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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항복(surrender)하라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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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고신일 목사 (기둥교회)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로마서 12장 1~2절) 

<목회기도>
 
부활과 영생의 소망으로 살게 하신 하나님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립니다.
인색함이나 억지로가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입을 열어 찬양합니다.
기도합니다. 말씀에 아멘합니다. 정성 된 예물을 드립니다.
혹 우리 중에 신령과 진정함 없이 왔다 하더라도
이 시간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예배에 하나되기 원합니다.
이 복된 시간, 사탄의 표적이 되지 않게 붙드시옵소서.
하나님을 만나고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하여 뜨거운 가슴을 갖기 원합니다.
회복의 기쁨을 간증키 원합니다.
치료의 표적을 발견키 원합니다.
하나님, 이 가슴 설레는 예배에 구경꾼이 되지 않게 하시고
산제물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기 원합니다. 태워지기 원합니다.
변화되기 원합니다. 능력받기 원합니다.
인터넷 중계 방송을 보는 이들, 카셋트나 비디오 테잎을 듣고 보는 이들에게도
같은 은혜 받은 간증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는 이들,
병들어 고생하는 환자들, 외로움에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도
주님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줄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지난 주간 좋은 일이 많으셨습니까?
 
저는 지난 주간 두 가지 일로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지냈습니다.
하나는, 부천에 짓는다는 주상복합건물에 투자하려고
전국에서 몰려들었다는 17만 여명의 사람들과 그들의 투자를 투기로 의심하여
'자금을 추적하여 세금을 부과하겠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렇게 투자하면 과연 돈은 버는지,
그렇게 해서 번다는 큰돈은 어디에 쓰려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우리 기둥교회 성도들도 거기에 관심이 많더군요.
어떤 분이 "목사님, 그곳이 굉장히 살기 좋을 거라는데
교회에서도 하나 받아서 목사님 사시는 주택을 옮기시면 어떨까요?" 하시더군요.
말로는 뭘 못합니까. 해 줘야지…
 
또 하나는, LG백화점 사고(2004. 4. 20 22:30분)로 인해
사망한 한 분 때문에 가슴이 아팠습니다.
이 설교가 인터넷을 통해 중계 되고, 설교문이 공개되기 때문에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사고로 인해 우리 기둥교회 성도 한 분이 별세하셨습니다.
주일성수하고, 십일조생활 잘 하던 분인데
교회에서는 그 분이 일가 친척이 없는 분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가족도 친지도 없이 혼자 외롭게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뉴스를 보고 담당교역자가 병원 영안실에 달려가 보니 많은 사람이 나타나서
서로 가까운 친척이라며, 형이다, 동생이다 하고 보상금에 신경쓰며 싸우더랍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여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답니다.
그렇게 가까운 사이였다면… 살았을 때,
혼자 외롭게 지낼 때는 왜 연락이 없었는지 ~ 기막힌 일입니다.
보상금에 신경 쓰며 서성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가지셨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여러분이 돌아가신다면 받게 될 보상금은 누가 갖게 될까요?
 
 
바르게 매여 있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이런 저런 사람과, 이런 저런 일들과 연결되어, 얽매여… 살고 있습니다.
그 얽매임에 대해서 병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매임병(stuckititis)이 있다고 합니다.
이 병은 아주 흔한 질병입니다.
사람들은 어디엔가 매여 있어야 편함을 느낍니다.
매여 있다가 풀리면 허전하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의 상실을 느낍니다.
이런 소속감이 없으면 외롭고 살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누구에게 매여 있다는 예속감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매여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매여 있을 만한 것에 매여 있으면 복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구속이 됩니다.
가족은 가정에 매여 있어야 정상이며 이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집에서도 아예 아내에게 매여 있으면 편합니다.
남편 안에 매여 있어야 좋은 것입니다. 서로 든든한 버팀목이 됩니다.
매이지 말아야 할 것에 매이는 것은 구속이며 불행합니다.
그리스도에게 매임은 사는 것이며 자유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매일 때 비로소 인간은 행복을 찾습니다. <참조, 국민일보 2003.10.29>
 
