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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는 축복하는 대로 됩니다 (창 27:2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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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 축복의 중요성 >

미국에 게리 스멜리라는 유명한 상담가의 글입니다. 그는 어릴 때 엄격한 할아버지와 살았는데, 어느 날, 늦게 귀가했다가 할아버지한테 매를 두 대 맞았습니다. 맞고 나니 할아버지가 미웠습니다. 조금 후에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식사하시러 오라는 말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전하기 아주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방으로 갔습니다.

가니까 방문이 살짝 열려 있었는데, 그는 열린 문으로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평소에는 전혀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았던 할아버지가 침대 끝에서 기도하며 울고 계셨던 것입니다. 갑자기 멍해지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우는 일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고, 더욱 충격적인 일은 할아버지가 자기를 때린 후에 마음이 아파서 운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조금 후에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게리! 나도 너를 때리면 마음이 아프단다! 나는 너를 정말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너는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 거야. 네 앞날에 항상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할아버지는 기도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의 인생을 가장 극적으로 변화시킨 것이 바로 그때 그 할아버지의 축복의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 자녀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축복의 말씀입니다. 가정에서 축복을 받고 자란 아이와 축복이 없이 자란 아이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창세기 27장에서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이 아버지의 축복을 경쟁적으로 구하는 것을 보면 부모의 축복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야곱의 속임수로 에서가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기자 34절과 38절 말씀을 보면 에서는 몸서리를 치며 "아버지여! 나도 축복해주세요!"하고 통곡을 합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는 '부모의 축복'을 소중히 여겼고, 하나님께서는 그 부모의 축복을 들으시고, 자녀를 축복한다고 믿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부모의 축복을 들으시고 자녀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녀를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축복과 인정을 받고 자라면 정서적으로 건강해집니다. 오늘날 가정이 쉽게 깨지는 이유는 어렸을 때 축복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축복이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낸다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고, 반면에 부모의 축복을 넉넉히 받고 자란 경험처럼 자녀에게 소중한 경험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위해 말과 기도로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녀를 힘써 마음껏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그 축복은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 주어야 할 가장 위대한 유산입니다.

< 자녀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주는 길 >

그러면 우리가 부모로서 자녀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시간에 본문을 통해 3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헌신하는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 본문 앞부분에 있는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게 전에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 구절에서 이삭은 자녀를 무작정 축복하지 않고 먼저 부모님께 별미를 만들어 드리게 한 후 축복하겠다고 말합니다.

그처럼 자녀가 복된 삶을 살기를 원하면 우리는 먼저 자녀에게 드리는 삶과 헌신하는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를 우상처럼 키워서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고 헌신할 줄 모르는 자녀로 키우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결코 그 자녀에게 임할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복된 사람은 남을 배려하고 어려운 자들을 살펴주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저주받은 사람은 자기 중심적인 환경을 만들려고 친구와 동료를 왕따시키는 주동자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축복 받는 삶을 위해 부모가 자녀들에게 남을 배려하는 삶과 헌신하는 삶을 가르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며칠 전에 한 엄마가 인터넷에 올린 글입니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이 햄버거와 콜라를 흔들어 보이며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나 햄버거랑 콜라 받았어." 엄마는 그것이 반장이 된 아이의 엄마가 한 턱 쏘는 '반장 턱'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딸의 말로는 반장 턱이 아니라, 그것을 돌린 아이가 평소에 말이 없고, 다른 아이들이 말을 시켜도 대답이 없이 자기 하는 일만 하는데, 무슨 장애가 있는 것 같다는 얘기였습니다.

딸로부터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아이 엄마가 햄버거와 콜라를 사온 이유를 생각해 보니까 장애를 가진 자기 아이가 왕따를 당하지 않도록 사온 것이라는 생각을 하자 가슴이 시려왔습니다. 그래서 딸에게 그 아이를 잘 대해주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장애인을 왕따 시키는 자를 가장 저주할 것이고, 장애인을 잘 돌보는 자를 가장 축복하실 것입니다.

요새는 선천적인 장애인보다 사고로 인한 후천적인 장애인이 더 많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모두 예비 장애인들입니다. 그 사실을 생각하며 항상 장애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 중의 하나가 장애인을 '장애우'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이 장애인을 '장애우'로 표현하는 것이 장애인을 더 2류 인간으로 취급하는 느낌이 들고, 친구 되어주는 것을 구걸하는 표현인 것 같다고 해서 저도 그 다음부터는 글을 쓸 때 '장애우'라는 말 대신에 그냥 '장애인'이라는 보통명사를 씁니다.

