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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생활에 대한 권면 (창 2:20-25, 고전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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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이화림 목사

어느 가정에서 부부싸움이 일어나 서로가 격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급기야는 주먹다짐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성미 급한 남편은 홧김에 방안에 불을 질러 버렸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외아들은 더 이상 세상살이가 싫다며 고층 아파트 창문에서 아래로 뛰어내렸습니다. 남편이 지른 불을 끄기 위해 정신없이 욕조에 있는 물을 퍼나르던 아내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뛰어 내리는 순간 모든 소망을 버리고 뒤따라 뛰어내렸고 아들과 아내가 뛰어내린 것을 보고 남편도 세상을 비관하여 뛰어내렸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세 사람은 다 나는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세 사람은 어디 한군데 다친 곳도 없이 모두 멀쩡하게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은 제비족, 아내는 날나리 아들은 비행청소년이었기 때문에 모두 날개가 있어서 사뿐히 땅위로 내려 앉을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상처투성인 현대가정의 모습을 풍자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의 가정은 어떤지 깊이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최고 경영자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에 보면 결론이 현대에 있어서 경제적인 지도자나 정치적인 지도자나 누구든 간에 다 가정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고 어렸을때 좋은 가정의 추억을 가지고 있고 현재도 좋은 가정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50명의 최고경영자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해 보았더니 50명 가운데 47명이 조강지처하고 삽니다. 이것은 대단한 통계입니다.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 세계를 주름잡고 돈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아내를 얻자고 들면 뛰어난 미인을 얻을수 있고 굉장한 여인을 얼마든지 얻을수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전부 조강지처하고 살고 3사람도 한번 이혼을 했지만 좋은 가정을 이루고 지금 잘 살고 있습니다. 최고 경영자는 가정이 좋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좋은 가정이 아니고는 최고 경영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얼마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 연구소가 발표한 2003년 한국사회 국민의식과 가치관에 관한 조사연구에 따르면 가장 행복한 삶을 100점, 가장 불행한 삶을 0점이라고 하고 자기 삶의 점수를 물은데 대한 응답자의 평균점수는 66.5점으로 조사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위해 70.2%가 건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음에는 가정을 중요시 했습니다. 스티네트 교수는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첫째, 감사하면서 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족 서로가 고마움을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함으로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둘째, 헌신해야 합니다. 개인보다 가족전체의 유익을 위해서 서로 헌신하는 삶을 살 때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셋째,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되도록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할 때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넷째, 기쁨과 사랑으로 살아야 합니다. 가족이 항상 기뻐하고 서로 사랑할 때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다섯째,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가족간에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갖고 문제가 발생했을때 서로 마음을 열고 귀를 열고 대화하고 의논하고 상의해야 건강한 가정이 됩니다. 여섯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가정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가 있고 슬픈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잘 극복해 나가야 가정이 건강해집니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건강한 가정, 행복한 가정, 좋은 가정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 서로가 많은 노력을 해야 건강하고 행복하고 좋은 가정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읽은 고전 7장에 보면 가정생활에 대한 매우 귀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에 너희의 쓴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절에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했습니다. 너희의 쓴말에 대하여 라는 말은 고린도 교회의 질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라는 말은 부부관계에 대한 성경적 표현입니다. 음행을 가리키지 아니하고 정당한 부부의 성관계를 뜻합니다. 이 말씀은 바울이 일단 독신 생활이 좋다는 전제를 내리고 하는 말입니다. 좋다는 말은 도덕적인 의미는 아니고 훌륭한 혹은 유익하다는 뜻입니다. 독신 생활은 유익하고 좋은일이나 독신 생활이 잘못될 때에는 결혼 생활보다 해롭고 저열한 것으로 전락됩니다. 그러므로 음행의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약한 존재로 시험에 들기가 쉽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훌륭하게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 안해도 상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보통 사람은 그렇지를 못하기 때문에 결혼하여 자기 아내와 자기 남편을 두라고 했습니다.

