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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에게 승리의 길이 열립니다 (렘 2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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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땅에 월드컵으로 붉은 물결이 흐르고 있다. 과거에 붉은 색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레드 콤플렉스에 걸려있다. 그러나 이제는 붉은 색이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모으는 색이 되었다. 우리 속에 잠재해 있는 에너지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요즈음에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서 승리의 감격에 젖어있다. 지난 화요일 이탈리아 전에서 1:0으로 안타깝게 지고 있다가 게임이 끝나기 2분전에 동점 골을 넣더니 연장 후반에서 골든 골로 우리나라가 8강에 올라가는 기회를 맞이하였다. 이 골을 넣으니 얼마나 기쁜지 옆에 있던 교인들과 이웃들과 함께 부둥켜 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쩌면 이렇게 좋을 수가 있단 말인가? 어쩌면 이렇게 기쁠 수가 있단 말인가? 너무 감격한 나머지 방송을 하던 해설자가 이것이 꿈입니까? 생시입니까? 아나운서를 향해서 나를 꼬집어 주십시오. 아나운서가 해설자를 꼬집는다. "아이고, 정말 아프군요." "이것이 꿈이 아니라 생시이군요"하면서 함성을 지른다. 8강에 진출하여 승부차기로 4강에 오르던 날 온 국민이 다시 한번 열광하였다.

나는 이렇게 우리 나라가 4강까지 올라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믿는다. 세계를 향한 열방의 빛된 민족으로 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이다. 부산에서 울려퍼진 함성, 대구에서 울려퍼진 함성, 인천에서 울려퍼진 함성, 대전에서 울려퍼진 함성, 어제는 광주에서 함성이 울려퍼졌다. 하나님은 이 땅의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시면서 온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여 주셨다. 그 동안 억눌렸던 국민들의 한을 마음 껏 풀어주셨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서울에서도 기쁨의 날을 우리에게 주실 것이다.

우리나라가 8강에 이르던 날, 4강에 오르던 날, 시장에서도 축제가 벌어졌다고 한다. 떡집에서는 지나가는 사람에게 떡을 나눠주고, 빵집에서는 빵을 나눠주고, 비싸서 평소에 먹기 힘들었던 소고기도 한 근에 천 원씩 팔았다고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축구이야기, 승리하는 장면을 보고 보고 또 봐도 지겹지 않고 같은 이야기 계속해도 질리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이것이 바로 승리의 기쁨이다. 승리한다는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 모든 사람들은 승리를 원하지만 우리는 넘어질 때가 얼마나 많은가? 패배의 아픔을 경험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안정환이 페널티킥을 넣지 못했을 때에 그는 마음에 실패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었다. 후반전 42분이 되기까지 우리 팀은 계속해서 지고 있었다. 오늘의 게임은 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 시간이다. 우리는 마음에 패배의 예측할 수 있는 시간이다. 나도 그 게임을 보면서 후반 30분 정도 되었을 때에 오늘은 패배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지난 주에 내가 설교한 내용이 생각났다. "당신의 절망은 너무 이른 절망이요, 미리 앞 당겨서 절망하지 말라"는 내용이 내 마음에 떠 올랐다. 이 생각을 하는 순간 더욱 소리 높혀 응원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면서 실패할 수도 있다. 내가 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지금 지고 있다고 영원한 패배자라는 생각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내가 지금 실패했다고 영원한 실패자가 아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내가 지금 패배했다고 해서 영원한 패배자가 아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생각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아놀드 파머 위대한 골프 선수는 성공과 승리에 대한 생각의 중요성을 설명하였다. "만약 당신이 패배했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패배한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과감히 패배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패배한 것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우승하기를 원하면서도 우승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하면 십중팔구 당신은 우승하지 못할 것이다. 인생의 전쟁은 강한 사람이나 빠른 사람에게 항상 승리를 안겨 주지 않는다. 조만간 승리하게 되는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넘어진 사람에게 가장 큰 약점이 무엇인가?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절망이다. 내가 지금 넘어졌지만 영원한 패배자는 아니다. 내가 지금 지고 있지만 너무 앞당겨서 절망하지 말라.

예수님의 생애를 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치욕적인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았다. 예수님을 따르던 베드로와 같은 제자도 예수님을 홀로 두고 떠났다. 예수님은 돌 무덤에 묻혔다. 돌 문을 만들고 로마 병정이 지켰다. 예수님의 생애는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는 패배자와 같았다. 실패자와 같았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예수님은 다시 일어나셨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한 동안 실패의 아픔을 경험할 수 있다. 패배의 아픔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안에는 영원한 실패는 없다. 예수 안에 영원한 패배는 없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도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셨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패배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실패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예수 안에는 영원한 패배는 있을 수 없다. 예수 안에는 오직 최후의 승리만이 있을 뿐이다.

