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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름 실과 한 광주리 (암 8: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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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덕재 목사 (빛과소금의교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여름 실과 한 광주리를 보여 주십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모습이 여름실과 한 광주리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가 여름 실과 한 광주리와 같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같습니까?

성경에는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가 여름실과 한 광주리같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여름실과 한 광주리를 보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아모스에게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2절> 여름 실과 한 광주리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깨달음이 오십니까?

이제 여름철이 되고 있습니다. 여름 실과, 참외랑 토마토랑 복숭아랑 한 광주리, 참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기도 하고 보기도 좋지요. 그런데 그 탐스럽고 먹음직스럽고 보기도 좋은 여름 실과 한 광주리, 얼마나 갑니까? 이틀을 못 가지요?

아모스가 예언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나라, 정치적으로도 비교적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제일 풍요를 누리던 때이고 종교적으로도 융성하던 겉으로 보기에는 참 좋은 때이지만, 이 모습이 여름 실과 한 광주리 같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계속 될 줄 아느냐? 얼마나 오래 갈 줄 생각하느냐? 이제 끝이 이르렀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실과, 과일을 히브리어로 "카이츠"라고 발음합니다. 또 끝을 히브리어로 "케이츠"라고 발음합니다. 발음이 비슷합니다. 이스라엘은 카이츠다, 무슨 말입니까? 척 하면 삼천리지.. 이스라엘은 케이츠다. 여름실과처럼 잘 나가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끝이 다다랐다고 하는 말입니다.

그 끝날이 되면, 궁전에서 히히덕거리며 노래하던 연예인들, 통곡하며 울게 될 것이다. 이렇게 예언을 선포하십니다<3절>.

그러면 왜 여름 실과 한 광주리처럼 빛깔좋고 풍요로왔던 이스라엘이 금방 끝장 나게 됩니까? <4-7절>이 가르쳐 줍니다. <4-7절> 보십시오. 제가 공동번역으로 읽어 드리겠습니다.

"이 말을 들어라.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흙에 묻혀 사는 천더기의 숨통을 끊는 자들아, 겨우 한다는 소리가 '곡식을 팔아야 하겠는데 초하루 축제는 언제 지나지? 되는 작게, 추는 크게 만들고 가짜 저울로 속이며 등겨까지 팔아 먹어야지. 힘 없는 자 빚돈에 종으로 삼고 미투리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자 종으로 부려 먹어야지.' 하는 자들아. 야훼께서는 야곱이 자랑으로 여기는 당신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신다. "나는 이 백성이 한 일을 결코 잊지 않으리라."

축제, 명절 때가 되면, 사람들이 소비를 많이 하지요? 없는 사람도 추석이 되면 떡도 사고 과일도 사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대목을 기다려서 한 몫하겠다는 심보, 되는 작게 만들고 추는 크게 만드는 것, 저울눈을 속여서 내다 버려야 하는 등겨까지 팔아먹고자 하고 그래서 이자 못 갚는다고 인신매매하고 신발 한 켤레 값에 사람을 노예로 부려먹는 심보,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목을 조이는 사회악,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끝장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비교적 풍요롭다고 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숨통을 조여서, 거짓과 악을 일삼아서 빈익빈 부익부를 고착화시킨 악을 하나님께서 묵과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체적으로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고 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학대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 끝장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약한 자를 외면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이스라엘아, 너희가 여름실과 한 광주리처럼 이제 곧 끝장나게 되는 것은 가난한 자를 압제하였기 때문이다고 밝히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7-10절>까지는 끝장나는 날의 얼마나 처절한 날인가를 예고해 주십니다.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10절> 

저희가 아모스를 통해서 정의, 의를 배우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서를 통해서 제일 많이 깨우치신 악, 또 제일 크게 강조하신 정의가 무엇입니까?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소외된 자를 압제하고 학대하는 것이 제일 큰 악(堊)이고 반대로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소외된 자 등 작은 자들을 돌보며 자비를 베푸는 것이 정의입니다.

사람들이 보통 하나님을 일컬어 '히브리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렇게 히브리의 하나님이라고 하였을 때에는 연약한 자의 하나님, 눌린 자의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니, <마25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면, 가난한 자, 헐벗은 자, 눌린 자는 성육하신 예수님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니들은 지옥에 가야 한다"하니까 이 사람들이 항변하지요? "아니, 예수님이 보여야 우리가 섬기든지 대접을 하든지 할 것 아닙니까? 우리 일생에 예수님 나타나신 적 한번도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더러 주님 섬기지 않았다고 책망하십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연약한 자, 소외된 자,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한 모습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았던 캘커타의 성자, 마더 테레사가 그랬지요? "가난한 사람을 불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사랑하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테레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일생을 아름답게 살게한 힘이었습니다.

