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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녀들아 순종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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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녀들아 순종하라(골 3:20, 엡 6:2-3)

인간은 부모를 통해 이 땅에 와서 큰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부모의 사랑은 이 세상의 어떤 사랑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친구간의 사랑과 이성간의 사랑이 커도 부모의 사랑에는 못미칩니다.
그래서 부모의 사랑을 하늘 보다 높고 바다 보다 넓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자식들은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세상에 어디를 가도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서 이런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부모의 사랑을 안다면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힘 닿는데 까지 효도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만약에 이 최고의 사랑을 망각하고 불효한다면 짐승만도 못한 사람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기억하고, 반드시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골로세서 3:20절에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낳아주고 키워주었다는 생물학적이고 윤리적인 면만 가지고도 존경해야 할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보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자식의 권위자로 선정하시고 세우셨다는 면에서 존경해야 할 존재입니다. 따라서 자식은 부모를 하나님의 권위의 대행자로 알고 부모를 존경하며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한편 여기서 모든 일에 순종하라고 하였는데, 이는 무조건 맹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지혜롭게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식은 마땅히 부모를 모시고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한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그래서 자연히 예수님이 일찍부터 가정의 책임을 맡으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30세에 공생애에 나오셨는데, 그때까지 목수 일을 하시며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은 항상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의무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어머니에 대한 관심을 표한 것을 보면 그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밀려 왔는데도 눈을 떠서 곁에 있던 어머니를 보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의 심정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옆을 보자 제자가 서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머니를 향해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 19:26) 하시고, 또 제자를 향해서는 '보라 네 어머니라'고 하여 두 사람을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그 때부터 제자가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시고 살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효도의 한 면입니다.
인간이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불행하게도 오늘의 시대는 부모에 대한 효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부모에게 반항하고 학대하는 자식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절에 보면, 바울 사도가 마지막 때가 되면 부모를 거역하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이미 그런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부모에게 거역하고 잘못하는 자식들이 너무도 많아서 세상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시대에 부모에게 순종하는 삶을 살므로 본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질서는 부모를 공경하는 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식구들이 불행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회도 흔들립니다.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가 가정이기 때문에 가정이 흔들리면 사회가 혼란해 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가정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모든 가정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27-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의 처음 가정을 만들 때부터 가정들이 행복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사랑하십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도 가정이고, 천국도 가정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가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차 천국에서 택한 백성들과 함께 영원히 가정 생활을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찬송가 222장에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고 살겠지만, 이 땅에서도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온 식구들이 함께 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따금씩 별나게 예수를 믿으면서 가정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절대로 신앙을 핑계하여 가정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인생이 가정에서 누리는 행복이 큽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고단해도 가정에만 들어가면 쉴 수 있고, 평안함이 있습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수고하고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갈 때 마음이 설레는 것이 바로 그 이유입니다. 그것이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가정이 점점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세계 제 2위라는 통계도 나왔는데, 가슴이 철렁합니다. 정확한 통계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많은 가정들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자녀들이 방황하고 범죄 집단에 들어가 잘못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큰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문제는 가정 경시 풍조인데, 가정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말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온 식구들이 서로 사랑하며 화목하게 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가정을 예수 신앙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 신앙만 있으면 가진 것이 없어도 행복합니다. 잠언 17: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에 이런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가정에 질서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권위가 있고, 어머니에게는 사랑이 있고, 자식들에게는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결코 신앙의 가정은 무질서 하지 않습니다. 부모의 권위를 자식들이 짓밟지도 않고, 막된 자들처럼 함부로 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고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공경은 위로 향하는 존경을 겸한 사랑을 말합니다. 패륜아가 부모를 무시하고 박대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1:15절과 17절을 보면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했습니다. 무서운 경고입니다.

