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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집사란 이런일을 하는 것입니다. (행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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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대구문화교회)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지라(행 6:1)” 예수님이 부활승천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사흘 만에 다시 사셨다고 했습니다. 너무 당당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여러 나라의 여러 계급의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불같이 임했습니다. 때로는 바람같이 임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살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행 2:5) 그러고 보니 예루살렘 교회는 대단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에 회개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섰습니다. 개종했습니다. 여러 민족이 뒤섞여 살았습니다. 흩어진 유대인들이 돌아 왔습니다. 다른 나라에 살다보니 자기 나라 말이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민족적인 갈등과 오해도 있었습니다. 불신도 있었습니다. 적의도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가르친 말씀으로 서로가 현제처럼 지내게 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했습니다. 조화를 이루며 신앙생활 했습니다. 이제는 편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은 이 연합과 조화가 이어지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복음이 불타오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때에 사탄은 이간질을 한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구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불평을 했습니다. 어느 단체나 가정에서도 원망과 불평이 문제인 것입니다. 작은 불평을 일으키는 일에 성공했습니다. 사도들은 불만, 원망에 대한 모든 기회를 제거해야 했습니다. 빨리 조처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들의 경험에서 첫 위기였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교회가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교회는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이 뒤숭숭했습니다. 교회가 기우뚱거렸습니다. 사도들이 사람들을 구제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저울에 단 것처럼 완벽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좀 참지를 못했습니다. 자기들의 섭섭함, 억울함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 이라는 것 보다 사탄은 언제나 이런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항상 정의라는 이름으로 잘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그런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초대교회가 얼마나 성령의 역사가 강했습니까? 얼마나 기적이 많이 일어났습니까? 호사다마라는 말이 여기 해당합니다. 교회가 부흥 하는데 이런 시련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결심을 했습니다. 우리가 전도, 구제, 모든 것을 하다보니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사를 선출하게 된 것입니다.

Ⅰ   

예수님의 제자들은 위기를 맞았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은 크게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교인수가 늘었습니다. 그런데 사도들만으로는 그  많은 일을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선택한 것입니다. 교회의 장래 발전을 위태롭게 하는 일 없이는 어떤 개인이 짐을 지기엔 힘이 듭니다. 초대 교회는 몇몇 사도들이 이 모든 일을 책임지고 일을 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힘들게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지던 짐들의 얼마를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교회에서 복음의 질서를 완성시킨 것입니다. 사도들은 신도들의 집회를 소집했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지도를 따라 교회의 모든 일꾼들의 보다 나은 조직에 대한 계획의 대강을 설명했습니다. 사도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질서를 정리한 것입니다.

집사는 이름 그대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영어로 deacon(디컨)이라고 합니다. 그리스어 디아코노(diakonos)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뜻은 섬긴다. 봉사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받든다는 뜻입니다. 일하는 사람입니다. 청지기(steward)란 뜻입니다. 웹스터(Webster)사전에는 “돼지우리를 치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남의 집에서 주인을 수청 드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집사란 그 원뜻은 : 일을 열심히 해서 먼지를 일으키는 사람 : 이라는 것입니다. 일꾼입니다. 일만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직분이 있습니다. 물론 여기 일곱 사람은 안수집사입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안수집사는 교인의 (공동회의) 2/3 의 투표를 받아야 합니다. 6개월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임직식을 하면 70세까지 그 직분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자는 투표도 안수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서리집사를 1년직으로 당회에서 임명합니다. 그런데 안수집사나 서리집사나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나님의 교회에서 선한 일꾼들 입니다. 일꾼의 자세는 건강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성실해야 합니다. 부지런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열심이 넘치는 성도들로 넘쳐났습니다. 그들은 기도와 말씀 듣는 것 구제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에서 된 일을 제가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장로, 집사, 권사 선출을 위한 공동회의를 했답니다. 그런데 장로, 권사로 선출된 사람들은 좋아했습니다. 사람들도 축하 인사를 했답니다. 그런데 안수집사로 선출된 사람 중 어떤 이는 아주 시큰둥했답니다. 교회에서는 장로, 집사, 권사 다 중요한 직분입니다. 하는 일들이 다를 뿐 입니다. 이 직분에 높낮이나 서열을 두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직분이든지 충성만 하면 됩니다. 목사로부터 모든 직분을 다 섬기는 직분입니다.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했습니다.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이런 일꾼들이 힘을 모으면 더 아름다워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의 사랑과 화평으로 전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 몸가짐, 눈빛 하나까지 신경을 씁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입니다. 초대교회 (예루살렘교회)는 이런 집사들의 공이 컸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순교했습니다. 기독교 역사에 첫 순교자는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스데반 집사였습니다. 순교의 첫 열매는 집사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통해 복음의 빛이 더 멀리 전해진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섬깁니다.

