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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엘리야의 하나님 (왕상 18: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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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이봉 목사 (상도교회)

□ 엘리야의 하나님 

(일곱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
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열왕기상 18:44-46)   

◈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북왕국 아합왕(B.C.876-854) 시대에 예언하였던 유명한 선지자이었습니다.
◈ <엘리야>란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하나님}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그 어느 선지자 보다 더 확실하게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않고 회오리 바람에 실려 승천한 선지자이기도 합니다.

아합왕은 악한 왕으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아합왕은 이방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 그가 섬기는 바알신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왕과 백성이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숭배함으로 하나님은 그 땅에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합왕은 완고하여 엘리야의 말을 청종치 않고 어느 신이 참 신인지 가려내자고 하여 바알선지 4백명과 아세라의 선지 4백 5십명을 데리고 갈멜산에 올라가 송아지로 재물을 삼고 각기 자기의 신에게 기도하여 불로 응답함을 보
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자기의 우상 앞에서 불을 내려 달라고 몸을 상하게 하면서 부르짖었으나 끝내 무응답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여호와한테 부르짖을 때 불이 내려와 제물과 도랑의 물까지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 850명을 기손 시내로 끌고 내려가 모두 죽여 대 승리를 얻게 하였습니다.(왕상18:19-40)
오늘 본문을 통하여 엘리야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징치(懲治)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징치(懲治)란 {징계로 다스린다}는 뜻입니다.
징치란 {징계로 치료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마치 말 안 듣는 자식을 그대로 내버려두는 부모가 아니란 뜻입니다.

요즘 신세대의 부모들이 자식 사랑한다고 전혀 상관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식당에서도 그렇고, 공공장소에서도 자유분망하게 뛰어 다니는 자식을 아무런 제재도 없이 내버려두는 신세대 여인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아무렇게나 굴어도 내버려두는 무관심한 하나님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일수록 그릇된 길로 들어설 때는 반드시 징계하는 하나님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 하나님은 징계하는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2:6 "주께서 그 사랑 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라고 하였고, 또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권면하는 말씀이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징계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로 방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한 것을 끝까지 지키는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을 끝까지 지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지 않는 한, 그들에게 복을 내리어 땅에서 풍성한 소산을 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태평을 누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들이 당신의 법을 떠나 다른 우상을 섬기고 따라갈 때마다 징치(懲治) 하였습니다.
그 징치의 수단이 언제나 세 가지였습니다.
즉 ① <기근>과 ② <질병>과 ③ <전쟁>이었습니다.

