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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망의 밤에 본 Vision - 믿음의 동행자 (전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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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첫째 날에는 빛과 어둠을 만드시고 밤과 낮이라 칭하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하늘을 만드셨고, 셋째 날에는 물을 한 곳에 모아 땅과 바다를 나누시고 땅 위에 풀과 씨를 맺는 식물과 씨가 든 열매를 맺는 과일 나무들을 만드셨습니다. 넷째 날에는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을 만드셨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강과 바다의 각종 물고기들과 하늘을 나는 새들을 만드셨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땅위의 온갖 동물들과 가축과 땅위에 기어 다니는 생물들을 만드셨고, 처음 사람인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위해 에덴동산을 만드시고 그를 거기 살게 하셨습니다. 또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짐승과 새들, 들의 짐승들을 아담에게 이끄시고 아담이 그들을 부르는 이름이 그들의 이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만물들을 창조하신 후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가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못하다’라고 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홀로 있는 아담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잠들게 하시고 그 갈빗대를 취하셔서 돕는 베필로 여자를 만드신 것입니다.
홀로 있는 아담의 고독,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시고 최초의 사회적 공동체인 ‘가정’을 만드신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프리드리히 2세는 아주 잔인한 실험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바벨탑 이전에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했을까하는 것에 대해 병적인 궁금증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를 밝혀내기 위해 갓난아이들을 유괴한 뒤 홀로 두고 격리시켜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성장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 아이들이 성경이 기록된 신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이 아이들이 중얼거린 것은 아무도 알아들을 수 없는 웅얼거림일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이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합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학자 키에르 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저서에서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은 어떤 질병이 아니라 정신적인 병, 즉 고독이라고 합니다. 정말 외로움만큼 견디기 힘든 것이 있을 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외로움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교도소에 가면 문제를 일으키는 죄수를 독방에 가두는 데 모든 사람들로부터 격리하여 홀로 있게 하는 것, 이것은 좀 더 가혹한 형벌입니다.
특히 인생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날 때 홀로 있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도 바로 그것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우리가 걷는 믿음의 길에도 때로는 절망과 낙심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에 우리에게는 격려해주고 위로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의 동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은 절망의 밤에 본 비전이라는 주제의 마지막 시간으로 ‘믿음의 동행’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에게는 동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 동행이 필요합니까? 오늘 성경을 살펴봅시다.
첫째, 우리에게는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서로를 돕는 베필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함께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기에 동행이 필요합니다.
둘째, 누구에게나 넘어질 때가 있기에 때문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사람이 없으면 화를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걷는 믿음의 여정에 혼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깊은 절망과 상처가 우리에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동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셋째, 인생의 겨울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인생의 여정에 항상 따듯한 봄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고 혼자 견디기 힘든 추운 겨울날도 있습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날을 함께 끌어안고 서로의 몸을 따듯하게 해 줄 수 있는 동행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터넷 사이트 중에 독신자들의 사이트인 솔로베이라는 사이트에 보니 누군가가 ‘이럴 때 혼자라는 것이 싫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1. 코믹영화 혼자 보러갈 때.. 2. 깊은 밤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을 때..
3. 엄마 잔소리 들을 때.. 4. 아플 때..
5. 자장면 먹고 싶은데 1인분 배달 안 해 줄 때..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외롭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쌓


둘째, 동행에는 여러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누군가와 동행하게 되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그냥 혼자 살면 여러 가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함께 하면 때로는 갈등도 하고 신경도 쓰이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행의 유익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함께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받게 됩니다.
두 사람이 따로 따로 일을 하여 이루는 성취보다 힘을 합하여 수고하면 더 큰 일을 할 수가 있고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났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함께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혼자서 달리지 마십시오. 함께 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누군가가 함께 달릴 수 있도록 때로는 속도를 줄이기도 하고 기다려 주시기도 바랍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또 자신의 주장을 양보하고 마음을 낮추어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우리 중에 혼자 달리는 사람이 없도록 서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힘겨운 믿음의 길을 혼자 달리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시험에 빠지기 쉽습니다. 서로 기도해 주고 함께 수고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상을 나눌 수 있는 동행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전투입니다. 우리는 함께 힘을 합하여 적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종종 적과 싸워야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들을 같은 편끼리 서로 갈등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봅니다. 이제 마음을 낮추고 서로를 돌아보고 함께 힘을 모아 승리하는 우리가 됩시다.

