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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 전환기에 승리하는 법 (삿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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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한규 목사 (분당샛별교회)

< 전환기를 극복하는 삶의 지혜 >

이번 총선 과정과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환기에는 기대도 있지만 막연한 불안도 있습니다. 환절기에는 독감에 잘 걸리듯이, 전환기에는 사회가 더욱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환절기를 잘 대처하면 더욱 좋은 건강과 체력을 얻게 되듯이 전환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면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살다 보면 인생에도 전환기가 찾아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현재처럼 살면 길이 전혀 없을 것 같고 미래가 암담합니다. 지난 세월이 아깝게 느껴지고 "내가 뚜렷한 목표도 없이 시간을 낭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그때가 인생의 전환기입니다. 그런 전환기에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전환기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몇 가지 자세를 교훈 받게 됩니다.

1. 하나님의 인도를 앞세우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모세가 죽은 후에 후계자 여호수아는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31명의 왕을 굴복시키며 강력한 리더십을 확보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여호수아가 110세에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리더십의 위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 물은 것'이었습니다.

리더십에 위기가 왔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찾아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환기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예배와 기도입니다. 전환기에는 문제가 크게 보일 때입니다. 그렇다고 그 문제에 집착하면 더욱 문제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런 때에는 오히려 문제를 외면하고 하나님께 더 집중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지난주일 그분은 일주일 동안 더럽혀진 마음을 깨끗하게 해보려고 아침 일찍 통도사로 가서 법당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법당에 앉아 마음을 잡으려고 하는데 눈앞에 떠오르는 영상은 불상이나 불경이 아니라 휴게소에서 마주친 한 여인의 궁둥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법당에서 기도했습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부처님! 궁둥이를 잊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렇게 기도할수록 궁둥이는 더 눈앞에 선하게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궁둥이를 잊어야지!"라고 다짐하면 할수록 마음이 더 간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마음을 바꿔 "사람이니까 그런 마음도 있겠지" 하고 받아들이니까 비로소 궁둥이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문제에 집착하면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집니다. 무엇이 독인 줄 알고 그 독을 떨치려고 애쓰면 그 독성은 더욱 강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 문제와 독은 연약한 인간이기에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그냥 무시해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그 문제와 독은 제 풀에 지켜서 스스로 떨어져나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에 지나치게 달라붙지 마십시오. 때로는 문제에서 떨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는 멀리 떨어져 봐야 비로소 둥글게 보입니다. 그처럼 떨어져서 보면 오히려 진리가 보이고, 해결방법이 보이고, 때로는 문제조차 아름답게 보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에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그래도 떨어져서 보면 지구가 얼마나 아름답게 보입니까?

여러분! 문제와 의도적으로 떨어지고, 문제를 억지로 외면하십시오. 때로는 꽉 쥔 손을 펴고, 내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찾아와 주셔서 가장 선한 하나님의 지혜로 채워주시고, 친히 가장 선한 길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남편도 놔주십시오. 시어머니가 남편을 붙잡으려는 마음도 이해하십시오. 신앙적인 것만 제외하고 시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남편을 놔주면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자식을 놔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평강과 위로가 내 안에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커피 한 잔을 타서 커피향기를 음미하며 "다 그럴 수 있지. 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지. 나도 그 입장이 되면 그랬을 거야."라고 하면서 문제에서 탈출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커피향기보다 더 좋은 기도의 향기가 있습니다. 문제에서 떨어져 기도하며 하나님께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어려움도 능히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입니다.