표현 하나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장애인을 진실로 섬겨주는 마음입니다. 선진국은 돈이 많아서 선진국이 아닙니다. 장애인들을 위해 시설과 배려, 그리고 편견 없는 시선이 바로 선진국의 지표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교육열이 높다고 하면서 장애인과의 통합교육을 반대하고, 장애인 시설을 혐오 시설로 생각하고 반대하는 지지리도 복이 없는 어른들이 있다면 우리는 아직 선진국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시선을 전수하고, 받기보다는 베푸는 자녀로 사려 깊게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들은 누구보다 복된 자녀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흑인인 플로렌스 자매에게 장학금을 후원하며 주일학교가 끝난 후에 원하는 아이들에게 영어성경공부를 하도록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끔 이런 소리도 들립니다. "분당에 사는 생활 수준이 높은 부모들이 아이들이 흑인 선생님으로부터 배우는 것을 좋아할까요? 한국 사람은 인종편견(racism)이 심한 나라인데 오히려 좋지 않은 소문만 날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말합니다. "플로렌스 자매의 공부를 후원하면서 그냥 후원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는 보람을 주고 싶어서 영어성경공부를 맡겼고, 아이들에게 흑인 선생님도 존경하는 법을 가르칠 때 아이들은 일찍부터 저주스런 편견의 벽을 깨고 훨씬 남을 배려하고 성숙한 아이가 된다고 믿고, 그런 아이에게 하나님을 미래를 맡기신다고 믿기 때문에 플로렌스 자매가 계속 영어 성경 공부를 가르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끔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얘들아! 흑인 선생님이기 때문에 너희들은 더욱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저는 어렵고 소외된 사람을 배려하는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활짝 여신다고 믿습니다. 드릴 줄 모르고, 베풀 줄 모르는 인색한 삶은 축복된 삶을 방해하는 제일 대적이 됩니다.

2.. 자녀와의 깊은 만남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26절을 보십시오. "그 아비 이삭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 자녀와 입맞춤하고, 자녀를 꼭 안아주고, 자녀의 손을 잡아주는 것과 같은 접촉은 부모의 축복을 자녀들에게 전달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가 됩니다. 그런 축복의 터치는 자녀를 전적으로 인정하고 용납한다는 뜻도 있고, 그 축복의 터치를 통해서 우리는 자녀와 깊은 만남과 교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의 손 한번 잡아주는 것도 그 안에 얼마나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분의 말에 의하면 몸에 있는 약 5백만 개의 촉각 중 3분의 1 정도가 손에 집중되어 있어서, 손의 터치는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손의 터치가 많으면 헤모글로빈 수치가 증가하고, 머리를 맑게 되고, 노인들의 치매 예방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자녀의 손 한번 잡아주는 것은 그런 의학적 효과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의 손도 많이 잡아주고, 자녀들에게 축복의 터치를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세상 유혹에 빠지는 것은 이 터치를 받기를 원하기 때문이고, 사람들이 이단에 잘 빠지는 이유도 이단에는 이 터치가 많기 때문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잘못된 길에 빠지지 않도록 사랑의 터치를 많이 하는 선수들이 되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도 아이들에게 그런 의미 있는 터치를 하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라고 올 때 제자들이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그 어린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도 그런 부모의 축복의 터치가 필요합니다. 저의 두 딸도 제가 안수해주면 그렇게 좋아하고 진지해집니다. 그러나 자녀들은 커가면서 그런 터치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 하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자녀들에게 의미 있는 터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기회가 생겼거든 그 기회를 잘 활용하게 하옵소서!"

우리는 자녀들이 클수록 그런 터치를 위한 기회 포착을 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놀이나 스포츠 등을 통해서 자연스런 터치 시간을 만들려고 하고, 무엇보다 자녀와의 만나는 시간을 많이 가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자녀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주는 가장 소중한 요인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침묵은 금이라고 말하지만 가정에서만은 금이 아니고 똥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침묵은 나머지 식구들에게 상처를 주고 불안하게 만드는 일종의 폭력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는 침묵보다는 사랑과 인정과 격려의 말이 넘쳐야 합니다. 특별히 "너는 정말 귀한 존재이다."라는 가치 부여의 말을 자녀들에게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부모들은 입을 열면 "무엇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라!"는 말 열 마디보다 축복의 말 한 마디가 훨씬 자녀의 앞날에 복을 불러옵니다. 자녀에게 지나치게 과부하를 걸면 자녀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나빠지고, 자녀에게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면 오히려 자녀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 클 것입니다.

모든 원리가 그렇습니다. 배터리 충전을 오래 하면 좋은 것 같지만 100% 충전하고도 계속 충전지를 꼽고 있으면 과부하로 충전지의 수명이 현저히 단축됩니다. 마찬가지로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집어넣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녀의 수명을 단축시키고, 자녀의 행복을 막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에게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하는데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좋습니까?

1) 자녀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말

오늘 본문 27절 하반부 말씀을 보면 이삭은 아들 야곱을 축복할 때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발의 향취로다."라고 축복합니다. 그 말은 "너는 하나님 앞에서 가치 있는 존재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진짜 축복의 말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축복할 때 "네가 잘되기를 바란다!"는 말보다 "너는 내게 귀하다!"라는 말을 더 많이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녀가 아무리 부족해 보여도 자녀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말을 많이 하고, 자녀의 인격을 최대한 존중해서 자녀가 내 감정의 희생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일이 안 풀리고, 사는 것이 힘들고, 마음이 심란한 것이 반영되어 자녀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매를 드는 것은 자녀에게 독을 먹이는 것이고, 그런 모습은 부모의 미성숙과 무능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일입니다.

