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달려갈 길 (딤후 4:1-8)

  • 잡초 잡초
  • 214
  • 0

첨부 1


- 설교 : 조병우 목사 (김천제일교회)

나라의 역사를 국사라고 합니다. 세계의 역사를 세계사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에는 그 지나온 시간을 역사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역사를 교회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 역사는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 바로 선교 역사입니다. 교회 역사를 구성하는 줄거리는 바로 선교의 역사이기 때문에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 바로 교회사입니다.

교회사를 보면 핍박을 받는 사건들이 많습니다. 교회사가 핍박의 역사인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고난이 많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가장 많은 희생을 지불했던 것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 가장 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성도에게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데 성경은 많은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마는 그 일이 얼마나 귀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귀하다는 사실은 복음을 전할 때에 깨닫게 되기 때문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한 평생을 복음을 전하는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귀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험한 분이었습니다.

1. 전도는 심판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했습니다. 바울은 많은 부분에서 전도와 하나님의 심판과 연관지어 말씀을 했습니다. 바울 스스로가 자신이 전도자로써의 삶을 마쳤기 때문에 이제 의로우신 재판장인 주님이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담대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에게 전도가 심리적으로 항상 거룩한 부담감으로 있는 중요한 이유는 전도는 하나님이 나를 판단하시는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공부에 대한 부담감이 항상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생은 공부로 자신이 판단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른 판단은 피해갈 수 있지만 공부로 판단받는 것은 피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이 항상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것으로 자신이 판단 받는 일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성도가 전도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을 때에 느끼는 심리적인 안정감과 자신감은 전도가 주님이 나를 판단하시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공부에 최선을 다했을 때는 다른 일로 느끼는 성취감과는 다른 심리적 안정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를 통해서 자신의 자부심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음악이 자신에게 어떤 것보다 자부심을 줄 것입니다.

전도는 분명히 인생을 심판하시는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사람의 생명에 대한 피의 값을 복음을 전하지 않은 사람에게서 찾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죽음 앞에 설 때에 가장 복된 죽음이라고 느껴지는 죽음은 누구 뭐래도 전도자의 죽음입니다. 비록 여러 가지 안타까운 요소가 있다고 해도 전도자로써 살다가 죽은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큰 위로와 상급을 받을 것이라는 느낌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에게 상급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은 세상의 어떤 보상과는 전혀 성격이 다릅니다. 이 세상의 보상은 실질적인 보상은 아닙니다. 모두 상급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 무엇도 진짜 상급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은 영원한 상급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진정한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 부자와 나사로 -

2.전도는 시간이 빠를수록 더 좋은 때라고 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사욕을 쫓을 스승을 많이 두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쫓으리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은 복음을 받아들이기 더 어려워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저절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시급하게 복음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시기적으로 어릴수록 복음을 전하기 좋을 때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요 사람에게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이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때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전도의 때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전도하는 사람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길이 열려진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예수 믿기 좋은 시기가 오면 교회에 나가야지 라고 생각했다면 여기에 그 누구도 예수님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전도를 받게 된 것도 때를 기다려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했다면 우리는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들어오던 시대는 서양사람을 아주 배격하던 시대였습니다. 쇄국 정치로 복음을 전하던 사람들이 많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만약 당시에 아직 한국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였다면 우리는 아직도 복음을 받지 못한 민족이 되었을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 최초의 선교사는 상선을 타고 왔고 대동강에서 순교를 당했습니다.

초대교회도 그러했습니다. 주님은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순교를 당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꺼이 죽음이 기다리던 로마로 가기를 자청했던 것입니다. 사실 바울의 로마 전도는 자기 생명보다 전도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입니다.

많은 교회들이 전도를 교회 부흥의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전도의 결과에 너무 치중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결과에 상관없이 귀하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는 사람과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도는 사람과 주님과의 문제인 것입니다. 교회가 전도에 집중하므로 얻는 유익은 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가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전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고 구원을 얻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자녀를 잃어버리고 내일 아침에 찾아오겠지 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부모가 아닙니다. 진짜 부모는 바로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전도는 부모의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3. 전도는 선한 싸움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전도를 표현하면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했습니다. 전도를 해본 사람들은 선교 현장은 언제나 영적 싸움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전도는 우선 외적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핍박을 받기도 하고 미움을 받기도 하고 따돌림을 받기도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죽었는지 모릅니다. 아마도 지구상에 한해에도 복음을 전하다가 죽는 사람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선교사 붙잡혀 들어감,

전도는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전도를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는 영적 전쟁이기 때문에 결심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지상교회를 우리는 전투적 교회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영적 전투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 영적 전투의 현장이 바로 전도의 현장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한 싸움입니다. 전도는 선한 싸움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선처럼 전도에 강한 무기가 없습니다. 전도는 사랑으로 상대와 싸우는 것입니다. 전도는 선으로 상대를 이기는 싸움을 말하는 것이요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상대방의 마음 속에 있는 장벽과 싸우는 것입니다. (롬 12: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 많은 싸움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가난과 싸우고 무지와 싸웁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싸움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