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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경건의 단절 (삼상 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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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송기현 목사 (한광교회)

  자녀를 낳기는 쉬어도 그 자녀를 사람답게 키우기는 참 어렵습니다. 요즈음은 낳는 것도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환경적인 요인으로 인해서 불임부부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임부부에게는 자녀를 낳는 것이 쉽다는 말은 실례되는 말인줄로 압니다만 부분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따지면 그렇다는 것이니까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뭍은 모든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문제는 큰 소리 칠 수가 없음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눈을 감을 때까지 자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 예를 오늘 주시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 정도라면 그 자식도 성공적으로 키웠으리라 쉽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자식들은 그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은 첫 아들에게 "요엘"이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에게는 "아비야"라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아비야는 "여호와는 나의 아버지시다"라는 뜻입니다. 이만큼 아버지 사무엘은 두 아들을 통하여 신앙고백을 했고 그렇게 자식들이 자라주기를 기대했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다 그럴 것입니다. 자기 자식들이 자기보다는 좀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의 집안의 결말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자녀들의 문제만큼은 실패했습니다. 아버지 사무엘의 좋은 것을 보고 배우며 자랐지만 두 아들은 아버지의 좋은 모범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난 이후에 세움을 받은 최후의 사사요, 최초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사사로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셨으며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은 그를 믿고 따르며 순종하고 존경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최고의 지도자요 존경받은 사무엘도 자녀교육에는 실패한 아버지였습니다.  격무에 시달려서 그랬는지 어찌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외할머니 한나의 경건과 아버지 사무엘의 경건이 아들 요엘이나 아비야에게 이어지지 못하고 경건이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강원도 철원에 가면 녹슨 기차길과 기차 옆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표지가 세워져 있습니다. 단절되면 슬픈 것입니다. 단절되면 비극입니다. 우리 민족의 비길은 남북의 단절입니다. 남북이 연결만 되면 아시아로 유럽으로 끝없이 뻗어갈 수 있는 민족이고 나라인데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사무엘이 나이가 많아지자 자기 두 아들을 사사로 세웠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먹게 되고 늙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의 권한과 유산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지도자로서 갖춰야할 인격과 덕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절에 보면 사무엘의 자식들은 "그 아비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고"했습니다. 이들은 훌륭한 아버지의 모범을 따라 백성들을 지도했어야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아버지의 모범을 우습게 여기고 그것을 따르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오히려 아버지가 하지 아니한 일에 정신이 팔렸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서 보는 것과 같이 "이를 따라서 뇌물을 취하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했습니다.
  정당한 보상보다 더 바라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사사의 보상으로도 그들은 얼마든지 행복한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뇌물을 받아 챙기고 판결을 굽게 해 주었습니다. 뇌물의 액수에 따라서 선악이 바뀌고 의인과 죄인이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일 때문에 이스라엘 나라의 역사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4절 말씀에 보면 사무엘 아들들의 폭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우리는 이제 사사가 필요가 없으니 우리에게 왕을 세워달라고 한 것입니다.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상징하는 사사제도가 무너지고 세상 나라처럼 왕이 다스리는 왕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왕정이 시작되면서 왕으로 인해서 고통받게 된 것은 이스라엘 역사가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 무서운 불행의 씨앗을 누가 뿌렸습니까? 자식을 잘못 둔 사무엘과 아버지의 모범을 따르지 않았던 그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사무엘 집안의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좋은 것을 보고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그릇되었습니다.  그런데 자랄 때에 나쁜 것을 보고 배우면서 자랐다고 하면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형편이  더 나쁠 가능성이 훨씬 많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무엘 집안은 자손이 귀한 내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엘가나와 한나 사이에 오래도록 자식이 없었습니다.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얻은 자식이 사무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식인 사무엘을 하나님 전에 바쳐버렸습니다. 그리고 얻은 것이 요엘과 아비야였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한 손주들이고 자식들이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 과잉보호를 하게 되고 과잉사랑을 쏟아부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자식들을 한마디로 무례하게 길들여 놓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 귀한 자식일수록 바르게 키우십시오. 과잉보호하지 말고 과잉사랑하지 말고 무례하게 키우지 말고 예의 바르게 키우십시오. 그래야 망하지 않습니다. 귀할수록 세상에서 경쟁력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들은 사무엘집안의 전철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어른들이 자신의 할 일을 잘하는 것과 아버지나 어머니 역할을 잘 하는 것과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또 부모들이 자신의 일에 바쁘다 보면 정작 가장 소중한 자식의 문제를 소홀리 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 다시 한번 자녀들을 생각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자녀들에게 관심을 갖고 바르게 가르칠 것을 가르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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