2.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전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가장 먼저 무엇을 물었습니까?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31명의 왕을 굴복시켰지만 여전히 정복해야 할 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정복하지 않고 각 지파에게 땅을 배분하면서 안주하는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안주하면 그 다음부터 자연히 나태와 타락이 따라오게 되는데, 그런 상황에서 여호수아까지 죽게 되니까 전환기의 위기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전쟁을 결심하고 하나님께 "어느 지파가 먼저 나서서 가나안 사람과 싸울까요?" 하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그처럼 위기 때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변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전환기의 혼란은 "변해야 산다"는 싸인입니다. 그러므로 죽든지 살든지 새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변화는 힘들지만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변하면 처음에는 거북하지만 적응이 되면 그 다음에는 그만큼 인생의 폭이 넓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이 머리를 1년 넘게 길렀습니다. 머리가 길어서 불편했지만 자르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요새 사는 것이 힘들어지면서 마음이 심난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싶어서 머리부터 자르자고 결심하고 미용실로 달려갔습니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 아까운 마음이 있었지만 "머리는 또 자란다. 미련을 버리자." 하고 편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머리를 다 잘랐습니다. 그런데 거울을 보니까 자기가 아니었습니다. 너무 어색했습니다. 남들은 말했습니다. "머리 자르니까 더 어울린다." 그러나 자기는 어울리지 않고, 어색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 타일렀습니다. "이왕 자른 거 어떡해! 도로 붙일 수도 없고, 이상해도 할 수 없지." 그리고 스스로 위로했습니다. "봄인데 이 정도면 됐지. 괴물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되지. 잘 했어!"

그 뒤로 4일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나서 거울을 보니까 더 이상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4일 전에 어떤 머리를 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겨우 4일 지났는데, 이제는 지금이 더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그 일을 통해 그녀는 자기를 다스리는 법을 조금 배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변화는 조금 두렵기는 합니다. 힘도 들 것이라는 예상도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는 길은 있습니다. 사하라 사막에도 생명체가 살고 있습니다. 65종의 포유류와 90종의 조류가 살고 있고, 그 중에서 24종의 포유류는 오직 사하라에만 살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변화하려고 하면 죽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워서 가만히 있기 때문에 죽는 것입니다.

항상 더 높은 꿈과 희망을 부여잡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본문 2절에서 하나님께서 유다가 올라가라고 하시면서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다"고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꿈과 희망을 향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언젠가 그 꿈을 붙들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3. 더욱 협력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가 먼저 올라갈까요?" 하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본문 2절에서 "유다 지파가 올라가라! 내가 그 땅을 그 손에 붙였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유다 지파는 군사 수가 제일 많고 전투력이 강했기 때문에 항상 싸움의 선봉에 서고, 항상 어려운 일에 먼저 헌신했던 지파였습니다. 결국 유다 지파는 왕이 나오고 메시야가 나오는 가장 축복 받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처럼 헌신에 앞장서면 하나님께 그 가문에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유다가 앞장서라!"고 했을 때, 본문 3절 말씀을 보면 유다 지파는 강한 전투력이 있었지만 시므온 지파에게 나의 제비 뽑아 얻은 땅에 함께 올라가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고 합니다. 그러면 너의 제비 뽑아 얻은 땅 정복에 나도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결국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와 함께 올라가서 강력한 성 베섹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동역의 중요성을 잘 알려줍니다. 아무리 위대한 하나님의 종도 혼자 일하려고 하면 탈진하게 됩니다. 엘리야가 왜 탈진했습니까? 혼자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7,000명을 남겨두었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종도 혼자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1992년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 선교 연맹(Christian & Missionary Alliance in USA) 출신 목사로서 저는 한국에 교회를 처음 개척한 1호 목사였기 때문에 정말 외로웠습니다. 당시에 한국 장로교 통합측과 합동측 교회만 해도 각각 4천 개가 넘어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한 거대한 인프라 속에서 서로 이끌어주며 목회하는 목사님들이 한편으로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귀국해 보니까 우리 나라의 교단의 벽은 나바론의 요새처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고, 평신도들도 "장로교회! 감리교회!"라는 타이틀을 중시했습니다.