창 2:18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혼자서 외롭게 사는 것을 보시고 좋지 않으셔서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가정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친히 제정한 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혼자 사는 것이 좋게 보였드라면 여자를 만드시지 아니했을지도 모릅니다. 기독교 윤리학에 보면 자유를 위해서 결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결혼하면 3가지 자유를 얻게 됩니다.

첫째, 방종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결혼하지 않으면 방종하기 쉽습니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독신으로 살면서 생각만큼 깨끗하게 거룩하게 사는 것 쉽지 않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생활에서나 방종한 성격이나 방종한 성향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을수 있는 것은 결혼하는 것입니다.

둘째, 고독으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보면 가정이 없는 사람들은 매우 쓸쓸해합니다. 정상적으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았으면 참 좋았을 사람인데 혼자 살면서 뭔가 큰일을 하겠다고 하다가 정신적인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필요합니다.

셋째, 허무로부터 자유를 얻습니다. 가정이 없으면 나이가 많아지면 허무해 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맥아더 장군의 자식을 위한 기도문에 보면 “내게 이런 아들을 주옵소서” 하고 아들을 위해서 기도한 다음에 끝에 “그리하여 나로 먼훗날에 헛되이 살지 아니하였다고 하게 하옵소서” 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사회를 위해서 일한다고 해도 가정이 없으면 허무를 느끼게 됩니다. 자녀들을 양육하고 자녀들이 잘되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칼빈은 사사로운 일에 매이지 아니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결혼 했다고 했습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한다 그래도 결혼하고 후회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3절에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현대적이고 또 원리적인 말씀입니다. 옛날에는 남녀를 차별했습니다. 노예와 주인의 차별만큼이나 남녀차별을 했습니다. 심지어 인구를 조사 할 때에도 여자는 숫자에 넣지 아니하였습니다. 여자는 따라오는 것으로 남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으로 남자에게 예속된 존재로 쳤습니다. 지금도 회회교에서는 여자는 남자에게 속하는 존재로 취급합니다. 심지어는 구원받는 것까지도 하나님나라에 가는것도 남자가 돌봐주어야 이루어 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자의 영혼까지도 남자에게 예속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2천년전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참으로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편만 말하지 아니하고 아내만 말하지 아니하고 남편과 아내 두쪽을 다 말씀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위해 있고 아내는 남편을 위해 있다는 평등성을 말씀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다 상대방에 대한 의무가 있고 상대방을 통해서 행복을 얻고 똑같이 서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남자에게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에게 남자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서로 똑같이 의무가 있습니다.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서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가정이 잘이루어집니다. 평등하게 서로 의무가 있는데 권리만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체로 가정에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은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를 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의 아내에 대한 의무는 사랑입니다.

골 3:19에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은 아내의 모든 일에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책임을 지고 존경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줍니다. 유치한 사랑은 내가 사랑을 받으니까 상대방을 사랑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내가 먼저 사랑하므로 사랑을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것이 먼저이고 사랑 받는 것이 나중입니다. 골 3:19에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는 말입니다. 아내들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집에서 무엇했느냐는 말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내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책에 보니까 결혼한지 5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부부간에 불협화음이 생겨나고 있으면 99%가 남편 탓이라고 했습디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내의 어려움을 알고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않습니다.

얼마전 신문에 보니까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을 승리로 이끈 미군 중부 사령관 토미 프랑크스 장군이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6년간의 군생활을 접고 전역을 결정해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프랑크스 장군은 신문인터뷰에서 결혼한 날 아내에게 언젠가 군을 떠난다고 약속한 것을 아내는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부인은 나는 남편이 군생활의 어느 시점에서 군을 떠나겠다고 했던 결혼초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고 했습니다.

