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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라합의 가족 구출작전 수2: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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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오늘의 가정문제는 날로 심각합니다. 성도들의 가정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 원인들 중의 하나가 가정복음화를 이루지 못한 데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경우 60-70%가 여자성도들입니다.
가정이 복음화 되면 그 가정은 신앙의 동지가 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복음화 되었습니까? 정말, 생동감 있게 영적 동지로서 힘을 발휘할 만 합니까?
오늘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간의 방랑을 끝내고 가나안 정복을 시작하기 위하여 가나안을 공격하기 전에 몇 사람의 정탐군을 여리고성에 보내게 되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엄청나게 튼튼하고 완벽한 치안을 이루고 있었던 곳이라서 정보가 필요해서 였던 것입니다.
여리고성은 가파른 경사지 정상에 위치 해 있습니다. 적들의 침입을 대비해서 성밖으로 3-4m높이의 석조 장애물을 설치해 두었습니다.

여리고는 가나안 땅의 첫 관문이며 방어 거점이기도 합니다. 가나안 땅에서는 매우 중요한 성입니다.
그 여리고 성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복해야만 하는 첫 성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을 반드시 주시기 위하여 이미 예비하여 두신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라합이라는 기생이었습니다.

정탐군들이 여리고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이 준비해 두셨던 그 라합이라고 하는 기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기생보다 민심이나 정치. 군사적 동태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곳 저곳, 이런 계층의 사람 저런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술을 먹으면 비밀이 없어집니다. 술먹고 마음껏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많은 정보들을 알게 되어 있습니다.
기생 라합의 집은 성벽 위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15절) 여리고 성을 살펴보기에도 매우 적절한 장소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사람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라합은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을 향하여 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소문을 이미 잘 듣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들어서 잘 압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신지 마음으로 인정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정탐군들을 숨겨 줍니다.
이것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완전한 모험입니다. 목숨을 건 행동입니다.
간첩을 숨겨 주고 안전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형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걸고 정탐군들에게서 숨겨 줍니다.
어떻게 정탐군의 소식을 알게 되었는지 여리고 정보국에서 사람들이 달려왔습니다.
그 때는 라합이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겨 버린 뒤였습니다. 정보원들이 다그칩니다. 그 사람을 내 놓으라고 . . . . 라합은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고 말합니다. 정보원들은 즉시 달려갑니다. 라합은 능숙하게 정보원들을 따돌립니다.

라합은 지붕에 올라가서 정탐군들에게 ‘당신네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너고 요단강 동편의 아모리 사람의 두왕 시혼과 옥을 쓰러뜨린 모든 이야기들을 잘 알고 있소. 당신들이 한 것을 소문을 듣고 내가 얼마나 떨었는지 모릅니다. 나에게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당신들에게 주셨다는 확신이 드오. 그러니 내가 당신들을 잘 보살펴 준 것처럼 당신들도 우리아버지 어머니 오빠 남동생들 그리고 우리 자매들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오.’ 하고 자기 가족들을 보호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정탐군들은 ‘우리를 달아 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자신들을 달아 내리운 줄)을 내리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여 있으십시오, 그러면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중요한 약속을 했습니다.
기생 라합은 이제 그 정탐군들이 안전하게 빠져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자기의 집에 붉은 줄을 달아매게 되었고 여리고 성이 함락 될 때 여리고에는 수많은 가정들이 있었지만 라합의 가정만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라합 한 사람 때문에 그 가족 전체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라합의 가족은 참으로 복받은 가족입니다. 라합 한 사람 때문에 말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먼저 예수믿게 하셨는지 아십니까?
라합같이 가족 친지 주변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가족, 친지를 책임을 지라는 것입니다.

이 영화를 기억하십니까?
“클리프 행어” 네 명의 죽마고우. 이들은 아름다운 죽음의 산이라는 별명을 가진 험악한 산악 지대로 산악 스키 여행을 떠납니다.
험준한 산맥을 스키로 여행하면서 이들의 우정은 차츰 갈라지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서로의 목숨이 위협을 받게 됩니다.
미국 중서부 록키산맥의 구조대원으로 일하던 게이브는 조난당한 이들을 구조하다가 사고로 자일이 끊어져 사라가 죽게 됩니다. 그는 심한 자책감으로 사랑하는 동료 구조원 제시를 산에 남겨둔 채 산을 떠나고 맙니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구조대원이 구조하지 못한 그 죄책감은 얼마나 컸을까요? 구조대원이 보는 앞에서 떨어져 죽는 모습을 보는 구조대원의 마음은 어땠을 까요?

우리가 우리의 가족, 친지, 친구를 구원하지 못할 대 죄책감은 바로 그와 같을 것입니다.

1. 라합의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들음에서 났습니다.

