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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구원 (히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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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상필 목사 (대안교회)


온 세상이 전쟁으로 뒤숭숭합니다. 한 주간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온 세계가 전쟁으로 인해 고통하고 있습니다. 직접 전쟁을 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그 전쟁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도 결코 그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왜 전쟁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해 많은 이유들을 대고 있지만, 우리는 인간의 탐욕이 그 안에 도사리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전쟁을 하는 당사자들뿐만이 아니라, 전쟁을 관망하고 있는 사람들, 또는 전쟁을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나라들조차도 따지고 보면 자국에 어떤 것이 유익하는가? 하는 철저한 계산으로부터 나오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 전쟁으로 우리는 인간의 탐욕의 실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는 것’입니다. 특히 한반도에 있는 우리 국민들은 더욱 긴장하며 이 전쟁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 미국의 상대는 북한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우리 성도들이 깨어 기도할 때입니다. 안일한 생각으로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막연하게 전쟁을 반대한다고 이 전쟁이 막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은 기도하는 일입니다. 먼저 자신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죄를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이 나라와 세계 모든 거민들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어느 누구도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할 줄도 모릅니다. 성도만이 온 세상의 참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만이 하나님이 이 모든 문제의 진정한 해결자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깨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은 너무 행복하면 그 행복함 속에서 불안감도 함께 가지게 됩니다. 그것은 ‘혹 지금의 이 행복이 깨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불안감입니다. 차를 새로 산 사람들에게서도 우리는 그와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혹시 누가 기스라도 낼까봐 안절부절합니다. 닦고 또 닦습니다. 차에다 온갖 정성을 기울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이 상하지 않도록, 또 그것을 도둑맞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쓰게 될 것입니다. 정말로 귀하고 값진 보석이 있다면 함부로 차지도 못할 것입니다. 장롱 깊숙한 곳에 숨겨 두고 imitain(모조품) 하나 만들어서 차고 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그 진짜를 꺼내어 보면서 행복해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는 또 잃어버려도 안되는 소중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신 구원함입니다. 여러분은, 이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구원이 너무 귀해서 혹시라도 이 구원에서 떨어질까봐 염려가 되고, 또 힘들고 어려울 때에 그 구원을 생각하면 다시 힘을 얻을 수 있고, 행복해지고 그러십니까? 오늘 본문 3절에 보면, 우리에게 임한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이 ‘구원’은 ‘천국’으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고, 또 ‘하나님의 자녀됨’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복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 자리에 앉아계신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자신의 구원받음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그 구속의 은혜로, 그 보혈의 공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받았음을 잘 압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따라 우리 모두는 예수 믿음으로,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 구원받음이 너무도 귀하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소중하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의 귀함을 설명하기 위해서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또한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도 들려주셨습니다. 이 두 비유의 공통점은 그 귀한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천국이 바로 이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으면 그 천국은 바로 여러분의 것입니다.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여러분이 노력한 것이나, 투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단지 그 천국을 믿음으로 받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 값없이 주신바 된 그 천국이 그렇게 값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실은 여러분의 전부를 다 팔아서라도 살수만 있다면 반드시 사야 하는 귀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 ‘값싼 복음’, ‘값싼 구원’이라는 말을 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교회가 너무 많습니다. 모든 교회는 언제라도 찾아만 주면 대 환영입니다. 그리고 조금만 다니다 보면, 세례를 주면서,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는 천국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많은 선교단체가 복음을 전하면서, 5분정도 복음을 소개하고 그 소개받은 사람이 그렇게 믿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영접기도를 해 주고, 당신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말해줍니다. 사람들은 이 복음을 전하지 못해서 안달이 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모습들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복음이라는 것, 구원이라는 것은 별거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치 싸구려 시장통에서 박수치며 이것 저것 끼워주며 파는 싸구려 물건처럼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과연 복음이, 우리의 구원이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입니까? 그렇게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까?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큰 구원’이라는 말은, 그 안에 감탄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큰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에서 우리는 예수님 천사들보다 얼마나 뛰어나신 분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바로 그 아들의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됨을 얼마나 귀히 여기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아들됨을 등한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는 구원에 대한 안일한 태도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들은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주님의 명령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으면서 자신에게 임한 그 큰 구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하나님의 아들됨에 합당하게 살려고 하지도 않으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하는 성도들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은 이러한 부분에서 우리에게 강하게 도전합니다. 