프랑크스 장군은 6월 11일에 육군 참모총장직을 맡게 되는데 그 직을 사양하고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전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남편이고 훌륭한 장군입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아내도 남편에게 의무를 다하라고 했습니다. 남편에 대한 아내의 의무는 순종입니다. 골 3:18에 보면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마땅하니라 엡 5:24에 범사에 그 남편에 복종할찌니라 엡 5:22에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님께 하듯하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께 순종하듯이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골 3:18절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에 보면 이것은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예수 믿는 아내라면 마땅히 해야 할일입니다.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라비아 격언에 가정은 땅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고 아내위에 세워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문학자 가운데 아내라는 말을 아자와 내자를 쓰지 말고 안자와 해자를 써야한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아내는 가정의 태양이기 때문에 그렇게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가정의 태양입니다. 부부간에 서로 권리를 주장하지 말고 자기의 의무를 다하시기 바랍니다. 4절에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성경에 보면 아내는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할수 없고 오직 남편에게 맡겨야 하며 남편 또한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할수 없고 오직 아내에게 맡겨야 한다고 번역했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5절에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 서로 몸을 거절하지 마십시요 라고 번역했고 공동번역성경에 서로 상대방의 요구를 거절하지 마십시요 라고 번역했습니다. 즉 성생활에 있어서 어느 편이 원하든지 상대편은 거절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하여 성생활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는 틈을 마귀가 타서 시험에 빠져 음행의 죄를 범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예외는 부부가 기도하기 위해서 서로 분방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때에도 피차 합의 하여야 하지 어느 한쪽의 독단이어서는 안되고 얼마동안 기한을 정하여야지 무한정이어서는 안됩니다. 원만한 성생활은 밖에서 들어오는 유혹과 시험을 이기게 해줍니다. 기도할 틈이란 말을 어떤 사본에는 금식과 기도할 틈이라고 했습니다. 분방할 때 기도는 일반적인 기도가 아니라 특별히 뜻을 정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는 경우입니다.

책에 보니까 외국에서는 직장에서 1주일 이상 출장을 보낼때는 꼭 부부를 같이 보내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극히 옳고 합리적인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출장 중에 범죄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마귀에게 기회를 줍니다. 서로 함께 하므로 사랑이 짙어집니다. 원수도 한방에서 사흘밤만 자면 친구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함께 하는 생활 자체가 사랑을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함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분방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어느 잡지사에서 부부가 무엇인가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가장 많은 응답순위는 함께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부는 함께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함께 살아야 합니다. 벧전 3:7에 남편에게 아내와 동거 하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부부는 함께 가는 사람, 함께 나누는 사람, 함께 사랑하는 사람, 서로 보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부부는 함께 살고 함께 가고 함께 사랑하고 함께 나누고 함께 보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원칙이고 표준입니다.

  오늘 읽은 창 2:20-25은 아담과 하와의 가정 즉 인류 최초의 가정에 관한 말씀입니다. 최초의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가정을 이루도록 해주시고 에덴에서 살수 있게 하시고 과일과 곡식을 먹고 살도록 했습니다. 가정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가정은 하나님이 가정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최초의 가정에는 사랑이 충만했습니다.

창 2:21-23에 보면 하나님이 여자를 만드셔서 아담에게 데리고 왔을때 아담이 말하기를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표준새번역성경에는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굉장히 기다렸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찬가이고 사랑의 고백입니다. 가정은 사랑이 충만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부부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고 한몸입니다. 그러므로 나눌 수가 없고 나누면 둘다 못쓰게 됩니다.

그리고 최초의 가정에는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창 2:25에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최초의 가정에는 부끄러울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들의 가정에는 부끄러울것이 없는지 성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서로가 부끄럽지 않게 살어야 합니다. 부끄러운 일을 안해야 합니다.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한점 부끄러울 것이 없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있을때 잘하십시요. 지나간 후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가족은 언제까지나 곁에 있지 않습니다. 곁을 떠날 때가 있습니다. 있을때 잘하십시요. 있을때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 주고 보살펴 주고 아껴주십시요. 나중에는 아무리 후회하고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생활에 주신 권면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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