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어린이가 있는 곳 (마 18:1-10)

  • 잡초 잡초
  • 359
  • 0

첨부 1


- 설교자 : 서정호 목사 (영암교회)

'지금도 어린아이가 태어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말이 있습니다.자녀들이야말로 부모들에게 소망과 기쁨이 됩니다.어린이를 꽃과 같다고 하는 것은 꽃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이도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꽃은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신 그 모습 그대로를 보존해 가고 있습니다. 스스로의 방법으로 분장을 하거나 꾸미지 아니하고도 아름답습니다. 어른들처럼 화장을 하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어른들처럼 고운 옷을 입지 않아도 귀엽고 아름답습니다.

자녀를 슬프게 하는 8가지 말

자녀가 부모에게서 가장 듣기 싫어하는 꾸중은 무엇일까요? 부산시 청소년 종합 상담실은 개소 10주년을 맞아 발간한 부모 교육 자료에서‘자녀를 슬프게 하는 말’ 8가지를 소개했는데 자료에 따르면 "나가버려.", "너의 형은 안 그러는데 왜 그래." 등과 같이 자녀를 밀치거나 형제간 비교하는 말이 자녀를 슬프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밖에 '다시 한 번 그런 짓 하면 그냥 안 둔다'(위협하는 말), '답답해 죽겠다'(재촉하는 말), '엄마는 화내고 싶어서 화내는 줄 아니'(변명하는 말), '너는 정말 어쩔 수 없다'(가능성을 부정하는 말), '너는 왜 그렇게 머리가 나쁘니'(결점을 비난하는 말), '너는 몰라도 돼'(무시하는 말) 등도 자녀가 듣기 싫어하는 말 가운 데 하나였습니다. 상담실은 또 부모가 버려야 할 불합리한 생각으로 나와 내 자녀는 완벽해야 한다, 나와 내 자녀는 서로 같아야 한다, 부모는 자녀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우리 아이는 철이 없어 부모 마음을 모른다, 자신보다 자녀를 언제나 우선적으로 생각한다는 말 등을 들었습니다.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자녀들의 가슴속에 기억됩니다. 때로는 그것이 힘이 되기도 하고 말 한마디로 인하여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 칭찬하는 말, 사랑의 말을 통하여 자녀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이대 나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소유인 사람들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어린아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

마태복음 18장 2-3절에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그 어린아이를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고 하였습니다(막 9:36막 9:36). 본문 4절에는 계속해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의 동기는 누가 크냐고 하는 제자들의 다툼이 있은 후에, 교훈의 실물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들 가운데 세우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돌이키는 자'(to turn) 곧 '회개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마18:3 마 18:3). 그리고 '자기를 낮추는 자', 곧 '겸손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어린이가 있는 곳에는 잘못에 대한 뉘우침과 돌아섬이 있으며 어린이가 있는 곳에는 겸손함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마태복음 18장 5절에는“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하였고 6절에는“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 속에서 어린이의 존재적 귀중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마가복음 10장 15절에“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신 것은 어린이가 있는 곳에는 순수한 섬김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5-26절에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렇다면 어린아이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또한 어린이가 있는 곳에는 예수님을 향한 감격적 찬송과 기쁨과 만족이 있었고 거기에는 섞임이 없는 순수함과 티 없는 신뢰가 있었으며 어린이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가능의 역사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태복음 21장 16절에“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저 어린이들은 예수 앞에서 호산나 만세를 불렀던 자들입니다. 교권주의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 어린아이들의 예수님을 향한 감격적인 함성을 틀어막으려고 하였지만 주님은 저들의 함성을 지지해 주었고 만일 저 사람들이 잠잠하면 길가의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함성의 군중 속에는 어린이들이 함께 있었습니다(눅 19:39-40눅 19:39-40). 그렇다면 어린이가 있는 곳에는 예수를 향한 감격적 찬송과 기쁨과 만족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거기에는 섞임이 없는 순수함과 티 없는 신뢰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디베랴 언덕의 예수를 따르던 군중 가운데“한 아이가 있어”그가 가진“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예수에게 전달되었습니다(요 6:9요 6:9). 바로 한 어린아이가 예수께 드린 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의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5천 명의 장정과 수많은 여자와 아이들이 먹고도 남아 열두 광주리를 채웠습니다(요 6:11-14요 6:11-14, 마 14:20-21마 14:20-21). 그렇다면 어린이가 있는 곳에 드림이 있고, 그 드림이 있는 곳에 축복의 기적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말하자면 어린이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가능의 역사가 숨 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이를 사랑하셨습니다.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에게서 이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축복하며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우리가 욕설을 들으면 기분이 나쁜 것은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때론 욕을 들은 그대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은 것은 좋은 말대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축복은 축복한 것만큼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저주는 저주한 것만큼 그대로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너희 혀를 자갈 먹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말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도 보면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원망하는 자에게는 원망할 일만 있고 짜증내길 좋아하면 짜증날 일만 생깁니다.