 
여러분은 어디에 매여 있습니까?
여러분이 매여 있는 것이 행복한 매임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될 때, 매일 때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우리는 바른 길을 가게 되고 진리 안에 살게 되고,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산다는 사람들 중에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수1:7)는 말씀을 외면한 채
하나님과 세상,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고
머뭇머뭇 하거나(왕상18:21), 겸하여 섬기는(마6:24, 눅16:13)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섬김 자를 오늘날 택하라"(수24:15) 고 명했던 것처럼…
"여호와만 섬기라"(수1:14) 하며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4:15) 했던 것처럼…
이제는 자신의 결단을 표현하며 살 때입니다.
왜냐하면 요즘 세상이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아리송"하고 "요지경"이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지 않고는 빛 되고 소금 되게 살기가 어렵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항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롬12:2)에 보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보시고 기뻐하실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말씀 따라'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말씀 따라' 산다는 말은
하나님께 항복(surrender)하고(굴복하고)
          순종(obedience)이라는 부드러운 말보다는
          복종(submission, obey)하고 산다는 뜻입니다.
"항복"(surrender)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나는 없습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 모든 것, 즐거움, 특권 등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항복]이나 [복종]이라는 단어는 사람들이 기분 좋아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리자가 되고 으뜸이 되기를 원하지
나중이 되거나 패배자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 가족들도 그랬고(마20:21, 막10:37)
오늘을 사는 우리들 대부분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학군, 더 좋은 선생님을 찾습니다.
 
우리 교회 어떤 분이 서울 강남으로 이사 간다고 인사하러 제게 찾아왔습니다.
제가 "왜 이사를 가십니까?"라고 그분께 물었더니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사갑니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부천에서는 교육이 안되는 지… 저는 그 말을 듣고 답답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강남으로 간다고 좋은 대학에 가고 장래가 확실하게 보장된다면…
빚을 내서라도 당장 이사가십시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2등도, 3등도 만족치 못하고 1등에 목말라 합니다.
다 못하고 한 과목만 잘했어도 칭찬 듣는 서양교육과는 달리
다 잘하고 한 과목 잘못하면 꾸중듣는 것이 우리나라 학생들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대하십니까?
 
오늘 같은 최고 지향적인 세상, 1등 아니면 패배라는 경쟁 문화가 판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포기하지 말라, 절대 포기하지 말라,
        항복하지 말라, 절대 항복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아 왔습니다.
그래서 양보하고, 배려하고, 순종하고, 항복하는 이야기 보다
극복하고, 쟁취하고, 성공하고, 정복하는 이야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 항복하고 복종해야 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고개 들고, 인정받으려 하고, 여전히 높은 자리에 앉으려 하고
여전히 자기 생각을 내세우려 합니다.
여러분, 교회의 <집사>, <권사>, <장로>가 계급입니까?
예수 믿어도 집사가 되어야 일이 잘 되고,
승진하면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면 출세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기둥교회는 금년 연말에 전교인들에게 권사/장로 임명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의 직분은 계급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고개 들고, 인정 받으려 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 하고, 자기의 목소리를 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구석구석에~, 끊임없이~
'내 생각을 버려라, 낮은 자리에 앉아라, 겸손하라…' 하며
반복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항복하고, 복종하며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자신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려움이나 의무감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하셨습니다(요4:23~24).
 
오늘 본문 말씀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진정한 예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예배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내어 드렸을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믿으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두려워하고 혼란스러워한다면
<전적인 항복, 전적인 복종, 전적인 헌신>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賞)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히 11:6) 했습니다.
 
