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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내 백성을 구하라 (출 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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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가정의 달입니다. 인류 역사의 시작은 가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두 개의 공동체가 있는데 그것은 가정과 교회입니다.
이 두 개의 공동체는 오늘 이 사회의 두기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이 두기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가정의 기능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급변하는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오늘의 다이아몬드같은 것이, 내일은 쓰레기로 치워야 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제3의 파동]을 지은 앨빈 토플러는 인류가 겪은 제1의 파동은 B.C.8,000년에서 A.D. 1,650년까지 약 1만년에걸쳐서 농업혁명으로 삶의 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1,650년부터 1,950년까지 300년의 기간 동안에 산업혁명으로 인간이 노동을 덜 하고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공업사회를 이룩했습니다. 1만년이 300년으로 줄었습니다. 이것을 제2의 파동이라고 합니다.

그후 1,950년 중엽부터 1,980년은 30년동안 컴퓨터와 대형제트기, 인공위성을 비롯한 문명의 이기들이 등장하면서 놀라운 변화를 맞았습니다.과거에 1만년 동안 서서히 변화되었던 농업시대의 사고방식이 지금은 불과 30여년 만에 전 세계가 고도의 공업화를 이루면서 도덕적인 문제, 정신적인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16년 전에 개발된 PC에 비해 지금의 PC는 300배가 빠릅니다. 그리고 지금은 매년 두배 가깝게 빨라지고 있습니다. ‘급변’이라는 말이 실감이 갑니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들의 가치관이 너무 달라졌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 부모와 자식들 사이의 세대간의 갈등이 현실로 다가 온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잘못된 가치관을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무조건 큰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클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도 차도 회사도 . . .그러나 성경은 천국은 작지만 살아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겨자씨 한 알’을 말씀하셨습니다.

2) 보기에 좋은 것이 무조건 좋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포장을 잘합니다. 성형수술이 유행입니다. 너도나도 . . . .
속은 어쨌든지 밖만 잘 가꾸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벧전3:3-4절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참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은 외면 보다 내면입니다. 바울은 속사람이 강건하기를 외치고 있습니다.

3) 기분 좋으면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 마약, 섹스 이런 것에 미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힘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모터의 힘에 의해서 작동되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모터에 의지하여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비행기도, 자동차도, 배의 스쿠루우도 . . . 그런데 사람들은 모릅니다. 우주 만물의 에너지원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이, 자녀교육이, 여러분들의 사업이, 인생이 예수님을, 하나님을 에너지원으로 하여 넘치는 힘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이 파괴되고 있는 것이 단순히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명령하신 말씀에 정면으로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신앙교육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가정교육, 학교교육이 변화되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미래는 기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 속담에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아이의 가정교육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미국의 어느 여론조사기관에서 성공한 어른들을 대상으로 “당신은 어디에서 동기부여를 가장 많이 받았는가?”라는 설문 조사에서 가정에서 5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영향이 그토록 크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의 신앙교육 덕분에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나올 수 있었으며, 한나의 열정적인 기도 덕분에 사무엘은 위대한 선지자가 되었고, 방탕한 아들을 위한 어머니 모니카의 끈질긴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에 성(聖) 어거스틴이 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부모는 최고의 교사입니다.
자녀들에게 최고의 음식을 먹이고, 최고의 옷을 입히고, 최고의 대학을 보내는 것이 훌륭한 부모가 아닙니다. 그 속에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살아가게 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입니다. 최고의 인생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녀교육이 잘 못 되어 일어나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뉴스를 통해서 지겹도록 듣고 보면서도 또다시 똑같이 반복을 하고 있습니다. 전보다 더 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심각한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여, 땀 안 흘리게 하고 성공하도록 기르는 부모는 자식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땀흘리며 고생하며 수고를 통해서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하는 부모가 가장 훌륭한 부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5월 가정의 달을 맞기도 했지만 태신자 전도운동의 마지막 스퍼트에 해당하는 때입니다. 마라톤을 할 때, 출발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스퍼트는 더욱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태신자 전도운동의 스퍼트를 해야 할 때에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내 백성을 구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준비된 영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그들에게는 아무 준비가 없었습니다. 3백만 명이 한꺼번에 출애굽했는데 무엇을 마시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지 그들에게는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만나, 메추라기, 옷, 신발이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1-33)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 10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내 백성’ 이라고 하셨는데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는 히브리인들을 ‘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으로 작정한 태신자들을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행13:48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준비된 영혼들이 있습니다.
“전도에 있어서 제일 어려운 장벽은 시작하는 일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구마 전도법을 강의하신 김기동 집사님은 불신자들을 고구마로 보라는 것입니다.
생 고구마냐? 익은 고구마냐? 찔러 보라는 것입니다. 이 분이 준비된 영혼인지 아닌지. . . ‘예수 믿으십니까?’ ‘꼭 믿으셔야 됩니다. 믿어보니 너무 좋습니다.’ ‘그래도 믿어야 합니다.’

