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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한 가정을 재건합시다.(시 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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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대구문화교회)


5월은 푸르고 5일은 어린이 날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5월을 좋아했습니다. 하루 세끼 밥만 먹으면 그저 행복했습니다. 행복이 무언지고 모르고 그저 좋았습니다. 5월은 하루만이라도 자유가 있고 노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5월의 하늘에 어느새 검은 구름이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벌써 어린아이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들을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5월을 눈물로 물들이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린이는 행복해야 합니다. 어린이는 때 묻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저의 어린시절을 되새겨 봅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려운 신학도 모릅니다. 나는 장로교 너는 감리교라는 소리도 몰랐습니다. 처음 어릴 때 구원이 무엇이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저는 교회가 좋았습니다. 주일이 어찌 그리 기다려졌는지 모릅니다. 집에는 호롱불이었습니다. 교회는 대낮같이 밝은 예배당도 좋았습니다. 10리길이 어린나이에도 결코 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으로 빚어 만드신 아담과 하와 외에는 모두가 어버이를 갖고 어린이로 태어났습니다. 그러기에 가정은 인류의 산실이요 보금자리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삶이 시작되고 또 끝을 마치게 되는 터전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창조 프로그램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터전입니다. 오늘 목격하는 사회의 부조리, 범죄, 성적파탄, 도덕적 파멸, 자살, 등은 가정의 일그러진 모습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죄를 범하는 소년소녀의 가정생활을 조사해 보면 거의가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난 분이랍니다. 부모의 정을 받지 못했기에 그 자람이 비뚤기 쉽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불행은 교회의 불행입니다. 개인의 문제가 곧 사회의 문제입니다. 오늘날 집은 있으나 가정은 없다고 합니다. 성경에 훌륭한 디모데목사님은 가정이 원만했습니다. 신앙가정이었습니다.(딤후 1:3-5) 사무엘도 신앙교육으로 평생을 바치신 분입니다.(삼상 3:1-6) 그러기에 행복한 가정은 행복한 자녀를 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뭐하나 부족함이 없는 가정의 자녀들도 비행청소년이 나올 수 있습니다. 독립심이 없습니다. 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기적입니다. 되는대로 살아갑니다. 아이들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경우도 문제가 됩니다. 응석받이로 만드는 경우, 이런 가정에서 지내는 아이는 노이로제에 잘 걸린답니다. 심신이 허약하답니다. 어쨌든 오늘의 가정은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웃음이 없습니다. 걸핏하면 큰 소리가 나옵니다. 아이들은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유머가 없습니다. 이런 분은 조그마한 문제를 크게 과장합니다. 흔히 문제의 사람이 있듯이 문제의 가정이 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는 주 안아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단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에베소서 6:1-4)했습니다. 이것이 이상적인 가정이라고 봅니다. 여기에 부모의 사랑이 있습니다. 자녀들의 뜨거운 효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시인 박성용씨의 시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매일 조금씩 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아이들 손을 잡고 가다가 마을 어귀 갈림길에서 손을 놓고 학교를 보낼 때 나는 조금씩 울어 둔다. 먼 훗날 언젠가는 이 아이들의 손을 영영 놓게 될 때 홍수처럼 밀려 올 울음을 한꺼번에 울지 않기 위해서 나는 매일 조금씩 울어둔다.”라는 내용입니다. 자녀란 언젠가는 떠나가는 존재입니다. 부모의 가슴에 그들을 가두기는 너무도 좋은지도 모릅니다. 여기 부모와 자녀의 위기가 왔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밖에 모르던 그가 더는 남자와 여자를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가정의 권위가 없어졌습니다. 가정은 사랑과 휴식의 장소입니다. 가정은 모름지기 가정다워야 합니다. 교회에서 하루 빨리 가정을 재건합시다. 가정교육이 곧 사회교육입니다. 가정에서의 신앙지도는 곧 사회에서의 신앙지도입니다. 이제 이렇게 세월은 갑니다. 누가 뭐래도 갑니다. 정도 떠나고 의리도 떠나고 꼭 가정은 여관방처럼 쓸쓸하게 되고 맙니다. 여기 신앙이라는 접착제로 연결시켜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제일 급합니다. 삶에서 시달리다보니 신앙의 아예 생각할 겨를도 없지요.