하나님은 잔인한 노예 감독처럼 폭력을 사용해서
강제로 굴복시키려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처음 창조하실 때 인간에게 부여하신 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를 가진 인간은 자기 의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을 아버지로, 전능하신 창조주로 믿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섬기는 로봇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내어드리고 항복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나 성품을, 우리 각자의 특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의 삶의 운전석에 예수님이 앉으시게 하면 됩니다.
우리 삶의 길을 운전해 가는 것을 내 지혜와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 안에 계셔서 내 삶의 길을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면 됩니다.
그러려면 내 의지와 기쁨, 특권 전부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항복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항복은 시간(moment)이라는 개념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하고,
또한 연습(practice)이라는 면과 연결시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을 주일 예배시간에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항복의 삶은 매순간 이루어져야 하고, 평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눈부신 빛을 보고 쓰러진 바울은
그의 삶에서 항복의 순간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항복한 것은 단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고전15:31).
매일 매 순간 세상 법대로 살려는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눅9:23)
 
 
하나님은 보호하시기 위해 규제하십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누리는 행복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구촌 한 구석에서는 먹지 못해 말라죽어 가고 있고
한 구석에서는 배가 나와 걱정이 되어 에어로빅을 한다느니,
헬스클럽에 다닌다고 소란입니다.
풀죽이라도 먹으면 살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찬이 입에 안 맞아 못 먹겠다고 심술입니다.
어떤 사람은 대학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서 몸부림치고
어떤 사람은 자기가 다니는 학교가 마음에 안 든다고 불평입니다.
 
그밖에도 우리가 갖는 대표적인 불평은
우리를 규제하는 법이 너무 많다고 투덜댑니다.
술을 먹고 운전하다 사고를 내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음주운전 단속을 합니다.
그런데 한 잔쯤은 괜찮지 않느냐고 투덜댑니다.
 
성경에도 "하지 말라(don't)는 금지의 명령이 많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성경엔 하지 말라는 말이 왜 그렇게 많습니까?"
"성경 말씀대로 어떻게 살라는 말입니까?"라고 투덜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하지 말라고 합니까?
그것은 보호하는 복(福)의 제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규제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의 품안에 두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에게는 자유의지를 부여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난 인간에게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루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의 최초의 인간이 범죄한 원인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야보고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욕심이라는 것은 "꿈,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려는 비전(vision),
의지에 불타는(열망 passion)" 과는 다른 것입니다.
욕심은 정당한 노력 없이 얻으려는 것
자신이 해서는 안될 하나님 영역을 침범하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고
하나님 이외의 소리, 사탄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물론 지금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사탄의 소리가 자꾸 들려옵니다.
"한 번만 해봐. 한번만"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죄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보호하시기 위해,
복 주시고 사랑을 베푸시기 위해 규제하십니다.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 앞에 항복한 삶을 살기로 결심할 때
그에 따른 시험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감당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에 보면 "겸손히 주를 섬길 때 괴로운 일이 많으나
                      구주여 내게 힘 주사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생을 사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음으로 천하보다 귀한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값은 "천하보다 귀한", 값을 매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가지시고 당당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살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람,
천하보다 귀한 사람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따라 합니다. <나는 천하보다 귀한 사람이다>
 
자기의 값을 알아야 합니다. 값을 모르면 한심한 일을 하게 됩니다.
 
영국에서 평생 구걸만 하던 한 할아버지가
어느 집 주인을 찾아 햄버거 사 먹을 돈을 얻은 뒤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먼지 묻은 바이올린을 줬습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주인은 바이올린의 먼지를 닦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1704년에 제작된 수십 억원을 호가하는 바이올린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노인이 바이올린의 가치를 알았다면 굶주릴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뭘 지니고 있었는지 몰랐기 때문에 평생 구걸 인생을 산 것입니다.
[참조, 국민일보 2003. 11. 8. ]
 
우리는 노인 같은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알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치 있는 사람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면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 됩니다."
 
[기도], [영적 훈련과 성장]이라는 책을 쓴
리챠드 포스터(Richard Foster)를 아십니까?
제가 Azusa Pacific 대학교의 객원교수로 일할 때
저와 함께 객원교수로 임명 받아 일했던 분입니다.
 
