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유명한 것이 의로운 것인 줄 아십니까? (암 6:1-14)

  • 잡초 잡초
  • 426
  • 0

첨부 1


- 설교자 :  이덕재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아모스 예언 6장은 예언의 대상이 분명합니다. <1절>에서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에서 우승하여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 이스라엘의 상류층, 고위층, 유명세를 타고 있는 자들을 향한 예언입니다.

그 예언의 내용은 한 마디로 "너희는 망한다, 망해도 그냥 망하는 정도가 아니라 쫄닥 망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상류층 사람들, 고위층 사람들은 "시온에서 안일한 자,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라는 표현처럼 영적인 면에서 또 군사적인 면에서 절대적인 안전 보장에 대한 신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7-8세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잘못 이해하여, 자신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시온의 언덕으로 대표되는 예루살렘은 절대적으로 보호하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산은 천혜의 난공불락의 요새라서 아무리 많은 군대가 몰려와도 절대로 점령되지 않을 것이라고 그들은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오늘날의 사람들이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으니까 내가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망하지 않게 하신다고 잘못 믿는 것이나, 미국 사람들이 미국은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지도층의 망상을, 야무진 착각을 깨 부숩니다. <2절> "너희는 갈레에 건너가고 거기서 대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그곳들이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토지가 너희 토지보다 넓으냐?"

갈레, 하맛, 가드... 이 세 도시는 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앗수르에 의하여 철저히 유린당했던 도시들입니다. 그 도시들이 너희보다 크지 않느냐, 너희보다 더 천혜의 요새이었지 않았느냐 그런데도 내가(하나님이) 앗수르를 통해 망하게 하였는데 너희라고 무사할 줄 아느냐? 반문하심으로 깨우치시는 것입니다.

한번 역사를 되돌아 보아라. 역사의 거울을 보고 너희가 얼마나 야무진 착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음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도층, 상류층의 사람들을 심판하십니까? 망하게 하십니까?

아모스 6장의 3절부터 나머지 14절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의 철저성과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가 섞여 나오는데, 저희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고위층의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가지로 추려서 그 이유를 밝혀보겠습니다.

첫째는, 그들의 허영과 허세 때문입니다<4-6절, 13절>. <4-6절>은 이스라엘 상류층의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시 여기고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들의 삶의 단면, 이렇습니다. "상아 상에 누우며/ 안락의자에서 기지개켜며/ 양 떼에서 골라 잡은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골라 잡아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의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퍼마시며/ 가장 좋은 향유를 몸에 바르면서도"

오늘날같으면, 물침대, 돌침대, 황토침대, 옥돌침대.. 보다 더 안락한 침대, 럭셔리한 침대에 눕는 것, 이태리산 물소가죽으로 만든 소파를 들여 놓는 것, 그것 들여놔야 거기 기대어서 졸다가 기지개켜는 일 밖에 더 하겠습니까, 돼지갈비, 삼겹살 이런 것은 천박해서 안 먹습니다 프리미엄 붙은 특상품 한우의 안심, 등심 이렇게 연하디 연한 부분만 골라 먹는 것을.. 성공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 라이브 밴드 불러다가 박자도 안맞는 노래 부르며, 고상한 티낸다고 알지도 못하는 클래식 은은하게 틀어놓기를 좋아하는 것, 술값은 아까운 줄 모르고 퍼 마시며 명품 옷 빼입고 향수 톡톡 뿌리면 자기가 뭐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생각하는 꼬라지들을 말합니다.

요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웰빙(Well Being) 바람이 불었지요? 문자 그대로 잘 사는 것, 모든 사람의 소망이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잘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사치스럽게 사는 것을 웰빙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진짜 멍텅구리입니다.