얼마 전에 한 초등학교 교사의 글을 읽었습니다. 교사로서 11살 짜리 28명을 통제하지 못하고 자기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아이들이 울고 웃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이 말을 안 듣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미성숙과 욕심으로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글을 쓴 날 그 선생님은 네 명의 아이들에게 회초리를 들었습니다. 그 회초리를 든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들의 잘못보다는 자기의 우울한 감정과 욕심이 더 큰 원인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국 어른의 욕심이 아이들 키만큼 줄지 못하고, 아이들을 대할 때 어른 수준의 생각과 행동만 하고 아이들의 생각과 느린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낸 것에 대해서 한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날 침착한 마음을 가지고 드는 정당한 매가 아니라면 "꽃으로도 아이를 때리지 말자!"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자녀의 인격을 인정해주고 자녀의 가치를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녀는 복된 자녀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2) 자녀의 가능성을 격려하는 말

본문 28-29절에서 이삭은 계속해서 아들 야곱을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가 굴복하며 네가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 이삭의 축복을 한 마디로 말하면 "너는 앞으로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감추어진 잠재능력이 있습니다. 애벌레는 보기 싫지만 그 안에는 아름다운 나비가 들어 있습니다. 자녀들도 지금은 연약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놀라운 가능성이 있습니다. 부모는 그 가능성을 격려해주고,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물리 법칙에 의하면 물은 위로 흐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물리 법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들을 낮게 평가하면 아이들은 그 부모의 평가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모가 자녀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격려해주면 자녀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훌륭한 자녀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키울 때 격려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남아프리카 정글의 바벰바족은 가끔 누가 범죄하면 그를 마을 광장에 세우고 모든 마을 사람들은 그 주위에 큰 원을 이루어 섭니다. 그리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그 죄인의 장점이나 그가 과거에 했던 선행을 큰소리로 외칩니다. 그때 과장이나 농담은 일체 금지되고, 비난이나 욕이나 책망은 한마디도 해서는 안되고, 진지하게 칭찬만 해야 하는데, 칭찬이 바닥날 때까지 며칠이라도 하다가 칭찬이 다 끝나면 그때부터 그가 새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로 축제를 벌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정말 새 사람이 되고, 그래서 그 부족 사회에서는 범죄가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람의 진정한 변화와 발전은 비판과 지탄보다는 칭찬과 격려에서 더 많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를 힘써 격려해주어야 합니다.

3) 자녀의 영혼에 긍정과 믿음을 주는 말

가끔 보면 자녀 앞에서 남 흉을 보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자녀의 마음과 영혼에는 상처가 생기게 되고, 어른을 우습게 알고, 똑같이 뒤에서 흉보는 자녀로 자라나게 됩니다. 가끔 부부가 사이가 나쁜 경우에는 어머니는 자녀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여러 가지 공작을 펴서 은근히 아버지를 깎아 내리는 얘기를 하는데, 그런 말은 자녀의 영혼에 독약을 주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도 자제하고, 자녀 앞에서 남 흉보는 것도 극히 자제해야 합니다. 교회 식구, 내 이웃, 내 친구, 내 친척을 욕하는 것도 자녀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하고, 심지어는 정치인 나쁘다고 욕하는 것이나 "일본이 나쁘다! 미국이 나쁘다! 북한이 나쁘다!"고 욕하는 것도 미성숙한 자녀의 영혼에는 결코 좋은 말이 아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합니다.

어느 날 황희 정승은 길을 가다가 농부가 두 마리 소로 밭을 가는 것을 보고 "여보게, 둘 중 어느 소가 밭을 잘 가나?"하고 물었더니 농부가 쟁기를 놓고 다가와 조용히 말했습니다. "대감님! 조용히 말씀하세요. 왼쪽 편 소가 더 잘 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황희 정승이 뭐가 무서워 그렇게 조용히 말하느냐고 했더니 농부가 대답했습니다. "대감님! 아무리 소가 미물이라도 자기가 밭을 못 간다고 말하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 말을 듣고 황희 정승이 깨닫는 바가 있어서 더욱 언행을 조심해서 훌륭한 정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자녀가 다른 아이들보다 늦는 것 같고 내 기대에 미치는 것 같지 않아도 부부끼리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마십시오.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려주십시오. 일찍 핀 꽃이 먼저 시드는 법입니다. 누가 내 자녀보다 앞선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항상 앞서는 법도 없고, 항상 뒤쳐지는 법도 없습니다. 앞선 날이 있으면 뒤쳐지는 날도 생기고, 뒤쳐지는 날이 있으면 앞서는 날도 생기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믿음 잃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자녀를 믿어주며 사는 것이 바로 우리의 할 일입니다.

여러분! 자녀에게 힘써 축복의 말을 많이 해주십시오. 우리가 아이들을 잘 이끄는 대로 아이들은 잘 자랄 것이고, 우리가 축복하는 대로 아이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자녀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주는 3가지 말씀대로 자녀에게 헌신을 가르치시고, 자녀와 깊은 만남을 가지시고, 힘써 축복하심으로 축복 받는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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