요새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부자되기에 혈안이지요?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의 비젼이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고....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열풍에 이어서 그래서 대형서점에 베스트셀러의 제목들이 이렇습니다.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 '커피 한 잔의 명상으로 10억을 번 사람들', '한국의 부자들-알부자 100인의 돈버는 노하우-

어느 방송사에서 '파란만장 미스 김의 10억 만들기'라는 드라마도 만든다고 합니다. 가관(可觀)이지요? 돈이 하나님인 세상, 돈에 돈 사람들이지요...

여러분, 부불삼대(富不三代)라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부자는 삼대를 못간다는, 삼대를 넘도록 계속 부자가 되는 사람은 흔치 않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부불삼대라고 하는데 12대에 걸쳐서 부잣집을 유지한 집안이 있습니다. '경주 최부자집 300년 부의 비밀'(황금가지 간)이라고 책으로 나왔습니다. 들어 보셨습니까?

이 책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웅 정무공 최진립에서부터 시작하여 일제시대 독립운동 자금을 비밀리에 조달하다가 전 재산을 교육사업에 기부한 최준까지 12대에 걸친 만석꾼 집안, 최부잣집의 여러 가지 일화가 담겨 있습니다.

만석꾼이라면, 만석의 소작료를 받는 사람으로서 매년 2만석의 매출을 달성하는 사람, 80kg 쌀 한가니에 20만원 정도 하니까 매년 40억 매출에 20억 순익을 보는 집안입니다.

어떻게 이 집안은 부불삼대라고, 삼대째에 망하지 않고 12대나 부가 내려올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을 소개한 책입니다.

이 최부자집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재산관리 철학, 아니 인생철학이 있습니다. 그 중에 몇 개를 제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진사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제일 처음 받는 지위입니다. 그러니까 승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권력과 부를 같이 갖는다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권력과 부는 분리가 되어야 합니다)

▆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부의 상한선을 정해 놓은 것입니다. 1등이 목표가 아닙니다. 족한 줄 알라는 것입니다)

▆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100칸의 사랑채를 만들어서 과객을 후히 대접하였고, 과객들이 머물다 가다가 쌀을 퍼 가도록 각 방에는 뒤주를 하나씩 놔 두었는데 쌀을 풀 수 있는 입구는 두 손이 간신히 들어갈만큼만 해 놓았습니다. 한꺼번에 많이 못 퍼가도록. 필요한 만큼만 퍼 가도록)

▆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 흉년이 되면 그나마 사람들이 조금 갖고 있던 전답을 헐값에 파는데, 기록에 보면 쌀죽 한 그릇 때문에 논 한 마지기를 팔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면 부의 편중현상이 극심해지지요? )

▆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검소하게 사는 것이 몸에 배게 하는, 재산이 많다고 사치, 낭비하지 않게 하는 교육이지요?)

▆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혼자만 부자되지 말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가난한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한 것이지요)

이만하면, 하나님께서 12대나 대물림하면서 부자로 살게 하실 만 했지요?

실제로 동학 혁명이 일어나고 경상도 땅에는 홍길동의 후예다 해서 활빈당들이 활개를 쳤었는데, 이 최부자집을 노리고 활빈당이 쳐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이 최부자집을 지켜 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까? 그러면, "나도 만석꾼만 된다면야, 얼마든지 그렇게 살지.. 나도 돈만 많아봐라, 내가 얼마나 잘 살텐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돈많으면 실제로는 절대로 이렇게 못삽니다. 돈이 없는 지금도 사치하고 싶고 유명 브랜드, 명품을 사야하고 아니면 짝퉁이라도 사야하는데 돈이 많아봐요.. 얼마나 심하겠습니까?

당신의 수입이 적든 많든, 오늘 당신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배려가 있습니까? 사치, 낭비, 허영, 허세 부리지 않고 검소한 생활을 추구하십니까? 지금 이렇게 살지 않으면서 나도 돈만 많으면 최부자집처럼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고 인생과 세상, 하나님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지요.  회개하든지, 아니면 고생 바가지로 좀 더 하든지 둘 중의 하나가 됩니다.

허영을 버리고 여러분도 오늘부터라도 인생 철학을 세우십시오.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성경적 가치관을 세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더불어 함께 살라고 이 땅에 가난한 사람을 그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신15:11>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백하게 말씀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모르고 지 것들만 채우려고 하니까 심판을 받습니다.