예를 들면, 강남의 초등학생들에게 14만원짜리 이태리산 구찌 지우개가 유행이라는 신문 기사를 보셨습니까? 초등학생 자식에게 500원이면 충분할 것을, 14만원짜리 지우개를 사주면 그것이 웰빙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런 사람들 진짜 불쌍한 사람들이지요. 어떻게 의식이, 영혼이 그렇게도 가난하고 궁상맞을까...

이스라엘의 소위 엘리트층의 사치스런 생활, 그 사치스런 생활을 낳는 것은 마음이 허영(虛榮)에 들떠있기 때문입니다. 그 허영심의 노예가 된 사람들, 하나님께서 이들을 반드시 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13절> 보십시오. "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의 뿔은 우리 힘으로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 자로다"허무한 것, 폼잡는 것을 기뻐하고 우리 힘이 얼마나 쎄냐, 우리가 얼마나 잘났냐 뻐기는 것, 이런 것을 허세(虛勢)라고 하지요?

사치와 향락을 좇는 허영이 여자들의 전공이라면, 허세를 부리는 것은 남자들의 전공입니다. 오래된 명품 양주라고 하면 그 한 잔, 50ml을 마시기 위하여 100만원을 소비합니다. 그리고는 나는 이런 술도 마셔봤다 창피한 줄 모르고 으시댑니다. 마음속에, 머리 속에 알맹이는 하나도 없으면서, 순 깡통이면서 껍데기로 자랑을 일삼는 사람들...

예) 오늘은 제가 많이 비판적인 것을 이해하십시오. 세상 남자들 집에 방문하면, 응접실 장식장에 대개는 두 가지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양주하고 돌하고... 가득 채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석, 그것 만만치 않게 비쌉니다. 그런데도 거액을 들여서 왜 장식해 놓습니까? 폼난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것보면, 이 집 주인은 돌대가리구나 연상이 됩니다. "이 집의 주인은 책은 하나도 안읽고 영혼은 술에 젖었고 머리는 돌대가리입니다." 자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허영과 허세의 사람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망하게 하십니다. "에이, 그런 사람들, 잘만 삽디다. 떵떵거리고 잘만 삽디다.." 속으로 반문이 일어나십니까?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하늘나라에 가서 보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한번 기대해 보십시오. 영혼의 눈을 떠 보십시오.

영혼이 초라하니까, 뽀다구 찾는 것이지요. 허영과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 진짜 "코미디야 코미디.."는 말이 딱 맞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허영과 허세를 좇는 사람들의 삶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또 하나 있습니다. 허영과 허세를 좇는 사람들, 이들은 이웃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전혀 무감각합니다<6절>. 또 이들에게 정의, 공법은, 쓸개나 인진쑥처럼, 거북하고 피곤하고 아주 껄끄러운 것입니다<12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상류층을 심판하시는 두 번째의 이유는 그들의 그들의 무관심과 거짓 때문입니다.

<6절>보십시오. <6절하>에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 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할 때, 야곱같은 이스라엘아! 이렇게 부를 때는 이 교활하고 찔긴 백성들아 부르시는 것이고 이스라엘을 요셉이라고 지칭할 때는 요셉의 고난의 때, 환난을 당하고 있는 곤고한 백성을 지칭할 때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는 가난한 사람이 끊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사회, 공동체에는 언제나 환난을 당하고 있는, 가난과 싸워야 하고 역경과 씨름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들로 "더불어 사랑하며 사는 삶"을 배우고 익히도록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꼭 남겨 두십니다.

세상에 돈이 제일 많은 도시, 뉴욕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세상에 거지가 제일 많은 도시, 역시 뉴욕입니다.

자신의 허영과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은 내 옆에서 죽어가고 있는 이웃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못 느끼고 못 보고 전혀 생각지 못합니다.