부모의 죄가 자식들에게까지 돌아가게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자식에게 축복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자식에게 긍정적으로 인생을 사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복 받기를 좋아하던 야곱은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애굽에 갔을 때 그의 아들 요셉의 두 아들 즉 손자를 축복 기도했습니다. 복은 축복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 어느 집에 가든지 그 집이 평안하기를 빌라고 했습니다. 그 집이 받아들이면 그 집 것이요, 받아들이지 않으면 축복은 축복을 빈자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에게 성경과 신앙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교회출석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 자녀들 마음에 하나님이 계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네 가지의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가정과 학교와 교회와 사회입니다. 이 넷 중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곳이 가정입니다. 비록 형편상 대학을 다니지 못했다 하더라도 어릴 때 인격 훈련이 바로 된 사람은 유익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교회출석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학교 안 가는 것은 큰일처럼 여기고 교회 가지 않는 것은 내버려두면 안 됩니다. 피아노 레슨이나 과외 빠지면 큰일이고 교회는 갔는지 안 갔는지 헌금은 드렸는지 안 드렸는지 챙기지 않으면 큰 문제가 됩니다. 제사장 엘리는 자기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잘못해도 그냥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가정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내 자식이건 남의 자식이건 관심을 가지고 가르치고 기도하고 믿음의 훈련을 시킵시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먼저 믿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인간은 유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무한합니다. 수십 년 후의 영암교회는 우리들의 어린 자녀들의 몫입니다. 그들이 장성해서 이 교회를 지킬 것이고 봉사하고 섬길 것입니다. 믿음으로 자녀들을 양육하십시다. 그래서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바르게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회성 있는 자녀로 양육해야 한다

믿는 사람이 독선적이면 안 됩니다. 사랑할 줄 알아야 합니다. 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양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웃의 아픔을 알아야 합니다. 내 것을 줄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함에 맹목적이면 안 됩니다. 내 자식이 하는 일이 전부 다 좋으면 안 됩니다. 잘못했을 때 매를 들 줄도 알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이기지 못했을 때는 승복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아기들을 적게 낳기 때문에 자식들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기 쉽습니다. 그러기에 잘못 교육되기 쉽습니다. 이기적이고 고집스러운 아이들로 자라기 쉽습니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처리할 줄 모릅니다.

어느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하여 주방으로 갔습니다. 식탁 위에 아들이 쓴 청구서가 한 장 놓여 있었습니다.

1. 이번 주 아빠 구두 닦아 드린 것. 5,000원  2. 엄마 심부름 세 번 한 것. 3,000원  3. 쓰레기 두 번 내다버린 것. 2,000원
합계 10,000원


어머니는 빙긋 웃으며 그 밑에 답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10,000원과 함께 식탁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1. 너를 몇 달동안 내 뱃속에 넣고 다닌 것.  2. 너를 그동안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데 들어간 돈. 3. 네가 아플 때 밤새 울며 기도하며 눈물 흘리며 간호한 것.  4. 이외에도 너에 대한 나의 진정한 사랑까지 전부 공짜이다.