가정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축복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과 완성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가정을 제경하시고 창조 때부터 가정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나면서부터 가정에서의 인간관계를 통해 사랑과 질서와 도덕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임무도 배우게 됩니다. 가정은 한 생명이 자라나고 만들어지고 완성되는 가장 중요한 장소입니다.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부부관계입니다. 좋은 남편이 되고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을 그들 자신의 행복이 아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행복한 부모, 좋은 부모만이 좋은 자녀, 좋은 국민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터만(Terman)은 성공적인 결혼의 원인에 대한 통계를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① 부모들의 행복한 결혼생활

② 사랑을 많이 받은 행복한 아동기.

③ 부모들이 싸우지 않는 것.

④ 어릴 때 엄격하고 절도 있는 교육.(가혹하지는 않음)

⑤ 부모에 대한 애착심.

⑥ 올바른 성교육.

오늘 우리들은 정당하고 원만한 결혼을 지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거룩하고 경건한 것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생활교육을 뒤로 미루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모든 경험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한 사람도 “내”가 없고 “우리”만 있을 따름입니다. 고넬료의 가정이나 이삭의 가정은 참으로 모범적인 가정이었습니다. 미국사람들은 결혼하면“I”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답니다. 대체로 “We (우리)”라는 말을 쓴답니다. 그들은 더 나은 반쪽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자신을 자신의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곧 너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사회는 복잡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은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지표를 잃고 삽니다. 등대를 잃은 배처럼 방황하고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내일을 잊은 지 오래입니다. 하나님이라는 말 보다는 포악한 욕설이 앞서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식구들의 육체적 건강과 영양에만 정신을 기웁니다. 영적성장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예술은 인간을 지옥으로 가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가정이 없는 거리의 천사가 끼치는 영향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지금도 집을 등진 청소년이 어찌 한둘이겠습니까? 이들은 어둠에 살고 있습니다. 이젠 빛을 줍시다. 현대인들은 신앙에 무관심하고 겉치장, 출세, 돈벌이 등의 문제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인간이 물질을 관리해야 하는데 오리려 물질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지내는 시간 보다 밖에서 지내고 있는 시간이 많은 이유도 있습니다. 가정이란 개념 사랑과 화평이라는 개념보다도 하나의 합숙소 같은 구실을 한다면 이는 위험합니다. 걸핏하면 죽인다는 말이 부모와 자식간에 이뤄지고 있습니다. 부모는 교회출석을 강요하는데 자녀는 교회 밖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이젠 적신호가 왔습니다. 젊고 어린 다음세대는 누가 책임져야 하겠습니까? 이들의 신앙교육을 누가 담당해야 하겠습니까? 교회에서, 가정에서 책임져야 하겠습니다. T. V, 만화, 불건전한 잡지, 이들이 오히려 성경의 매력보다 더 그들을 끌고 있다면……. 주일 오후의 만화 프로가 T. V에 방영되면 아이들의 교회 출석에 영향이 많습니다. 여러분, 이젠 가정과 교회가 대화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좀 터놓고 의논해야 하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조물주를 기억하게 해야 합니다. 자란이후에 그들에게 신앙교육은 너무나 힘이 듭니다. 여러분, 저는 어린아이 하나하나까지 관심이 있으나 돌볼 시간이 없습니다. 요즈음 학교교육도 하루에 9-10시간씩 중 고등학교에서 공부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의 성경교육은.... 어린이가 학교의 숙제 물을 집에 가지고 오면 부모가 강요합니다. 그리고 교회에 갈려면 피곤하다고 오히려 집에서 쉬라고 하는 부모가 더러 있답니다. 이것은 얼마나 위태로운 생각인가요? 오늘날 사실 우리는 기대할 것은 학교가 아닌 교회인줄 압니다. 신앙으로 바로 교육시켜 놓지 않으면 자라서 그들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들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줘야 하겠습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이 교육을 등한시 하겠습니까? 이젠 고민할 문제도 벌써 지났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재건되어야 합니다. 재건되어도 신앙아르 재건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중심으로 뭉쳐져야 합니다. 교회교육이 변해야합니다. 이게 곧 생산적인 투자라고 하면 어떨까요? 우리의 살길도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주님 안에서 새 모습을 찾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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