예) 귀족층, 부르조아 타도의 역사적 기원으로 손꼽히는 것이 프랑스 혁명이지요? 시민혁명의 전형이라하여 부르기오스 레볼루션(bourgeios revolution)이라고 불리웁니다. 이 프랑스 혁명의 폭발은 루이 16세때에 일어났지만, 그러나 루이 14세가 사치와 향락의 호사스런 생활로 혁명을 잉태케 하였습니다.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 이 절대군주를 향하여 신하들이 충언을 합니다. "전하,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루이 14세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우리 백성들이 그렇게 게으르단 말이냐? 고기를 칼로 잘라서 포크로 찍어서 입에 넣는 것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굶어 죽는단 말이냐?"

허영과 허세에 마음이 빼앗긴 사람들 이처럼 이웃에 대하여, 인생의 실체에 대하여 바보, 천치입니다.

아까 14만원짜리 지우개 이야기하였는데, 한 달에 14만원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 서울에도 많습니다. 구지 북한의 동포들 이야기 안해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돈 14만원이면 북한의 탁아소의 어린이 100명이 일주일 먹을 수 있는 분유값입니다.

제일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를 치룬 이번 총선에서도 53명 정도의 당선자들이 아마도 재, 보선을 할지 모른다고 하지요? 왜 그들이 불법인 줄 빤히 알면서도 불법을 행합니까?

국회의원이라는 가문의 영광, 금뺏지... 버젓이 달고 다니는 그 허세의 욕구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해서든지 한번 금뺏지 달아보려고 하니까 정의, 공법 이런 것은 염두에도 없고 거짓을 자행하고 마는 것입니다.

예) sky 대학생들이 70년대 후반부터는 차츰 뺏지를 안달고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자랑스럽게 달고 다녔지요.

아직도 국회의원들은 뺏지를 떡 하니 달고 다닙니다. 국회의원 뺏지는 또 조금 크고 두툼합니다. 멀리서도 눈에 확 띄지요. 언제나 국회의원 뺏지 없애는 것을 결의하려나... 모르겠습니다. 민노당 국회의원들이 뺏지를 달고 다닐지 안달고 다닐지 한번 지켜 볼려고 그럽니다.

아마 금뺏지 더 광내고 꼬박꼬박 챙겨서 달고 다니는 사람일수록 거짓으로 뇌물 주고받고 더했을 것입니다.

허영과 허세에 목맨 사람들은 반드시 무관심과 거짓의 흔적을 남깁니다.

중요한 것,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을 절대로 좌시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쫄닥 망하게 하십니다. 단지 그들도 회개하도록 기회의 시간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주실 뿐입니다.

여러분, 명품을 골라서 입고 챙기고 타고 다니는 상류층의 사람들, high class의 사람들을 보면 당신은 어떤 느낌과 생각을 받습니까? 부럽고 선망이 대상이 되고 그렇습니까? 아니면 한 대 때려주고 싶고 그렇습니까?

이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기억하고 긍휼히 여기십시오. 부러워하거나 질시하거나 분개하거나 그러지 마십시오. 사실, 그 마음이 연연하니까 질시하거나 부러워하거나 괜히 못먹는 감 찔러나 본다고 분개하고 그러지요.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게 별 거 아니라는 영원의 눈을 뜨면, 연연하지 않고 자유하여 도리어 그들을 불쌍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에게, 허영과 허세를 쫓는 마음, 거짓과 무관심을 낳는 근원적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리라 하셨듯이, 모든 죄악의 태도, 행동에는 그것을 낳는 뿌리의 마음이 있습니다.

허영과 허세, 무관심과 거짓을 낳는 뿌리는 <8절>에 나와 있습니다. "..내가 야곱의 영광(교만)을 싫어하며..." 마음의 교만이 허영과 허세, 무관심과 거짓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상류층의 사람들을 철저히 망하게 하시겠다고 심판하시는 셋째 이유는, 아니 근원적 이유는, 그들의 교만 때문입니다<8절>.

