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 (마 18:1-14)

  • 잡초 잡초
  • 322
  • 0

첨부 1


- 설교 : 윤정현 목사 (대선교회)

오늘은 5월 첫 주일 어린이 주일입니다. 우리나라 국회는 1956년에 5월5일을 어린이 날로 정하고 공휴일로 선포했습니다.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앞서 성경에 보면 천국의 어린이 헌장에 대하여 군데군데에서 선언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주일은 무엇을 말하는 주일일까요? 어린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라는 날이기도 합니다. 생각하면 우리 어른들이 어린이를 푸대접하므로 그들이 길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어린이들의 무관심 때문에 그들이 놀이 방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슴앓이가 있습니다. 말 못하는 고민들이 저들에게는 있다는 말입니다.
 
자녀들이 부모들에게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부모 된 내가 먼저 주님 앞에 순종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형편이 어떠합니까? 나는 주님 앞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자녀들에게는 "순종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순종의 열매가 가정에서 맺힐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내 자녀들이 정직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정직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경건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먼저 경건하게 살면서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잠언이 말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서도 그 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 속에서는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1.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

본문1절입니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주님께서는 어린이는 키도 작고 배운 것도 없고, 어른들에 비하여 권세도 없는데 천국에서는 어린이가 크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같지만 큰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큰 자니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가 큰 자라는 뜻입니다. 눅18:14절에는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했습니다. 세상에서는 자기를 높이려고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을 중상하고 멸시하고 폄하함으로 상대적으로 높아지고자 하는 어린아이 같은 속성들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어떤 분이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네 아빠 이름이 뭐지?" 아이가 대답합니다. "우리 아빠 이름은 여보예요" "그럼 너의 엄마 이름은 뭐지?" "엄마 이름은 당신이래요" 얼마나 진실한 대답입니까? 꾸밈이 없고, 조직이 없고,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른이 배워야 할 장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첫째는 순수함입니다. 백지와 같은 순수함,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하고, 깨끗함이 있습니다. 둘째는 솔직함입니다. 속이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정직한 자세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는 믿음입니다. 어떤 말이든 어른들의 말을 신뢰하고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것은 순수한, 조건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넷째는 겸손함입니다.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친화력입니다. 누구하고도 절 어울릴 수 있는 사심이 없는 마음입니다. 물론 싸우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음 날 만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또 사이좋게 지냅니다. 지나간 날의 상한 마음을 잘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어쩌다 마음 상하면 섭섭함을 잊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용서가 잘 되지 않아 괴로워합니다. 교만해서 그런 것입니다.

러시아의 리콜라이 황제는 덕망 있고 정의감이 투철한 황제입니다. 어느 날 평복을 입고 백성을 살피러 나갔습니다. 낮 설은 길인지라 갈림길에서 지나가는 군인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태도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미안하지만 계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군인은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 자네가 한 번 맞춰보게" 그러니까 황제가 묻습니다. "상사이십니까?" "아니!" "그럼 소위이신가요?" "아니. 나를 그렇게 밖에 보지 않는가!" "그럼 중위신가요?" 역시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대위이신가요?" "맞았네. 내가 육군 대위일세"하면서 그 대위가 굉장히 큰 벼슬인 것처럼 거드름을 피웠습니다. 황제는 미소를 머금고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던 대위가 예사 사람으로 보이지 않은지라 불러서 물었습니다. "여보게" "혹시 자네도 군인인가?" "예" "그러면 계급이 무엇인가?" 한번 맞혀 보세요!" "상사인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럼 소위인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면 중위인가?" 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제 말씨가 좀 달라졌습니다. "그럼 당신도 대위인가요?" 고개를 저었습니다. 이제는 몸이 오싹해집니다. "그러면 소령이십니까?" 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중령, 대령, 심지어는 대장까지 올라가면서 몸이 떨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아 그러면 원수이십니까?" 그런데 순간 황제의 얼굴이 필름처럼 스쳐갔습니다. 아차 하면서 무릎을 바닥에 꿇으면서 "황제각하 용서하옵소서!"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어린아이 같이 겸손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인들의 덕목을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겸손한 자는 항상 은혜를 받는다고 교훈하시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겸손의 덕을 보이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겸손을 보일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린아이 같이 겸손함으로 날마다 은혜를 많이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천국에는 누가 들어 갈 수 있는가?