둘째, 한 사람이 넘어질 때 일으켜 줄 수가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다 약점이 있습니다. 약해지는 순간, 실패하고 넘어지는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일으켜 세워주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내 약점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나를 이해해 주고 용납하며 손을 내밀어 일으켜준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내가 넘어졌을 때 일으켜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어려운 곤경에 처했을 때나, 불행과 절망의 시기에 위로와 용기를 주며, 힘을 북돋아 주는 친구가 한명도 없다면 얼마나 비참한 노릇이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서로 붙들어 주고 혹 넘어진 이가 있다면 힘을 다해 일으켜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약점과 실패를 비난하거나 탓하지 말고 격려하고 세워주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넘어진 사람에게 가서 그를 더 힘들게 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함께 이 길을 가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넘어져 절망하는 누군가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비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서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할 수 있습니다.
팔레스틴 지방의 겨울밤은 비교적 추우며 여행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는 낮에 입던 겉옷이 유일한 침구로 사용되었는데 그때에 그 겉옷을 가지고 친구와 함께 자는 것은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적절한 방책이었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며 도와줄 수 있다면 거기에서 진정한 사랑이 꽃피며, 또한 목적한 바를 성취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혼자서는 미약하지만 서로 힘을 합할 때에 각기 상대방에게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선다 싱이라는 사람이 네팔지방의 한 산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여행자 한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방향이 같음을 확인한 그들은 동행자가 되었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와 거친 눈보라를 맞으며 인가를 찾기 위해 계속 발길을 움직였지만 인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얼마쯤 걷다보니 웬 노인 한 사람이 눈 위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선다 싱은 동행자에게 "우리 이 사람을 같이 데리고 갑시다. 그냥 두면 죽고 말겁니다." 하고 제의를 했습니다. 그러자 동행자는 버럭 화를 내면서 "무슨 말입니까? 우리도 죽을지 모르는 판국에 저런 노인네까지 끌고 가다가는 우리 모두 다 죽게 될 거요." 라고 말하며 먼저 떠나 버렸습니다.
사실 그렇긴 했지만 선다 싱은 불쌍한 노인을 그냥 둘 수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노인을 업고 눈보라 속을 한걸음 한걸음씩 걷기 시작했습니다. 앞서서 가던 동행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인을 등에 업은 선다 싱은 갈수록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참고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선다 싱의 몸은 땀으로 젖었습니다. 선다 싱의 몸에서 더운 기운이 확확 발산이 되어서 인지 차츰 등에 업힌 노인이 의식을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으로 조금도 춥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선다 싱의 눈에는 마을 입구에 한 사내가 꽁꽁 언 채로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시체를 살펴본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바로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앞서가던 동행자였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할 때 서로의 체온이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서로를 살린 것입니다. 우리도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하게 해 주는 그런 동행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할 수 있습니다.
전도자는 말하기를,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삼 겹줄은 그 당시 제일 튼튼한 밧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낱 줄로는 할 수 없는 것을 삼 겹줄이 할 수 있듯이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두 사람이 힘을 합하면 이룰 수 있습니다.
어느 궁궐에 아주 맛있는 과일이 열리는 신기한 나무가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두 사람의 경비원을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소경이었고 한 사람은 난쟁이였습니다. 두 사람은 신비의 열매를 따먹고 싶었으나 너무 높은 곳에 과일이 열려 있어 따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은 골똘한 연구 끝에 묘안을 짜냈습니다. 소경이 난쟁이를 무등태우고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쪽으로 이동하며 실컷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임금님은 열매가 없어진 것을 알고 두 경비원을 문책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이 각각 울부짖으며 호소했습니다. "앞을 못 보는 제가 어떻게 열매를 훔치겠습니까?" "난쟁이가 어떻게 저 높은 곳의 열매를 따먹을 수 있겠습니까?" 임금님은 두 사람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록 옳지 않은 일이라도 둘이서 힘을 합하면 묘안이 나오는 법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우리가 지혜를 모으고 여럿이 힘을 모은다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겠습니까? 협동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삼 겹줄은 더 무거운 것을 들어 올릴 뿐 아니라 더 오래 견딜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믿음의 삼 겹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우리는 지금 믿음의 전장에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싸움에서 홀로 싸운다면 얼마나 힘들고 외롭겠습니까?
믿음의 여정에서 만나는 어둠과 고통의 시간, 절망의 순간에 우리가 서로에게 비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지구에 있는 63억의 사람들 중에서 부산 반송에서 함께 만나 같은 교회에서 믿음의 길을 가게 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서로의 손을 붙들어 주고 일으켜 줄 수 있는 동역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중에 누구도 홀로 걸어가거나, 홀로 고통당하거나, 홀로 넘어져 있게 하지 맙시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 만나게 하시고 서로에게 동역자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함께 주님을 따라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 동역자 들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며 승리의 순간까지 함께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 / 우리가 걷는 이 길은
1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보기에 좁고 험하며
찾는 이 매우 적어서 외로웁지만
이길 끝에는 우리 주님이 계셔
우리를 그 품에 안아 주시리
세상 사람들 우리들을 보며 어리석다고 조롱하지만
이 길을 가는 자마다 영원히 주와 살리라

2 우리는 함께 이 길을 선택한 형제자매요
영원한 주의 나라의 백성이기에
서로 도우며 서로 손을 잡아주며
이 길을 함께 걸어 갑시다
세상 사람들 우리들을 보며 어리석다고 조롱하지만
이 길을 가는 자마다 영원히 주와 살리라
이 길을 가는 자마다 영원히 주와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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