아울러 이웃을 섬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가 더러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 주인이 아닙니다. 청지기 입니다. 청지기는 무슨 일을 해도 자기 재산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주인의 것입니다. 청지기는 종입니다. 종은 일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을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어떤 직분도 자기를 위한 것이 없습니다. 삶의 목적까지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교장이 아닙니다. 교회란 믿는 사람(부르심을 받은)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은 당회장 목사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의 교회에 심부름꾼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이 “우리는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고 집사들의 할 일을 맡겼습니다. 요즈음은 집사라 하면 그 직분을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없어서 아니 될 직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물론 처음에 사도행전 교회에서 사도들이 교회목회, 행정, 재정관리까지 다 했습니다. 사람 숫자가 날로 많아집니다. 그들의 힘으로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차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에게 구제에 빠진 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좀 술렁이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생깁니다. 때에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노라 하지만 이런 일이 있어서 곤란하다. 우리(사도들)는 말씀 전하는(설교)것과 기도하는 일(넓은 범위에서 목회)에 전무합시다. 그리고 재정관리는 집사들에게 맡기자 해서 집사를 선택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물론 목사가 다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당회장은 목회에 전념해야 합니다. 당회는 교회 정책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재정은 제직회의 고유권한입니다. 교회에서 재정문제를 책임지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헌금 할 때도 장로님들 얼굴을 쳐다봅니다. 그러나 장로님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제직회원들 특히 집사들의 책임입니다. 그 중에 안수집사의 책임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목사가 설교나 성경공부를 통해 가르쳐야 됩니다. 몰라서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서리집사는 안수집사가 되기 전 단계, 안수집사는 장로가 되기 전 단계로만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서리집사나 안수집사의 하는 일은 꼭 같습니다. 교회 피아노를 산다. 땅을 산다. 수양관을 짓는다. 차를 산다. 할 때 이런 사람이 맡아서 책임 있게 처리해야 합니다. 원칙적으로 구제헌금은 제직들의 고유 업무입니다. 그들의 구제헌금을 해서 돕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다 이런 일들을 장로님들의 일로만 압니다. 그러면 “집사, 장로 돈 없으면 못 하겠네.”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형편에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어느 교회는 구제에 예산을 세우지 않습니다. 목회자가 필요하면 집사들에게 얼마가 필요하니 모아오라 한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느 예산이든지 재정은 제직들의 권한이자 책임입니다. 그래서 재직회의 각 부장은 1년 내내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요람에 다 나와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도행전 교회에서는 집사 세운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이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를 교회답게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모든 교인들은 그들이 직무를 잘 수행하도록 협조했습니다. 이러한 조직과 협조를 통해 교회가 성장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에서 여러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 집사님들 특히, 안수집사님들 수고들 많습니다.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데서 사랑과 희생의 땀을 쏟고 계심을 잘 압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수고를 아십니다. 그런데 사실은 저가 목회를 이런 방식으로 하는 것이 잘 하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구제하는 것이 집사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구제는 흩어 하여도 채워 주십니다. 넘치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손길을 외면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임무입니다. 구제는 우리가 교회 재정으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제금을 모야야 합니다. 우리는 주변을 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과 기관이 많습니다. 그들을 외면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돈 몇 만원이 소중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남을 위해 쓰면 빛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보람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나만 쓰기 위해 주신 재물이 나닙니다. 얼마 전 대구에 어떤 분이 사고로 뇌사 판정을 받았습니다. 가족은 그 분의 신장, 눈등을 다사서 목숨을 살렸다고 합니다. 항상 우리도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도어야 합니다. 구제합시다. 그리고 언제나 남이 하기를 기다리지 마세요. 먼저 하세요. 이렇게 작은 것을 어떻게... 부끄럽다고 생각하시지 마십시오. 거금도 하나님이 좋아하십니다. 몇 만원, 몇 천원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그 정성도 또한 보시는 것입니다.

맺는말

사도행전 교회 가 불일 듯 일어났습니다. 교회는 사랑으로 똘똘 뭉쳐졌습니다. 사도들도 신이났습니다. 설교에 교인들이 큰 은혜를 받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은 자신의 재산을 팔아 사도의 발 앞에 내어 놓았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교회는 성장해 갔습니다. 구제도 잘 했습니다.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구제에 빠진 일이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사도들이 그 많은 교인들의 사정을 알리 없지요. 그래서 사도들은 “우리는 말씀 전하는 것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하고 이 일을 할 사람을 뽑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구제, 교회재정을 관리했습니다. 우리들이 부르는 집사(deacon)라는 말도 섬긴다. 받든다는 뜻입니다. 집사는 재정, 구제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든 집사님들도 사도행전 교회같이 늘 주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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