◈ 기근으로 징치 할 때는 비를 내리지 않았거나, 
◈ 메뚜기나 우박으로 수확하기 전에 과실을 거두지 못하도록 하였거나, 
◈ 홍수가 범람하여 옥토가 자갈밭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기근으로 깨우쳤습니다. 
지금도 보십시오.
우상 섬기는 나라들 치고 배고픔을 면한 나라들이 거의 없습니다.
아시아 지역만 보더라도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 대부분이 아직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복음이 들어오기 전까지 우상을 섬겼던 우리나라입니다.
요즘 와서 보릿고개가 없어졌지 40년 전만 해도 먹을 것이 제일 큰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오면서 부터 미신타파 운동이 벌어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깨어 새로운 세계관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숱한 순교자들의 피가 이 강산을 물들인 결과로 이제 후손들이 이만큼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면서 교만해지면 가난으로 징계하십니다.
그렇게하여 교만했던 마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지난번 IMF로 겸손을 배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심정을 몰랐던 사람들도 자신이 직접 경험함으로 이웃의 아픔을 깨닫게 된 일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교훈을 다시 우리에게 깨우칩니다.
아합왕이 철저하게 바알신을 믿는 여자와 결혼하여 그가 왕후의 자리에 앉았으니 자연히 아합왕도 바알 신상을 궁궐 내에 세우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고관들도 모두 왕후에게 줄을 대어 출세해 보려고 온통 바알신을 추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 땅에 비를 내리지 않았습니다.
먹을 것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교훈이 무엇이겠습니까?
흉년이 들어먹을 것이 없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북한이 해마다 홍수로 범람케 하여 농토가 자갈밭이 되게 함으로 갑자기 먹을 양식이 없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우연한 자연의 현상이라고만 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재해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는 하나님의 징치의 교훈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용천에서 큰 폭발 사고로 수천명이 희생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있습니다마는 제일 중요한 에너지를(그것도 휘발유와 가스차가 충돌하였다니) 저렇게 폭파시켰으니, 그것이 우연한 일이라고만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가끔 남한에서도 가뭄으로 재난을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우연한 자연현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옛날 임금들은 가뭄이 들면 손수 죄인처럼 제복을 입고 기우제를 지냈습니다. 그때는 그래도 왕이 국민이 고달프면 자기 탓이라는 생각쯤은 했었습니다.
요즘은 모두 네 탓이라고 하는 세대에 비하면 그래도 양심은 살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한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 경제가 기울어질 때, 그리고 풍성함의 조건들이 매말라질 때, 원망하거나, 짜증만 부릴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게서 무슨 잘못된 행위들이 있지 아니했는가?
내가 바알 신으로 기울어졌던 일은 없는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현대적 의미에서 바알 신은 무엇이겠습니까?
무절제한 쾌락과 향락의 신입니다.
Sex와 Mammon의 신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부채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재정경제부가 23일 발표한 것을 보면, 국가가 갚아야할 빚이 166조원이라고 하였습니다. 국민 1인당 342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지난 2003년 한 해 동안 무려 32조 1천억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들어선 후 1년간의 나라 빚이 그렇게 불어났다는 결과입니다.
이 나라 경치 좋은 곳곳마다 러브호텔이 들어차 있음이 무엇을 상징합니까?
이것이 바알과 아세라 신당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쪽으로 너무 기울어졌던 일은 없었는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은 돌이키지 않으면 쓸어버리는 하나님입니다. 

아합과 추종자들은 그 땅의 기근의 원인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 돌렸습니다. 본문 16절에서 18절을 보면 "오바댜가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매 아합이 엘리야를 만나려 하려 가다가 엘리야를 볼 때에 저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
게 하는 자여, 네냐?"고 했습니다.
여기에 엘리야는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을 좇았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가뭄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시키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모두 자기 탓이란 사람은 없습니다.
대통령도 그렇고, 여당도 그렇고, 야당도 그렇습니다.
모두 자기의 책임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떠나면 그 땅이 기근에 허덕이게 됩니다.

여러분!
유럽의 나라들이 왜 경제적으로 잘 사는 나라들이 되었습니까?
모두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애쓴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들 선조들이 모두 하나님을 더 가까이 했기 때문입니다.
◈ 죄가 관영해지면 부(富)가 편중됩니다.
◈ 정의가 사라지고 불의만이 득세합니다.
그래서 극도로 있는 자들이 사치하게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집니다.
그러다가 나라는 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는 역사의 교훈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이나, 가정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기근시에 깨닫고 돌아서면 용서하지만, 끝내 완악하여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쓸어버리는 하나님입니다.
즉 심판하는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노여움은 잠깐이고 돌아오면 다시 회복시킵니다.


3. 그러므로 엘리야의 하나님은 역경 중에서도 소망의 하나님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엘리야는 비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손바닥만한 한 점의 구름을 보면서 엘리야는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고난 중에 함께 하고, 역경 중에 동행하고, 절망 중에서 크게 역사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향한 소망은 인내 위에서 결실을 봅니다.
그 인내는 또한 확실한 믿음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은 영원토록 있어야할 신앙인의 보석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자기에게 소망 중에 인내하면서, 믿음으로 기도하는 자들에게 함께 합니다.

우리 민족의 현실에서 바알신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아무리 많아도, 엘리야의 하나님은 변함 없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최후의 승리를 얻게 합니다.
그러므로 낙심치 말고 끝까지 역경 중에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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