여러분 4장1절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우리는 잘못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진리를 왜곡되게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나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내가 내 구원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의 귀함을 알게 된 자, 더욱 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구원을 결코 등한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선민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민족입니다.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하나님의 징계로 죽어간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성인으로 출애굽한 제1세대는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러 올라간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춤추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내가 저것들을 다 쓸어버리고 모세 너를 통해서 새로운 민족을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를 사랑하시며, 우리를 위해서 자기 아들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고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영광을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찬송케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 앞에서 나같이 천하고 아무것도 아닌 자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음이 얼마나 놀랍고 큰 은혜인지를 절감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 하나 없다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시거나,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심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잘못된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3:9)’ 바울은 롬11장에서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내게 있는 이 구원이 귀하면 귀한 만큼 더욱 그 구원을 애지중지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됨의 그 영광스러움을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모든 들은 것을 더욱 간절히 삼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들은 것이 없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지 못하십니까?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이 자녀다운 삶인지를 몰라고 살지 못하십니까? 오늘 말씀은 모든 들은 것을 더욱 간절히 삼가야 한다고 말씀하고있습니다. 여러분은 들은 말씀들, 여러분 안에 있는 말씀들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이 땅에서 성도답게 살지 못하는 것은 들은 것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말씀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문제는 저들이 그 들은 모든 것들을 삼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에 내 삶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들은 것을 더욱 간절히 삼가라는 말씀에는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가지 않을 때, 흘러 떠내려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세상의 거센 물살이 있습니다. 마치 홍수 때의 흘러가는 강물처럼 그 위력이 대답합니다. 그런데 성도는 그러한 세상의 가치관과 흐름에 편승하여 떠내려가는 자들이 아니고 거슬러 올라가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몇 배나 더 힘이 듭니다. 만약에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말씀에 더욱 간절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그 말씀대로 살고자 애를 쓰지 않는다면, 그 진리 가운데 붙어 있고자 애를 쓰지 않는다면 흘러 떠내려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홍수 때에 떠내려가는 돼지나, 소들을 보셨습니까? 그 꼴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며 올라가던 자가 힘이 든다고 쉬어버리면, 흘러 떠내려 가는 것입니다. 혹 내 모습이 흘러 떠내려가고 있는 모습은 아닙니까? 내 모습을 살피시기 바랍니다.

2-3절 말씀은 우리를 더욱 긴장시킵니다.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되 보응을 받았거든, (하물며)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천사들로 하신 말씀은 그 마지막에 아들로 하신 말씀과 대조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에 하셨던 말씀들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치 않았을 때에도 거기에 따르는 합당한 보응(심판)을 받았는데, 하물며 우리에게 주신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길 때,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오늘 3-4절은 우리에게 임한 구원이 어떤 구원인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우리에게 임한 이 복음 구약시대의 율법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옛적에 천사들을 통하여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들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들은 자들이 자기 생명을 걸고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의 증거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성령의 증거들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나를 성령으로 인치셔서 도무지 부인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까지 하신 그 구원을 등한 여기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임한 구원은 분명하고도 확실합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합니다.’ (빌1:6) 그리고 에베소서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고,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셔서,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음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을 뿐만 아니라, 함께 일으키셔서 이미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의 구원이 그냥 그 안에 안주하고 있는 구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치 부산으로 가는 기차를 탔으니, 이제 죽으나 사나 부산까지는 가게 되는 천국행 티켓과 같은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우리를 독려합니다. 빌 2 : 12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이런 말씀들이 신약 성경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 모든 말씀들을 이 시간에 다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주시는 강력한 말씀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에게 그런 명령들을 주시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것들은 다 떠내려가지만 살아 있는 것들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새 생명을 얻은 자들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살아 있기에 흘러 떠내려가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듣는 말씀을 더욱 간절히 삼가고 있습니까? 매주 마다 선포되고 있는 말씀위에 서고자  여러분의 온 힘과 정성과 마음을 다 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4:21)  입술로만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는 자, 내게 주신 그 은혜의 귀함을 아는 자, 내게 임한 구원이 어떤 구원인지를 아는 자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더욱 간절히 삼가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들은 것을 더욱 간절히 삼가시기 바랍니다. 주신 말씀에 여러분의 전부를 걸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임한 그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구원이 귀하고 귀하다면, 그 구원에 합당한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삶이 복된 삶입니다. 영광스러운 삶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음’(롬8:18)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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