본문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들은 그냥 천국에 통과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천국에는 결단코 학벌로는 못 들어갑니다. 권세로도 못 들어갑니다. 인물이나 배경 때문에 봐주는 천국이 아닙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노래합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나라"라고 노래합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에는 믿음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떠한 믿음입니까? 어린 아이를 닮은 믿음입니다. 어린아이를 닮은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어린아이에게는 여러 속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 꼬집을 수 있습니다. 단순성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믿음은 단순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참 믿음의 속성이 단순성인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천국에 가는 믿음은 이론적인 믿음이 아니고, 계산하는 믿음도 아니고, 따지는 믿음도 아닙니다. 머리가 아프게 복잡한 믿음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믿음입니다.

바리새인처럼 회칠한 무덤 같은 믿음도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돌이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돌아선다(To turn)는 말입니다. 회개를 의미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이 어찌했습니까.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도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실상은 가난한 자로다" 그래서 수치를 보인다고 책망을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돌이켜야 합니다. 예배드리는 시간은 돌이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가 걷고 있는 그 길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다고 느끼면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내가 계획하는 것이 죄와 관계 있는 것이라면 미루지 말고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못한 믿음이면 돌이켜야 천국에 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생각하면 돌이켜야 될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누가 불량식품을 청소년들에게 팝니까? 어른들입니다. 누가 술, 담배, 약물을 청소년들에게 팔고 있습니까? 역시 어른들입니다. 누가 가출 청소년들!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나쁜 길로 인도합니까? 역시 어른들입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돌이켜야 합니다. 어른들이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고 넘어지게 하였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 자녀들에 대하여 마음을 상하게 하였거나 노엽게 한 일들에 대해서 어른들이 회개하는 날입니다. 사회의 청소년들을 잘 못 인도하였거나 내 자식이 아니라고 무관심한 죄를 어른들이 회개하는 날이 어린이 주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작은 소자 하나를 천국으로 인도할 자는 누구인가?

답은 하나입니다. 우리가 인도해야 합니다. 바로 내가 전도자이어야 합니다. 본문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누가 그렇게 하기 전에 스스로 알아서 그렇게 하라는 준엄한 말씀입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첫째는 어른들이 어린아이를 실족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라하다, 작다, 그리고 코흘리개다, 철이 없다. 어린것이 뭘 알겠느냐!" 순진한 것을 기회로 그래서 업신여기고 인격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고 소홀히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다 어린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일입니다. 본문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한 영혼을 위하여 천사까지 동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또 다른 두 번째 의미는 한 영혼의 귀중성입니다. 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여기서 "소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말라"라고 하시는 것은 "한 영혼이라도 귀중히 여기라"고 하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14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영혼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래서 그 영혼 하나를 찾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합니까? 아흔 아홉 마리가 아직 남아 있는데도 그 잃어버린 한 마리 때문에 찾는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자 하나를 귀중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얼마나 노력합니까? 누가복음 15장을 참고해 보면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않겠느냐"(눅15:4)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양은 연약한 동물입니다. 제 힘으로는 집을 찾아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목자가 찾아가야 하고, 만나 주어야 하고, 데려와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도와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지금 물에 빠졌습니다. 허우적거립니다. 너무나 기진맥진하여 차마 소리도 못 지릅니다. 그것을 지금 내가 바라보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바라보고만 있겠습니까?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가던지 아니면 밧줄이라도 던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기에 잃은 양을 찾는 사람은 찾도록 찾기까지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소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는 것이요, 이렇게 하는 것이 하늘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 많습니다. 시간을 쏟던지, 물질을 투자하던지, 힘을 쓰고 애를 쓰던지,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어찌했던 찾아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끝으로 잃은 것을 찾았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눅15:5)라고 했습니다. 마18: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가 기뻐하십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찾은즉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찾은 양을 어깨에 메었습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양이 너무나 지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면 이렇게 피곤하고 곤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고기가 물을 떠나면 죽듯이! 나무가 흙을 떠나면 곧 죽음이 기다리고 있듯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곧 죽음인 것입니다.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그렇습니다. 주님을 떠난 인생은 곤한 인생이니 어서 품에 안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찾은 기쁨 때문에 목에 안는 것입니다. 잃은 양을 찾았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얼마나 기뻤기에 어깨에다 메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전도는 한 영혼을 어깨에 메고 즐거워하면서 돌아오는 일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모쪼록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돌이켜 어린아이 같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아이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는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어린아이 같은 겸손하고 온유함으로 무장하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또한 주님은 소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말라고 교훈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십니다. 철없는 어린아이라고 혹시 무시하거나 그 인격을 멸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또한 한 영혼을 귀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이 다른 영혼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주를 알지 못하는 세상의 방황하는 사람들은 잃어버린 양들이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소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이들을 찾는 일에 노력과 수고를 해야 하겠습니다. 찾도록 찾기까지 하는 수고와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잃은 것을 찾은 기쁨을 만끽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은혜와 축복이 우리 온 성도들에게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