 걸으며 예수님과 함께 가면서도 믿음을 갖지 못한 불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불신앙의 모습이 곧 오늘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불신앙을 하나님은 미워하시며 주님은 슬퍼하십니다.  안타까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불신을 하나님께서는 슬퍼하시며 진노하십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믿음이 생기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광야에 머물게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생기기를 원하셨습니다.  불신의 사람으로는 가나안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불신의 삶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도 주님은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탓하셨습니다.  믿음의 사람으로 서듭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순간까지도 계속 불신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막 16: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막 16: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그러한 그들을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인가를 스스로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신의 사람이 아니라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불신의 틀을 깨고 믿음의 날개를 달고 날아야 합니다.

둘째로, 불신의 틀을 벗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불신앙의 틀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나기를 원하십니다.
불신가운데 있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왜 불신자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십니까?  불신의 삶은 그 자체가 자신에게 불행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이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불신의 사람의 삶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불신의 삶의 모습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불신을 털어야 할 이유를 알게 됩니다.  불신자의 모습은 어떠한 모습입니까?

* 노력으로 살아갑니다. 

나름대로 열심을 내며 살아갑니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믿음이 없던 제자들도 나름대로 열심을 내었습니다.  앞에 놓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힘을 다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형식을 따라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믿음이 없다고 아무런 행동이 없이 앉아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경건의 모양을 따라 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도 예수님이 하시는 모양을 따라 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경건의 모양을 따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도 교회의 생활은 익숙하여 질 수 있습니다.  신앙의 연륜은 깊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을 할 때에도 사람의 능력만을 계산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킬 때도 제자들은 돈 계산을 하기에 바빴습니다.  예수님의 놀라운 능력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도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힘으로 애를 쓰기에 바쁩니다. 노력으로만 살아가게 됩니다.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이 가진 인간적인 지혜와 능력을 모두 동원합니다.  그러다가 실패합니다. 불신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인간의 능력을 계산하며 일을 합니다.  자신의 모든 방법을 동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지혜로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기도하며 살아갑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의 능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보며 살아갑니다.  불신자의 특징은 노력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변론도 많이 합니다.  나름대로 안되는 이론을 말하기에 바쁩니다.  행동하는 신앙이 아니라 주장하는 신앙의 길을 걸어갑니다.

* 걱정하며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불신의 삶의 특징은 애를 쓰면서도 걱정하며 삽니다.  노력을 하면서도 걱정을 합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함이 없습니다.  믿음이 없음으로 인하여 두려움과 근심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항상 걱정을 합니다.  염려와 걱정과 근심이 그들의 마음의 중심에 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도 걱정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두려움과 무서움이 당연히 다가옵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염려합니다.  불신의 사람의 특징은 항상 걱정한다는 사실입니다.

막 4: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막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들은 문제가 닥칠 때마다 염려합니다.  지나간 하나님의 도우심은 항상 잊어버립니다.  새로운 문제가 닥칠 때마다 걱정하고 불평합니다.  자기들만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염려가 번지게 만듭니다.  그들은 염려하지 말라, 두려워 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나중에는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걱정 근심 염려, 불평은 결국 불신의 결과로 나오는 것입니다. 

*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의 불신이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얼마나 너희를 참아야 하겠느냐라고 하십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보는 주님의 심정,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할 때의 주인의 심정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월만 보내고 믿음이 없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불신의 모습이 없습니까? 불신은 결국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듭니다. 불신이 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요?
셋째로, 불신을 통해서는 역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를 통하여 역사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이 답답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불신의 사람, 하나님의 마음을 답답하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 불신의 사람을 사용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구로 사용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의 마음이 답답하신 것입니다.  불신의 결과는 무섭습니다.  불신으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불신도 믿음입니다.  안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불신의 사람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않고 세상의 문제만을 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이 실현이 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불신의 상태에서 벗어나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 믿지 못하였음을 부끄러워 할 때가 옵니다.

우리가 믿지 않아도 때가 되면 이루어집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루어 지고 난 뒤에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없다고 하나님의 언약이 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때 우리는 부끄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눅 1:20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제자들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보고 나서야 그들도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막 16:13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주님은 우리들의 믿지 않음을 이상하게 여기십니다. 

막 6:5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6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 더욱 큰 문제는 주님을 따라다니지만 역사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믿음대로 되는 일이 생깁니다.
믿음에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증언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막 5: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막 10: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믿음의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십니다.  우리의 능력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십니다.

*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오래 사용하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하여 더욱 큰 일을 하게 되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 믿음이 없음으로 인하여 중간에 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사람을 들어서 사용하시며 믿음의 역사를 더욱 크게 일으키십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더욱 큰 일을 맡깁니다. 
민 14:38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사람들 중에 오직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생존하니라

넷째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믿음을 갖도록 주님께서 도와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더욱 큰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은 역사를 나타내지만 불신은 염려를 통하여 뼈를 상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장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기를 원하십니다.
문제를 가지고 온 아들의 아버지에게 단순한 소원이 아니라 믿음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복음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믿음을 갖도록 도와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아이의 아버지에게 믿음을 갖도록 도와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는 주님께 믿음없음을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그의 아이를 고침으로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문제의 해결을 통하여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주님은 불신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믿음으로 기적을 보여 주심으로 믿음을 갖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이에게 믿음이 생기도록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기적의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을 만납니다.  불신을 책망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불신에서 신앙의 길로 걸어가도록 인도하시는 주님을 봅니다.
주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었지만 보여 주시었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부활하신 주님을 봄으로 믿게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주님께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구하여야 합니다.  믿을 수 있는 놀라운 은혜를 달라고 구하여야 합니다.  이제 2003년은 믿음이 생기는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한 세월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문제의 해결을 통하여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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