전 세계 C&MA 에 소속된 교회가 3만 5천 개가 있고, 미국에만 2천 개 교회가 있으며, 파송한 선교사가 1200명이나 되는 선교와 성결을 중시하는 거대한 교단이지만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일반 평신도들에게 교회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 역사적으로 성결교회와 순복음 교회가 저희 C&MA에서 파생되어 나온 교단이기 때문에 그저 "성결교회와 순복음 교회의 뿌리가 되는 교단입니다"라고 장황하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이단이 아니고 건강한 교회라는 사실을 알리는 작업은 처절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우리 C&MA 선교 동맹의 창시자인 심슨(A.B. Simpson) 목사님이 지은 찬송가가 우리가 쓰는 찬송가에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133장(어저께나 오늘이나), 408장(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456장(주와 같이 길 가는 것), 498장(은혜 구한 내게 은혜의 주님), 530장(네 병든 손 내밀라고)입니다"라고 설명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목회를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한 사람씩 동역자를 붙여주셨고, 특별히 인터넷을 통해서 선교에 뜻을 가진 성도들이 초교파적으로 외롭게 목회와 선교 사역을 하고 있는 저의 기도 후원자들이 되어 주셨습니다. 비록 소수의 인원이지만 그분들의 동역이 없었더라면 저는 한국 사역을 포기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시선을 세계로 돌려야 합니다. 선교는 주님의 최후의 명령이고, 가장 중요한 지상명령입니다. 우리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때 '시간(카이로스)의 끝'도 오게 될 것입니다. 그 중요한 선교를 혼자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선교 동맹'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선교 동맹에 여러분들도 몸과 마음과 기도로 동참해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이해하고 용납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

하나님의 사역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협력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 이해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참 다양합니다. 은사도 다르고, 성품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릅니다. 그것은 서로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처럼 서로 다른 것이 오히려 필요한 줄 알고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하고 용납할 때 우리는 전환기의 상황을 넉넉하게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어느 날, 몸 지체들이 비상대책회의를 열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코가 일어나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금처럼 경기가 어려운 때에 우리 중에 혼자 놀고먹는 못된 백수가 한 놈 있습니다. 바로 저하고 제일 가까이 사는 입입니다. 그 입은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는 혼자 다하고, 먹고 싶은 음식은 혼자 다 먹습니다. 이런 의리 없는 입을 어떡하면 좋습니까?"

그때 발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저도 입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 주인이 얼마나 무겁습니까? 그 무거운 몸으로 몸짱 만들겠다고 뛰니까 발이 아파 죽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나 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입이 혼자만 많이 먹어서 제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손도 말했습니다. "게다가 입은 건방집니다. 자기가 먹을 때 혼자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개나 닭을 보세요. 그것들은 자기가 스스로 먹을 것을 주워먹는데, 입은 날 보고 이거 갖다달라 저거 갖다달라 심부름을 시키고 자기만 먹습니다. 정말 메스꺼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때 눈이 말했습니다. "우리 이렇게 비판만 하지 말고, 행동을 합시다. 앞으로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보지도 말고, 냄새 맡지도 말고, 가져다주지도 맙시다."

그 제안이 통과되어 그날부터 입을 굶겼습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자 손과 발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눈은 앞이 가물가물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코는 온통 먹을 것 냄새로 가득 차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조용히 있던 입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러면 우리가 다 죽습니다. 제가 저만 위해 먹습니까? 여러분들을 위해 먹는 것입니다. 먹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입술도 깨물고, 혀도 깨뭅니다. 그러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협력하며 삽시다." 그 말에 다른 지체들도 수긍을 하고 예전처럼 맡은 일을 해서 건강하게 잘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의 은사를 인정하고 서로 용납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이해력입니다. 이해력이 어디에서 옵니까? 말씀에서 옵니다. 저는 평신도 때 가끔 고린도전서 12장에 나오는 9가지 은사 중에서 왜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제일 먼저 언급되었는지, 왜 그것이 세 번째로 언급된 믿음의 은사보다 앞서 언급되었는지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지혜의 말씀이란 '말씀의 이해력'이라는 의미가 있고, 지식의 말씀이란 '말씀의 수용력'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저는 그 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의 중요성을 목회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회하면서 보니까 사람에게 이해하는 마음처럼 중요한 것이 없는데, 그 이해하는 마음이 바로 말씀에 대한 이해력과 수용력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결국 보면 사랑하는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도 이해력이 있을 때 나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이해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이해력이 없으면 그 다음에는 대책이 없습니다.

