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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천국에서 큰 자 (마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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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학자인 윌리암 바클레이는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멀어질 수도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즉 신앙 년조와 신앙의 질이 같다고 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처음 믿었던 마음이 훨씬 더 순수 할 수가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주님을 믿었던 마음이 훨씬 더 주님 앞에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 년조가 길어지고 직분이 점점 더 높아질수록 우리의 마음은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점점 복잡해지고 생각하지 말아야 될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 믿고 교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그렇게 마음이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머리도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이 좋고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너무도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감격이 우리 속에 언제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년조가 길어지면서 서서히 우리의 마음은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조금씩 복잡해집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관심은 '누가 교회에서 더 중요한가? 누가 더 영향력이 큰 가? 누가 더 똑똑한가?' 에 두게 됩니다.

예수님을 삼 년이나 따라 다니며 제자훈련을 받았던 제자들도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우리 가운데 누가 더 크냐?" 라는 문제 때문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누군가 더 사랑을 받으면 못 견뎌 합니다. 누가 좀더 예수님 가까이 앉으면 비위가 상해서 속이 불편해 집니다. 본문에도 제자들은 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의 관심은 누가 더 크냐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도 과연 서열이 있는 것일까? 있다면 누가 과연 첫째가 될 것인가?" 이것이 제자들의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이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큰 자는 과연 누구입니까?

첫째로 마음을 돌이키는 자입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에 "돌이켜"는 원어로 ‘스트라페테’ 인데 ‘스스로 돌이키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한낱 행동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가능한 마음의 변화를 말합니다. 즉 진정한 회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으로 선포한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는 말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천국에 들어가는 제일 조건은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는 일이며, 돌이켜 회개하는 방법은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린 아이 때는 비교적 순수하다가 어른이 되면서 사기를 치고 남을 해치는 각종 죄를 짓고 살기에 회개하여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것은 순수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일입니다. 순수한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처음 예수 믿을 때는 주님의 구원하신 은혜와 사랑에 감격하여 범사에 감사하며 늘 찬양하는 순수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여러 가지 욕심이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주님보다 세상의 일이 더 보이고 정욕이 눈에 보입니다. 그전처럼 순수한 열정과 헌신의 모습은 사라지고 형식적으로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순수함이 아니라 변질된 마음으로 서로 시기하고 분내며 원망하고 누가 더 높으며 더 큰가 다투며 살아갑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과 첫 사랑의 관계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회의 직분만 내세우지 말고, 전통과 역사와 교리만 자랑하지 말고, 순수한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생이었던 니고데모는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사람이 다시 모태에 들어가야 되는지의 미련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혹시 니고데모와 같이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는 것은 아닙니까? 어떻게 다시 거듭날 수 있는가? 거듭남의 어려움만을 이야기하면서 돌이키지 않고 있는 약음이 천국에 들어감을 훼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본문에 예수님은 돌이키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결단코’ 란 표현은 절대로 허락하지 아니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크냐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 천국 시민의 자격을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에게 주신 말씀처럼 우리에게도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순수한 사람이 되어 나를 좇아야 된다' 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신앙으로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둘째로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성 크리소스톰은 중세에 유명한 대설교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끼치며 교회를 섬겼던 분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사제가 없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교구에 그곳에 살고 있는 한 농부를 교육시켜 사제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자격도 없는 자를 잘못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생겨 주일 예배에 몰래 참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예배에 참석하여 그 사제가 과연 어떻게 성경을 가르치며 자기 책임을 다하는가 살펴보던 중에 그의 눈에 눈물이 가득해짐을 느꼈습니다. 이제까지 이토록 간절히 기도 드리는 사제를 본적이 없었고, 그 메시지가 성도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로 힘있는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예배가 끝나자 크리소스톰은 나이도 적고 배운 것도 자기만 못하며 목회 경력도 어리지만 앞으로 가서 두 무릎을 꿇고 축복해 달라하여 그의 손을 자기의 머리에 얻고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어린아이 같은 겸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장점을 많이 주시고 달란트를 주셨는데 그것은 교만하여 자랑하고,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섬기라고 준 것이요, 그 장점과 달란트로 선한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을 통하여 ‘천국에서 누가 더 크냐’ 로 논쟁하는 제자들에게 그런 식의 교만은 천국에서 큰 인물이 되기는커녕 천국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죄라고 교훈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가운데 세우시고,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방법을 말씀함이 아니라 천국 시민의 성품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린아이의 겸손이 천국 시민의 성품이며, 천국에서 큰 자들이 가지는 성품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0장:20절 이하에서도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한다"고 천국에서 큰 자의 모습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천국의 리더십은 "섬기는 리더십"이라는 뜻입니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남을 무너뜨리지 않고 세워줍니다. 남에게 거침돌이 되지 않고 발판이 되어줍니다. 그러므로 천국에서 가장 큰 자는 자랑하고, 뽐내고, 큰소리치고, 교만한자가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들입니다.


셋째로 주의 이름으로 대하는 자입니다

보스턴에 애니라는 작은 소녀가 있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었습니다. 정신질환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버려진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부모조차 그들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이든 자원봉사자 한 사람이 이 애니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이 되었는지 6개월쯤 그를 돌보았을 때 마음의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점점 병세가 좋아져서 퇴원했고 보스턴 파킨스 맹아학교에 들어가 6년동안 우등생으로 공부를 합니다.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수술을 받아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앤이 어느 날 신문에 보니까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3중고에 시달리는 아이가 한 명 있는데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광고였습니다. 신문사의 도움으로 눈을 뜬 것도 감사하고 나이든 자원봉사자의 사랑도 고마워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지' 늘 생각하였는데 흔쾌히 자원했습니다. 그후 이 아이 곁에서 함께 먹고 자기를 48년, 바로 이 아이는 인류역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헬렌 켈러가 되였던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헬렌 켈러 여사에게 영국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며 "당신처럼 모든 불리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엄청난 업적을 이룰 수 있었습니까?" "오직 한 가지 앤 설리반 선생님 때문입니다." 3중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앤 설리반 선생님 때문에 헬렌 켈러는 이 땅에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5절을 통하여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되기를 원하면 연약한 자를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영접하라는 말씀은 예수님처럼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에 천국의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자식들은 부모를 대할 때 하나님처럼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신한 존재가 어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천사처럼 대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천사처럼 대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주님처럼 섬겨야 합니다. 목사는 교인을 예수님처럼 섬겨야 합니다. 교인은 목사를 주님처럼 대해야 합니다.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실망하고 상처를 줍니다.

여러분 야구를 좋아하십니까? 외야수들을 보십시오. 타자가 공을 쳤습니다. 공이 높이 날아갑니다. 뒤에 있던 외야수가 공을 잡는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공을 잡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합니다. 무릎이 까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 발목이 부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외야수들은 공 하나를 잡기 위하여 다른 모든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넘어지면서도 공을 잡았다고 기뻐하며 관중들에게 공을 흔듭니다.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소중하고 나의 다른 모든 것들은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고통을 당해도 감사하고 욕을 먹어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이 모습이 천국에서 가장 큰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존심이 허락하는데 까지만 참습니다. 자신을 낮춥니다. 내가 참을 수 있는 상황까지만 참아 줍니다. 왜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집니까? 외야수처럼 자기를 던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넘어지기 싫어합니다. 체면이 구겨지기 원치 않습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면서 몸을 던져야 합니다. 주님 영광만 드러난다면 내가 낮아져도, 내가 손해를 보아도, 내가 억울해도 참을 수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때 여러분은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소유하게 되는 줄로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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