이탈리아의 경기를 볼 때에 얼마나 마음이 조였는가? 그렇지만 이미 스코어를 알고서 재방송을 볼 때에는 하나도 마음이 졸이지 않는다. 1:0으로 지고 있어도 조급한 마음이 들 것이 하나도 없다. 후반전 40분이 되어도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왜? 우리는 이미 승리의 스코어를 알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예수 안에 최후의 승리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미 인생의 스코어를 알고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인생 스코어도 마찬가지였다. 지는 것 같고, 패배하는 것 같고, 실패하는 것 같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결국 최후의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우리도 예수 안에서 이런 승리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다. 오직 예수 안에 최후의 승리가 있을 뿐이다.

소련 깃발을 기억해 보라. 바탕이 붉은 색이고, 낫과 망치가 있다. 붉은 색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색이었고, 낫과 망치는 집단농장을 의미하고, 다섯 모난 붉은 별은 지구상의 오대륙을 상징한다. 이 깃발의 내용은 공산주의가 결국은 온 지구에서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떠난 공산주의는 최후의 패배자가 되고 말았다. 예수님을 떠난 공산주의는 결국 최후의 실패자가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성도여! 예수 안에 최후의 승리가 있다. 여러분도 예수 안에서 최후 승리의 기쁨을 맛보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승리자가 될 수 있겠는가?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본문의 말씀을 보라.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심판을 전한다. 이렇게 살다가는 우리가 패배할 수 밖에 없으니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한다. 귀에 가시 같은 말씀을 전하니 주변의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싫어한다. 주변의 사람들이 예레미야의 말씀에 대적한다. "내가 조롱 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주변의 친구들이 예레미야를 고소하려고 한다. 예레미야가 실족하기를 기다린다. 그가 패배하기를 기다린다. 스스로 넘어지기를 기다린다. 예레미야가 속으로 결심하기를 "내가 다시는 말씀을 전하지 않으리라. 내가 다시는 입을 열어 전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생각하기만 하면 마음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계속해서 말씀을 전한다. 결국에 예레미야는 위기를 이기고 말씀을 전하는 승리자가 된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가? 예레미야는 어떻게 승리자가 되었는가? 주를 향한 열정이 있었다.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마음에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승리한다. 주를 향한 열정은 최후의 승리자가 되게 한다.

히딩크 감독이 타임지와 인터뷰를 하면서 그가 한국팀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표현하였다. "한국팀의 첫 인상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력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한국 선수들의 열정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지시하는 충실히 이행하고자 노력했으며 한결같이 착하고 순수했다. 유럽의 Top Class 선수들은 스스로의 생각이 강하고 개성이 탁월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프로라는 의식이 있을 뿐 하나의 팀으로서, 아니 한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 선수로서의 사명감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히딩크 감독이 본 첫 인상은 순수함과 열정이 있는 것이었다. 선수들에게 있는 열정이 승리의 원동력이다.

우리 나라에 붉은 물결이 넘실 넘실 춤을 춘다. 붉은 색은 곧 우리의 열정의 표현이다. 온 국민이 하나된 열정이 있다. 이 열정이 결국은 승리를 가져다 준 것이다. 외국의 많은 기자들이 한국의 열 두 번째의 선수들이 제일 무섭다는 이야기를 한다. 하나된 열정이 승리의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잘 뛰니 외국의 일부 사람들이 약물을 먹고서 뛰는 것이 아니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다. 운동경기에서 체력을 극도로 발휘시켜서 좋은 성적을 올리게 할 목적으로 선수에게 심장흥분제, 근육증강제 등의 약물을 먹이거나 주사 또는 특수한 이학적 처치를 하는 일을 도핑이라고 부른다. 한국 선수들에게 도핑검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말에 대해 차범근씨가 글을 썼는데 "우린 붉은 함성으로 도핑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우리는 열정으로 뭉쳤다는 것이다. 붉은 옷을 입고 서로 모여 응원하는데도 이렇게 이기는데 우리가 주를 향한 열정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민족 속에 잠재되어 있는 에너지를 발견하였다. 이것은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다. 우리 민족에게는 잠재되어 있는 에너지가 있다. 우리 민족은 열정이 있는 민족이다. 문제는 이 에너지가 어디로 향하여 쓰여지느냐가 문제이다. 이 열정이 어디를 향하여 쓰여지느냐가 문제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에게 주를 향한 열정이 있기를 바란다. 주님을 향한 열정은 결국 승리의 원동력이 된다. 예레미야를 보라. 마음에 불붙는 열정이 있었다. 그 열정 때문에 결국은 승리자가 되었다.

도둑에게서 배울 점 일곱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 : 그는 밤 늦도록까지 일한다. 둘 : 그는 자신이 목표한 일을 하룻밤에 끝내지 못하면 다음날 밤에 또 다시 도전한다. 셋 : 그는 함께 일하는 동료의 모든 행동을 자기 자신의 일처럼 느낀다. 넷 : 그는 적은 소득에도 목숨을 건다. 다섯 : 그는 아주 값진 물건도 집착하지 않고 몇 푼의 돈과 바꿀 줄 안다. 여섯 : 그는 시련과 위기를 견뎌낸다. 그런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일곱 :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가를 잘 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도 이렇게 열정을 갖고서 일을 한다.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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