어느 날 유비와 관우와 장비가 함께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그때 관우가 "야! 여기서 기다려! 내가 표 사 올께." 하고 매표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매표소 쪽에서 관우의 고함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이 웅성거렸습니다. 유비와 장비가 급히 매표소 앞으로 달려가니까 거기에서 관우가 매표소 직원의 멱살을 움켜쥐고 난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유비와 장비는 관우를 뜯어말리며 "왜 싸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관우는 계속 분이 풀리지 않는 듯이 씩씩거리며 "저 짜식이 조조만 할인된다고 하잖아! 아주 나쁜 놈이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해력이 없으면 대책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거룩한 이해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남을 이해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 이해와 협력의 정신을 가지고 남을 높여주며 살아야 우리는 인생의 전환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정리해야 할 것을 과감히 정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가 어디를 공격합니까? 4절 말씀을 보면 '베섹'이라는 지역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베섹에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 1만 명을 죽이고, 5-6절 말씀을 보면 베섹의 왕인 아도니 베섹을 잡아 그 손과 발의 엄지가락을 끊어버렸습니다.

그러자 7절 말씀에서 베섹이 탄식합니다. "내가 옛적에 70명의 왕을 굴복시키고 그 엄지가락을 끊었는데, 이제 내가 그 행한 대로 받는구나!"하고 탄식하며 예루살렘까지 끌려가서 거기서 죽었습니다. 이 아도니 베섹의 말을 보면 베섹은 한때 대단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지역을 정복하지 못한 채로 남겨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환기를 맞이해서 사회적 단합을 위해 그곳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베섹'은 '미해결 과제'를 상징하는 장소입니다. 삶의 혼란기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고, 정리할 것을 정리하는 자세입니다. 분명히 정리해야 할 것인데 그것을 정리하지 못하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기 힘듭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가 무엇입니까? "숙제 먼저 하고 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숙제도 잘 되고, 놀 때도 편하게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주일 말씀 준비를 월요일부터 하면 얼마나 잘 되고, 마음이 편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금요일부터 준비하면 깊이 우러난 말씀을 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해야 할 것은 먼저 해야 그 다음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정리해야 할 것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정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쓴 뿌리를 제거해야 합니다. 유다 땅에 있었던 베섹은 우리 영혼에 있는 쓴 뿌리와 똑같습니다. 영혼의 쓴 뿌리는 탐닉, 성벽, 우월감과 열등감, 그리고 나쁜 습관을 말하는데 인생의 전환기에는 그 쓴 뿌리를 과감히 제거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앞에 새로운 내일이 펼쳐질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많은 질병의 원인이 쓴 뿌리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쓴 뿌리가 있으면 한 남자나 한 여자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한 성벽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어렸을 때 돈이 없어 서러웠던 기억 때문에 나중에 돈만 아는 자가 되고, 어렸을 때 비천하게 살았던 상처 때문에 성공과 지위에 대해 늘 집착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처가 다 쓴 뿌리로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는 환경도 중요하지만 반응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 상처로 인해 하나님을 붙들고 살면 그 상처는 오히려 축복의 터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미국의 한 소년은 참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부모는 거의 매일 싸웠습니다. 그는 자기 부모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을 평생에 딱 한번 봤는데, 13살 때 부모님이 법정에 서서 이혼을 할 때였습니다. 그 정도로 그는 어렸을 때 한번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점점 자라면서 자기의 상처를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극복했습니다. 이 분이 바로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신학자 하워드 헨드릭스 교수님입니다.

우리의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가 그토록 소중한 것입니다. 그것이 있으면 우리는 어떤 상처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성령님이 도와주시면 우리의 영혼 안에 있는 정리하지 못한 것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다 큰 상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우리 마음을 만져주시면 그 문제를 충분히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 내 안에 있는 베섹을 정리하고, 나를 용서하고 남을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확실히 달라진 새 날은 펼쳐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우리는 베섹을 물리칠 수 있고, 그와 더불어 놀라운 축복을 하나님께서 덧입혀주실 것입니다. 그런 축복을 받아 누리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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