성경을 기초로 한 기독교는 효를 강조하는 종교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불신자들 가운데는 제사 문제로 기독교를 조상을 섬길 줄 모르는 종교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큰 오해입니다. 기독교는 죽은 조상의 귀신을 섬기지 않을 뿐이지, 살아 계신 부모를 공경하라고 가르칩니다. 보이는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성경의 가르침과 교훈을 받은 성도들은 철저하게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을 하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순종이라고 다 순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에 이목 때문에 체면상 하는 순종이나 안할 수 없어서 하는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또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하는 순종도 순종이 아닙니다. 어떤 노인이 마음 아픈 소리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자식들이 자기 재산을 보고 효도하는 것처럼 시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죽기만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대단히 유감스러운 얘기입니다. 이렇게 효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효가 아닙니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가르치신 부모님에게 순수한 마음으로 순종을 해야 합니다. 이득을 위해서 순종을 하는 것은 불효 중에 불효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노부모에 대한 효도 문제는 심각합니다. 많은 노인들이 자식들과 떨어져 살면서 노년을 외롭게 보내고 있습니다. 버려지는 노인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들도 있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살면 곧 세상을 떠날 터인데, 얼마나 살기가 힘들고 어려웠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노인들이 너무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잠언 16: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했는데, 오늘날은 천대의 면류관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 현상을 보면서 부모에 대한 효도를 반성하고, 믿는자로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운데 부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이 문제가 걸림이 되면 바르게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섬길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효도를 해야 합니다.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 함을 알고 효도해야 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효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부모님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부모가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내 부모는 오직 하나입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드리고,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효도가 아닙니다. 물론 그것 조차도 않는 자식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대접하는 것만으로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나를 낳으시고 기르시고 이만큼 성장하도록 뒷받침을 해 주신 분들입니다. 자신과 관계가 없는 어른들도 섬겨야 하는데, 더군다나 나를 위해서 희생하신 부모님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누가 귀하게 여기겠습니까? 조금 시간이 지나면 효도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세월은 늙으신 부모님을 우리 곁에 오래 두지 않는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부모님을 따뜻하게 모시지 못한 사람은 돌아 가신 다음에 한이 많은 법입니다.
한 시인은 '어버이 살아실 제 섬기기 다 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닮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고 했습니다. 살아 계실 때 귀하게 생각하고 잘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부모의 좋은 면을 보아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여 희생하시는 것만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허물이 없는 사람이 없는데 허물을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설사 허물이 보인다 할지라도 덮어 드려야 합니다.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따금씩 부모를 흉보는 자식들을 보는데 삼가해야 합니다. 자식이 흉보는 것이 어떠하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흉을 보다 보면 부모님의 좋은 면이 감추어 질 뿐만 아니라, 더러운 사단이 틈타 부모에게 해가 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8장에 보면 노아의 가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홍수가 끝난 후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옷을 벗은 채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이 때 아들 함이 그 모습을 보고 형제들에게 비난했는데, 셈과 야벳은 이불을 가지고 들어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렸습니다.
술이 깬 노아가 함은 저주하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했습니다. 그대로 되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허물이 보여도 덮어드리고, 항상 좋은 면만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입니다. 자식을 사랑하시는 그 중심을 보아야 합니다. 자식을 위해서 희생하시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쉬지 않고 자식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이 모습이 보여야 부모에게 효도할 수 있고, 복을 받게 됩니다.

세 번째는 부모를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공하고 출세하고 잘 사는 것은 부모의 은혜입니다. 내가 잘 나고 똑똑해서가 아니라, 부모의 희생과 기도 덕택인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발판 삼아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부족해도 부모의 인격이나 삶을 부끄러워 말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다 무시해도 나는 무시하면 안 됩니다.
옛날에 시골에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자식을 서울로 대학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을 가르치려면 소 팔고 전답을 팔아 가르치던 시절이기 때문에 대학 하나 가르치면 가세는 기웁니다. 온 식구들이 허리 끈을 졸라 매야 하고 고생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 부모도 자식 하나 가르치겠다고 온갖 고생을 다하며 대학 공부를 시켰습니다. 어느덧 졸업을 하게 되어 아버지가 졸업식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아들 놈은 부모를 보자 그렇게 반가워하는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한 아가씨와 열애 중이었는데, 부모가 너무 초라하니까 부끄러웠던 것입니다. 시골에서 일만 하고 살아서 얼굴이 검게 그슬리고 옷도 남루하고 무지해서 말씀 또한 투박했던 것입니다. 부모가 눈치를 채고 몹시 서운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했으면 무엇합니까? 자기 때문에 고생한 아버지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자식이라면 불효 자식입니다. 자기를 낳아 기르시고 가르치시느라고 그 고생을 하신 부모가 떳떳하지 않다면 불효막심한 자식이라는 말씀입니다.
자식은 내 부모를 최고의 인물로 존경해야 합니다. 지식이 없고 늙고 병들어 볼품이 없어도 부모를 존경해야 하고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순종 해야 합니다. 어떤 것은 순종하고 어떤 것은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일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일에 순종하는 자세로 부모의 의견을 받아 들여 옳게 부모를 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명으로 주신 명령입니다. 절대로 불순종하면 안됩니다.
성경에서 최고의 효자는 이삭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는 27살에 아버지 아브라함을 따라 모리아산을 갔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의 나이 127세 였기 때문에, 도저히 힘으로는 이삭을 제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기를 결박할 때 반항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다른 자식들 같으면 반항하고 거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버지에게 무조건 순종하고, 아무 말 없이 제단 위에 놓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듯이 말입니다. 이런 순종이 있어야 복을 받고, 앞으로 자신도 자식들에게서 대접을 받습니다. 자신은 부모 대접을 소홀히 하면서 자식들에게만 효도하라고 하면 안됩니다.
갈라디아서 6:7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효의 원리에 적용해 보면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부모에게 순종을 심으면 자식에게서 순종을 거두고, 부모에게 불순종을 심으면 자식에게 불순종을 거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자 집안에 효자가 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님에게 불순종하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자식의 말 한마디, 서운한 행동 하나로 마음 아파하는 부모님들이 많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부모님에게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사람에게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6:2-3절에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순종함으로 모든 일이 형통하게 잘 되고, 인생을 행복하게 오래 사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가 얼마나 복된 자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효가 그 가정에 가풍이 되고, 윤리가 될 때, 주께서 주시는 축복이 넘치는 것입니다. 인간은 부모를 통해 이 땅에 와서 큰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으며 살게 됩니다. 가치로 환산이 안 되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해서 이런 축복을 주신 것을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서 효도하고, 부모를 기쁘게 해 드려야 합니다. 지금 시대가 변하여 갈수록 효도심이 사라지고 있는 데 부모님에 대한 애정을 더 깊이 가지셔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효도를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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