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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좋은 땅인가? (막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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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수영 목사 (새문안교회)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나라에 관한 가르침을 주신 일들 중의 하나를 우리에게 알리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은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더라" 전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의 비유말씀을 주신 곳은 가버나움과 가버나움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타브가(Tabgha)라는 마을의 중간에 있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원형극장처럼 생긴 장소였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곳은 완만하게 경사진 땅으로 갈릴리호수가 들어와 있어서 아름다운 만( )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서 비유를 들어 하나님나라를 가르치셨다고 해서 "비유의 만(Bay of Parables)"이라고 불리는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과학자들은 사람의 목소리가 다른 아무런 장치 없이도 호숫가에 앉은 수천명의 군중에게 힘들지 않게 전달될 수 있음을 증명한 바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거기 모인 사람들이 너무 많았으므로 예수님께서는 물가에 떠있던 배를 타시고 호숫가 육지에 앉은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의 요지는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가 여러 종류의 땅에 떨어질 수 있고, 그 땅에 따라서 씨 뿌림의 결과도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의 의미는 조금 뒤인 14-20절에 그 설명이 덧붙여져 있음으로 별 어려움 없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선 3절부터 보면 예수님께서는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하셨고, 14절에서는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뿌려지는 사람들의 마음밭을 크게 네 종류로 구별하셔서 여러 가지 땅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4절에서는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고 하셨고, 15절에서는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는 씨가 길가에 떨어진 경우를 말합니다. 길가라는 것은 다져진 땅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씨가 흙 속에 파묻히지 못하고 그냥 있으므로 새들이 와서 먹어버리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들으면서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튕기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사탄이 노략질하기 제일 쉬운 사람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베드로처럼 훌륭한 신앙고백을 했던 사람도 일시적으로 자기 생각이나 자기가 원하는 바와 다르다고 주님의 말씀에 맞섰을 때 곧바로 사탄의 노리개가 될 수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다니시던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막8:28). 그 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멋진 대답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시고 비로소 당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막8:31).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며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16:22)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돌이켜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막8:33)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두 번째 종류의 마음밭에 관해 예수님께서는 5-6절에서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다"고 비유하셨으며, 16-17절에서는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밭의 예를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넘긴 가룟 유다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세 번째 종류의 마음밭에 관해 예수님께서는 7절에서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다" 하셨고, 18-19절에서는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라 하셨습니다. 재물에 대한 애착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의 예도 우리는 성경 속에서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꿇어 앉아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여쭌 일이 있습니다(막10:17).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10:18) 하신 후,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막10:19) 대답해주셨습니다. 그러자 그는 또 말하기를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막10:20) 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보시고 다시 말씀하시기를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셨는데, 그 사람은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떠나간 것입니다(막10:22).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마음밭의 종류에 관해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8절에서는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셨고, 20절에서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하셨습니다. 떨어지는 씨마다 무성하게 자라고 크게 결실하게 만드는 좋은 땅으로 비유된 마음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받아 삶으로 열매 맺게 하는 참 믿음의 마음밭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땅으로 비유하여 말씀하신 우리의 마음밭은 네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고 통통 튕기는 아스팔트길 같은 마음밭입니다. 다른 하나는 일단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깊고 튼튼한 신앙으로 뿌리 내리지 못하여 환난이나 박해 등 조금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는 곧 넘어지고 마는 사람의 마음밭입니다. 또 하나는 말씀을 받아들여 그 믿음이 어느 정도까지는 자라는 것 같고 뿌리 내리는 것 같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믿음의 성장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그래서 믿음의 결실을 보지는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받아 삶으로 열매 맺게 하는 마음밭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밭은 어디에 속하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의 비유말씀은 한가하게 들어 넘길 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3절에서 보듯이 비유말씀을 시작할 때에도 "들어라" 하셨고 9절에서 보듯이 비유말씀을 끝내시면서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9절)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 말씀을 듣는 일이 긴박하고 중요함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듣는다는 것은 단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말씀하시며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너는 어떤 마음밭을 가졌느냐? 너는 좋은 땅이냐? 너는 내가 그동안 그토록 뿌려준 말씀으로 얼마나 되는 결실을 하였느냐?" 묻고 계신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받아들여지지도 열매 맺지도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악조건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는 수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많은 거부와 방해를 받으면서도 곳곳에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하고 있으며, 세상의 저항이나 무관심 속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확실히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오고 있다는 것은 말씀의 사역이 수확할 때, 하나님의 심판의 때, 하나님의 나라의 완성의 때가 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때는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서 우리의 삶을 결산해야 할 때입니다. 그 때에 모든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추궁 받을 것입니다. 그 때가 닥치기 전에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함과 감사함으로 주시는 대로 쏙쏙 받아들여 알뜰히 결실하게 하는 좋은 땅인지"를 지금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지혜로운 일일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한 마디도 남김없이 다 받아들여 내 영의 양식으로 삼아 나의 믿음이 더욱 깊게 뿌리 내리게 하고 소망 가운데 성장을 거듭하며 사랑의 열매를 맺었는가? 열매를 맺었다면 얼마나 큰 열매를 맺었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만큼의 달란트를 또 남겨 하나님께 드리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를 땅 속에 파묻고 지내는 게으른 믿음의 삶을 계속하는 것은 아닌가? 아니면 지금까지 믿노라고 하긴 했지만 십자가 지기 싫고 어려운 일 당하기 원치 않으며 세상의 욕심과 유혹과 염려를 떨쳐버리지 못해서 믿음이 계속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열매 없이 시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 아니면 말씀이 한 마디도 들어와 박히지 않고 통통 튀는 아스팔트길 같은 날라리 믿음으로 살고 있지는 않는가?

말씀의 씨를 뿌리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뿌리신 말씀의 씨가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이도 사실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밭에 말씀을 뿌리셔서 그가 원하시는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게 하시도록 좋은 땅으로 우리의 마음을 가꾸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해서도 안 되고, 온갖 근심과 걱정과 세상의 사고와 욕심과 유혹 때문에 그 말씀이 열매를 맺지 못하게 가로막는 것을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거칠고 메마르고 가시덤불로 뒤덮인 땅같이 되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모든 근심과 걱정과 세상의 사고와 욕심과 유혹에서 우리를 해방시켜야 합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시켜주시기를 끊임없이 간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밭에 깔린 돌들도 다 제거해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돌맹이에서부터 교회의 모든 것에 대한 막연한 부정적, 비판적 시각의 돌맹이, 설교자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선입견과 미움의 돌맹이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모든 돌맹이들을 뽑아 던져야 합니다. 그러한 돌맹이들이 마음밭에 박혀있는 한 그 어떤 하나님의 말씀도 귀에 은혜롭게 들리지 않을 것이고 마음 속에 들어와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는 더더욱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그런 돌맹이들을 우리의 마음밭에서 다 제거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스스로도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말씀의 은혜 속에 잠기는 복된 삶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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