포스터(Richard Foster)는 미국에서 유명한 목사요, 교수이며 저술가입니다.
그가 유명하게 된 것은 대학시절의 한 충격적 체험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청년봉사단으로 방학동안 알래스카 북극권 코체부에
고등학교 교사를 건축하는데 그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하수도 공사를 위하여 땅 파는 일을 하였습니다.
북극권의 땅은 녹았다지만 무척 딴딴하여 고된 일이었습니다.
리처드는 짜증이 나고 경솔히 봉사단에 자원한 것을 후회하며
억지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현주민 에스키모 아저씨가 곁에 와서 함께 일했습니다.
그의 손은 너무 거칠어 짐승의 가죽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줄곧 웃으며 콧노래로 찬송가를 계속 부르고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일손을 멈추더니 불쑥 리처드에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이런 곳에 학교를 세우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자네가 지금 이 땅을 파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야."
 
북극지대에서 짐승처럼 일하며 살아가는 무식한 에스키모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땅을 판다는 말을 들을 때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답니다.
그동안의 자기는 모든 일이 자기를 위하고 자기 장래를 위한다는 생각까지는 했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높은 생각을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북극지대에서 만났던 이름 없는 에스키모,
한 가지 한가지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짐승 같은 손을 가졌던 에스키모, 얼마나 고귀한 크리스챤입니까?
그 후에도 리처드 포스터는
가끔 그 에스키모를 그려보며 신앙생활의 본을 삼는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지난 주간을 보내셨습니까?
우리는 1등 되기 위해, 높아지기 위해… 승리하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위해 낙담하지 않는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적인 타락의 자리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고생스러운 일을 겪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살다가 죽음을 맞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수하여 오랫동안 살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고
특별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러한 욕망이 더 크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까지도 잡아먹고
몸에 좋다면 종류를 불사하고 먹는 게 아닐까요?
그러나 아무리 보약을 먹고 영양식을 해도 결국 인간은 죽음과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 힘들고 전쟁터와 같은 세상에서 싸움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싸우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선한 싸움"을 하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너무 과한 것을 요구하시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쉽고 악한 방법이 많은데 우리에게는 오직 선한 싸움을 하라고 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반칙이나 부정의 방법을 보면서도 우리는 선하게 싸우라고 하십니다.
억울하게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정당하심은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일시적인 승리를 했더라도
그 기쁨이 영원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선한 싸움이 불의한 싸움을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은 불의가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은 정의가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선을 행하여 고난받음이 악을 행하여 고난받음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을 택하시겠습니까?
비록 손해나고 눈물나는 일이라도 하나님이 명령하신 선한 싸움을 하시기 바랍니다.
주안에서 헛된 고난은 없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완전히 항복 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정확한 날자는 기억할 수 없지만 1999년 1월에
미국 LA북쪽 Van Nuys에 있는 Church on the Way 라는 교회에 갔습니다.
그 날이 수요일이어서 수요일밤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미국교회는 주일 밤예배 안드리는 줄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부흥되는 미국교회들은 주일밤에 모임이 있습니다.
부흥회는 교회들은 주중에도 모여 예배 드립니다.
Church on the Way 교회는 수요일 밤예배를 드리는 부흥되는 교회입니다.)
 
당시에는 Dr. Jack Hayford 라는 목사님이 담임목사님으로 있었는데 은퇴하셨고,
지금은 Dr. Scott Bauer라는 분이 담임목사님으로 있습니다.
그날 예배를 드리며 찬송을 부르는데 영어로 찬양을 부르니
저는 자막을 따라 읽기도 바빴습니다.
그러더니 우리 찬송가 71장 [All to Jesus I surrender,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71장 찬송을 부르기에 헌금시간인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71장 찬송을 헌금시간에 많이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 없이 바치네>라는 찬송을
한 번, 두 번 부르고, 10분, 20분 계속 부르면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손을 들고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후렴 부분에 "I surrender all"이라는 가사는
"나는 하나님께 항복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포기합니다.
내 영광, 내 기쁨, 내 특권을 다 포기합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날 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 찬양을 계속해서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살기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그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우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나는 포기합니다. 항복합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이 고백이 날마다 일어나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길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항복하는 믿음의 삶, 승리의 삶,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아침에 마음에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포기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 항복합니다. 항복을 고백하며 사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4년  4월  25일 주일 낮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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