아들은 얼굴을 붉히면서 그 편지를 읽고서 자기가 쓴 청구서 밑에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위의 것은 이미 다 지불되었음 그래서 만원은 돌려드립니다. 엄마의 아들."

지금 아이들은 사랑할 줄 모릅니다. 봉사할 줄 모릅니다. 정리할 줄 모릅니다. 궂은일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사회성이 없습니다. 학교 청소도 엄마가 가서 해주어야 합니다.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빗자루를 들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걸레를 손에 댈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른들이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이웃이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꾸지람 속에 자란 아이는 비난하는 것을 배운다.

미움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미움을 배우며 자란다.

매를 맞으며 자란 아이는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된다.

놀림을 당하며 자라난 아이는 수줍음을 타게 된다.

사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용서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는 남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

관용 속에 자란 아이는 참을성이 있는 사람이 된다.

격려 받으며 자란 아이는 자신감을 갖고 자란다.

칭찬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감사할 줄 안다.

공정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 아이는 올바름을 배우게 된다.

안정 속에 자란 아이는 믿음을 갖게 된다.

기도로 자란 아이는 희망을 꿈꾸는 사람이 된다.

어린이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의 나라 운동이 있다

바로 예수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20세기 인류 역사의 위대한 발견이 있다고 하면 어린아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동인식에 대한 가치변화입니다. 바른 아동관의 발견입니다. 어린아이의 귀중성, 가치성을 바르게 평가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크게 유의해야 할 것은 어린아이에게는 죄가 없다거나, 어린아이라고 하는 이유 때문에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말은 천국의 복음을 신뢰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즐기고, 나눔에 있어서 어른들의 세계보다 어린아이들의 세계가 월등하게 앞서고 효과적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린이가 있는 곳에는 천국 복음 운동이 부흥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나라, 곧 교회가 부흥한다는 말입니다. 어린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 운동의 전위부대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나라의 장래를 미리 알려주는 확실한 전령사는 그 교회에 어린이가 얼마나 많으며, 그 나라에 얼마나 건강한 어린이가 자라고 있는가에 따라 판가름이 나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있는 곳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어린이가 있는 곳에 '호산나!' 함성을 지르는 감격적인 찬송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 어린이의 세계에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 곧 교회 부흥, 가정 부흥, 나라 부흥이 있습니다. 바로 사랑과 신뢰와 용서와 겸손과 온유와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확실히 보장된 축복의 미래가 있습니다. 어린이가 있는 곳에 가정 전도, 부모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가능의 미래, 영광의 미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린이가 없는 집, 어린이가 없는 교회, 어린이가 없는 나라는 무덤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는 가정의 꽃입니다. 미래의 희망입니다. 국가와 사회의 기초입니다. 새싹입니다. 어린이는 약해 보이지만 언제나 새롭고 싱싱합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이 튼튼하고 싱싱하게 자랄 수 있도록 보살펴주고 가꾸어야 합니다. 어른들의 의무이며 부모님들의 의무입니다. 시대의 과제입니다.

가끔 교회 안에 보면 새로 믿는 분들 중에서 어린이처럼 순수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 신앙이 아주 순수합니다. 계산하고 따질 줄을 모릅니다. 신앙에 감동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날마다 감격하면서 삽니다. 기뻐서 교회에 옵니다. 찬송하고 기도할 때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립니다. 어린아이의 영혼을 가진 분입니다. 육체의 나이는 들었어도, 영혼의 나이는 갓난아이입니다.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교회의 교회된 특색과 미래적인 중심의 힘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 받은 새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이 아닌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을 교회의 한가운데, 역사의 한가운데 세우시고 일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영적 어린아이는 교회에서 가장 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집이요 기둥과 터가 됩니다(딤전 3:15). 이 집의 가운데는 어린아이들이 서 있어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