정의의 선지자 아모스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제일의 이유, 가난한 자를 무시하고 학대한 악과 힘없는 자, 연약한 자, 소외된 자를 돌보지 않고 멸시한 죄악 때문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사회 정의입니까? 법의 힘으로 일률적으로 똑같이 분배하고 똑같이 소유하여 가난한 자를 없애는 것이 사회 정의가 아닙니다. 그렇게 사랑이 빠진, 획일적 평등은 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나간 공산주의 역사가 보여 주듯이, 모두를 게으르게 하고 가난하게 하는 또 다른 악일 뿐입니다.

사랑으로써,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소외된 자와 더불어 사는 마음과 행동이 사회 정의입니다. 함께 사랑하며 사는 삶이 사회 정의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궁핍한 자를 이용하며 가난한 자를 삼키는 악한 사람과 사회에 대하여 또 다른 재앙이 있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11-13절> 보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에서 동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달려 왕래하되 얻지 못하리니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피곤하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가난한 자를 외면하면, 영적인 기갈도 함께 옵니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이용하여 부를 누리는 자는 아무리 많은 돈이 있을지라도,  막을 수 없는 영적인 핍절(乏絶), 돈은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영적인 기갈(飢渴)에 몹시도 시달릴 것임을 예고하십니다.

잠언에 이와 비슷한 진리를 깨우쳐 주는 구절이 하나 있지요? (찾아보기)

<잠21:13>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

성경은 책상에 앉아서 연구만 한다고 잘 깨달아지는 책이 아닙니다. 도리어 성경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더 풍성하게, 더 정확하게 깨닫는 은혜를 줍니다.

기도는 장시간 마구 매달려 기도한다고 더 많이 응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을 잘 드리는 사람이 잘 응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이방인들은 많이 기도해야 들으시는 줄 안다고.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내 기도의 노력 여하에 따라 들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신지라,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삶을 추구하며 무엇을 기도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지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제일 큰 계명을 등한시하고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에게 무관심하거나 혹은 이용하거나 학대, 압제하는 자에게는 영적인 곤핍함을,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 주시는 영적인 곤란함으로 대응하여 주십니다.

아모스의 정의의 예언은 경제적 풍요와 종교적 융성을 누리던 이스라엘 시대에, 가난한 자, 핍절한 자, 소외된 자를 외면한 무관심, 사랑 없음을 깨우치시는 예언입니다. 이스라엘 국가가 망하고 철저한 심판을 받는 주된 이유는 핍절한 사람, 가난한 사람에게 무관심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역사에도 아모스의 예언처럼 가난한 백성에게 무관심한 나라는 멸망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공산주의 운동이 성공을 거두어 많은 피를 흘린 나라들, 하나같이 빈부의 격차가 무지하게 큰 나라들, 소수의 상류층은 먹을 것이 남아 넘쳐서 날마다 사교클럽에서 연회하는 데 정신없고 다수의 가난한 사람은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 것을 찾아 연명해야 하는 이런 나라들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반면,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핍절한 자, 가난한 자를 외면한 인간, 사회, 국가에 철저한 심판의 예고를 내리시지만, 반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그들과 함께 사는 삶을 추구하는 백성들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들을 기억해 보십시오.

<잠11: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잠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

<잠28: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잠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찾아보기)

가난한 자를 돕는 사랑, 하나님께서 다 지켜 보시고 다 기억하시고 다 갚아주십니다.  또 이런 약속, 다시 기억해 보십시오. (찾아보기)

<사58:6-12> "나의 기뻐하는 금식(종교행위, 신앙생활)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와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니리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이웃들, 핍절한 자, 가난한 자 우리가 이들과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드려갑시다. 아모스를 통해 선포하신 하나님의 경고 앞에 우리 영혼이 경성하며, 하나님의 선하신 약속을 소망으로 품으며 우리 사회의 핍절한 자와 가난한 자, 소외된 자들의 사정을 알아주고 기꺼이 나의 것을 함께 나누고 돕는,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드려갑시다.

예수님께서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넉넉히 소생시키시며, 우리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누리며, 우리에게 마음과 육신 모두에게 치유의 은혜가 넉넉하며, 아이들에게 어른들까지 영혼의 뿌듯한 기쁨의 만족에 즐거워하며, 우리로 강건하게 하셔서 세상의 찬바람을 넉넉히 이기게 하시며, 우리 작은 자들을 통하여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다시 세우고 황무지를 아름다운 동산이 되게하는, 예수님 믿고 따르는 정직한 길을 보여주고 인생은 저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맑은 물이 흘러나게 하는 소망을 품어 봅시다.

그 거룩한 소망, 존귀한 꿈을 안고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나의 사랑을 드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그 삶에 힘있게 발걸음을 내딛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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