믿는 자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어떻게 하면 우리의 믿음이 굳세게 될까?’ 하는 것입니다.
기왕에 믿는 것. . . 열심히 믿어서 ‘참 훌륭한 믿음을 가졌구나!’ 하고 주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롬10:17
열심히 들으면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떤 분은 “저는 아무리 들어도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자꾸 들으시기 바랍니다. 마치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어떤 표적이나 기적을 보고 믿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들, 믿음의 사건들을 들으면서 믿음이 시작되는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자꾸만 들어야 합니다. 듣는데 열심을 내야 합니다.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땀을 흘려야 하는 것도 아니며, 높은 산을 정복해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듣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본문의 라합은 들음에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본문 10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여리고에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이 가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다고 다 믿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만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라합은 그 소문을 듣고 하나님을 얼마나 두려워했는지 모릅니다.
9절 “간담이 녹았다” 11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 이런 라합의 고백이 그의 믿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께 대해 듣고 막연히 인정한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높이는 자가 축복을 받습니다. 9절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여기에서 분명한 신앙의 고백과 확신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로마서 1장 21-23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 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만들었느니라”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불평과 불만만 드러내는 것은 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런 믿음은 구원받을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참 자녀는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매사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있었고, 그 하나님에 대하여 이미 그 약속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생 라합이 육적으로는 비록 기생의 신분이었으나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여리고성의 멸망을 미리 알고 있었던 지각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시대의 징조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는 자기가 살고있는 이 세상이 불원간 멸망할 것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미래를 아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미래를 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마는 믿음의 눈이 열린 사람은 압니다.
기생 라합은 여리고성의 멸망을 알고 있었습니다.

8-9절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의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아노라”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지혜로왔기 때문에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여리고 정복 당시 구원 받은 가족은 오직 이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의지하기로 작정한 라합의 가족뿐이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라합처럼 그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믿는다는 말은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2) 하나님을 의지했던 라합의 가족은 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2. 라합의 관심은 가족구원이었습니다.

라합의 관심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재물도 지위도 아니었습니다. 라합의 원했던 것은 단 한가지,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 자신의 부모형제 일가친척들이 멸망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12,13절).
그래서 라합은 자신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자신만 구원 얻기를 원하지 않고 자기의 부모 형제, 나아가서 자기 친족을 다 구원하여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라합은 가족의 구원을 조건부로 제시했습니다. 18절“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내리운 창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비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붉은 줄을 매달면 보호해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특히 가족들 가운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없습니까? 친척, 친구 . . .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야만 합니다. ‘나는 라합처럼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최선을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나는 구원받았으니 됐다는 식으로 안일한 마음으로 살고 있는가?’
라합은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설득했을 것입니다.
‘이제 곧 여리고 성은 무너질 것이니 붉은 줄이 걸려져 있는 나의 집안으로 들어오세요’
기생라합은 자기가 믿은 하나님 신앙을 가족들과 또 친족에게까지 전하여 줄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신분이 기생이라 집안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천한 기생이 가진 믿음을 쉽게 받아들이려 했겠습니까?

마태복음 10장 34절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함이라"했습니다.
복음이 처음에 전해지면 영적으로 반감을 사게 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부딪힘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놀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태신자 전도에는 먼저, 기도로 준비하고 믿음으로 작정하고 성령의 도움으로 접촉을 시도하십시오. 편지를 쓰고, 전화를 하고, 선물을 전하고, 함께 식사를 나누십시오.

6장에 보면 라합의 요청대로 여호수아가 들어주므로 그 가족이 다 구원 받았습니다.
전도는 작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태신자 전도는 이런 관심에서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을 통하여 우리의 가족, 친지들을 복음화 시키기로 작정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하여 우리 가문까지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기생라합은 자신 만 아니라 자기 부모 형제 또 나아가서 자기 친족까지 구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3. 라합은 약속을 즉시 이행했습니다.

라합은 행동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믿음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행함이기 때문입니다.
정탐군들을 돌려 보낼 때에 정탐군들이 라합과 약속을 합니다.
기생 라합은 자신에게 약속한 약속을 즉각적으로 믿고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라합은 정탐군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정탐군들을 보낸 후에 즉시 붉은 줄을 창틀에 매어 놓게 되었습니다. 21절 “라합이 가로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라합은 지체하지 않고 약속을 이행했습니다.

성벽에 위치한 이 집의 창틀에 갑자기 붉은 줄이 매어 있음을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갑자기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라합은 그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구원을 위해서 정탐군들과 맺은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나 자신과의 은밀한 관계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자는 믿음이 있는자입니다.

마24:13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믿음은 끝까지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붉은 줄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바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것이 믿음의 비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요6:39에 예수님의 오신 목적을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출애굽할 때에 마지막 재앙은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었습니다. 이 재앙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양의 피를 문설주와 좌우 인방에 바르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에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은 방법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행4:12

라합은 하나님에 대한 소문 때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리고 믿음을 가지게 되었고, 용기를 가지고 모험적인 믿음을 가지고 가족을 멸망에서 구출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해서 소문을 퍼뜨리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롬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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