다음은 김기동 집사님의 간증입니다.
“우리 동네 세탁소 아저씨 얘기다.교회에 다니지 않던 이 생고구마 같은 사람에게 세탁물을 맡기며 전도를 시작했다.처음엔 “아저씨 세탁소가 우리 동네에서 제일 잘 하던데요”하고 칭찬해주면서 “저는 과천교회를 다니고 있는데요 혹시 예수 믿으십니까”라고 찔러보았다.당연히 그 사람은 난색을 표시했다.그때 나는 생고구마구나.하나님께서 이 시간에는 영생을 허락하지 않았구나’ 생각하고 “아저씨, 그래도 꼭 믿으셔야 합니다.제가 믿어보니 너무너무 좋습니다”라고 말한 후 그 집을 나왔다.

며칠 후 세탁물을 가져온 그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아저씨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때까지도 그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다.그 후 출근하면서 세탁소 앞을 지나다가 크락션을 누르며 그에게 외쳤다.“아저씨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아내와 함께 교회에 나갈 것을 약속했다.더할나위 없이 기뻤던 나는 곧 그 세탁소 아저씨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게 됐다.나는 놀라고 말았다.얘기를 들어보니 하나님은 이미 그 가정을 구원하기로 예비하고 계셨던 것이다. 사연인즉, 단골 고객이 맡겨둔 밍크코트가 없어지는 일이 발생했다.그 순간 그는 내가 생각났고 ‘저 사람이 자꾸 기도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교회를 안가서 이런 일이 생긴 것 아닌가’라고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그런데 바로 그때 내가 가게 앞을 지나면서 클랙슨을 누르며 또다시 예수를 믿으라고 찔렀고, 그는 곧바로 예수님을 영접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하지만 사실 그 밍크코트는 세탁물 사이에 있었다.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구하기 위해 눈을 가리신 것이다.지금 그 세탁소 아저씨는 가족 모두가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미리 준비해 두셨습니다. ‘내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하신 것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믿게 된 것입니다. 누구를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됐던지 . . . .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태신자도 지금은 탕자처럼 집을 나간 상태이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한 식구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없다면 그것 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완전히 고아요, 버려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엡1:4-5)


2. 이제 나의 태신자에게 가야합니다.

지금은 태신자 전도의 접근단계입니다.
태신자를 믿음으로 작정했다면 이제는 접근해야 합니다. 555운동 아시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그것은 ‘가라’입니다.
(영상)

모세는 바로 앞에 가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바로에게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의 손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여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정의로운 말을 할려면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나이는 80세입니다. 모세가 담대할 만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인생은 그가 생각하기에 실패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그에게는 비젼이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한 명의 군대도 없었고 오직 지팡이만이 유일한 그의 동반자였습니다. 그저 이드로의 양을 치면서 흘러가는 세월 속에 함께 흘러갈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에게는 비젼이 생겼습니다. 민족을 구원하는 비젼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80세의 노장에도 불구하고 자기 백성의 해방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비젼이 있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갑니다. 장애물이 있어도, 위험이 있어도 나아가는 것입니다. 모험하는 것입니다. 애굽제국의 바로왕 앞에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갑자기 용맹스런 용사로 변신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은 ‘가라’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마28:19)"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행1:8)"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
내 집 가까이, 내 고장, 이웃 나라에 건너가 타문화권에도 . . .
우리를 보내셨습니다.
롬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롬10: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우리는 전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담대함으로 가야 합니다.
히10:35-39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 .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모든 일에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성공하고 승리할 수 있는 기회들을 놓쳐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을 통하여 큰 일을 이루십니다.

(찬송)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큰 바다물결 보고 찰싹 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맘이 조려서 못가네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남에게 싫은 소리를 들을까봐 두려워서 가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구원받으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겨우 자기 신앙 관리 정도만 하려고 합니다.
자기 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얼마나 개인주의입니까?
적당히 믿고 적당히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2) 편리주의 의식 때문입니다.
우선 귀찮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편한 것을 좋아합니다.
인생 삶을 편한 대로 살려고 합니다. 심지어 신앙생활도 마찬가집니다. 예수님도 편하게 믿으려고 합니다. 새벽기도, 무슨 성경공부, 전도 . . . 이런 것을 싫어합니다. 이런 것을 아예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나와 상관이 없다고 생합니다.