이번에는 요셉의 교만이라고 표현 안하지요? 야곱의 교만이라고 표현합니다. 야곱은 경쟁에 익숙한 사람, 악착같은 사람, 어떻게든 자기 뜻을 관철시키는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교만이 무엇입니까? 쉽게 설명할까요? 소수의 특권층이 되고자 하는 마음, 상류사회를 지향하는 마음이 교만입니다. 유명해지고자 하는 마음이 교만입니다.

상류사회를 지향하는 마음, 유명해지고자 하는 마음, 그게 왜 잘못입니까? 여러분 이렇게 항의하고 싶습니까? 우리 목사님은 조금 치우친 것같아.. 이렇게 생각이 되십니까?

교만은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상류사회, 고위층에 자신을 속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고 그것이 바로 교만이지요.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은 항상 가난하게 살란 말입니까? 세상에 고위층이 되면 안됩니까? 맨날 궁상맞고 천박하게 살라는 말입니까? 그게 하나님의 뜻입니까? 반문하고 싶으실 것입니다.

먼저 조금 껄끄럽더라도 여러분 마음에도 기억해 둬 보십시오. 정직한 수도원 운동을 하는 곳마다 수도사의 추구해야할 절대 덕목으로 언제나 "노동(勞動)"과 "청빈(淸貧)"이 주장되었음을 기억하십시오. 열심히 일하며 검소하게 생활하며 깨끗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 이번에 민주노동당의 선대위원장을 맡아서 TV토론에서 "삼겹살도 50년을 구워 먹었으면 판갈이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행복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라는 언변으로 많은 지지를 얻어냈던 노회찬씨, 비례대표 8번으로 당선되었지요?

이 사람의 전력을 아십니까?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하려고 전기용접기술을 배워서 노동현장에 취업을 한 사람입니다. 그가 경기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여학교에 가서 첼로를 연주할만큼 인기짱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단 맛을 추구하지 않고 짠 맛을 추구하는, 노동을 중요시여기며 기꺼이 청빈의 삶을 즐거워하며 살고자하는 삶의 전환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 의식도 없이, 의욕도 없이, 게을러 터져서 궁상맞게 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내가 게을러서 가난한 것을 신앙이 좋아서 고난받는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노동하기를 기뻐하십시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느냐입니다. 유명해지는 것에 목매다느냐 예수님을 닮기를 소원하느냐, 상류층이 되고자 바둥거리느냐 이웃을 사랑하며 정직하게 살기를 추구하느냐 그 차이입니다.


유명해지는 것이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의로움, 이웃을 돌아보며 정직히 행하는 의로움이 없이 유명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반드시 받습니다. 오늘 아모스 예언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유명해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상류층이 되고자 하는 헛된 마음을 버리십시오. 도리어 의로움을 추구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하며 내 모든 삶의 행동을 양심에 거리낌이 없이 행하는 정직을 추구하십시오.

어려운 이웃에 눈 돌려 보십시오. 허영의 눈이 벌개져서 백화점 쇼핑 갈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 당신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힘써 보십시오. 허세를 부리고 거짓을 행하고 이럴 여지가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으며 떵떵거리며 잘 사는 것같지만, 속으로는 허영과 허세의 물든 마음, 거짓과 무관심으로 수놓여진 마음.. 그 사람을 하나님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렇다면, 역으로, 겉으로는 별 볼 일 없는 사람같지만, 고난을 헤치며 이웃사랑과 정직을 추구해온 사람, 예수님을 닮기를 사모하며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힘써오며 사랑하며 사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정말로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시겠습니까?

진정한 존귀함은 하나님께서 내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존귀한 인생이 되기를 바라시며 그 존귀한 삶을 살도록 당신의 사랑과 능력과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그 하나님이심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여... 유명해지려고, 껍데기 쌓아서 고상한 척 하려고 헛된 마음에서 자유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의로움을 추구하십시오. 그때에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마침내 누릴 것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위하여, 오늘은 기꺼이 낮아지기를, 기꺼이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정도를 추구하는 삶을 넉넉히 내딛어 보십시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