모세가 담대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때문입니까?

1) 열등감 때문입니다.
출3:10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나는 말할 줄을 모릅니다. 주께서 사명을 주신 후에도 ‘나는 말할 줄을 모릅니다. 감당할 능력이 없어요.’ 왜,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을까? 과거의 실패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과거를 기억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고 하십니다.
“주 여호와를 앙망하기만 하면 새힘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열등감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맥츠웰 말츠박사는 "세상 사람들 중 적어도 95% 정도는 열등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열등감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물론 열등감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용하시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열등감의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면 그 열등감 때문에 쉽게 좌절하고 낙망합니다. 열등감 때문에 태신자에게 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2) 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애굽을 나올 때 사람을 죽였어요. 그리고 피신했습니다. 요즘 같이 공소시효가 정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애굽에 들어가서 잘못하면 살인범으로 몰려 체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압력과 두려움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의 과거를 알면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너를 쫓아 다니던 사람들은 벌써 다 죽었다. 내가 너와 함께 가리라. 그리고 너의 형을 붙여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자신이 없었어요. 13절 봉독합시다.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다른 사람 보내세요. 난 못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14절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노를 발하십니다.”
모세의 가치관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자신을 평가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비교하지 마세요. 분명히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3. 죄의 노예에서 해방시켜야 합니다.

애굽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산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애굽에 팔려 와서 총리대신이 되어 부모님과 온 가족들을 초청합니다. 요셉 덕분에 온 가족들은 기름진 고센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고센이 아무리 좋아도 그곳이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살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곳을 나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할 곳은 약속의 땅 가나안입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빌립보서3:20)고 했습니다.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430년간 애굽의 노예의 삶에서 내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라’는 것입니다.
애굽의 바로하에서의 노예는 죄의 노예를 상징합니다.
죄는 중독성이 있습니다. 죄가 우리 속에 들어오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마비시켜버립니다. 마약 중독과 같이 술 중독과 같이 말입니다.
죄에 한번 중독이 되면 죄를 안 지으려고 결심한다고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분의 고백입니다.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반복되는 죄가 있었습니다. 그는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면도칼로 손가락 끝을 조금 베어 냈습니다. 피가 흘렀습니다. 그는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혈서를 썼습니다.그리고 책상위에 붙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작심 삼일이었습니다.
결심으로 되던가요? 아닙니다. 인격을 잘 수양하면 죄를 이길 수 있을 가요? 인격이 좋으면 죄를 이길 수 있을 것같은 가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이야기처럼 낮에는 성자, 밤에는 악마로 살아갈 수는 있어도 죄를 이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두 모습입니다.
여러분 죄의 중독은 무섭습니다. 사단은 이것을 무기로 오늘도 많은 구원받아야 할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옛날 재래식 화장실을 기억하십니까?
시골 화장실에 들어가면 정말 숨을 쉬기도 곤란합니다. 그런데 조금 있다보면 이제 익숙해져서 화장실에서 그 날 신문을 아무 문제없이 다 봅니다. 죄의 중독은 그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에 비록 그들의 통치를 받으면서 끼니를 이어가지만 나중에는 목숨을 연명하는 것을 감사히 알고 적당히 일본 사람들에게 아부하면서 살았던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와같이 오늘도 죄의 노예에서 사는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편한 것 처럼 . . .큰 옷도 입다보면 편해지듯 느껴집니다.
작정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의 태신자가 거기에 있습니다.
죄에 중독되면 감각을 잃게 됩니다.
그런 것이 인생인줄 아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남편의폭력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며칠전 어떤 연예인의 남편 폭력 사건이 온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부인은 늘 남편의 폭력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이 생활이 되어 남편의 폭력을 즐기며까지 사는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남편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뭔가 이상하고 허전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죄는 이렇게 중독성이 있는 것입니다. 아편 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노예 생활에 익숙해져서 광야 생활보다 차라리 노예 때가 더 좋았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노예의 삶을 살다보니 노예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것입니다.
출16:2-3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오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날 때 툭하면 ‘애굽의 노예 생활이 더 좋았어, 옛날이 더 좋았어’라는 말을 합니다.
죄의 중독된 사람들도 이런 태도를 가집니다. 지금, 우리의 태신자들의 마음에는 이런 생각이 지배할 지 모릅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보다 전에 살던 생활 방식이 더 좋고 편하다고 말 할지 모릅니다. 이런 죄의 노예 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해야 합니다.
“가라!”
지금은 접근 단계입니다. 주님 사랑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나의 태신자에게 갑시다. 사랑가지고, 해방시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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